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39화 (339/556)

36-8. 승리자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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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동쪽, 이스키비르 강의 상류 쪽으로 향하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스키비르 강 유역 출신 영주는 물론, 어부나 뱃사공 집안 출신 병사들까지 찾아다가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드 레뮤즈 영지의 강변 지역 출신이라고는 해도, 강을 건너 라솔 영토에 들어간 경험이 있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어로 작업이라고 해도 이쪽 유역 근처에서 하는 게 보통이었고, 애초에 영주의 허락 없이 국경을 건너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다.

“어! 혹시... 저어 콘도티에레, 혹시 라솔 군은 상류 쪽의 여울로 강을 건너려는 것은 아닐까요?”

첼레스티나가 제법 그럴듯한 의견을 냈다.

다만 이건 나도 검토해본 적 있는 의견이지만, 현지 출신들의 말에 따르면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룻배로 강을 건너려면 하류 쪽, 강 폭이 더 넓어도 유속이 느리고 안정적인 쪽에서 건너는 게 낫습니다.”

실제로 이번에 라솔 군이 이쪽으로 침공을 해 올 때도, 무려 여섯 곳을 동시에 공격했지만 모두 하류 쪽이었다.

적 거점이 하류에 가깝다고는 해도, 적이 강의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겠지. 이쪽에 강변 출신이 있는 만큼, 반대편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이스키비르 강 상류 쪽은 유속이 빠르고 불안정합니다. 강변에서는 잔잔하다가도,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몇 시간이나 고생할 때가 있으니까요.”

어부 출신 병사가 자신의 경험을 말해주었다.

현대의 하천이야, 유역을 직선으로 만들고 강바닥을 준설해서 홍수라도 나지 않는 한은 말 그대로 ‘유유히’ 흐른다.

하지만 자연 하천은 유역이 구불구불하고 바닥 지형도 제멋대로라, 이게 강물에 예상하지 못한 흐름을 만들어 낸다.

갑자기 강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물귀신이 잡아채는’ 이야기가 대체로 이런 지역에서 나온다.

수영도 잘 하고, 강에 대해서도 익숙하다 믿었는데 갑자기 작은 소용돌이에 휘말려 당황하면 몸이 평소처럼 잘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는 안정적으로 배를 띄우기 어렵다는 것이지.

물길을 잘 아는 길잡이가 있으면 모를까, 교류가 애초에 별로 없다보니 강을 건너본 경험이 있는 사람도 많지는 않은 것이다.

오렌시아 기사단은 상류 쪽에서 강을 건너기는 했으나, 이건 초반에 기사단장을 포함해 소수 호위 병력만 건넜던 것이라고 한다.

나중에 합류한 기사단 주력은 더 하류 쪽으로 우회해서 정석적으로 건넜다는 모양이다. 뭐 지금은 몽땅 재가 되어 드 레뮤즈 영지 어딘가에 묻혀 있겠지만.

“그럼 혹시 바닥에 발이 닿는가? 말에 탄 인간이라면 건널 수 있을까?”

“흠···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람이 건너는 것은 불가능하고··· 글쎄요. 말에 타면 건널 수 있는 여울도 있을지 모르지만 강 바닥이 고르지 못한데 짐승이 건널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나라면 안 건너긴 하겠다. 말이 저래 보여도 조금만 울퉁불퉁한 야지에서도 발목을 접지르곤 하는 연약하고 예민한 생물이다.

그리고 사람 키 정도로 깊은 강을 건너면 갑옷은 물론 장비와 물자 다 버리고 가야 한다. 적이 그걸 바라진 않겠지.

또 나도 물에 들어가 보았지만, 사실 허리 깊이까지만 돼도 물의 저항 때문에 어기적 어기적 걸어야 한다. 얕은 강일지라도 군의 이동에 큰 장애물이 되는 이유이다.

그런데 사람 키 정도 된다면··· 유속이 빠르지 않더라도 건너다 익사자가 대량으로 발생할 것이다.

적도 물론 이걸 알 것이다. 강을 끼고 마주보고 있는 나라니까.

특히 라솔의 주력은 강변을 방어하는 병력이라지 않은가.

그럼 대체 왜, 상류쪽으로 이동하는 것인가?

으음, 당장은 모르겠다. 지금은 우리도 서둘러 이동해서 적의 다음 수를 확인하자마자 차단하는 수밖에.

생각해보면 생뢰르반 전투 직전에도, 적의 노림수를 확실히 알지 못하는데다 강변 초전에서 참패하는 바람에 비슷한 상황이지 않았나.

다행히 현재 적은 침공 초반보다 훨씬 약하고, 견제도 확실하게 하고 있다. 만약 이상한 수를 쓴다면 곧바로 알게 되겠지.

대응 전략은 그때 그때 신속하게 짜면 늦지 않을 것이다.

···라고 방심하다가 큰 코 다칠 수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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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레뮤즈 하상함대 3번함의 함장 세트리 파레도는 강변을 주시하고 있었다.

후덥지근한 더위에 오랜만에 입은 갑옷이 답답했다. 하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그는 강한 책임감을 느끼며 답답한 더위를 애써 외면한다.

이스키비르 강변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는 작은 강변 마을을 다스리는 향사였다.

강변 마을이라고 해도 딱히 어촌은 아니다. 고기잡이 배가 몇 척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대부분은 농사꾼이었으니까.

그러다가 새로 만들어진 ‘군함’을 책임지게 되었다. 영주님의 영주님인 드 레뮤즈 백작가에서 직접 내려온 명령이었다.

아버지는 ‘하라는 일은 안하고 뱃놀이나 하던 놈이 출세했구나!’ 라고 기뻐하셨고, 어머니는 아들이 전쟁터에 나간다 하니 크게 걱정하셨다.

처음 ‘백작님의 군함을 책임진다’는 생각에 뭐라도 된 듯 기뻤다가, 처음 훈련 할 때는 눈물까지 쏙 뺐고, 지금은 그럭저럭 적응한 상태이다.

육지 위에 대충 만들어진 모형에서 연습하다가 실제로 인수하게 된 백작가의 군함은 정말로 멋졌다.

다른 가문에서 왔다는 교관의 말에 의하면 ‘실제 전함에 비하면 나룻배 수준’이라고 했지만···.

‘진짜 나룻배 수준’과 비교하자면, 이보다 더 멋진 배가 있을까 할 정도로 거대하고 아름다웠다.

평평하고 사람이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뱃전이 낮은 보통의 나룻배에 비해 뱃전이 높고, 한쪽에만 8개의 노가 달려 있어서 그가 평생 보아온 어떤 배 보다도 빨랐다.

안전하게 노를 젓거나 싸울 수 있도록 측면에는 목판으로 보강도 되어 있었고, 함수에는 작은 충각도 달려있다.

실제로 다른 나룻배와 싸운다고 치면, 어떤 배를 상대해도 퇴각을 원하면 물러설 수 있고, 추격을 원하면 따라잡을 자신이 있다.

이쪽에서 먼저 들이 받으면 배는 두꺼운 목판과 충각 덕에 일방적으로 상대를 때려 부술 수 있었고, 뱃전을 나란히 하더라도 높은 위치에서 안전히 싸울 수 있다.

노잡이를 포함한 병사 겸 선원이 20명, 거기에 드 레뮤즈 가문 출신의 총병이 10명이나 있다.

이는 실로 배 위의 요새, 나룻배며 어선이며, 강 위에서는 누구보다도 배를 많이 몰아보았다 자부하는 그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이거 더 상류쪽으로 가면 우리 마을이 나오겠는데···.”

듣기로, 전투는 더 서쪽, 엘랑키아 왕국 서남부에서 벌어졌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 패잔병들은 왜 상류쪽으로 이동하는것인지 알수가 없었다.

일단은 명령대로 두 척씩 나뉘어 행군중인 적과 나란히 항해하며 적을 감시하고는 있지만··· 적과 싸울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적은 가지고 있던 배를 전부 버리고 행군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상 전투가 벌어진다면 나룻배 숫자가 훨씬 많은 그 시점이라 생각하고 긴장했었건만.

지금은 강변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굳이 전투가 벌어질 일이 없었고, 반대편 라솔 왕국 쪽 유역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렇다 해도 그쪽도 작은 고기잡이 배 정도가 한계일 터, 세트리의 하상함대는 말 그대로 무적이다!

“세트리 경, 강폭이 더 좁아지면, 강변의 적에게 총으로 저격당할 수 있습니다.”

“엇, 그렇겠··· 네요!”

드 레뮤즈 백작가에서 총병들을 이끌고 왔다는 소대장이 경고하자, 망상에 빠져있던 세트리는 자기도 모르게 어버버하며 대답했다.

‘경’이란 호칭에도 익숙치 않다. 촌장 역할을 하는 아버지나 경이었지.

반대로 사람 이름에 ‘경’을 붙여 말해본 적도 거의 없다. 촌구석에서 높은 사람을 만날 일이 있어야지.

“멜디크··· 경이라고 하셨지요? 총 사거리는··· 어느 정도 됩니까?”

“통상 야전에서는 50미터에서 70미터 정도지만, 숙련된 사수는 100미터 이상을 쏠 수 있습니다.”

“그, 그럼 지금 강변까리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이미 100미터 안쪽입니다.”

“흡···.”

자신이 부끄러워할 정도로 바보같은 질문인데도, 총병 소대장 멜디크는 예의 바르게 대답한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우리 병사들이 혹시라도 이쪽을 노리는 적이 있나 감시하고 있습니다.”

“아, 아 예 감사합니다, 멜디크 경.”

불안해하는 세트리의 모습을 이해했는지, 소대장 멜디크가 미리 말해준다.

확실히, 적은 바쁘게 움직이기만 하고 있을 뿐, 강변까지 내려와서 이쪽을 노리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게, 멜디크 경, 만약에 적이 바지가 젖는 걸 각오한다면 한참 안쪽까지 들어와서 이쪽을 노릴 수 있을겁니다.”

“아, 그 생각은 못했군요. 더 주의해서 감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저희도요.”

어릴 때부터 절반은 물속에서 살아왔던 어촌 청년으로서, 바지와 신발이 젖는 걸 감안한다면 꽤 깊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 저기 저 바위처럼 말이다.

“어?”

뭔가 이상하다. 이쪽은 고향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자주 왔던 곳은 아니다. 그래도 가끔 열리는 시장을 방문하기 위해 몇 번 와서 눈에 익었다.

하지만 위화감이 느껴진다. 뭔가 다르다.

“이봐, 알레지! 알레지 있나?”

“예, 도련님!”

뱃머리에서 물길을 살피던 덩치 큰 초로의 남자가 대답하더니 성큼성큼 다가온다.

작은 배에 사람이 많이 탔기 때문에, 가운데 한 줄로 늘어선 총병들을 조심조심 피해 이쪽으로 다가온다.

“함장님이라 부르라고 하지 않았나! 그보다, 저기 저 바위 보이나?”

“아, 죄송합니다 함장님. 그럼요. 저 바위가 그 ‘마녀의 바위’ 아닙니까!”

전방 강변에 누런 색으로 눈에 띄는, 마치 탁상처럼 생긴 큰 바위로 모두의 눈이 쏠린다.

“그런데 저 바위가 원래 저렇게 컸나? 낚시꾼들이 위에 앉아서 낚시하던 게 생각나는데.”

“허어, 그랬지요. 도련님도 끼고 싶어하셨는데, 배를 멈출 수가 없어서 아쉬워 하셨었죠. 지금 보니 사람 키만큼 높겠는데요?”

“그보다 저거 원래 물 한가운데 있던 바위 아닌가!”

“어··· 그렇네요. 왜 저게 강변에 가 있지?”

뭔가 인식이 뒤틀린다.

몇 번 지나다니면서 보았던, 지역 전설이 딸린 유명한 바위가 평소보다 커 보인다.

물 한 가운데 덩그러니 있어 낚시꾼들도 거룻배를 타고 오가던 바위가 강변으로 가 있다.

아니, 반대다.

바위가 강변으로 간 게 아니다.

강변이 바위까지 다가 온 것이다.

“수위가 낮아졌다! 그래서··· 그래서 바위가 커 보이는 거야!”

“요새 많이 가물기는 했죠··· 안그래도 저도 강 바닥에 배가 얹히지는 않을까 조심해서 배를 몰고 있습니다요.”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벼락치기 함장 세트리가 호들갑을 떨자, 소대장 멜디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멜디크 경, 적의 의도를 알 것 같습니다! 올 여름은 심하게 가물었습니다!”

“...올해 유난히 비가 안 오기는 했는데요.”

“네네, 그렇죠? 적도 그걸 분명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요 며칠간은 이스키비르 강물이 가장 얕아지는 시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더 상류 쪽에서는 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멜디크와 알레지 모두가 철렁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본다.

“여, 연락을··· 사령부에 연락을 어떻게 보내죠?”

“일단 1번함의 영주님께 연락을 드려야겠습니다! 횃불, 횃불 신호를!”

조용하다 못해 지루함이 떠돌던 작은 군함 위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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