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3. 생뢰르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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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탕! 타당, 타타탕!
콰앙, 퍼엉! 타타탕! 뻐벙!
끊임없이 들리는 전투의 소음에서 살짝 떨어진 후방에서, 새로운 라솔 보병 부대가 공격을 준비한다.
“지금이 아군의 마지막 기회다. 저 전선을 돌파하고 적의 후방을 장악하라는 사령관 각하의 명령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이스키비르 하류 주둔군 검천사 연대의 막내, 코루냐 연대의 지휘관 마티오 가엘 데 프라가도는 휘하 지휘관들에게 비장한 어투로 마지막 훈시를 하고 있었다.
사실, 마티오 휘하 연대 병력의 일부는 이미 전장에서 싸우고 있었다.
제대로 최전선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 진작부터 우노스 연대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투입되었던 것이다.
누가 보아도 좁아터진 전장에 예정보다 많은 병력이 몰려있었기에 충분한 장소를 두고 병력을 사열하며 선두와 후방을 교대하는 전술 따위는 불가능했다.
부대를 한 번 전장에 밀어 넣으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 등 파멸적인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면 전진도 후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때문에 마티오 연대장은 없는 시간을 쪼개 초조한 마음으로 전장을 살피고, 참모들의 조언을 받아 지금대로 병력을 편성하고 배치했다.
모두 네 개의 대열로 편성된 예비대. 아니, 결사대라고 해야겠다.
잠깐 교대해서 휴식한 때를 제외하면, 하루 종일 선봉에서 싸운 데다가, 몇 번이나 거듭해서 공격하다 녹초가 되어버린 우노스 연대와 교대할 병력이다.
하지만 라솔 왕국 북부에서 가장 강한 군단으로 평가받는 이스키비르 하류 주둔군 중에서도, 모두가 치켜세워주는 최강의 우노스 연대이다.
그들이 저렇게 지칠대로 지쳐서, 선두에서 공격을 이끌었던 장교 몇몇은 바닥에 널부러져 숨을 몰아쉴 정도이다.
그 공격을 한참이나 받아냈던 적군이 멀쩡한 상태일리 없다. 이미 한계까지 이르렀을 것이다.
···가 퀸토 로르카 데 페니베라다 사령관을 비롯한 사령부의 판단이었다.
부디 그게 진실이기를 바라지만···.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공세를 책임진 지휘관으로서, 마티오는 사령부의 말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기로 했다.
적의 전력은 아군의 공세와 부딪치면서 쇠약해지기는 했겠지.
하지만 분명 어디선가 꾸준히 병력 지원을 받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처럼 버틸 수 있을리가 없다! 라는 것이 우노스 연대 전방 중대장들의 평가이기도 했고.
그러니 아직은 충분히 싸울 여력을 남겨두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접근하기로 했다.
‘적은 이미 한계까지 몰린 상태이다, 그러니 강하게 두드리면 마지막 방어선은 분명 깨어질 것이다!’
···마티오의 판단으로는, 우노스 연대가 병력, 그것도 가려 뽑은 최정예 병력을 축차투입시킨 끝에 실패한 것은 이런 가정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결국 적의 맹렬한 사선 앞에 반복해서 노출된 우노스 연대의 정예병력들은 탈진상태로, 한동안은 전투는 커녕 평범한 기동도 어려운 상태에 빠져버렸다.
이번 공격은 적이 최상의 컨디션이며, 완벽한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가정하에 계획했다.
접근하기 무섭게 잘 훈련된 정예 총병 대열의 미칠 듯한 중거리 화력이 쏟아질 것이고.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정련된 창병 대열은 접근하는 것 만으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 사신의 아가리일 것이다.
그렇지만 해야한다.
코루냐 연대의 병사들은 어느 누구도 사신의 아가리로 걸어들어가는 것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고 의무라면 말이다.
···이는 연대장인 마티오 가엘 데 프라가도 자신도 마찬가지지만.
“제1열, 준비되는대로 출격하게.”
“옛, 연대장님! 가보겠습니다. 왕국에 주신의 가호를!”
“왕국에 주신의 가호를!”
약 280명으로 이루어진 결사대 선두 대열이 베테랑 중대장의 지휘아래 전장으로 떠난다.
대부분의 병사들이 라솔 군 평균으로 따져도 최상위에 속하는 정예병들. 총병과 창병 중대에서 차출한 강병들이다.
아마도 평균적인··· 특히나 약골로 유명한 엘랑키아 보병과 비교하면, 그들 모두가 적 창병보다 창을 잘 쓰고, 적 총병보다 총을 잘 다룰 것이다.
그보다 이렇게까지 된 이상 엘랑키아의 보병을 무조건 약골로 생각해서야 되겠냐는 생각이 먼저 들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연대장이자 돌격대장으로서, 마지막까지 고심해서 편성한 결사대 총 4개 대열의 편성은 이러하다.
결사대 제1열. 280명.
- 소규모 산병 전투와 속사에 능한 정예 총병 중심, 빠르게 적에게 접근해 적의 화력을 줄이고 진격로를 닦는다.
결사대 제2열. 250명.
- 두 배의 창병과 싸워도 이길 수 있는 깊은 종심의 창병 중심, 제1열이 만든 진격로를 통해 적의 취약점에 충돌할 예정.
결사대 제3열. 250명.
- 사격은 물론 백병전에도 능한 부사관과 장교를 선발해 전투원으로 투입한 돌격대, 제2열의 뒤를 따라 충격력을 가할 예정이나, 상황에 따라 전선의 다른 곳을 목표로 할 수도 있다.
결사대 제4열. 340명.
- 우노스 연대 최후의 예비대를 지원받아 편성한 결전부대. 라솔 군 중대급 전투부대의 정수.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장 취약하다 판단된 지점을 공격한다.
혼란스럽고 좁은 전장, 단 하나의 거대 전투 대열로 서서히 밀어 붙이는 정석적인 방법으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생각했기에 고심 끝에 생각한 방법이다.
병사들의 활약도 중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연대장인 본인의 판단이다.
적의 약점과 투입 시점을 제대로 판단한다면 분명 적의 대열을 단절시키고 그 후방으로 병력을 진출시킬 수 있겠지.
그렇다면 적의 본진 후방을 장악할 수 있고, 퀸토 사령관의 계획대로 적장, 드 레뮤즈의 백작을 죽이거나 사로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인의 판단이 잘못되거나, 투입 시기를 놓친다면?
현재 이 전장에서 가장 가치있는 코루냐와 우노스 연대의 마지막 정예병들을 허무하게 축차투입으로 잃어버리는 상황이 나오겠지.
···그런다면 아마 그 책임은 마티오 혼자 지기에는 너무도 큰 파멸이 될 것이다.
지금도 마음이 무겁다. 바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북쪽,
이미 제1열의 공격이 시작되었으니 주사위는 던져졌다. 어떤 값이 결과로 나오던 무를 수 없다.
결심한 마티오는 전령을 부른다.
“전령! 사령부의 변경백 각하께 전령을 보낸다!”
“옛, 연대장님!”
“코루냐 연대는 저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것이라고!”
“코, 코루냐 연대는 저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것!”
“좋다, 전달하라!”
“알겠습니다, 연대장님!”
아직 어려보이는 소년 전령은 사이즈가 다소 큰 투구와 흉갑을 덜그럭거리며 바른 자세로 전언을 받는다.
사령부로 달려가는 전령의 달리는 모습이 어딘가 어색하다. 너무도 무거운 전언의 내용이 소년의 어깨를 굳게 만든 모양이다.
타타타타타탕! 타타타탕!
“전진! 멈추지 마라!”
“적의 코 앞에서 사격하고 그대로 돌격해!”
“주신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하신다! 엘랑키아의 돼지들을 몰아내!”
콰앙! 타타타타타타타타탕!
새롭게 질서정연한 일제사격의 소음이 추가되고, 전투의 소음이 조금 더 시끄러워졌다.
마티오가 보낸 결사대의 첫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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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랑카벨 파견대 소속, 지빌링엔 연대의 지휘관 에르만 슈피리는 혼전의 와중, 일단의 기병대가 접근하는 것을 발견했다.
연대장 호위대가 무기를 겨누며 경계했으나, 기병대의 외침을 듣고 적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정지! 누구냐?”
“우리는 라몽 드 레뮤즈 백작님을 섬기는 기사들이오! 귀공들은 누구요?”
“드··· 레뮤즈? 우리는 트랑카벨 가문을 섬기는 지빌링엔 연대의 병력입니다!”
“지빌링엔? 오오, 그 높은 용병은 드 레뮤즈에서도 많이 들었소이다!”
그들은 다름아닌, 드 레뮤즈 백작가의 기병대였다.
전투 초반부터 무너져가는 우익의 서부군을 구원하기 위해 드 레뮤즈 기병대가 출전했다는 것은 에르만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적과 마구 뒤섞인 혼전의 와중 만났다.
이는 적을 완전히 분단시켰으며, 양쪽 모두의 돌파가 성공하였다는 증명이다.
연대장 에르만의 가슴 속에서 승리의 희열감이 끓어 올랐다.
적의 공격을 막아내며 하마터면 몇 번이나 무너질 뻔 했던가. 거의 배에 가까운 적의 공격을 끝까지 버텨내며, 아끼고 아낀 예비대를 반격으로 내보낸 보람이 있었다.
허나, 아직 승리감에 취하기는 이르다. 누가 보아도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으며, 아직도 위험은 상존해있다.
그리고 그 위험을 한시 바삐 없애야 하는 것이 중견 지휘관인 연대장의 역할이었다.
“드 레뮤즈의 기사님들, 저는 지빌링엔 연대장 에르만 슈피리라 합니다! 귀군의 지휘관은 누구십니까?”
“지빌링엔의 연대장이십니까?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저희 기병대장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직접 나선 에르만의 다급한 외침에, 드 레뮤즈 기병대는 사람을 보내 지휘관을 불러온다. 그들의 목소리에서 강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이유는 착각만은 아니리라.
“라몽 백작님을 섬기는 기병대장 소베트르 드 랑두제요. 지빌링엔의 연대장이라 하셨소이까?”
“그렇습니다, 에르만 슈피리라 합니다. 반대편에서 보고 있었습니다만, 완벽한 돌입 타이밍에 감탄했습니다! 저희가 무사한 것은 모두 소베트르 경과 드 레뮤즈의 기병대 덕분입니다.”
“...아군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오.”
에르만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동맹 가문의 기병대를 지휘하는 노기사의 모습을 보고 조금 놀랐다.
아무리 봐도 자기 나이의 두 배는 되어보이는 노장이다. 그럼에도, 휘하 기병대의 선두에 가까운 위치에서 직접 말을 달리며 지휘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평범한 투구와 흉갑으로, 심지어 군마까지도 특별히 눈에 띄는 화려함은 없다. 평범한 기사보다 특별한 점이라면 금줄이 화려한 어깨 장식이 달린 망토 정도일까.
단순히 치장에 관심이 없어 검소한 것인지, 혹은 치장에 돈을 쓸 만한 수입이 부족한 작은 가문 출신인지는 알 수 없다.
허나 어떤 경우일지라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후자라면 말이다.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오로지 실력만으로 올라가, 엘랑키아의 유력한 백작 가문의 기병대를 맡게 된 것이 아닌가?
게다가 한 번 본대에서 이탈해 동맹군을 구하러 갔다가, 병력을 고스란히 이끌고 돌아와 위기에 빠진 지빌링엔 연대를 구해냈으니 그 지휘력이나 판단력은 이루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게다가 저 겸허함이라니···. 에르만이 반평생을 용병으로 대륙을 돌며 경험하거나 상상했던 귀족 기병대 지휘관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이 사람은 진짜다. 이 사람이라면 믿을 만 하다라는 생각이 든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에르만은 어렵게 말을 시작한다.
“소베트르 경! 외람된 일이지만 지원 요청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지원 요청? 무엇에 대한 지원요청 말이오?”
다행히 들어보려는 모양이다. 지금 자신의 요청이 권한을 벗어나는 일이라는 것은 잘 안다.
그렇지만 연대장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요청이라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렇다는 데 연대장의 직위는 물론 목숨까지도 걸 수 있다 확신한다.
“지금 저희는 드 레뮤즈 기병대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났으나, 저희와 이웃한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가 위험합니다!”
두 연대가 나란히 배치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가 돌출되어 라솔 군의 공세 대부분을 받아내는 사이, 지빌링엔은 길게 연장된 측면의 측면을 맡아 적의 측면 공격을 지연했을 뿐이다.
지빌링엔의 싸움이 결코 쉬운 싸움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이곳에 뼈를 묻게 되었던가.
하지만 돌출부에서 두 방향 이상의 공격을 계속 버텨내야 했던 제10 연대의 고난과는 비교도 할 수 없으리라.
“확실히 그런 것처럼 보이기는 하오. 그러니 현재 귀군과 교전중인 적을 섬멸하고···.”
“그래서는 늦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상대의 말을 끊고 외치면서, 에르만은 아차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신은 지금 어떻게든 상대의 호의를 사야 하는 입장이다.
아무리 트랑카벨 가문의 인정을 받은 연대장이라고는 하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변방 약소국의 하급 귀족에 불과한 자신과 강대국 엘랑키아 가문의 유력한 백작가 기병대장의 격의 차이는 분명하다.
그런데 아무리 다급하다고는 하나 말을 끊다니, 상대의 호의에 모든 것이 달린 현재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허나 저지른 이상 지금은 말할 수 밖에 없다. 무례를 사과하기 위해 손목이 필요하다면 손목을, 머리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머리를 바치리라.
하지만 전투가 끝날 때 까지는 붙어있어야 한다.
“무례를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현재 제10 연대가 처한 상황은 심각하고, 확신할 수는 없으나 작심한 적이 새로운 공세를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 생각하신 근거는 무엇이오?”
“소베트르 경께서 통과해오신 적의 후방을 지키던 병력이 방금 그리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
상대방, 기병대장 소베트르의 얼굴이 꿈틀하는 것을 확인했다. 다행히 그는 무례함을 트집잡는 대신, 에르만의 뜻을 먼저 알아준 모양이다.
“음, 과연··· ‘제가 모른다는 것은, 분명 적장 또한 보지 못한 약점일 가능성이 높지요’라는 것인가···.”
“뭐, 뭐라고 하셨습니까, 소베트르 경?”
“아니오, 전투 전에 콘도티에레에게 들은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오. 분명, 여기 전황에 대해서는 귀공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시겠다 생각하오.”
“그, 그러시다면···.”
“귀공의 말에 따라 귀군의 좌측, 제10 연대의 구원을 최우선으로 하겠소! 이 장소의 적을 아직 섬멸하지는 못했으니 귀군에게 맡기겠소!”
“지빌링엔에게 맡겨주십시오!”
에르만은 구원을 준비하기 위해 서둘러 말을 돌려 부대를 추스리는 소베트르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자신의 부대가 할 수 없었던 것을, 드 레뮤즈의 기병대는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