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37화 (337/556)

36-6. 승리자의 영광

###

부족하나마 휴식을 취한 직후의 연합군은 빠르게 움직였다.

새벽에 내린 지시를 미리 착실하게 세부 계획을 세워둔 참모들 덕분이었다.

전쟁은 보통 사령관이 명령을 내리면, 전방 지휘관이 이를 수령하고 병사들을 인솔해 이동하고···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상은 그 명령의 발령 및 전달부터 해서, 각급 부대의 이동 계획 수립, 장비와 각종 소모 물자의 분배, 이동로 배정까지 ‘머리로 싸우는’ 참모 장교들의 역할이 빠지는 곳이 없다.

그들이 간밤에 고생해준 덕에, 내가 확인해도 흠 잡을 데 없는 행군계획이 완성되었고 병사들이 일어나 행군 준비가 완료되자마자 이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합동 포병대도 준비 완료 되었어요. 괜찮으시면 출발 명령을 전달할게요오!”

“그래, 포병은 맡길게.”

정오까지 시간을 끌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추격 부 대의 재편성 및 휴식이었지만, 나머지 하나는 포병 관련이었다.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게 분명한 포병대를 재편성하는 중요한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포병은 바쁘기는 하지만 안전한 후방에서 포격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당연히 빠른 기병 우회나, 보병 유격대의 습격은 말할 것도 없고 포병으로 포병을 잡고 화력 우세를 안고 시작하는 대포병 사격 또한 흔한 일이다.

하지만 그 뿐 아니라, 전장을 넓게 쓰고 전선의 변화가 심한 이 시대의 전쟁에서는 ‘안전한 후방’ 이라는 개념 자체가 드물다.

당장 어제 전투만 해도,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던 장소는 분명 ‘안전한 후방’이어야 했을 드 레뮤즈 방어선의 측후방이었으니까.

게다가 화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적에게 가까워야 한다. 반대로 말하면, 적에게 노려지기도 쉽다는 것이지.

지난 전투에서 초전에 보유한 모든 포를 방열해 과시하듯 포격한 것도 완전히 전술적으로 의미가 없는 행동도 아니다.

뭐, 내 기준으로야 포대장의 지휘 없이 지정된 목표 없이 각각의 포 마다 멋대로 쏴 버리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리고 양측이 바짝 붙어서 백병전이나, 초 근거리 사격전이 벌어지는 경우 포격 지원이 애매해진다.

포격 지원을 포기하거나, 아군 오사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전선에 바짝 붙어야 하는데 이러면 적 총격의 사거리에 들어가게 된다.

트랑카벨 파견군 방어선 전방에 배치되었던 포병대야, 첼레스티나가 공들여 건설한 든든한 방어 진지에 배치되어 있어서 상황이 나았지만, 그러면서도 진지의 빈틈을 노린 저격에 사상자가 나왔다.

하물며 동료 보병들의 지원 사격 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평지에서야 어련할까.

정면의 적 총병들은 당연히, 절대적으로 포를 먼저 노리게 마련이다. 같은 화약을 쓰는 병종 입장에서 장전이 끝나면 저게 무슨 짓을 할지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총탄이 빗발치는데, 막아줄 것이라고는 임시로 대충 가설한 바리케이드가 전부. 그 마저도 없는 경우도 많다.

거기서 포구를 통해 화약을 퍼 넣고 포탄을 장전하는 포수들은 실로 외롭고, 또한 용기도 필요한 일이 분명하다.

생뢰르반 전투에서 최후의 격전지였던,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의 정면에서만 아군과 적군을 포함해서 모두 9문의 야포가 유기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서로가 총끝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총격전을 벌이고, 시체가 겹겹이 쌓일 정도로 격렬한 와중에 근거리 화력 지원을 하다 그리 된 것이다.

단순히 적의 화력이 집중되었을 뿐만 아니라, 밀고 밀리는 와중에 미처 포를 후퇴시키지 못한 경우도 있겠지.

혹은··· 야포를 다루던 포수들이 전멸한 탓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버려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버려진 포들이 전장 전체에 널려있었다. 보병 연대가 진격하면서 후방에 방치된 포들은 그렇다 쳐도, 초전에 방열되었던 적 포들은 절반 이상이 버려졌다.

물론 다수는 퇴각하던 포병들의 손에 파손되었는지, 혹은 전투 와중에 입은 손상인지, 망가진 경우가 많았지만 대부분 수리하면 쓸 수 있을것이다.

한편으로는 다행히도 무사히 후퇴하거나 진격하는 과정에서 포를 잃어버리거나 파기한 포수들도 있었다.

첼레스티나의 ‘합동 포병대’는 이런 노획한 포들 중 유용한 중소형 야포를 재생하여 가장 효율적인 구성을 갖춘 신편 임시 편제이다.

이번 라솔과의 전쟁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전투를 겪고 나니 화력 우위는 반드시 챙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솔 군은 정말로 용맹하고 기량이 뛰어나다.

이렇게 생각하면 전선에서 용감히 싸운 병사들에게 실례가 되는 말이겠지만, 그들이 엘랑키아 보병을 얕보고 멸칭으로 부르는 이유도 이제는 알겠다.

하지만 아무리 용맹하고, 기량이 뛰어난 병사라도, 포탄에는 장사가 없다는 것도 진실이다.

사람의 몸이든 나무든 강철이든 평등하게 찢어 버리는 쇳덩이 상대로 무슨 용맹을 부리고 기량을 펼칠 것인가.

앞으로 내가 또 어떤 전투의 지휘를 맡을지 모르겠으나, 라솔 왕국의 정예 보병 군단과 전선을 오래 맞대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은 기억해둬야겠다.

그룬발트나 주디칼리에서 용병으로 만났던 라솔 출신들도 잘 싸우고 다재다능한 인물들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라솔 왕국 본토에서 작정하고 병력을 키우면 이렇게 되는구나··· 라고 다시 느끼게 되었다.

나도 그렇지만, 엘랑키아 왕국으로서는 앞으로도 갈 길이 멀겠네.

“출발이다! 앞으로!”

“대열을 벗어나지 마. 하나 둘! 하나 둘!”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행군대형으로 대기하고 있던 보병들이 남쪽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아무튼 이번 추격전 선진의 핵심은 4개 연대의 드 레뮤즈 영지군 보병이다.

생뢰르반 전투에서는 전선의 중심을 맡았었으나, 주로 격전이 서로의 측면에서 기동전 형태로 이루어졌기에 비교적 온전하게 전력을 보존하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새롭게 편성된 신병이지만, 비슷한 규모의 라솔 왕국군, 혹은 타라트라바 공국군 상대로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내 생각에는 아직 측후방을 공격당하면 위험할 것 같지만··· 그건 우리 지휘부가 조심해서 싸워야 할 부분이다.

여기 추가로 트랑카벨 파견군에 합류했던 드 누아 연대 하나가 추가된다.

이들 역시 생뢰르반 전투 중, 네그라타 연대의 측면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는 했지만 정면에서의 전투에만 노출되었기 때문인지 비교적 전력이 온존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드 레뮤즈의 혈맹이라는 입장에서 본인들이 강하게 출전을 원했다.

신병들 뿐인 드 레뮤즈 보병대만 보내기에는 불안하기도 했기에, 드 누아 연대가 함께하게 된 것은 지휘부에게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여기에 보병이 출정하니 당연히 따라오게 된 드 레뮤즈 기병대.

이들은 어제 자칫하면 보병과의 난전에 휩쓸려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던 서부군 기병대를 구하는 한편, 전투 후반기 결정적 국면에 라솔 군 후방을 두 번이나 타격하는 큰 전공을 세웠었다.

인간이나 말이나 체력적인 소모는 컸겠지만, 다행히 ‘이기는’ 전투 위주로 싸웠기에 그나마 사상자가 적은 편이고.

게다가 드 레뮤즈 군이 주력이 되어 가는데 따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대부분이 선진에 포함되게 되었다.

거기에 더해 프리스마라 기병대의 약 절반이 추가된다. 상당수는 오늘 새벽에 이미 적의 위치를 확인하고 패잔병들을 소탕하는 목적으로 출발한 상태이다.

여기 첼레스티나의 합동 포병대가 포함된다.

아, 앙비토 드 몽파르지에 공작이 붙잡아두고 있는 먼저 출발한 서부군 기병도 합류하기로 했으니까, 전력은 결코 적지 않다.

“저희도 따라가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걱정스러운 얼굴로, 슈토르히 연대의 선임 중대장 루트비히가 묻는다.

“슈토르히는 좀 더 쉬다가, 후발대로 와 줘. 게다가 여기서도 할 일이 없는 건 아니니까.”

“음, 알겠습니다. 몸 조심하십시오, 콘도티에레.”

그는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어제 전투에서, 기병을 포함해서 ‘가장 긴 거리를 이동한 부대’는 다름 아닌 슈토르히 연대이다.

그것도 아무도 없는 무인지경을 행군한 것이 아니라, 몇 차례나 적을 무찌르고 뚫어내면서 길을 만든 것이다. 원래라면 이틀 정도는 꼬박 쉬라고 명령을 내려야 할 일이다.

게다가 지금 루트비히가 맡은 일 중에 아주 큰 일이 있다. 바로 지난 전투의 포로들을 처리하는 일이다.

전투 중 사로잡은 포로의 숫자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수천 명이나 되는 건 확실하다.

“저희도 일이 정리되는 대로 출발하겠습니다. 후방은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남는 병력과 후발대를 책임진 아인멜츠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 역시 지난 밤에 잠시도 쉬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그나마 상태가 좋은 부대를 골라 추격한다면, 그는 나머지 ‘상태가 좋지 않은’ 부대를 복구해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생뢰르반에 집결한 3개 군 사령관 중, 나는 추격대를 이끌고 출전, 앙비토 드 몽파르지에 공작은 기병대를 쫓아가느라 자리를 비운 상태, 라몽 드 레뮤즈 백작은 기절한 상태이니···.

아인멜츠의 책임이 막중하다.

“힘이 되지 못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군! 앙비토 공작 전하를 잘 부탁드리네!”

남은 서부군을 책임지는 것은 루젱 드 마로텍스 백작이다. 이 초로의 백작은 베테랑 지휘관이니 어지러운 서부군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겠지.

이 사람도 전투 중에 부상을 입었는지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이것만 봐도 서부군이 그냥 놀지만은 않았다는 것은 알겠다.

“그럼 선발대는 가보겠습니다.”

나는 말을 달려 이미 출발한 보병들의 길게 이어지는 대열을 따라간다.

“콘도티에레!”

“트랑카벨 만세! 콘도티에레 만세!”

“무사히 다녀오세요!”

함성 소리가 들려 옆을 보니, 언덕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부상병들이 보인다. 손을 들어 흔들어주자니, 갑자기 목 너머에서 뭔가가 울컥 넘어온다.

아직 어제의 전투에서 몇 명이 사망했는지, 몇 명이 부상입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추격전이 너무 중요하기에, 다른 일은 모두 뒷전이었다. 이 출전이 끝날 즈음에는 전부 정리되겠지. 그 언젠가 받을 보고가 두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추격전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나는 박차를 가해 속도를 올렸다. 조금이라도 빨리 전장을 확인해 두어야 했다.

###

“...저건 대체 뭐지?”

퀸토 로르카 데 페니베라다 변경백은 불쾌한 얼굴로 강 건너를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유유히 흐르는 강물 위를.

“엘랑키아의 선단··· 라몽 백작가의 깃발이 보입니다.”

“쉽게 보내주지는 않겠다 이 말인가.”

모두 여섯 척의 갤리선이 강 중앙에 가로막듯이 서 있었다.

군함이라기엔 평평하고 넓적한 우스꽝스러운 형태였다. 수심이 깊지 않은 강을 오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노가 굉장히 많이 달려 날렵한 데다가 병사도 상당히 많이 타 있었다. 측면은 총구가 뚫린 목판으로 강화되어 있다.

함포를 장착한 제대로 된 전함과 만나면 조금도 버티지 못하겠지만, 어차피 거룻배가 오갈 뿐인 강 위에서는 도저히 넘기 힘들 난공불락의 성채처럼 보인다.

아직 전쟁이 준비단계이던 시절, 트랑카벨 가문의 기술과 자재 지원으로 드 레뮤즈 가문에서 급히 건조한 하상 함대였다.

개전 시 침공을 막지는 못했으나, 뒤늦게라도 강을 제압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라솔 군은 본토와의 평범한 보급이나 전령 파견에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빌어먹을···.”

이겼다면, 지난 전투에서 이기기만 했다면 저런 흉물스러운 나무토막 따위 강 위를 떠다니건 말건 상관하지 않았을 텐데.

오히려 너무 보잘것 없는 모습을 보니, 괜히 압박당하는 느낌이라 불쾌했다.

“필요하다면 나룻배에 전투병력을 태워서 교전할 수 있습니다.”

“그래···.”

하지만 저쪽은 썩어도 전투용으로 만든 배다.

이스키비르 강 하류에 주둔하며, 양측의 함대전을 몇 차례 본 적 있는 퀸토 변경백으로서는 전투용과 수송용 배의 싸움이 얼마나 일방적인지 알고 있었다.

이쪽은 졌다고 해도 수천의 대군이니, 숫자로 밀어붙이면 이길 수야 있겠지만. 분명 희생도 적지 않고 별로 얻는 것도 없겠지.

“적의 추격대는 어느 정도 거리지?”

“기마 정찰대는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보병은 약 하루에서 하루 반 거리입니다.”

대군 끼리의 추격전에서는 하루 정도의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워낙에 뭘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게 군대의 움직임이니까.

“타라트라바 공작에게 전령을, 아니 내가 직접 가겠다.”

“알겠습니다 변경백 각하, 호위대를 준비하겠습니다.”

공격해올 때는 여섯개 지점을 동시 도하하는 방식으로 비교적 쉽게 넘어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방식을 쓸 수도 없고, 강 건너와 연락도 자유롭지 못하다.

“출발하지.”

하지만 거지꼴을 한 상태로도 여전히 날카로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휘하 병력들을 바라보며 결심한다. 이들은 반드시 라솔로 살려보내야 한다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