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3. 승리자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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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중대장에게 명령을 전하겠다!”
휘하 병력들과 함께 달리면서, 프리스마라 기마 용병단장 코바르 리메니에디가 외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적진을 돌파하라! 적진을 돌파해서, 강물에 말발굽을 적실 때 다시 만나자!”
“옛!”
“적 살상보다 돌파가 우선이다! 가라앗!”
속보로 달리던 프리스마라 기병대 무리에서 다시 몇 갈래로 나뉜 기병대가 뛰쳐나간다.
비교적 작은 말에 타고, 가벼운 갑옷을 입은 경기병들이 앞장서 뛰쳐나간다. 그들은 통일되지는 않았으나, 모두가 크고 작은 화약 무기를 들고 있었다.
트랑카벨 가문에 용병으로 고용되어, 바다 건너 엘랑키아에 도착할 무렵만 해도 이들이 보유한 화약 무기의 숫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콘도티에레와 고용주인 트랑카벨 가문의 배려로 상당수의 화승총이 지급되면서 모든 소속원들이 처음으로 화약 무기 사용을 배웠다.
이후 성전군과 라솔 군을 차례대로 격파하면서 추가적으로 상당히 많은 화기를 전장에서 노획했다. 특히 포로를 대량으로 잡은 프리스마라이기도 했고.
이제 프리스마라 기마 용병대는 가장 말단인 견습 기수조차도 총을 두 자루씩 들고 다닐 정도였다.
단장인 코바르 리메니에디는 물론, 휘하 용병들 전원이 몸값이 오르겠다며 기뻐했던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철저하게 실전 경험 위주로 똘똘 뭉친 용병대인 그들은 빠르게 신무기에 적응했고, 이제 그 위력을 보이려 하고 있었다.
“이 새끼들은 뭐야? 마적떼인가!”
“사격 명령은? 사격 명령은 없나!”
“시팔, 쏴버려! 쏘라고!”
타타탕! 타탕! 타아앙! 탕탕!
정돈되지 못한 방어선에서 산발적으로 총소리가 터져 나온다.
미리 준비한 방어선의 강점은 잘 통제되는 화력이다.
계획적으로 배치된 총병 대열이 뿜어대는 화선은 화망을 이루게 되며, 이를 통과하려는 적은 확률적으로만 따져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게 된다.
명중률이 낮고 다루기 어려운 무기라고 해도 제대로 쓰면 방법에 따라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제대로 쓰지 못하면 요란한 소리와 고약한 냄새나 내뿜는 쓰레기가 된다는 것이다.
피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산개 대형으로 접근하던 프리스마라의 선두 경기병들은 과감하게 마차 방어선에 다가섰다.
타탕! 타타탕! 탕!
이쪽도 사격이 산발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밀집대형도 아니고, 각자 무기가 다르다보니 적정 사거리에 도달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으니까.
하지만 그 명중률은 남다르다.
대부분이 사격은 몰라도 기마술에 능숙한 베테랑 용병들이다, 주도권을 가지고 여유있게 조준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그냥 거리가 가까웠다.
구식 총기는 강선이 없어 아무리 세심하게 다루어도 총알이 어디로 튈지 예상하기 어렵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명중률을 100퍼센트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바로 총구를 표적에게 대고 쏘는 것이다.
마차 코앞까지 다가선 경기병이 고삐를 크게 당겨 말을 제자리 선회 시킨다.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권총을 든 팔을 쭉 뻗어 적진을 노리는 프리스마라 경기병과, 절망적인 표정으로 절반 쯤 쑤셔 넣은 꽂을대를 놓아버린 라솔 총병의 두 눈이 마주친다.
타앙!
영원과도 같은 찰나가 흐르고, 몸을 돌리며 크게 출렁거린 안장의 상하 움직임이 안정된 순간, 방아쇠가 당겨졌다.
“끄윽!”
총열에서 화약이 폭발하며 뜨겁게 달구어진 납탄이 새하얀 연기와 함께 뿜어져 나온다.
인간이 인식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짧은 시간이 흐른 후, 납탄은 라솔 총병의 흉갑 어깨 부분을 부수고 들어간다. 핏방울과 쇳조각을 뿌리며, 총병의 상체가 크게 흔들린다.
“아라라라라라라라!”
“쏴라! 쏴버려!”
프리스마라 기병대의 전매특허인 기묘한 돌격 함성은 그 와중에도 멈추지 않는다.
탕! 타앙!
“커흐윽!”
“큭, 맞았다! 맞았다고!”
“지원! 지원이 필요해! 으아아아악!”
총기를 다루는 것은 다소 거칠더라도, 말을 다루는 것에서는 일류인 프리스마라 경기병들이다.
빠르게 달리다가도 순식간에 멈추고, 좁은 공간에서도 순식간에 말을 돌리고 빠지며 뒤따르는 동료에게 자리를 내 준다.
수비측인 라솔 보병이 대열을 교체하거나, 예비 병력이 미처 앞으로 나서 자기 위치에 도착 하기도 전에 총알이 먼저 마차 방어선의 틈을 뚫고 들어간다.
무수히 많은 장전된 화승총들이 발사 기회를 가져보지도 못하고 바닥에 나뒹군다. 그 주인들은 보통 그 옆에 나란히 눕게 마련이었고.
“이쪽으로 와!”
“사격!”
타타타타탕!
물론 방어선 전부가 그렇게 기병대의 공격에 휩쓸리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패잔병일지라도, 라솔 군이나 타라트라바 군이나 하급 병사들의 질은 상당히 높았다.
게다가 복잡한 지형에서 벌어지는 혼란스러운 척후전이나 조우전에도 익숙한 군인들이다. 제대로 된 지휘 통제만 있으면 그 위력을 어김없이 발휘한다.
정돈된 창벽에 의해 보호되는 총병대열이 뿜어내는 살인적인 화력이 접근하는 프리스마라 기병들을 말에서 떨군다.
게다가 그들은 뒤집힌 마차로 창병들이 지키지 못하는 측면을 보호받고 있었다.
이래서는 무리! 자칫하면 여기는 기병의 무덤이 된다!
기겁한 경기병들이 말머리를 돌린다. 이런 상황에서 정면 돌파는 무모한 짓이니까. 물론 그들은 겁쟁이는 아니다. 책임감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달려드는 건 머리속까지 쇳덩이인 기사님들이나 할 법한 짓이지.
다른 약점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미련없이 물러날 수 있는 것이다.
“으아악! 뭐야?”
“붙잡아! 붙잡으라고!”
“컥, 늦었어!”
···다만 이번만은 굳이 다른 약점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요란하게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거대한 회색 짐승이 난동을 피운다.
통상적인 승용마보다 한 뼘은 더 키가 큰 말이 마치 맹수처럼 포효하며 투레질을 했다.
과연 초식동물인가 싶을 정도로 우락부락한 근육이 부드러운 털가죽 아래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오래 달리는 것은 무리지만, 단기적으로 힘을 쓰는데 특화된 짐말이기 때문이다. 후방에서 공포에 질려 뛰쳐나온 말 무리 중 하나였다.
“억! 물러서!”
“누구야 이거? 으아앗!”
본래 말은 말발굽에 뭔가가 닿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다 못해 두려워한다고 한다. 그래서 의외로 말에게 짓밟힐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하고.
허나, 이것은 ‘정상적인 말’인 경우이다.
놀람과 두려움으로 반쯤 미쳐버려 거품을 문 말은 말발굽에 닿은 모든 것을 부숴 버리려 한다.
그게 부드러운 인간의 살과 근육이든, 단단한 철제 갑옷과 투구이든, 평소와는 다른 목적으로 쓰이고 있는 마차 형태의 바리케이드이든 말이다.
콰가가각!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뛰던 짐말이 들이받자, 전복되어 있던 마차가 다시 한번 뒤집힌다.
자기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졌던 회색 짐말은 바닥에 쓰러졌다가, 다리가 아픈지 절룩거리며 이제 가로막는 게 없어진 앞으로 나아간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해프닝을 놓칠 프리스마라 기병대가 아니었다.
“돌겨억!”
“길이 열렸다아아아!”
“아라라라라라라라!”
“카라라라라랏!”
다음 차례는, 경기병들이 약화시킨 대열을 살피며 기회를 노리던 프리스마라 소속의 동료 중기병이다.
앞서 적을 공격하던 동료들이 비해서 좀 더 크고 강한 말에 탔으며, 더 강철이 많이 사용된 투구와 갑옷을 입고, 더 끝내주는 무기를 든 기병들이 뻥 뚫려버린 방어선에 창처럼 꽂힌다.
이쪽에서 뛰쳐나간 미친 말에 의해 뚫린 구멍이 미처 채워지기도 전에, 저쪽에서 달려오는 말이 뛰어든 것이다.
“으윽! 갑자기 어디서 온 거지?”
“옆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버텨라!”
“아라라라라라라라라!”
“물러서면 안 돼! 주신의 영광이 왕국에··· 커헉!”
“돌겨억! 이야아아아!”
좁은 장소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방향을 바꾸기 위해 애쓰던 창병의 가슴팍이 위에서 내리찌른 기병창에 뚫려 버린다.
경악한 부하들을 안정시키려 애쓰던 장교의 반질반질한 강철 투구가 가시망치에 찍혀 난 손톱만한 구멍에서 걸죽한 피와 뇌수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방금 전까지 악을 지르며 상황을 수습하려던 라솔 군 중대장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허공을 휘저으며 반격을 부르짖던 장검의 끝은 힘없이 흙바닥을 향한다.
최상급의 타라트라바 강철로 만들어진 장검은 여전히 서늘한 예리함을 잃지 않고 있었으나, 중대장의 정신은 완전히 무너진 모양이다.
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비스듬한 뒤편에서 접근한 프리스마라 기병의 철퇴가 그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이스키비르 강변에 피를 뿌리며 중대장이 절명한다. 그에게 다행일지 불행일지, 이미 그 시점에 살아있는 그의 부대원은 얼마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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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며 허공에 들어 올렸다.
뭔가 주변에 보이기 민망한 동작이었지만, 그래도 좋을 정도로 기병 돌격은 대성공이었다.
처음에는 교묘하고 날렵하게 접근한 프리스마라 기병대의 돌파가 더 빨랐고, 우직하게 접근한 서부군 기병대의 돌파가 좀 더 느렸다.
하지만 그래도 대륙 전체에서 유명한 엘랑키아의 중장기병이라고, 일단 적진에 침투한 서부군 기병대는 완전히 적을 갈아버리며 속도를 높였다.
악에 받혀 돌진해오는 엘랑키아 기사단을 막기 위해서는 저런 얄팍한 방어선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창병과 총병이 적절하게 섞인, 숙련된 보병들로 이루어진 종심이 깊은 방어선 정도는 되어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게 엘랑키아의 기사들이다! 라고 외치는 듯, 기회를 얻은 그들의 돌격은 준비가 덜 된 적들에게는 그야말로 사신이었다.
그렇게 두 기병대가 마치 흉포하고 거대한 괴수의 턱처럼, 양쪽에서 마차 방어선을 눌러 부순다.
그 사이에, 두 기병대에 가려지지 않은 적의 한가운데로는 8문의 기마 포대가 끊임없이 화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기병대가 상대하는 방어선을 부수는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들의 잘 통제된 포격이 적진 후방에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는 누가 봐도 명확했다.
“아아··· 어리석지만 참으로 가련한 짐승들이구나. 어떤 죄를 지었다고 인간들의 전장에 끌려 나와서··· 읏, 흐음. 크흠.”
턱이 땅에 닿을 지경으로 벌어져 성공적인 휘하 기병들의 돌파를 지켜보던 앙비토 드 몽파르지에 공작이 마치 음유시인처럼 뭔가를 말하다가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문다.
적진 한가운데서 포격과 근거리 전투에 놀라 난리법석을 벌이고 있는 짐말들을 보고 내뱉은 탄식이겠지.
그리고 다행히도 지휘관으로서 자신의 언행이 적절치는 않다고 느낀 모양이다.
이 솔직하고 악의에 둔감한 공작님은 주변을 썰렁하게 만드는 말 실수를 종종 한다. 그래도 인간으로서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서인지 밉지만은 않았다.
짐말들이 불쌍하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목숨 걸고 싸우는 병사들이 수천 명인데 입 밖으로 꺼낼 생각은 아니겠지.
만약에 적장이 냉혹할 정도로 효율적인 지휘관이라면, 아니··· 우선 아군 방어선 전체를 통제에 넣고 있는 상황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하겠지만.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혹은 마부에게 통제되지 않은 말들이 날뛰기 시작한 순간에 짐말들을 죽이도록 명령했을 것이다.
아무리 짐승이라도 아군을 돕는 존재를 대량으로 학살하는 일.
명령에 따라 수천의 아군과 적군이 목숨을 잃게 되는 사령관 입장에서도 꺼려지는 실로 참혹한 명령이다.
하지만 저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 그로 인해 방어선을 형성하던 아군이 방해받고, 그것때문만은 아니더라도 결국 예상보다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았던가.
아니라면 사전에 더 후방, 강 한가운데라도 멀찍이 떨어뜨려 놓았어야 했다. 전투 중이 아니라면 마부들의 통제에 따라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으리라.
아마 적장도 지난 전투에서 무기를 맞댔던 그 사람이라면 이런 점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처 생각을 못 했거나, 전투 중 혼란 통에 통제가 닿지 않아 판단을 내렸을 때는 이미 늦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안일한 판단에는 어느정도는 ‘마차로 강화된 방어선’이라는 안도감이 영향을 미쳤겠지.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거기 의존한 마음이 저들을 망쳤다고 생각했고, 내 예상대로 되었다. 설령 날뛰는 짐말들이 없었다고 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