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13화 (313/556)

35-36. 생뢰르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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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 최우측 연대의 대열이 붕괴했다는 보고예요! 슈토르히가 속도를 올려 퇴각하는 적을 양떼처럼 몰아내고 있어요!”

“너무 앞질러 가는 것은 적의 반격이 있을까봐 조심! ··· 해야 하지만 마음대로 하라 그랬으니. 루트비히가 알아서 잘 하겠지.”

첼레스티나의 살짝 호들갑떠는 외침이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 좋게 들린다.

“프리스마라 기병대의 코바르 경의 보고! 전선 진전 상황에 따라 소탕전으로 이행해야 되는지 묻고 계셔요.”

“기병대의 절반은 기동 전력으로 남겨둬야 해. 아직 전장에는 라솔군이 있으니, 전투가 끝난 것은 아니니까. 나머지 절반은 코바르 경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전달해줘.”

“네에, 콘도티에레!”

철저한 소탕전으로 이행할 경우, 퇴각하는 적을 효율적으로 차단, 공격하기 위해 이쪽도 대응해야 하므로 기동전력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말하자면 ‘부대의 체질’을 바꿔도 되겠냐는 질문이다.

이 강렬한, 굳이 말하자면 아군의 ‘회전 문짝 공격’은 반대편에서 싸우는 라솔 군에 대한 간접 공격이기도 하다.

서부군 기병과 보병을 연이어 무너뜨리고 기세가 오른 라솔 군은, 전선의 절반을 맡기고 있던 타라트라바 군이 무너진 이상, 안심하고 있던 측후방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당연하지만, 이대로 ‘회전 문짝 공격’이 무난하게 유지된다면 종국에 슈토르히를 비롯한 아군 보병 연대들이 향할 곳은 라솔의 측후방이다.

말하자면 ‘이래도 계속 공격할 거야? 이래도?’ 하면서 옆구리를 계속 찌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아군에게,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지금도 내 손에는, 장갑 너머로 계속 쥐고 있어 구깃해진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의 마지막 보고가 들려있었다.

‘제10 연대 교전 중, 피해는 크나 잘 버티고 있음, 지원군 불필요’

현 연대장 기즈 드 콜롬브가 사령부에 보고하기 위해 담담하게 써 내려갔을 문장에서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아마도 행간에는 이런 내용이 숨겨져 있겠지.

‘어차피 본진에도 병력 없는 것 잘 안다, 이 쪽은 어떻게든 알아서 수습할테니 전투에서 이겨달라’

제기랄, 결국에는 훌륭한 부하들의 자기 희생에 기댈 수 밖에 없는 무력한 사령관이다.

“콘도티에레, 적이 지금 퇴각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갑자기 첼레스티나가 물어온다. 단순히 궁금하다기 보다는, 정보 참모와 연락 참모 역할을 겸하고 있는 그녀의 입장에서 알아둬야 할 사항이긴 하다.

내가 전투 지휘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은, 많은 것을 첼레스티나 본인 선에서 처리하거나 전방 부대에 지침을 내려 위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 지휘 스타일은 다르다.

특히 은근히 ‘전략가’ 하면 생각나는 ‘깐깐한 천재형 지휘관’들의 경우 사소한 보고도 놓치지 않으려 하고 더 나아가 전군을 마이크로 컨트롤 하려 드는 인간들도 있다.

보통은 천재인 척 하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걸 진짜로 해 버리는 인간도 있다는 게 무서운 점이지···.

아마도 슈토르히를 지휘하고 있는 루트비히도 그런 류의 인간이 아닌가 하고 있지만.

다만 내 경우는 그런 걸 모조리 처리할 만큼 두뇌 회전이 빠르지 않다는 것 정도는 인정하는 편이니까.

게다가 우리 장교들은 명확한 작전 목표와 지침만 내려 주면, 어떤 형태로든 그걸 수행해 낼 만큼 유능하니까! 증거를 대라면 얼마든지 댈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적이 퇴각하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계속 추격할 거야. 그리고 아마··· 이스키비르 강에서 두 번째 전투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겠지.”

“아! 확실히 그렇네요 콘도티에레.”

이 정도의 조직력을 가진 적이 물러난다면 단번에 포위섬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고, 너무 철저하게 퇴로를 막아가며 옥죄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방법은 아니기는 하다.

하지만 현재 내가 맡은 책임, 그리고 엘랑키아와 라솔 두 라이벌 왕국의 관계를 생각하면 적을 섬멸하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피해를 입혀야 한다.

이 정도의 정예군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는다면, 그걸 재건할 때 까지는 다시 침공할 엄두를 내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한 마디를 더 할까 말까··· 조금 고민하다가 입을 연다. 이건 100퍼센트 확실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그리고 둘 중 하나를 섬멸한다면 타라트라바 군 보다는 라솔 군이 우선순위가 높겠지. 이유는··· 그게 라솔에 더 아픈 일일 테니까.”

“네에, 콘도티에레! 앞으로 라솔 군을 전장에서 살려 돌려보내지 않도록 할게요!”

“아니, 아니!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고.”

첼레스티나는 역시 무서운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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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전하, 알시라스의 왕제께서 전령을 보내셨습니다.”

“내용은?”

“크루사다 공작 전하께, 우리 알시라스 해군 육전대는 아직 싸울 힘이 남았으나, 공작 전하의 명령에 따라 전장 이탈을 결심했으며 후위를 지키는 임무를 자임하고자 함! 이상입니다.”

“...염병을 떠는구나.”

“예, 옛? 저, 공작 전하?”

“...아니다 실언이다. 전달해라, ‘귀군의 용전분투에 깊이 감명받았으나 아군이 부족해 퇴각을 결정하게 되어 무척 아쉽다. 마지막까지 잘 부탁한다’ 라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빌어먹을, 머저리 같은 바닷가 촌놈들이 염병 떨고 있네.

차마 일국을 통치하는 공작이라는 입장 인지라, 입 밖으로 내지 못할 문장을 목구멍에서 뭉개며, 으르렁거려본다.

알시라스 군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실 그만한 병력을 가지고 참전해 준 것만 해도 동맹국으로서 매우 고마울 뿐이다.

알시라스 국왕의 동생, 타론 미아고 라살은 소중한 동맹군을 이끌고 늦게라도 도착해주었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그만한 의미가 있었나? 라고 하면 잘 모르겠다.

이거야 어떻게 보면 결국 전장에 혼란만 가중시켰을 뿐이고, 실질적인 패전은 막지 못한 게 아닌가!

차라리 타라트라바 보병 연대가 2~3개 정도 더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간절한 것도 과언이 아니다.

망할 놈의 콩가루 군대라니. 결국 전군을 휘어잡고 지휘하지 못한 크루사다 공작 본인의 잘못이 크다.

분하게도, 예비대로서 가치 있었을지 모를 알시라스의 해군육전대를 평범한 난전에 밀어 넣은 끝에 무의미하게 만든 것은 자신의 과실이기도 하니까.

타타타탕! 타당! 따당, 땅!

타타탕! 타타타타타탕!

엘랑키아 군의 추격이 무섭다.

그나저나 저 가장 외곽을 돌아 쫓아오는 저 자식들은 어떻게 계속 걸어오면서도 사격 속도가 줄지 않는 것 같다.

타라트라바 총병들 정도면 훌륭한 수준이 아니었나? 대륙 어디에 용병으로 내어 놓아도 평균 이상의 역할을 해주는 강병이 아니었나?

불행하게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평균적인 엘랑키아 군이라면 몰라도, 몇몇 특출난 적군을 상대로는 조금도 대등하게 싸우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뻐벙! 펑! 뻐버벙!

콰쾅! 퍼억!

“끄아아아악!”

“포격! 포격에 당했다!”

“어느 방향이지?”

갑자기 대여섯 발은 되어 보이는 포성이 울리고, 후미를 지키던 타라트라바 보병대의 모서리에 작은 피의 폭풍이 일었다.

멀리서도 잘려나간 병사의 일부가 마치 고장난 인형 파편처럼 망가진 무기와 함께 이리저리 튀어 오르는 게 보일 정도였다.

“포격? 어느 방향인가?”

“후방··· 지금은 측면으로부터 입니다. 아군 포대가 위치했던 곳으로, 아마도··· 포병대 일부가 화포의 파기를 거부하고 퇴각하다가 적 기병에게 따라잡힌 게 아닌가 싶습니다.”

“...멍청이들!”

기가 막힐 일이다. 분통이 터졌다.

공국에서 직접 보유한 포병대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일부 포대를 조직한 용병대를 고용한 것이 화근이었다.

물론 이번 전투 내내 열심히 포격전에 참여하여 타라트라바 군을 위해 싸운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화포를 파기하고 퇴각하라는 명령에는 불응한 모양이다.

···젠장할, 그게 장사도구이고, 평범한 검이나 창, 혹은 총기와 같은 무기에 비해 훨씬 비싸고 귀중한 물건이라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그거 지키겠다고 고용주의 군대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면 어쩌겠다는 것인가!

적의 막강한, 괴상하고도 볼품 없는 하얀 새의 깃발을 단 연대의 매서운 추격을 받아내며 힘겨운 싸움을 하던 타라트라바 보병대는 최악의 최악 상황을 맞이했다.

기껏해야 대여섯 발의 포탄, 연대 규모의 부대라면 전투에서 흔히 받을 수 있는 공격이리라.

전장에서 수없이 아군과 적군을 장사 지냈던 베테랑들에게 큰 위협은 아니다. 측면에서 폭이 깊은 대열에 직격했으니 사상자는 평소보다 많이 나왔겠지만···.

문제는 그게 ‘안전하리라 생각했던 후방··· 이었던 측방’에서 날아와 아군을 곤죽으로 만들었다는 것이고.

이미 한계까지 몰려 있었던 상태라는 것이다.

“아아··· 빌어먹을!”

그나마 용맹함과 자부심으로 버텨내고 있던 가지런한 전열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타라트라바 보병 연대가 전술적 가치를 잃어버리고 만다.

적군은 얄밉게도 서두르지도 않고, 그렇게 무너지는 타라트라바 군을 재촉하듯 바짝 붙어서 슬슬 밀치며 다가온다.

칼처럼 각을 잡고 네모 반듯한 대형으로 접근하는 것도 아니오, 무질서하게 대열을 무너뜨리고 제각각 접근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크루사다 공작의 ‘상식’으로는 저런 뱀과도 같은 느물느물한 기동이 어떤 의도로, 아니 어떻게 가능한지 짐작도 가지 않을 뿐이다.

“기병대가 아군의 후퇴를 돕기 위해 접근합니다, 공작 전하.”

“그나마 다행이군.”

천만다행이다.

전투가 시작된 이래로 숙원이던 출격을 명령받은 기병대의 리브리오 경은 다행히도 자신의 혈기를 통제할 줄 아는 훌륭한 청년이었다.

아마 그들까지 무리한 공격으로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면, 지금 크루사다 공작과 타라트라바 군은 아주 절망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무모한 공세가 통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곧바로 보병대의 측방으로 돌아와 퇴각을 돕고 있었다.

일천 명··· 아니 대략 구백 명 정도의 타라트라바 기사들이다. 아름다운 투구와 갑옷을 입고, 창과 권총으로 무장한 공국의 자랑.

리브리오 경에게는 전투가 끝나고 아무리 고맙다고 말해도 부족할 것 같다.

“라솔의 퀸토 변경백에게서는 아직 아무런 전갈이 없나?”

“없습니다, 공작 각하.”

“휴우··· 아군은 전면 퇴각을 준비하고 있다는 전령을 다시 보내도록 하게.”

“옛, 알겠습니다!”

이제는 굳이 보낼 필요도 없겠지만.

전선이 너무 심하게 밀려난 탓에, 라솔 군의 후위에서도 뻔히 보일 것이다.

분명 ‘니들이 왜 여기에 있어? 적군은 왜 거기까지 왔고?’라며 놀라겠지.

하지만 타라트라바 군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잘 되지 않았다.

그저 동맹군이 갑자기 측후방이 노출되기 전에, 먼저 알려주는 정도가 크루사다 공작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예의가 아닐까 싶다.

“먼저 퇴각했다고 놀고 있으면 안 된다! 대열을 정돈하고, 아직 퇴각하지 못한 아군을 기다린다. 교대로 적의 전선을 노출시켜 피해 누적을 노린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당장 전장으로 돌아가라!”

참모들이 전장에서 빗발치는 문제들을 처리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질서가 유지되고 있을 때, 전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디 라솔 군도 그렇게 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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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이렇게 싸우는 자들은 처음이네.”

나브리치오 델 로카라소는 라솔 군 장교가 자신에게 하는 말을 듣는지 마는지, 무심하게 손에 감긴 붕대를 손 보았다.

옆에서는 사격 파트너인 그롬콜리가 손을 다친 나브리치오를 대신해서 묵묵히 장전하고 있었다.

“귀공은 법황의 군대에 합류해 이단 자들의 군대와 싸웠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저들이 그 엘랑키아 남부의 이단자들이 맞나?”

“예. 복장이나 군기의 형태로 보았을 때, 마르사코르에서 싸웠던 적이 맞습니다.”

“허어, 그 이단자들을, 엘랑키아 왕실은 용납하기로 한 것인가! 천상의 왕국을 떠받치는 토대 중 하나로서 부끄럽지도 않은 것인가!”

라솔 군 장교는 상당히 신앙심이 깊은 편인지, 진심으로 분통을 터뜨리는 것 같았다.

오히려 법황청이 있는 주디칼리 지역은 세속적인 면이 강하다.

반대로 라솔은 대륙의 여러 주요 왕국 중, 가장 종교적 성향이 강한 나라였으니까.

라솔 국왕들은 그 때문에 항상 법황청에 사람을 요청해 대관식을 축성하며, 평생 종교에 헌신해 주신을 섬기는 국왕이라는 특별한 칭호를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정작 나브리치오는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의 친형이 추기경을 보좌하는 고위 성직자이기에 우호적으로 행동했을 뿐, 정작 본인은 그다지 종교에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아마 용병 출신인 그롬콜리 역시 마찬가지겠지.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사납게 싸우게 만드는가? 그들이 섬긴다는 사악한 참칭 성녀에 대한 그릇된 신앙일까? 이단으로서 토벌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심일까? 혹은 그저 돈에 팔려 죽음에 이르는 전장에서 싸울 뿐인가!”

문득 나브리치오는 이 라솔 군 장교가 군인보다는 설교하는 성직자나, 연극 배우에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비극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발성이 제법 그럴듯했다.

하지만 나브리치오의 실력을 알아 봐주고, 수상한 떠돌이에 불과한 그와 그롬콜리를 받아들여 싸울 기회를 준 고마운 중견 장교이다. 적대할 생각은 없었다.

“준비 끝났습니다.”

“그래, 이번 공세 지원을 부탁하네! 이 국면을 타파할 수 있도록 활약해 준다면, 분명 변경백께서도 큰 포상을 내리시겠지.”

“신호만 주십시오.”

포상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계속 전장에서 싸울 수만 있으면 된다. 나브리치오는 말 없이 그롬콜리에게서 무기를 넘겨 받는다.

“가보겠습니다.”

자연스럽게 다음 공세를 준비하는 라솔 보병대의 후미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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