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43화 (343/556)

36-12. 승리자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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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과광! 퍽!

“허으윽!”

“끄아아아악!”

세 명이 쓰러졌으나, 두 명 분의 비명만 들렸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와 흙바닥을 튀어 오른 포탄이 쪼그려 앉은 첫번째 병사의 머리를 부수고, 두번째 병사의 옆구리를 뚫고, 세번째 병사의 주먹을 들고있던 총과 함께 뭉개버렸기 때문이다.

“끄읍, 크흐흑, 끄으···.”

머리를 잃은 첫번째 병사는 소리도 없이 앞으로 수그리듯 쓰러졌고, 두번째 병사는 잠시 경련을 일으키다 숨이 끊어졌으며, 마지막 병사는 고통으로 흐느끼며 몸부림친다.

끔찍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비명을 참는 것은 검천사 연대에 소속한 베테랑 장병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이리라.

“버텨라! 적도 이런 급한 상황에 포탄이 충분할 리는 없다!”

“조금만 참아! 엘랑키아 돼지들은 결국 제 발로 우리 총 앞으로 기어올 수 밖에 없으니까!”

장교들이 사실인지 희망사항인지 알 수 없는 내용을 고래고래 고함으로 지르며 병사들을 독려한다.

쿠웅, 쾅! 퍼억!

카가가각! 투웅!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포탄은 끊임없이 낙하한다.

“빌어먹을, 지금은 버티는 수 밖에 없다.”

패주 대열의 후위를 맡은 사령관, 퀸토 로르카 데 페니베라다 변경백이 굳은 표정으로 말한다.

그의 손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 자신도 죽도록 불안하다. 다만 제발 부하들이 자신의 불안함을 몰랐으면 싶었다.

처음에는 순조로웠고, 오히려 적의 허를 찔렀나도 싶었던 행군은 갑작스러운 장애물, 불타는 장작더미의 벽에 막히며 멈추게 되었다.

직속상관은 아니더라도 직급상 상관이라 할 수 있는 크루사다 틴토 데 타라트라바 공작은 대열을 풀고 최대한 적과 거리를 벌려야 한다 주장했었다.

필요하다면, 당장 여기서 도보로라도 강을 건너자고까지 했다. 강을 건너다 후방을 공격당하느니 그게 낫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퀸토 변경백의 생각은 달랐다.

현재 그들의 원정군은 위기에 처했으며, 한시라도 빨리 강을 건너 라솔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은 크루사다 공작과 같았다.

하지만 ‘한시라도 빨리’ 앞에는 ‘안전하게’가 붙어야 한다는 것이 퀸토 변경백의 판단이다.

···그도 밤마다 몰래 정찰대를 보내 수심을 체크하고 강 건너 라솔 영토로 전령을 보내는 등 상황 파악에 열심이었다.

정찰대가 파악한 바로는, 아직 무장한 보병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얕은 수심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해서 강을 건너다가는 자칫하면 엄청난 숫자의 병력이 익사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퀸토 변경백은 아직 중견 장교였던 청년 시절에, 지휘부의 지휘 실수로 강을 건너던 창병 중대의 절반 이상이 물에 휩쓸리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사전 체크한 바로는 충분히 걸어서 건널 수 있는 깊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수의 병력, 특히 기병이 건너면서 강바닥 지형이 변해버린 것이 문제였다.

결국 120명이 넘는 라솔 군 장병들이 싸워보지도 못하고 비참한 개죽음을 당했었다.

그때 상황이 지금과 비슷했다. 가뭄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수위가 낮아진 강을 방심하고 건너다가 대참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게다가 저 계속 따라오는 엘랑키아의 무장선 두 척이 계속 거슬렸다. 저런 배가 떠 있을 정도라면 생각보다 수심이 깊은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계속 들었고 말이다.

이런 점들을 들은 크루사다 공작은 납득하고, 추격해오는 적을 뿌리치는 일전을 준비하는 데 동의했다.

장작더미는 어차피 몇 시간 정도면 꺼질 것이다. 해가 질 때 까지만 버티면 식은 잿더미를 치우고 전장을 빠져나갈 수 있겠지.

철저하게 지키는 전투라면 하루가 아니라 며칠이라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판단이 서기도 했고.

“아드리아니 참모장의 전령입니다! 방어선 중앙부 마차 방어진도 병력 배치가 완료되었다 합니다, 변경백 각하!”

“오오, 수고했다.”

추격해오는 엘랑키아 군의 기세는 매서웠지만, 지키는 라솔 군의 기민함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 최후방을 지키는 후위 부대는 퀸토 변경백의 지휘 하에 약간 찌그러진 타원형 진형으로 부대의 후방과 측방을 지키고 있었다.

타원이 찌그러진 것는 숙련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능숙한 전방 지휘관들이 지형에 맞게 대열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적절한 밀집도, 적절한 무장 배치에 후방에는 많지는 않지만 기병 예비대까지 있다. 여차하면 보병들이 만들어준 공간을 통해 뛰쳐나가 역습을 가할 것이다.

그리고 전위의 타라트라바 군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측면 방어선을 펼쳤다. 대신, 전투 중에라도 기회가 되는대로 방해물인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길을 개척하기로 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전위와 후위를 잇는 중앙부는 현재 다소 특이한 상황이다.

바리케이드를 철거하는 와중, 이를 피해 급하게 전투부대 위주로 행군하다보니, 평탄한 도로가 필요한 보급부대가 적체되었다.

결국 행군 대열 전체에 어느 정도 분산되어있던 보급부대가 밀리고 밀려 대열 한 가운데에 대부분 모여 버리는 결과가 되었다.

각종 군수 물자를 실은 수많은 수레들이 빽빽하게 교통체증을 일으키는 가운데, 수레를 밀고 빼고 하다가 몇 대가 넘어지는 사고까지 일어났다.

평시라면 행군 속도를 또다시 늦추는 비상사태였겠지만, 어차피 이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이용하기로 했다.

외곽 수레들을 포기해 아예 눕혀버리고, 여기 의존해 방어선을 편성했다.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로 탄탄한 방어선을 만들 수 있었다. 적의 사격으로 부터 부분적으로나마 엄폐물이 되며, 기병 돌격을 막는 방책 역할도 해 줄 테니까.

이후 이동할때 수레의 상당량을 버리게 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본국으로 돌아갈 때 까지의 며칠만 버티면 되니까.

···혹은 적지에서 현지 조달로 물자를 확보하거나 말이다.

콰앙!

“으아아악!”

“버텨엇!”

“크윽, 맞았어!”

무심한 듯 날아온 포탄이 또다시 라솔 군의 방어선을 훑고 지나갔다. 하지만 버틸 수 있다.

해가 지면 다시 이동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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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포격 소리가 끊임 없이 들려온다.

첼레스티나가 부지런히 일하고 있는 모양이다. 비록 예정보다 포대의 총 화력은 적지만, 비교적 근거리에서 일방적으로 얻어 맞는 적의 심정은 결코 좋지 않겠지.

거기에 드 레뮤즈 보병대의 공격도 거듭될 터이니, 적이 받는 압박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의외로, 아니 예상대로라고 해야 할지, 라솔 군은 견고한 방어선을 만들어 잘 버티고 있었다.

역시 타라트라바 군에 비해서 라솔 군이 정예이다. 이런 불균형이 있었기에 오히려 승리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콘도티에레, 드 레뮤즈의 소베트르 경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슬슬 시간이 됐나.”

이번에는 포격 소리와는 반대편에서 요란한 함성소리가 울린다. 잘 무장된 드 레뮤즈 기병대가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며 적을 압박하고 있었다.

반대편, 타라트라바 군의 방어선이 바짝 얼어붙는 게 여기서도 보인다.

하지만 드 레뮤즈 기병대는 일제 돌격을 하지는 않는다.

그저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적절한 위치에서 돌격 대형을 갖추고 적을 노려보기만 할 뿐. 완벽한 통제를 보니 소베트르 경의 지휘력이 빛나 보인다.

주력이 상황을 관망, 아니 언제라도 돌격할 수 있다며 적을 위협하는 동안, 대신 소수의 경기병들을 척후대로 내보내 적을 괴롭힌다.

대규모 기병대가 보병 중심 부대를 괴롭히는 정석적인 방법이다.

한달음에 달려올 수 있는 거리에 강력한 충격력을 가진 중기병이 대기하는 동안, 소수의 척후 기병들이 다가와 대열을 괴롭힌다.

보병들이 참지 못하고 일제사격을 때려 버리면, 방어선 일부의 방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므로 마음대로 쏠 수도 없다.

결국 양측이 신경전을 벌이며 어느 쪽 멘탈이 더 버티나 주고 받을 뿐이다.

물론 이 경우 유리한 것은 적군이고, 드 레뮤즈 기병대가 적진을 돌파하거나 붕괴시킬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다.

현실적으로 쉽지도 않을 뿐더러 자칫하면 이쪽이 큰 피해를 입는 도박수를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는 지금 와서 쓰고 싶지는 않았다.

후위 쪽의 보병 공격과 포병 공격, 그리고 전위 쪽의 기병 공격은 모두 진심이지만, 결정적인 공격은 아니다.

그 역할을 맡아줄 망치는 바로 여기 있으니까.

“기마 포병대 포격 개시!”

“포격 개시!”

“쏴라아!”

펑, 펑, 퍼엉, 펑!

수풀과 언덕 그늘에 잘 숨겨져 있던 포병들의 차례이다. 2명, 혹은 3명의 포수가 다룰 수 있는 작은 포들이 빠른 속도로 방열하여 불을 뿜기 시작했다.

목표는 물론 전위도 후위도 아닌, 중앙부의 마차 요새 방어선이다.

모두 8문의 화포 중, 4문은 제31 몽세나 정찰 연대에서 빌려온 가죽포, 나머지 4문은 생뢰르반에서 노획한 적의 경야포들이다.

원래는 모두 10문을 준비했으나, 도중에 2문이 망가지는 바람에 아깝게 폐기할 수 박에 없었다.

통상적으로 만들어진 포가는 역시 거친 기병대와 함께 달리는 기동을 버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오산이었다.

그렇다 해도, 나머지 8문은 포수들과 함께 도착하여 지금 이 장소에서 라솔 군의 방어선을 때리고 있었다.

전위와 후위에서 이미 전투가 발생한 상태에서 잠시 대기하던 중앙부의 적은, 갑자기 포탄이 쏟아지자 난리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포탄에 맞아 부서진 널빤지 조각이 허공을 날고 인간과 말의 비명소리가 오간다.

두 번, 세 번 8문의 포대가 불을 뿜는다.

내 예상이 대충 맞아들어가는 것 같다. 막 적을 추격하여 도착 직후, 적진을 관찰할 때 보였던 적의 약점 말이다.

“오, 오오? 어어어!”

옆에서 적진을 지켜보고 있던 앙비토 드 몽파르지에 공작이 마치 어린아이같은 기묘한 소리를 낸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런 행동이 장난은 커녕, 이 독특한 젊은 공작님의 매우 진지한 감정의 발로라는 것을 잘 안다.

“이거, 트랑카벨의 에트 경 말대로 돌아가는구려! 확실히 방어선 내측의 적은 준비가 되지 않아보이오!”

“다행히도 그렇군요, 공작 전하.”

예상대로, 적은 마차 요새 방어선의 ‘외부’에만 신경을 썼다.

아니 부족한 병력으로 넓은 방어선을 지키려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외부를 둘러싼 마차를 뒤집어 단단한 방어선을 만들고, 거기 정예병력을 배치했으리라.

실제로 적의 외곽 준비태세는 상당히 단단해보인다. 이를 정면에서 뚫으려면 상당한 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면 접근조차 힘들겠지. 접근한다고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물론 아니고.

하지만 그 안쪽에 줄줄이 주차되어 있는 보급 마차들은 그럴 여유가 없었으리라.

게다가 거기에는 내가 노린 ‘진짜’ 표적이 있겠지.

“오오, 적진에서 말이 날뛰고 있소! 모두 귀하의 말 대로요, 정말 대단하군 트랑카벨의 에트 경! 이건··· 이건 실로! 오오! 귀하는 정말 전장에서는 미래를 읽는 능력이라도 주신께 선물 받은게 아닌가 싶소이다!”

“하하··· 그렇지는 않습니다.”

앙비토 공작의 과도한 리액션이 당황스럽지만, 예상대로 일이 잘 풀리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금 날뛰고 있는 것은 보급대의 마차를 끌던 짐말들이다. 안전하다 생각한 후방에서 말을 지키던 마부들과 짐꾼들도 죽을 맛이겠지.

어느 역사를 막론하고, 전투부대가 순수하게 전투인력만으로 구성되는 예는 거의 없다.

특히 대군에는 필연적으로 대규모의 비전투인력이 따라붙는다.

대표적인 게 보급부대에서 말과 수레를 다루는 마부와, 짐을 옮기고 관리하는 인부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평소에는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장소에서 대기한다.

설령 아군이 전투에서 패배한다고 해도, 이들에게 싸워서 보급품을 지켜야 할 의무 따위는 없으므로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전투병과는 각오 자체가 다르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평소와는 다른 상황이다.

행군 중에 급하게 방어선을 형성했기 때문에, 일단 너무 좁았다. 후방이라 하지만 후방이 아니며, 포탄은 물론 눈 먼 총알도 얼마든지 날아들 수 있는 장소이다.

게다가 인간만 비전투원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말도 마찬가지였다.

군마, 즉 전투에서 기병을 태우는 말은 생각보다 귀하고 비싼 존재이다.

일단 무장한 인간을 태울 수 있을 정도로 크고 강건해야 했으며, 또 덩치와 체력의 비율이 적절해 오랫동안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자라면서 침착하게 기수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르도록 훈련해야 하고, 전장에서 흔히 만나는 여러가지 요소들을 극복하는 교육 또한 받아야 한다.

전장에는 말이 두려워할 법한 요소가 얼마든지 있다.

평소에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고함, 총성, 충격음 따위의 소리, 고약한 화약냄새와 피냄새, 이쪽을 향해 번쩍번쩍 빛나는 창 끝과 철제 갑주, 잔뜩 흥분한 다른 말들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보급부대에서 수레를 끄는 말들은 이런 훈련이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천천히 오래 격렬하지 않은 운동이 가능한 짐말일 뿐이다.

지금 그들은 평소에 전혀 경험해본 적 없는 ‘끔찍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마부의 통제를 벗어나 마구 날뛰는 것은 당연했다.

퍼펑, 퍼엉! 펑!

8문의 포격은 이제 상당히 안정되어, 굉장한 명중률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 적은 추격군이 포대를 여기까지 글고 왔으리라 예상하지 못했겠지. 하지만 우리는 했다!

게다가 기마포대 운용에 경험 많은 포병들도 여럿 있었으며, 10문 중 2문이 유실되는 바람에 인원도 넉넉했다! 사격속도도 평소보다 빠르게 느껴진다.

이게 짐말들의 느긋한 신경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몇마리는 두려움에서 멀어지기 위해 말라붙은 강물로 뛰어들었으며, 다른 일부는 방향도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했는지 자신들을 지켜주는 라솔 방어선을 뒤로부터 헤집어 놓고 있었다.

말들이 날뛰자, 마부들과 인부들도 날뛰고, 전투 병력과 마구 뒤섞인다.

내가 기다린 것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신호 나팔을!”

“신호 나파알!”

미리 예정되어 있던,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복잡하고 날카로운 나팔소리가 전장에 퍼져나갔다.

“가자!”

“앞으로! 나를 따르라!”

잔뜩 기다리던 두 갈래의 강철 화살이 후방으로부터 쏘아져 나간다.

왼쪽은 서부군의 기병대, 오른쪽은 프리스마라 기병대이다.

“엘랑키아를 위하여어!”

“돌겨억! 가자아아!”

“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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