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51화 (351/556)

36-20. 승리자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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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도 이런 몸 상태로 끝까지 싸웠구만.”

“....”

군의관의 타박하는 듯한 질문에,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 소속의 총병 소대장, 얀 고티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전투 직후 모든 군의관들은 중상자들을 살려내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붙어 있었고, 그 다음에는 위독하지는 않아도 베이거나 찢어진 상처 등 치료가 시급한 외상이 먼저였다.

크고 작은 상처 외에 겉으로 보기에는 별 증상이 없는 얀과 같은 경우는 이제서야 차례가 왔다.

“하긴, 전투 중에 흥분하면 근육이나 관절 따위는 돌보지 않고 한계까지 힘을 쓰게 된다고 하지. 자칫하면 탈구가 될 수도 있으니까, 오래 싸우고 싶으면 약간은 조심하면서 싸워.”

“알겠습니다···.”

“그보다 자네 제10 카르카냑이라고 했지? 총병이 관절을 다칠 정도로 싸웠으니··· 내가 괜한 말을 했군. 아프지는 않은가?”

“참을 만 합니다.”

“엄살을 부려도 괜찮은데 말이지. 진통제는 더 힘든 녀석들 몫이라, 술 추가 배급권을 써 줄테니 자기 전 힘들 때 한모금씩 하라고.”

“감사합니다.”

얀은 감정 없는 눈으로, 자기 또래일 듯한 젊은 군의관이 종이에 이것저것 기록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나는 좌익 쪽에 있었네. 거기서도 드 누아나 네그라타 연대 소속 부상병들이 흘러 넘칠 정도로 있었지만··· 제10 카르카냑이 있었던 우익 쪽 상황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겠지.”

군의관은 얼굴을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에게도 힘든 기억인지, 정리되지 않아 까칠한 수염이 덮은 턱에 주름이 졌다.

원래라면 반반한 얼굴에 평생 고생이라고는 해 본적 없는 도련님 인상이었을 젊은 군의관은 피부가 거칠어지고 주름이 생겨 10년은 늙어보인다.

“제10 카르카냑을 담당했던 내 동료도 둘이나 죽었네.”

“그런 줄은 몰랐습니다. 유감입니다.”

“뭐, 전장에 나온 이상 총 맞을 각오는 하긴 했지. 나는 적어도 우리 병사들이 만들어주는 벽의 후방에서 안전하게 있었지만··· 어떤 혈전이었을지 상상도 안 가는군.”

젊은 군의관, 알체스테 델 나르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종이에 뭔가를 써서 넘겨준다.

“여기 추가 배급권이니 꼭 써먹으라고. 한동안은 너무 무거운 물건은 들지 말고, 장교 나부랭이가 뭐라 하면 군의관 알체스테가 가만 두지 않겠다 했다고 말해. 알았지? 미련하게 끌려가서 골병들지 말고 꼭 말해!”

“아, 알겠습니다.”

열정적으로 말하는 군의관의 말에 얀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어? 웃기냐? 관절 문제는 젊어서 관리 안하면 평생 따라다닌다고. 나중엔 칼질은 커녕 농사도 못 지어!”

“하하,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아무튼 제10 카르카냑의 힘든 싸움에서 잘 싸워줘서 개인적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네. 살아남아서 다행이야.”

“...감사합니다.”

총병 소대장과 군의관은 굳은 악수를 나누었다.

주디칼리 출신의 군의관 알체스테 델 나르코는 상처투성이인 얀의 마디 굵은 손을 보며 혀를 찼다.

이 얼굴만 보면 순하게 생긴 20대 초반의 청년이 어떤 지옥을 빠져나왔는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데를 와 버렸군. 다음 환자 들어오라 해!”

그는 트랑카벨 의무대가 처음 창설될 때 제의를 받고 합류한 초기 멤버 중 하나였다.

그는 더 배우고, 더 경험하고 싶은 열정적인 젊은 의사이자 학자였지만, 가문의 배경도 돈도 없는 그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엘랑키아 출신의 엄청 똑똑한데 얼굴도 끝내주게 예쁘기로 유명한 선배’ 정도로만 알고 있던 아쥬흐에게 제안을 받아 동기 몇 명과 함께 블랑독으로 건너왔다.

상당히 높은 봉급과, 군의관이라는 외과 임상은 지겹도록 경험해볼 수 있는 자리는 열정적이고 재능 있지만 가난한 의학도에게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블랑독에 도착해 샹다메리 전투에 참전하고 나서야, 자신이 취업 사기에 당했음을 알았다.

그가 아는 전쟁은 주디칼리 중남부에서 흔한, 영주나 도시 끼리의 소규모 전투가 고작이었다.

전쟁 기간의 대부분은 대치였으며, 애매한 거리에서 주고받는 포화는 밀도도 높지 않았고 정확도도 형편 없어 사상자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전술적으로 우위를 점한 쪽이 돌격을 하는 시점에서, 밀린 쪽은 이미 사기를 잃고 퇴각하곤 했기 때문에 치열한 백병전도 그다지 벌어지지 않았다.

알체스테가 아는 전투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트랑카벨 가문에 고용되어 도착한 샹다메리 전투에서 봤던 전투는 ‘다른 무언가’ 였다. 도저히 자신이 알던 그것이 아니었다.

정면의 적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박살내겠다는 기세로 근거리에서 쏟아지는 포탄.

마주 선 자리에서 수백 명 단위의 사상자가 발생해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치열한 백병전.

말과 시체가 뒤섞여 걸어다니기도 곤란할 정도로 엉망이 된 전쟁터.

거기서 자신과 남의 피로 범벅이 된 상태에서도 투지를 잃지 않고 다음 적을 찾아 눈을 빛내는 병사들까지.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특히 가장 어리다는 이유로 울며 겨자먹기로 지원해 적의 포탄이 떨어지는 언덕 위에 파견갔을 때는 이놈의 군의관 곧바로 때려치워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전투가 끝나고 몇몇 동료들은 계약을 해지하고 도망치듯 블랑독을 떠났다.

알체스테 자신도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결국은 남는 것을 선택했다.

가난한데다 커리어도 없는 그에게는 딱히 선택지가 없기도 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루 종일 중상자 수십 명을 치료하고 피투성이가 되어 녹초가 되었을 때였다. 종일 너무 집중해서 눈이 따가워서 뜰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옆을 보니 ‘엘랑키아 출신의 엄청 똑똑한데 얼굴도 끝내주게 예쁘기로 유명한 선배’ 아쥬흐 트랑카벨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부상병을 돌보고 있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블랑독에서 그녀는 어린 동생 대신 가문을 운영하고, 상단까지 운영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런 그녀는 누구보다도 세심하고 능숙하고 재빠르게, 상처를 치료하고 흐느끼는 부상병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

동경··· 이라고 한 마디로 말하기에는 좀 복잡한 감정이었다.

그런 얼치기같은 감정이야, 이미 대학 다닐때 ‘나도 저렇게 똑똑하고 잘생기고 집에 돈도 많으면 좋겠다’ 정도 선에서 끝났었고.

나름 주디칼리에서 손에 꼽히는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는 자부심에, 오늘 하루도 수십 명을 살렸다는 달성감, 내 영역에서는 절대 지고 싶지 않다는 호승심 등등이 뒤섞여 기묘한 시너지를 만들었다.

그렇게 그는 트랑카벨 의무대에 남았다.

그리고 자원하여 전장으로 향하는 파견대에 합류했으며, 머리 위로 총탄이 오가는 가운데 피바다 위에 엎드려 부상병들을 치료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겠지.

그렇게 부상병들을 원 없이 째고 꿰매고 치료하면서 경험을 쌓고, 종자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 떵떵거리며 살 것이다.

“자네는 어디가 아파서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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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다녀왔다.”

“다녀오셨습니까. 상처는 괜찮으십니까, 소대장님?”

“괜찮아. 그냥 관절이랑 근육이 힘을 너무 써서 놀랐다네.”

얀 고티에는 막사로 돌아와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야전 병원까지 다녀왔지만, 팔이 쑤시고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괴로웠다.

퉁명스럽지만 진심이 담겼던 군의관의 말대로,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싸우기는 커녕 집에 가서 농사도 못 지을 건 분명해 보였다.

그는 아직 트랑카벨 영지군이 천 명도 안 되던 시절부터, 콘도티에레가 아직 콘도티에레가 아니던 시절부터 복무해왔다.

최근 2년 사이, 트랑카벨 가문이 참전한 주요 전투는 절반 이상 참전했었고 모두 큰 부상 없이 살아남았었다.

큰 부상이 없다는 점에서는 이번 전투도 마찬가지겠지만···. 목숨을 잃거나, 팔다리를 잃어 평생 불구가 된 전우가 수도 없이 많은데 관절이 쑤신다는 이유로 아픈 티를 낼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명백하게, 이번 전투가 가장 힘들었다.

리니 능선에서도, 로데브 강 여울목에서도, 샹다메리에서도 이렇게까지 힘든 싸움은 아니었다.

“저희는 잠시 사역을 다녀오겠습니다. 카르카냑에서 새로 보급품이 도착했다고 하더랍니다.”

“먹을 거라면 좋겠는데요.”

“그래라, 나는 군의관님이 좀 쉬라고 하시더라.”

“예, 다녀오겠습니다!”

생뢰르반 전투가 시작하기 전에, 얀이 소대원으로서 이끌었던 부하는 모두 17명이었다.

그리고 전투가 끝났을때··· 그의 곁에 남은 건 겨우 4명 뿐이다.

그나마도 전투 도중, 혼전 속에 부하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생각하고 있었다. 4명이라도 무사히 다시 만나게 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려나.

얀 자신도 때로는 일개 총병으로, 때로는 어쩌다 생겼는지도 모를 잡탕 부대의 지휘자로서 몇 번이나 삶과 죽음의 경로를 오갔었으니까.

그의 부하 대부분은 가장 치열한 전투 속에 목숨을 잃거나, 큰 상처를 입고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만큼 힘든 싸움이었다. 연대장이 중상을 입고 실려갔고, 12명의 중대장 중 7명이 전사,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병사들도 절반 가까이 쓰러진 것 같다.

그만큼 전방도 후방도 없는, 끝도 없이 몰려오는 적을 몸으로 막아내는 지옥같은 싸움이었다.

만나는 익숙한 얼굴마다 참담한 표정이 아닌 경우가 없었고, 항상 나누는 대화는 잃어버린 전우에 대해서였다.

너무도 큰 희생을 감수한 제10 카르카냑은 특별대우를 받고 있었다.

보급과 식사에서도 특별 대우를 받았고, 아까 부하들처럼 본인들이 원해서 나가는 게 아니면 모든 사역에서 면제였다.

아군의 후방을 향해 돌입해오는 라솔 군의 주력을 막아냈다.

죽어라 싸우는 사이에, 소대장 얀과 동료들은 어느새 그런 전공을 세웠다고들 한다.

만나는 다른 부대 사람들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콘도티에레를 비롯한 지휘관들도 여러 차례 찾아왔었고.

하지만··· 얀은 17명의 부하들 중 13명을 잃었다.

혹시라도 자신이 계속 소대를 통제하고 부하들을 이끌었으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야 머리로는 안다. 훈련도 받았다.

한번 혼전이 벌어지고 대열이 무너지면 소대나 중대, 혹은 심지어 연대급 부대조차도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그런 경우, 자연스럽게 가까운 다른 아군 부대에 합류하여 그 지휘를 받아 전투를 계속해 나간다.

트랑카벨 영지군 소속의 모든 병사가 그런 훈련을 받았고, 머리로는 알고 있다. 자신도 그랫었으니까.

그래도, 하급 중의 하급 간부인 소대장 나부랭이일지라도, 열 명이 넘는 청년들의 목숨을 책임진 입장이었다.

“욱, 우웁··· 욱!”

갑자기 가슴속에서 뭔가가 치솟아 올랐다. 오열이 쏟아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입을 막아 참는다.

전투가 끝난 이후로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후회인지, 불안인지, 공포인지.

갑자기 치솟는 눈물을 참을 수 없을 때가 많았다. 부하들이 보급품 수령을 위해 자리를 비워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조금 진정이 된 것이겠지.

“후우··· 하아···.”

발작적으로 쏟아져 나오려던 오열을 억지로 참아낸다. 하지만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 고이다 못해 넘쳐, 뺨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뺨의 맞은 상처에 눈물이 들어가자 따갑게 느껴진다.

다른 생각을 하자.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는 일이고, 위에서 직접적으로 책임을 묻지 않는다 할지라도 평생 지고 갈 책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연민에 빠져 괴로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군인이었다. 게다가 잃어버린 부하들 만큼이나, 반드시 지켜야 할 가족과 동료, 고향이 소중했으니까.

그는 손을 뻗어 이제 자신의 것이 된, 유난히 긴 화승총을 집어 닦기 시작한다. 마치 지금은 그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는 것처럼.

이 총은 적의 저격수가 사용했던 무기이다. 자신이 개머리판으로 때려 죽였던 그 남자는 어디서 다쳤는지 이미 온 몸이 상처투성이었다.

욕심으로 총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전리품으로 제출했었으나, 저격수 소식을 듣고 얀의 이야기를 들으러 찾아왔던 간부가 주고 간 것이다.

‘이건 얀 소대장이 쓰도록 하세요. 그리고, 상황이 좀 진정되면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러 올게요오! 콘도티에레를 지켜 주셔서 감사해요!’

콘도티에레의 키가 큰 미녀 부관은, 그렇게 말하고 가 버렸다.

콘도티에레를 지켰다.

왠지 그 말의 울림이 좋았다. 미녀 부관이 해준 이야기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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