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41화 (341/556)

36-10. 승리자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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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전쟁 중인 지역의 주민들은 그다지 전쟁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자신들의 영주가 직접적으로 엮인 전쟁이 아니라면 말이다.

자기 주군의 주군이 어느 왕이며, 자신이 어느 나라의 국민이라는 인식 정도는 있지만. 그게 실질적인 소속감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당장 바로 위의 영주야 세금을 바치는 대상이고, 유형 무형의 보호를 해주며 부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 어쨌거나 의존할 수 있는 상대이다.

그에 비해서 그 상위 군주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 영주님의 조상에게 봉토를 내려준 누군가의 후손이라는 느낌 정도.

어느정도 연고가 있다는 것 정도야 인정하지만, 거기서 끝이다. 하물며 뭔가 책임을 지게 하려 한다면 그다지 살갑지 않은 ‘남’이다.

게다가 전쟁이란 본래 불길한 것. 휘말리게 되어도 전력을 다해 벗어나려 노력할 판에, 굳이 자진해서 전쟁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반대로, 전쟁중인 군대에게 적국의 민간인 역시 껄끄러운 존재이기는 마찬가지다.

‘엘랑키아 주민들과 거리를 두어라’

이것이 이번 원정군의 주장인 크루사다 틴토 데 크루사다 공작의 이름으로 내려진 공식 명령이었다.

먼저 다가가지도 말고, 다가오게 두지도 말라는 것이다.

다가가지 말라는 것은 당연히 괜히 엮였다가 귀찮아질 일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라솔 인들이, 혹은 주장인 크루사다 공작이나, 부장인 퀸토 로르카 데 페니베라다 변경백이 인격자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철저하게 효율의 측면에서 생각할 때, 현지 민간인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것은 전혀 좋은 일이 아니다.

물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변경 마을을 약탈하고 주민들을 학살할 수도 있겠지만.

또한 다가오게 두지 말라는 것은 부외자를 병영 안에 들여 놓으면 필연적으로 정보가 새어 나가기 때문이다.

설령 간첩질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때때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잡상인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게 두둑한 금화 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기도 하니까.

그래서 지금까지는, 비교적 그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었다.

애초에 아직 전쟁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전투의 연속이었기에 문제가 생길 일도 없었다.

현지인들이 대부분 피난을 간 것도 있었지만.

그러니 앞으로도 별 일이 없었어야 했을 텐데.

자신들이 먼저 건들지 않으니까, 저들도 감히 이쪽을 건들지 않으리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잊은 것인지, 애초에 몰랐던 것인지. 라솔 군은 자신들이 여기 도착하기 전, 라솔의 이름으로 저들을 먼저 ‘건든’ 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과 있었다.

“어휴 또야?”

“어서 치워! 시간이 없다!”

“좀 도와주십쇼! 양이 좀 많습니다!”

“젠장할 뭐가 이리 많아?”

행군 선두의 타라트라바 병사들이 욕설을 퍼부으며 길을 가로막은 나무 더미로 다가간다.

오늘만 벌써 세 번째다.

원정군이 ‘도주’하고 있는 강변 도로에 나무를 비롯한 잡동사니가 쌓여 있었던 것은. 하나같이 무겁고 장정이라 해도 혼자 힘으로는 옮기기 힘든 것 뿐이다.

“어휴 이걸 다 어쩐대?”

“강가로 밀어 버려!”

“자자, 서두르자. 여기서 오래 멈추면 후속 병력이 밀린다고?”

군소리를 할 지언정, 병사들은 부지런히 줄지어 바리케이드 앞에 선다.

지금 다소 느슨해지기는 했지만, 그들은 패배해 도망치는 상황이며, 바로 뒤에서는 적군이 눈에 불을 켜고 쫓아오고 있었다.

···특히나 타라트라바 보병의 대부분은 생뢰르반의 초원에서 ‘유난히 강력한 엘랑키아 보병대’의 화력을 정면으로 받다가, 역습당해 혼까지 빠진 직후이다.

그들과 다시 맞서 싸우느니, 통나무 좀 나르고 마는 게 낫다, 라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백배 천배 낫지.

“뭔 냄새 나지 않아? 비린내인가?”

“저기 부서진 수레가 거름 수레인 것 같은데.”

그래도 지금까지는 생나무였는데, 이번에는 유난히 양도 많고 냄새도 독하다. 가뜩이나 땡볕에 땀을 뻘뻘 흘리던 병사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힘내라. 이번만 고생하고 선두 교대해 달라고 할 테니···.”

지휘 장교가 동정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본래 행군의 선두 정찰병은 위험하고 영광스러운 자리지만, 매번 중노동이 따라붙어서야 모두가 기피하는 자리가 되고 만다.

“자 시작! 어서 끝내자고!”

“예엡!”

무기를 내려놓은 병사들이 바리케이드에 다가가는 순간···.

“어엇!”

“뭐, 뭐야?”

갑작스러운 열기. 바리케이드에 다가서던 병사들이 놀라 물러선다. 화악하고 시뻘건 불이 피어 오른다.

“불, 불이다!”

“불이 났어! 어, 어떡하지?”

산더미처럼 쌓인 통나무와 잡동사니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근처에는 다가갈 수도 없을 정도로 맹렬한 기세에 할 말을 잃는다.

“이거 진짜··· 어떡하죠?”

“...방법을 찾아보자.”

비린내인지 뭔지 알 수 없었던 악취는 더위에 썩어가는 기름 냄새였다. 생선 기름이 뒤섞여서인지 악취를 내뿜던 기름에 푹 젖은 통나무들은 활활 잘도 타오른다.

“엘랑키아 돼지 새끼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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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냐···.”

불타는 바리케이드를 우회하고 행군을 시작한 타라트라바 군의 선두는 또 다른 바리케이드를 발견했다.

엄청난 기세로 불타오르는 바람에 당장 바리케이드를 치울 수 없게 된 크루사다 틴토 데 타라트라바 공작은 고심 끝에 일부는 남아서 치우고, 나머지는 우회하도록 명령했다.

보급품이나 부상병을 실은 수레는 지나갈 수 없지만, 보병 부대라도 계속 전진하지 않으면 적체가 일어나 대열 전체가 멈출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부피가 큰 수레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길을 치울 수 있겠지, 라며 생각한 미봉책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두 시간도 채 지나기 전에, 새로운 바리케이드의 장벽이 선두 정찰대를 맞이했다.

“어휴···.”

“모두들 예상했지 않나? 무기 내려놓고 치우러 가자!”

“공작 전하께서 추가 포상을 약속하셨다, 가자고!”

“알겠습니다.”

벌레 씹은 표정으로 대열에서 일부가 이탈한다. 몇몇은 무거운 흉갑과 투구까지 벗어버린다.

그도 그럴 것이, 네번째 바리케이드는 지금까지의 것 보다 규모가 더 컸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길의 통행을 방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대한 나무둥치처럼 모습을 드러낸 바위 언덕에서 강물까지 완전히 이어진다.

이번에는 강물에 군화를 적실 각오를 하지 않으면 우회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날씨에 질척질척한 진흙탕으로 무릎까지 젖은 상태로 행군하다니, 생각만해도 진저리가 쳐지는 일이다.

그런 고행길은 가능하면 절대로 피하고 싶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조심해! 정찰병이 먼저 장벽의 앞, 뒤를 확보한다!”

“아까 불 지르고 도망간 놈이 있다고 한다!”

20명 정도의 선견대가 먼저 무기를 겨누고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엘랑키아 놈들이 또 불을 지르고 도망칠지도 모른다. 가능하면 불 지르는 것을 막아야 하고, 그게 안되면 불 지른 놈이라도 잡아 죽여야 한다.

그렇게 죽는 인간이 나와야, 원정군을 골려대며 방해공작을 펴는 지역민 녀석들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니까.

“정찰대가 확보하면 곧바로 작업 시작한다! 하는 김에 빨리 끝내버리자고.”

“알겠습니다,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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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니다. 열 일곱··· 여덟··· 딱 스물입니다.”

“좋아. 신호할 때 까지는 고개 들지 마.”

한편 바리케이드의 반대편에는, 드 레뮤즈 가문의 기사와 병사 십수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완전 방심하고 있습니다. 갑옷까지 벗어놓고, 군인이라기 보다 막노동꾼 같군요.”

“한 방 먹여줘야지. 불씨는 준비 됐지?”

“예, 소자작님.”

이 작은 부대의 지휘관은 라마엘 드 레도쿠르, 드 레뮤즈 백작가 보병대장 세샤르 드 레도쿠르 자작의 장남이었다.

그는 손에 든 권총의 격철을 조심스럽게 내렸다. 설마 싶지만, 부싯돌 끝이 불을 일으키는 바퀴의 거친 표면에 닿는 소리라도 적이 들으면 큰일이니까.

그 주변에 몸을 바짝 숙이고 있는 다른 이들도, 모두 총이나 활을 들고 있다.

“기다려, 더 다가오게···.”

정찰대는 이쪽으로 무기를 향하고는 있지만, 그다지 긴장한 기색은 아니다. 분명, 어디선가 적이 자신들을 노리고 있으리라 상상도 못하겠지.

바리케이드 확보는 단순한 요식행위였고. 혹시라도 불을 지르고 도망치는 적이 있으면 그걸 잡는다, 정도를 고민할 뿐이었다.

저벅, 파각. 가까이 다가온 적병이 나뭇가지를 밟아 부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다가왔다.

맨 앞에 선 적병이 칼 끝이 또렷하게 보인다. 땟국물로 더러워진 수염투성이 얼굴이 나무 사이로 불쑥 드러났다.

“쏴라!”

탕! 타타타타탕!

라마엘의 명령에 모두가 일제히 상체를 일으키며 방아쇠를 당긴다. 폭음과 함께 하얀 연기가 바리케이드 전면을 뒤덮는다.

총 대신 활을 가진 궁수들도 열심히 화살을 연달아 날린다.

당연히 철제 흉갑을 뚫을 수야 없지만, 이 거리라면 얼굴이나 다른 노출된 부위에 맞는다면 치명상을 입힐 것이다.

“어? 으억!”

“끄아악!”

“매복! 매복이다아!”

스무 명의 정찰대 중 네 명이 쓰러졌다. 권총과 화승총을 합쳐 모두 열 자루니, 나쁘지 않은 명중률이다.

적은 잠시 혼란에 빠진 것 같다. 기습당한 시점에서 더 빠르게 근접해야 할지, 혹은 물러서야 할지 판단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는 라마엘이 처음에 노렸던, 맨 앞에서 얼굴을 들이밀던 장교를 쓰러뜨렸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탕 타탕! 탕탕!

적도 보유한 총으로 반격을 가한다. 하지만 총알은 근처에도 와서 닿지 않는다.

가뜩이나 바리케이드 너머에, 하얀 화약연기까지 뒤덮인 판이니 뭐가 보이면 이상한 노릇이다.

“모두 장전해! 한 발 더 쏘고 간다! 궁수는 계속 견제하고!”

“옛, 대장!”

“불씨 담당도 준비해, 다음 사격 직후에 불 지를 거니까.”

“알겠습니다, 소자작님!”

불씨를 소중히 지키고 있던 어린 종자는 능숙하게 횃불로 옮겨 붙인 상황이었다. 생선 기름을 뿌려 고약한 냄새가 나는 바리케이드는 불을 놓으면 곧 활활 타오르리라.

라마엘은 자신도 부지런히 권총을 장전하며 주변을 돌아본다.

그의 측근인 가신들을 제외하면, 모두 이스키비르 강 연안의 하급 향사들과 지원한 사냥꾼들이다.

대부분은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지만, 모두가 긴장한 얼굴로 자기 역할을 다 하고 있었다.

“쏴라!”

타타타탕! 타탕!

이번에는 아까와 다르게 모두가 준비가 된 상태이므로, 보다 고르게 일제사격이 터져나갔다.

“불 지르고 빠져나가자!”

“예엣!”

두 명의 어린 종자들은 몇 개의 횃불에 불을 옮겨 붙여서는, 바리케이드 여기저기에 쑤셔 넣는다.

처음부터 기름통을 넣어 두었기에, 순식간에 불이 크게 타오른다.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는 불길이 빠른 속도로 바리케이드를 뒤덮어간다.

“모두 승마! 무사히 마을에서 만나자!”

“옛, 대장님!”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획대로 도망친다. 어차피 기름이 끼얹어져 억지로 타오르기 시작한 생나무가 지독하게도 연기를 내뿜고 있어 보이는 것도 없다.

600명이 넘는 인근 주민들과 군인들이 이틀간 잠을 줄여가며 쌓은 바리케이드, 아니 거대한 장작더미이다.

못해도 한나절은 활활 타오를 터이고, 그 후에도 한동안은 잔불을 일렁이며 열기를 내뿜으리라.

부주의하게 다가서는 인간이 화상을 입을 정도인데, 손을 대서 옮기는 것은 상상도 못하겠지. 그리고 불난 집이 그렇듯, 불에 탄 나무 구조물은 불안정해 매우 위험하기도 하고.

모든 것이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설퍼 보이지만, 확실하게.

‘헉헉, 저기, 혹시 여기쯤에··· 길이 좁아지는 곳이 있나요?’

적의 행군 소식에 대응하려 떠나려던 라마엘과 일행들을 다급하게 쫓아온 것은 놀랍게도 소수의 정찰병만 대동한 트랑카벨의 콘도티에레였다.

드 레도쿠르의 영지는 이스키비르 강변이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일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쉽게 대답이 가능했었다.

···평생 잊지 못할 참상을 보았던 마을 주변이 그랬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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