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34화 (334/556)

36-3. 승리자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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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대가 벌써 왔나.”

“전투를 준비시킬까요?”

“그래주게. 이거 괜히 병사들이 고생이 많군.”

마티오 가엘 데 프라가도, 이제는 반쯤 붕괴해버린 코루냐 연대의 지휘관은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그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드는 것은 거의 이틀을 꼬박 쉬지 못했다는 피곤함만은 아니리라.

분명히 수 많은 전우를 잃고서도 적진을 뚫어내지 못한 패배감이 무거운 납덩이처럼 그의 몸과 마음에 덕지덕지 붙어있기 때문이다.

“적은 전부 기병입니다.”

“보병은 아직 못 쫓아온 것인가··· 그래도 밤새 달려온 보람은 있었군.”

비참한 패전이라고는 해도, 전선을 포기하고 퇴각하는 순간 땅거미가 내린 것은 천운이었다.

어둠 속에서 부대를 움직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심지어 탈출로인 정면에는 소수이지만 적도 있었고, 이쪽을 향해서 포를 쏴대는 절망적인 상황이었고.

하지만 아마도 날이 밝았다면, 좁혀오는 적의 포위망을 빠져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적 보병 부대의 숙련도가 높지 않은 것도 다행이었다.

비록 포위망을 빠져 나가는 과정에서 연대 병력의 상당수가 낙오했지만, 그들이 전멸한 것은 아니었고 실제로 조금씩 모이고 있었다.

‘우선 살아 남아라, 살아만 있으면 다시 모일 수 있다.’

마티오가 경애하는 사령관, 퀸토 로르카 데 페니베라다 변경백이 실제로 했던 말이다.

그는 사령관으로서 자신을 포함한 연대장들에게, 승리가 가장 중요하나 그 다음으로는 전력의 보존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라고 여러번 말했다.

불굴의 의지니, 필사의 각오니 아무 의미 없다. 무모하게 지는 싸움을 계속하다 애꿎은 병사들만 죽음으로 내모는 머저리는 이스키비르 하류 주둔군에 없어야 한다고 말이다.

군인이란, 각오를 관철하는 철학자나 주장자가 아니다. 왕국을 위해서, 주군을 위해서 싸우고 승리하는 것으로 본분을 다 하는 전문가이다.

그렇다면, 도저히 승리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다음 승리’를 위해서 힘을 아끼는 것 또한 중요한 덕목이리라. 그것이 마티오가 사령관에게 배운 내용이었다.

“여기서 싸우시겠습니까?”

“적은 아마 추격대의 선봉일 것이다. 밤새 서둘렀다고 해 봐야 한나절 거리니 조만간 보병대가 들이닥치겠지. 기병만으로 덤벼준다면 싸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알겠습니다, 연대장님.”

마티오로서는 상대인 엘랑키아 군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 자신들이 어느 정도나 큰 피해를 입혔는지 알 수 없었다.

때문에 이렇게 서둘러서 기병이 바짝 추격해 왔다면, 좀 더 많은 규모의 보병 부대 또한 추격해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지금 마티오와 코루냐 연대가 쿠앙트뢰 마을에 머물고 있는 것은 단순히 후위를 지키려는 것 만은 아니다.

그 이상으로, 간밤의 탈출 과정에서 어떻게든 포위망을 벗어났지만 부대에서 낙오되어 그저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탈출하는 전우들을 기다리는 의미가 컸다.

여기서 요란하게 교전을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도주중인 아군에게 아직 교전이 벌어질 정도로 아군이 건재하다는 신호가 될 수도 있고.

“병력은 어느 정도나 되지?”

“원래 우리 우리 연대 출신이 850명, 타 연대 소속의 라솔 군이 약 1000명, 타라트라바 출신 병사가 500명 가량 됩니다.”

“허어, 어느새 병력만은 출발할 때보다도 많아졌군.”

연대장의 입에서 나온 건 쓰디 쓴 농담이다. 원래 그의 부대는 절반도 되지 않는 비참한 상황일 뿐이니까.

“라솔 군 중에서 싸울 수 있는 자들을 임시로 8개 중대로 편성해두었습니다.”

“잘 했네.”

설명을 하던 연대 참모가 상체를 숙이며 목소리를 낮춘다.

“타라트라바 군은 혼이라도 빠진 것으로 보이는 자들이 많아서 우선 전투 부대에는 편성하지 않았습니다.”

“하긴, 그렇게 보이더군. 나약한 녀석들.”

“뭐, 누구에게나 라솔의 정예들 만큼의 정신력과 체력을 기대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는 연대 참모의 말투에서는 강한 자부심이 엿보인다.

어제의 전투에서, 라솔 군은 좌측, 타라트라바 군은 우측을 맡았다.

그 와중에 라솔 군은 적의 우익을 부수고 돌파해 적의 후방을 위협하다 간발의 차이로 패배했다.

그에 비해, 타라트라바 군은 적의 방어선을 한 치도 뚫지 못했다. 오히려 전투 중반부터는 죽죽 밀려서 전선을 유지하지조차 못했다.

입 밖으로 꺼내 말하지는 않지만, 라솔 군이라면 불만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너희만 잘 했으면’ 이라는 불만 말이다.

물론 연대장으로서 마티오는 머리로는 안다.

타라트라바는 국력에 비해 무리하다시피 대군을 내보냈으며, 군주인 크루사다 공작 자신이 병력을 이끌고 출전하는 강수를 두었다.

비록 전투에서 계속 밀려났을지는 몰라도, 끝까지 전투를 포기하지는 않아 최후까지 라솔 군의 측면이 위협받지는 않았다.

그러니 대놓고 비난할 수는 없지만··· 마음 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는 역시 불만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타라트라바 쪽에서는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병사들이 저런 꼴이 된 거지?”

“제가 듣기로는, 패주해서 더 이상 교전하기 힘든 상황에 처한 부대를 재편성해서 다시 전선으로 내보낸 모양입니다.”

“그래··· 그 치들도 열심히 싸우기는 했군.”

그러니 더 욕을 할 수는 없었다.

탈출 과정에서도 타라트라바 군이 먼저 탈출하고 라솔 군이 그 후위를 지키며 함께 탈출하는 형태였다.

그런데 라솔 군 중에서도 최후미를 지키고 있는 코루냐 연대에 합류했다는 것은 낙오했을 뿐 아니라 뒤쳐진 병사들이라는 말이다.

전술적 역할이나 가치는 차치하고, 동맹국의 군인으로서 무사히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다.

“타라트라바 군은 방어선에는 내보내진 않지만, 상황에 따라 예비대로 싸워야 할 수도 있으니까 장교들에게 알리고 알아서 부대를 편성하라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연대장님.”

“우노스 연대에도 전령을, 우리 연대가 곧 교전을 시작할 것 같다, 추격군은 1천기를 넘는 기병대이다 라고.”

“그건 이미 보냈습니다.”

“오호, 빈틈이 없구만.”

오늘 처음으로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유능한 코루냐의 장병들은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을에 도착한 이후 조금이지만 휴식도 취했다.

1천 명 규모의 기병대 하나 쯤은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었다.

···라고 말하고 싶기는 하지만, 솔직히 걱정이 됐다.

그 이유는 장비의 부족 때문이다. 먼저 퇴각 과정에서 무기를 망실한 병력이 너무나 많았다.

특히 똘똘 뭉쳐서 싸울 때는 무적이지만, 무질서하게 도망칠 때는 거치적거릴 뿐인 장창을 여기까지 가져오지 못한 자들이 많았다.

질질 끌면서라도 들고 도망쳐온 책임감 있는 녀석들이 고마울 뿐이지만.

또한 코루냐 연대가 담당했던 최후의 돌파 작전에서, 상당수의 장창병들은 명령에 의해 창을 버렸다. 그 직후 퇴각했으니 그들을 비난할 수만은 없었다.

또한 화승총의 경우는··· 장창보다는 상황이 조금은 나은 상황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치열한 전투를 벌인 직후 퇴각해온 병사들이다. 상당수가 탄약이 바닥났거나, 몇 발 남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힘든 상황이군···.”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나온다. 상대는 어쨌든 강력한 엘랑키아 기병, 지형이 크게 유리한 것도 아니다.

출전 직전의 완편 코루냐 연대라면··· 설령 두 배에 가까운 엘랑키아 기병이 공격해오더라도 하루 종일, 아니 그 이상으로 버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지지는 않더라도 아군의 희생이 클까 걱정이다. 간신히 호랑이 입을 벗어난 상황이니 병력을 조금이라도 온존해 돌아가야 할 텐데.

“연대장님, 무사하신 모습을 보니 다행입니다!”

“음? 오오, 고맙네.”

병력을 인솔해 지나가던 휘하의 베테랑 장교 중 하나가 껄껄 웃으며 인사하고 있었다.

“자네 검이 부러졌군.”

“뭐 그래도 엘랑키아 돼지들 서넛 베어 넘기는 데는 지장 없습니다, 하하핫!”

어깨에 걸치고 있는 쭉 뻗은 양날검은 칼 끝이 부러져 있었다. 돌격해오는 기병과 맞찔렀던가, 쓰러진 적의 갑옷을 부수려다 실패했거나.

무기는 부러졌는데 당사자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본인이 그런 불운도 극복할 기량의 소유자이거나 끝내주도록 운이 좋다는 이야기겠지.

“우선 내 검을 빌려주겠네.”

“아, 아니 연대장님···.”

“살아남아서 전투가 끝나고 꼭 반납하게.”

“물론입니다!”

연대장이 백병전에 휘말릴 지경이 되면 끝장이다. 그에 비해서 어쩌면 저 베테랑 장교의 찌르기가 전황을 바꿀지도 모르지.

제발 그렇게 되기를 빌면서, 마티오는 자신의 검을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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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

타타탕! 타탕! 타타타탕!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는 갑주로 무장한 엘랑키아 기병들이 적진을 향해 일제히 권총을 발사했다.

하얀 화약 연기 너머로 총탄이 날아가자, 위치를 교대한 2열의 기병들이 다시 전방을 향해 권총을 발사한다.

타타타타탕! 타타탕!

타앙! 타타탕!

쇄도하는 기병들의 전방에는 비탈에 비스듬히 설치된 잡동사니 바리케이드에 의지한 라솔 군의 밀집 대형이 있었다.

얼마 안되는 장창을 최대한 전방으로 모아 내밀고 있는 방어진형은 외부에서 보기에도 그다지 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반격으로 발사되는 총탄의 수는 많지 않다.

쿠앙트뢰 마을의 비탈에 위치한 라솔 군을 공격하던 엘랑키아 기병대는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소수의 경기병들이 적진 파악과 도발을 위해 방어선 코 앞까지 접근했지만, 라솔 군은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크으윽!”

“윽, 맞았어!”

명중률이 원래 낮은데다가, 밀도 또한 낮은 기병의 교대 권총 사격이라지만, 사상자가 안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잡동사니와 잡석을 쌓아 만든 바리케이드가 막아주지만 명중탄이 나오기 시작한다.

총에 맞은 라솔 보병들이 비명을 흘리며 픽픽 쓰러진다. 사용자가 쓰러져 창대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자, 묵묵히 후열의 병사가 나와 새로이 창을 잡는다.

지형이 오르막이라는 것도 있어서, 기병의 교대가 신속하지 못하다.

“노브리크 경, 사격이 별 효과가 없습니다.”

“사격을 계속 해! 보아하니 적은 무기도 버리고 도망친 패잔병이 아닌가?”

“하지만··· 적은 고지대에서 바리케이드에 의지해 방어하고 있습니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우리는 엘랑키아의 기사들이다! 무기도 없는 라솔 보병 상대로 겁에 질려 도망칠 생각인가?”

“그건 아닙니다만···.”

수치심과 공명심, 거기에 밤을 샜다는 피곤함에 전투를 앞둔 묘한 흥분까지 뒤섞였기 때문일지.

핏발 선 노브리크 드 다푸아 자작의 고함에 가까운 명령을 듣는 서부군 기병 장교들은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들 기억 속의 노브리크 자작은 우직한 남자였다.

평생을 선대 드 몽파르지에 공작의 막하에서 기병 지휘관으로 보냈으며, 화려한 전공은 없을지라도 꾸준히 종군하며 공훈록에 꾸준히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그랬으니, 기병대장이 경질되는 상황에서 만장일치로 반대 없이 신임 기병대장으로 임명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그는 조금 이상하다.

어제, 무리한 돌격 끝에 결국 라솔의 방어에 틀어막혀 지리멸렬하게 패주했던 것은 서부군 기병대 모두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다.

그러니, 추격의 선봉에 서서 적을 추격하자! 패전의 오명을 반납하자! 라고 주장한 노브리크 자작에게 동조한 귀족 기사들이 많았던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적을 공격하면서 뒤늦게 깨달았다.

적은 생각보다 오합지졸 패잔병이 아니다. 당장 전방의 적군만 봐도 연대급 전력이 질서정연하게 빈틈 없는 방어진을 펼치고 있다.

또한 밤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아침부터 달려온 피로감이 기사들의 발목을 잡아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한데다가, 먹지도 못한 것은 위에 탄 기병 뿐 아니라 말도 마찬가지였다. 배가 고프고 피곤한 짐승은 점점 주인의 말을 안 듣기 시작한다.

간신히 진정시켜 전투에 나선다고 해도 한계가 금방 찾아온다.

고삐를 당기는 신호에 한 타이밍 늦게 반응하고, 언덕길을 박차고 오르는 발굽에는 힘이 없다.

이건 아니다. 그들이 생각한 추격전은 이런 게 아니다.

무질서하게 도망치는 적을 후방으로 부터 공격해, 적을 쓰러뜨리고 포로를 잡아 전과로 삼는다.

잘 준비된 연대급 보병 부대의 방어선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전투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전투가 두려운 것이 아니다. 기사로서 전장에 나선 이상, 명예로운 죽음은 각오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이길 싸움도 이길 수 없다.

분기탱천해서 뛰쳐 나오기는 했으나, 이들이 모두 철없는 귀족 청년들은 아니다.

수 차례나 전장에서 싸워왔고, 엘랑키아의 승리를 견인해온 베테랑 기사들인 것이다.

그래서 비로소 깨닫는다.

한계에 이른 것은 적이 아니라 자신들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전령! 노브리크 경, 전령입니다!”

“전령? 누구에게서?”

“앙비토 드 몽파르지에 공작께서 명령을 보내셨습니다!”

“앙비토··· 공작께서 직접?”

모두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드 몽파르지에 가문은 공식적으로 서부의 방위를 책임진 관리자 가문이다. 그러니 현 가주 앙비토 공작이 서부군의 사령관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가 직접적으로 전투 지휘를 하거나 전령을 보낸 적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전방 부대의 건의에 ‘경의 뜻대로 하시오’라는 답이 올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와서 전령을 보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무슨 내용인가?”

“전령! 자랑스러운 서부군 기병대의 제경에게, 귀경들은 너무 앞으로 나섰다. 위험할 수 있으니, 잠시 후퇴하여 본군과 보조를 맞추도록 하라! 이상입니다.”

“흐음···.”

앙비토 공작이 보낼 법한 길고 두루뭉실한 전령이었다.

기병 장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어정쩡하게 시작한 공격이 후회천만이었는데, 이렇게 사령관이 직접 발을 뺄 기회를 준 것이다.

이제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전령! 앙비토 공작 전하께!”

“옛, 말씀하십시오!”

“모름지기 전장에 나선 기사란, 대의를 위해 명령을 거부할 수도 있는 법! 소관은 엘랑키아 왕국의 영광을 위해 공세를 지속하겠음! 이상!”

화색이 돌았던 장교들이 창백하게 질린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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