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12화 (312/556)

35-35. 생뢰르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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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백께서 정말 그렇게 명령하셨나?”

“그, 그렇습니다.”

“분명 지금 즉시라고 하셨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연대장님.”

“알겠네. 즉시 명령대로 하겠다고 보고드리도록 하게.”

“옛! 알겠습니다.”

이스키비르 하류 주둔군의 네 검천사 연대 중 막내인 코루냐 연대의 지휘관, 마티오 가엘 데 프라가도는 전달된 명령을 듣고 조금 놀랐다.

현재 코루냐 연대는 검천사의 맏형인 우노스 연대와 교대하여 후위를 맡고 있었다.

후위라고 해서 단순 예비대는 아니다. 왜냐하면 아직 퇴각한 적 좌익의 엘랑키아 보병이 완전히 전멸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스키비르 하류 주둔군 소속이 아닌 라솔 병사들이 어지러이 물러서고 있는 엘랑키아 군을 압박하고 있었고, 코루냐 연대는 후방에서 이를 돕는 형국이었다.

연대장인 마티오야 최전선에서 전공을 세우고 싶었지만, 이 또한 중요한 역할이기에 전혀 게을리하지는 않고 있었다.

원래 적진을 돌파한다는 것은, 언제라도 포위 당할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걸 중앙에서 조율하며, 자칫하면 약점이 될 수 있는 돌파중인 아군의 후방을 지키는 것은 매우 명예로운 일이다.

단순히 선형의 전선이 마주보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 적진 가운데에 아군이 쐐기처럼 박힌 상황이므로, 언제라도 전방이 후방이 될 수 있고, 후방이 전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령관인 퀸토 로르카 데 페니베라다 변경백으로부터 온 연락은 그 ‘당연한 상식’과는 전혀 반대였다.

‘지금 즉시 엘랑키아 중앙군을 향한 공세에 합류하라’

···마티오가 연대장이 된 후 받는,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현재 중앙군을 향한 공세에는 나머지 세 검천사가 달라 붙어 있었고, 그것도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좁은 정면이다.

타라트라바 군이 열세에 처해 있어 공격을 서두르려 한다는 것이야 들었지마는, 그래도 저 좁은 전선에 네 검천사를 모두 밀어 넣어야 할 정도로 급박한가.

미심쩍다는 생각이야 자유지만, 그래도 사령관의 명령이다. 서둘러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대열을 새로 짠다! 지금부터 우노스 연대의 후방으로 접근해 아군을 돕는다.”

“알겠습니다, 연대장님. 그, 그런데 제가 이해한 것이 맞습니까? 저 후방에는 이미 병력 밀집도가 상당히 높아서···.”

“정확히 잘 이해했네. 변경백 각하로부터 직접 하달된 명령이니, 따르는 수 밖에.”

“아 그렇군요! 퀸토 변경백 각하의 명령이라면 틀림없겠죠! 곧바로 명령을 전하겠습니다.”

평소부터 사령관인 퀸토 변경백을 존경하던 연대 참모는, 명령의 출처를 듣자 모든 의심을 지우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자신도 저러면 좋을 텐데.

마티오 연대장은 순수하게 상관의 명령에 기뻐하는 연대 참모의 모습이 부러웠다.

자신도 과거에는 저랬을지 모르나, 지금은 코루냐 연대를 책임지고 있다. 단순 보병 연대도 아닌, 하류 주둔군의 네 검천사이다.

상당히 큰 규모의 전투에서도 승패를 판가름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전력이다.

물론 사령관인 퀸토 변경백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결론만 이야기할 때가 많아 당황스러운 때가 없지 않지만, 그래도 그를 따른 후 패배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번에는 뭔가 이상하고 불안했다. 단순하게 명령만 따라도 될 일인지.

그래도 가슴 두근거리는 일은 분명했다. 이스키비르의 네 검천사가 한 지점에 집결하여 어깨를 나란히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엘랑키아에 이 정도 힘을 막아낼 수 있는 보병이 있을 리가 없다. 지금이야 숫자에 의지해 막아내고 있을 테지만, 시간이 흐르면 결국은 뚫리겠지.

“후우, 우리도 가보자.”

“예, 연대장님.”

마티오는 너무 깊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 명령대로 싸워 이겨왔으니까, 이번에도 명령대로 싸우고, 이기면 될 일이다.

다만··· 만약의, 만약의 만약의 경우만은 미리 대비해놓기로 했다.

원래 네 검천사 중 막내인 코루냐는 주신의 말을 멋대로 해석하는 사고뭉치였다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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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공격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허억, 허억, 모두 괜찮아요?”

“예 아직은 멀쩡합니다, 대장.”

“괜찮고 말구요, 허헛.”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 소속의 소대장 얀 고티에는 숨을 깊게 몰아쉬며 주변을 살핀다.

이미 제10 연대의 방어선은 제10 연대의 방어선이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온통 여기저기에서 파견 온 병사들이 뒤섞여 있었다.

힘싸움을 할 창병의 숫자가 적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짧은 무기로 무장한 보조 백병전 요원들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전장이다.

자기들도 정신 없으면서, 지빌링엔 연대에서는 작은 부대 하나를 보내줬다.

도끼창으로 무장한 우락부락한 남자들로 이루어진 이 부대는 가장 위험했던 순간에 달려와 무너지기 직전의 방어선을 되살려 놓았다.

“그런데 정말 징하네 적들도 참. 몇 번이나 더 오려고.”

“여기서 승패가 갈리기는 하려나 봅니다. 집착하는 꼬라지를 보니 그렇네요. 페엣!”

투덜투덜대면서도 탄약포를 이빨로 찢고 있는 병사는 제31 몽세나 정찰 연대에서 보내준 용기병이다.

소대 단위로 찢어져 격전지에 파견된 이 몽세나 출신의 다부진 총병들은 사납게 달려드는 라솔군의 투구와 흉갑을 무수하게도 관통시켰었다.

장비는 트랑카벨 정규 연대 총병들과 유사하지만, 말 위에서도 화승에 불이 꺼질 걱정 없이 다룰 수 있다는 신형 수석 총기를 사용한다는 점이 달랐다.

평소라면 만난 김에 양해를 구하고 어떤 구조인지 살펴보고 싶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얀 자신도 자기 총 장전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허허, 총병 여러분 부탁드립니다. 우리 영지의 젊은이들도 총 쓰는 법을 배웠는데 잘 싸우고는 있을지.”

완전히 하얗게 변한 수염을 길게 기른 나이든 향사는 드 레뮤즈 가문의 보병대에서 파견온 작은 지원부대의 일원이었다.

가죽 위에 철판을 이어 붙인 조끼를 입은 이 노인은 마찬가지로 최근에는 보기 어려운, 한 손으로 쓰기에는 다소 길고 무거워보이는 장검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단순히 고풍스러운 골동품이 아님을 방금 전의 백병전에서 증명했다. 얀이 아는 것만 최소한 한 명 이상의 라솔 장교가 이 노인의 검에 쓰러졌으니까.

훈련은 받았으나, 백병전에 익숙하지 않은 얀으로서는 이 지원군들이 너무도 고마웠다.

이들이 때 맞춰 와주지 않았다면 방금 전 네 번째 공세를 막아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전의 세 번째 공격에 이미 뚫렸을지도 모르지.

얀의 시선이 조금 아래쪽을 향한다.

분명 초록색 들풀이 깔린 초원이었던 이 지역의 땅은 지금은 원래 모습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무수히 짓밟히고, 피가 뿌려져 질척질척해진 흉물스러운 진회색 덩어리들만 보일 뿐이다.

“벌써 이만큼이나 후퇴해왔구나···.”

경악했다. 동료들의 시체가 10미터나 저 앞에 흩어져 있다. 전투가 벌어졌던 곳마다 마치 층이 지듯, 시체가 집중적으로 쌓여있다.

그렇게 적이 공격해올 때마다 격렬히 싸워 격퇴했다고는 하나, 전선 자체는 조금씩 밀리고 있었던 것이다.

눈으로 보니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까지 후퇴해도 괜찮을까? 정말로 괜찮은 것일까?

“어휴 또 온다 개자식들.”

“쟤들도 오기 싫은데 명령 받고 오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살려주자고?”

“아니 땅에 쳐박아 줄 건데?”

대열을 갖춘 적이 또 접근하고 있었다. 다섯번째 공격.

병사들이 애써 밝은 태도로 농담을 하는 것은, 그만큼 힘겹기 때문이다.

창병들이 벽을 만들어 핵심 지역을 지켜주기는 하지만 그 사이 사이는 자신들과 같은 임시 전투 부대들이 몸으로 틀어 막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라솔 놈들은 강하다!

직접 싸워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얀이 지금까지 트랑카벨 가문이 상대했던 모든 적과 싸워 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겪어본 어떤 적 보다도 강하다 느껴졌다. 엘랑키아의 국왕군보다도, 법황의 성전군보다도.

“이번에도 첫 사격 이후에는 자율적으로 사격하겠습니다, 대장!”

“예. 첫 사격은 제가 신호하겠습니다.”

어째서인지, 이 백 명 가까이 되는 혼성 부대는 얀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원래 배치된 트랑카벨 정규 보병대의 장교들이 대부분 전사하거나 큰 부상을 입었기 때문일까.

초반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웠던, 곡괭이를 잘 다루던 소대장은 저 앞의 시체들 가운데 쪼그린 자세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백병전 도중, 옆구리를 찔려 피를 많이 흘리던 그는 ‘잠시만 쉬겠다’며 자리에 앉더니 다시 일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뿐 아니다. 오랜 전우였던 드레소를 비롯해서, 얀이 아는 얼굴들이 너무 많이 사라졌다. 그 빈 자리를 이 고마운 낯선 이들이 채우고 있었고.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다.

오늘 여기서 살아 남는다고 해도, 내일을 평소처럼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더 고민하려면, 일단은 싸워서 살아남아야 했다.

“사격 준비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오른 손을 치켜들어 신호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자신도 발사하려면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른 내린다.

적의 새로운 무리, 깨끗하게 닦여 반짝반짝 빛나는 흉갑과 투구로 보아 지금껏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던 병력이다.

자신의 흉갑에는 어느새 피가 튀어 모자이크화가 그려져 있다. 처음 지급받았을 때는, 매일같이 깨끗하게 닦았던 소중한 갑옷인데.

“으아아아아아!”

“트랑카벨을 위하여!”

“드 레뮤즈!”

“지빌링엔은 성녀의 깃발 아래 싸운다아!”

혼성부대가 온갖 함성을 질러댄다. 너무 제각각이라 정신이 산만할 정도이다.

허나 기묘하게도, 그 산만함 속에서 자신들이 하나되어 있음을 느낀다. 섬기고 있는 가문이 무엇이든, 소속 부대가 무엇이든간에 말이다.

얀은 갑자기 눈앞에 뿌옇게 되는 것을 느꼈다. 이상하게 울컥한다. 아까와는 다른 이유로 울고 싶었다.

총병인데, 울어서 앞이 안 보이면 안 되는데. 그래도 다행히 장애물 하나 없는 개활지를 가로질러 오는 적의 모습은 또렷하게 보인다.

적의 선두가, 미리 그어 놓았던 가상의 사격 선을 넘었다.

“쏴라아!”

타타타타타탕!

타타타타탕!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와 혼성 지원군의 다섯 번째 방어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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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트라바 기병 지휘관 리브리오는 자신들의 힘이 부족함을 통감했다.

잠시 멈추었나 싶었던 적의 진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어 보인다.

“보병들은 대체! 조금만 더 버텨주면 좋을 텐데!”

“타라트라바의 미래가··· 아아···.”

함께 말을 달리고 있는 동료 기사들이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보병들이 무력하다며 나무라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원래라면 아군에 대한 비난 행위는 크게 혼내고 금지해야 할 말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

리브리오의 타라트라바 기병대도 출격 이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기하고 있는 적 기병을 공격해보기도 하고, 완전히 외곽으로 우회해서 적의 노출된 후방을 노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대로 잘 되지는 않았다.

가볍게 무장한 적 기병은 무심한 듯 지켜보다가도 타라트라바 기병의 선발대가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 주제에 화약 무기는 잔뜩 보유하고 있어서, 약올리듯 도망치며 이쪽을 향해 쏴대고는 했다.

그리고 외곽으로 우회하려 한 시도는, 적 후방에 아직 강력한 포병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다.

물론 그 확인 과정에서 타라트라바 기병대가 여러 발의 포탄에 휩쓸린 것은 물론이다.

결국 백 명에 가까운 휘하 기병들을 잃고 나서야, 리브리오는 자신의 무력함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이 아군 기병의 돌격 범위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게 견제한다는 최소한의 역할만 할 뿐이다.

“...천천히 후퇴한다.”

“하지만··· 한 번도 싸워보지 못하고 이대로 귀환하는 것은···.”

“나 또한 원통하고 괴롭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자존심보다 타라트라바 군 전체를 챙겨야 할 때니까.”

“...알겠습니다, 리브리오 경.”

챙길 대상에 타라트라바 까지만 나오고, 라솔이나 알시라스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정말 알 바가 아니라서 그런 것인지, 단순히 관습적으로 표현을 했을 뿐인지는 리브리오 자신만이 알 것이다.

“공작 각하께서 심려가 크시겠지. 타라트라바는 이대로 끝날 수 없다.”

“물론입니다!”

자신들은 라솔의 신하가 아니다. 타라트라바 공작의 신하이다. 그들이 공유하는 감정이었다.

리브리오와 타라트라바 기병대가 후퇴를 결정한 때와 비슷한 시기, 타라트라바 공작은 공식적으로 전군의 전장 이탈 명령을 내린다.

여기서 더 힘을 뺐다가는 포위당하고, 퇴각할 힘 조차 잃게 된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결정적인 패배를 막아야 한다.

참혹한 내용을 담은 서신을 가진 전령이 라솔 군의 사령부로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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