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09화 (309/556)

35-32. 생뢰르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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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캐한 냄새가 섞인 뜨거운 바람이 후욱 하고 대열을 스치고 지나간다.

“아! 으아아···.”

“크헉!”

소대장 얀 고티에가 속한 전열에서도 또 두 명이 더 쓰러졌다.

한명은 무릎부터 땅에 닿더니 앞으로 얼굴을 풀밭에 묻으며 쓰러지고, 다른 한명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멈칫하더니 그 자세 그대로 뒤로 넘어간다.

둘 다 즉사인지, 꼼짝조차 하지 않는다.

“퉷! 빌어먹을, 언제까지 오는 거야···.”

말라붙은 입술에 이빨로 찢어 끊어낸 탄약포의 끄트머리가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몇 번 바람을 불어내자 그제야 떨어져 내린다.

탄약포로부터 총구로 화약을 부어 넣고, 종이에 감싸인 총탄을 억지로 쑤셔 넣어 꽂을대로 밀어 넣는다.

기긱 기기긱, 벌써 열 발 이상은 충분히 되는 총탄을 쏘아댄 중화승총의 뜨겁게 달아오른 총열은 마치 더 이상은 발사하기 싫다는 듯 장전을 거부하고 있었다.

기분 나쁜 쇳덩이 긁는 소리를 들으며 억지로 총알을 밀어 넣는다. 총알을 감싼 종이 뭉치가 천천히 총구 안쪽으로 모습을 감춘다.

이럴 때는 물에 담근 천으로 한 번 총열을 싹 닦아내야 한다. 타다 남은 탄약 찌꺼기나 탄약포 조각 등이 물에 녹아나기 때문에 훨씬 상황이 나아진다.

당연히 그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이 난리통에 그런 사치를 부리기는 쉽지 않다. 물도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하다.

뚜둑!

“젠장! 아 하필 이런 때!”

단단한 나무로 만든 꽂을대가 부러지고 말았다. 황급히 총을 뒤집어 탈탈 털자, 다행히도 부러진 앞부분은 총구에서 떨어져 나왔다.

만약에 운 나쁘게 탄약포와 함께 총열 끝에 끼이거나 하면 총 자체를 버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들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이게 꽂을대를 나무로 만들 수 박에 없기 때문이다.

카르카냑의 조병창에서는 금속 꽂을대 연구가 진행되고 몇 개 생산되어 보급받은 부대도 있다고는 한다.

그렇지만 이게 생각보다 무거워서 불편하고 잘 휘어서 실전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아서 제식 채용은 되지 않았다 들었다.

튼튼한 강철 선을 대량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던가?

얀은 주변을 살핀다. 정말 미안하지만, 지금은 동료의 유품에 손을 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전사한 트랑카벨 병사들의 가방에서 탄약포를 회수해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소모품이 아닌 꽂을대는 느낌이 좀 다르다.

“미안하다. 잘 쓰고 꼭 돌려줄게.”

살아서든, 죽어서든. 뒷말은 굳이 입 밖으로 소리를 내서 말하지 않았다.

옆에 엎드려서 죽어있는 병사는 장전하다 쓰러졌는지, 총구까지 밀어 넣은 꽂을대를 오른손으로 꼭 잡고 숨져있었다.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벌려 멀쩡한 꽂을대를 잡는다. 죽은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차갑게 식어버린 병사의 손이 무섭게, 그리고 무겁게 느껴진다.

자신도 총에 맞아 쓰러지면 이렇게 되려나.

엘랑키아 국왕 폐하의 군대를 상대로도, 주신교 법황 성하의 군대를 상대로도 당당하게 맞서 싸워 블랑독과 트랑카벨을 지켰던 제10 카르카냑 연대의 병사들이다.

하지만 라솔 상대로는 견디지 못하고 너무도 허무하게 이 자리에 쓰러져 있다.

얀 고티에 자신도 트랑카벨 영지군 중에서는 손에 꼽힐 만큼 베테랑이지만, 이토록 격렬한 전투를 경험한 적은 없는것 같았다.

전투에서 사격이든 백병전이든 어느 정도 버티고,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히면 적은 퇴각하곤 했다.

전장의 큰 부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모른다. 그는 일개 화승총병이고, 지금도 일개 소대장이니까.

딱 자기 시야 만큼만 통제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러고 있으면, 지휘관이 콘도티에레든 트랑카벨의 아실 자작님이든 전국을 움직여 어느새 이겨 있었던 것이다.

이번 전투도 그렇겠지, 분명 그럴 것이라 믿기는 한다.

하지만 이번 전투는 전에 없이 참혹하다.

적군은 지금까지 싸워 본 적 없을 만큼 완강한데다, 총구를 전혀 무서워하는 기색이 아니다.

겨우 소대장이 전술전략에 대해서 얼마나 알겠느냐마는, 최근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것이 있다.

바로 트랑카벨 정규 연대들은 사격을 개시하는 거리가 타군에 비해 굉장히 짧다는 것이다.

그만큼 적의 공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노출되는 시간은 늘어난다.

조용히 장전된 총을 들고 기다리는 사이, 귓가로 총탄이 지나가고 발 밑의 풀밭이 파이며 흙먼지가 일어난다.

그럴 때면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나도 총을 겨누고 쏘고 싶다는 충동이 들곤 한다. 물론 그러면 안된다. 그렇게 훈련 받았으니까.

또한 머리로는 아는 것이다.

이 죽어라 흐르지 않는 시간, 실제로는 1분도 안되는 시간이 흐르고 나면 아군의 차례가 온다.

더 가까이에서, 더 정확하게, 더 밀도 높은 사격을 퍼부을 차례가 말이다.

그 때가 되면 지금까지 아군이 당했던 것을 몇 배나 이자를 쳐서 되돌려줄 수 있다. 그 단 한번, 최초의 일제사격을 견디지 못하고 깨져 나간 적도 있었고.

말하자면 그 인고의 시간은 필승에 대한 확증이나 다름 없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적은 뭔가 다르다.

이 자식들도 거의 비슷하게, 때로는 더 가까이까지 밀고 들어와 사격을 하는 것이다.

서로 한 발도 사격을 하지 않고, 조금씩 총병 대열의 거리가 가까워지기만 할 때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 나와라 뛰고 있었고.

차라리 어느쪽이든 쏴버려서, 내가 죽어도 좋으니 이 돌아버릴 것 같은 긴장되는 상황이 끝나기를 바랐다.

그 결과가 지금, 평소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벌어지는 양측의 총격전이다.

탕! 타타탕!

“허윽!”

“맞았어? 괜찮아?”

“개새끼들아아!”

대화가 되지 않는 대화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양측의 거리가 가깝다보니 쏘아대는 화력의 밀도가 너무 높아, 눈 앞에서 화약 연기의 벽이 사라지질 않는다.

슬슬 흐려질까 싶으면, 누군가가 또 새로운 화약 연기를 피워올려 보충하고 마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로는 서로가 서로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희미한 실루엣만 보며 쏘고 있다.

정확한 조준은 하지 않고, 오로지 적진으로 한 발의 총탄을 더 날려 보내는 것이 중요할 뿐인 참혹한 소모전.

“후욱! 후우!”

화승에 입바람을 불어 빨갛게 불씨가 타오르는 것을 확인하고, 점화구에 고운 화약을 부어 넣는다.

꽂을대를 빌리느라 잠시 장전이 늦어졌건만, 이제 몸이 완벽하게 기억해버린 장전 과정은 거침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개머리판을 바닥에 두 번 친다. 이건 화약이 무사히 안착하기를 바라는 것도 있지만, 얀에게는 일종의 루틴이었다.

모든 과정을 거치고, 사격 직전에 자신의 감각을 깨우는.

지금은 혼전 중에 총병 중대 전원이 이웃 중대와 뒤섞여서 자율 사격 중이었다. 부하 소대원들의 장전과 사격을 지휘할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온전히 자신의 사격에만 신경을 쏟는다.

어차피 서로가 만들어낸 연기 때문에 적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눈 감고 쏠 수도 없다.

받침대에 올린 총구를 적진으로 향한다. 적이 뭉쳐있는 것 같은 실루엣을 노린다.

조준이나 망설임은 길지 않다.

곧바로 방아쇠를 당긴다.

타앙!

뺨과 어깨를 굉장한 충격이 때린다. 가뜩이나 위력이 강한 중화승총이다. 하루 종일 사격의 반동을 받아낸 어깨가 욱신 거렸다.

총병은 계속 반동을 받아내다보니 갑옷의 어깨 부분이 망가질 정도라던가. 그나마 받침대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작은 유리병을 꺼내 뚜겅을 열고, 물을 한 모금 마신다. 미지근한데다 고약한 코르크 냄새가 났지만 화약 때문에 바짝 말라버린 입 안을 씻어주니 살 것 같았다.

작은 천을 물에 적셔 꽂을대에 물리고 총구를 닦아낸다.

놀라울 만큼 새카만 검댕이 묻어난다. 생각 같아서는 더 꼼꼼히 닦아내고 싶지만 지금은 한 발이라도 더 쏘는 게 중요하다.

총구 깨끗하게 닦아 놓고 적탄에 맞아 죽기라도 하면 그건 무슨 코미디겠나.

“소대장님, 저도 물 한모금 주시면 안됩니까?”

“벌써 다 마셨어?”

“그게 오늘 꽤 덥고··· 하하···.”

“그래, 다 마시지 말고 조금 남겨라.”

“옛, 감사합니다!”

드레소 비타, 얀이 아직 병사일 무렵부터 함께했던 동료이다. 워낙 뺀질대고, 명중률이 형편 없어서 진급 누락을 당하더니, 최근에는 사격도 곧잘 한다.

어중간한 고참이라 신병들에게 큰소리를 뻥뻥 치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올 것 같지만 말이다.

불투명한 유리로 된 물병을 넘겨주고 다시 천을 반대로 접어 총열을 닦아낸다. 덩어리 진 마지막 찌꺼기를 긁어내고···.

타타타타타타탕!

콰광! 타다당! 타타탕!

“뭐야? 엇?”

갑자기, 또 한번 뜨거운 바람이 대열을 휩쓸고 지나간다.

“으아아악!”

“커헉··· 쿨럭! 맞았··· 콜록!”

“크으윽!”

여기저기서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철퍼덕, 콰당탕 하는. 묵직한 살덩어리가, 갑주와 각종 장구가 충돌하는 두려운 소리.

날이 더워 갑옷까지 입고 있는 상황인데도, 얀은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분명 자신들과 마주하고 있던 적은 자신들처럼 산개하여 단속적으로 사격을 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아군을 덮친 것은 명백히 새롭게 조율되고 준비된 일제사격이었다! 뭔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드레소! 상부에 보고가 필요···.”

뒤를 돌아보던 얀은 잠시 멈칫한다.

깨져버린 탁한 유리병.

왠지 손가락의 개수가 모자라보이는 그걸 잡은 손.

물과 함께 깨진 물병의 표면을 따라서 방울져 흐르는 피.

하얗게 팽창한 드레소 비타의 눈.

“드레소!”

“커헉, 큭!”

재수도 없는 눈 먼 총알은, 물병을 잡은 드레소의 손가락과 물병, 그리고 목까지 한번에 관통했다.

“그르르륵, 컥!”

그의 몸이 힘없이 주저앉는다. 총탄에 깨져 여기저기 상처가 난 손으로 몸을 움켜쥐지만, 피거품을 흘러나오는 상처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드레소··· 이런··· 드레소···.”

슬프게 이름을 불러보지만, 경련조차 오래가지 않는다. 어찌 이리도 깔끔한 관통인지.

“젠장, 젠장···.”

친구가 죽었다. 생전에는 친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고뭉치 후임이지만, 잃고 보니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개자식들···.”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며 장전을 재개한다. 총열을 청소한 덕인지, 아까에 비해서 총탄이 매끄럽게 들어간다.

분노때문에 어깨와 아랫턱이 덜덜 떨린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장전은 착착 잘도 진행된다. 실수도 없고, 오히려 평소보다 더 빠른 것 같다.

어느새 총탄까지 전부 밀어넣고, 점화구에도 점화약을 채웠다. 너무 끝까지 타버린 화승을 격철에 밀어 넣어 총구에 맞게 고정한다.

지발식이니 격철을 내리는 단계가 없으니 이제 완벽하게 준비가 끝났다.

바로 그때, 앞에서 뭔가 소리가 들린다.

“지금 간다! 멈추지 마!”

“우리가 선봉이다! 주신께서 당신의 장병들을 보호하시길!”

“돌겨억!”

“와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갑자기 여기까지 들리는 수많은 병사들의 함성과 울림.

···바보가 아니고서야 바로 알 수 있었다.

적은 바로 이곳으로 돌격해올 것이다. 방금 전의 잘 준비된 일제사격은 이를 위한 마지막 지원 공격이었겠지.

“흐으으···.”

옆에서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방금 전의 일제사격은 드레소의 목숨 만을 거둬간 것은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동료들이, 그만큼 많은 동료들을 남겨두고 숨져갔다.

복수에 대한 욕망으로 눈을 형형하게 빛내는,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의 총병들이 하나 둘 일어선다.

여전히 대열은 느슨하다. 하지만 조용히 눈길을 주고 받는 이들은 어느 누구도 대열을 버리고 도망칠 생각이 없음을 보여준다.

“퇘엣!”

반대편에서는, 다른 총병 소대장이 손바닥에 침을 뱉더니 탁탁 털고는 곡괭이를 집어든다.

머리의 한쪽은 곡괭이처럼, 반대편은 망치처럼 된 조잡한 도구이다.

하지만 간단한 참호를 파거나, 방어선 설치를 위한 말뚝을 박을 때는 꽤 유용한 장비이다.

···그리고 분명, 적의 머리통을 부수는 데도 유용하겠지.

“후열은 장전 마무리 해! 전열이 백병전을 하는 동안, 상대 흉갑에 바짝 붙여서 방아쇠를 당겨 주라고!”

“예엣!”

“창병들의 지원이 올 때 까지 여기를 지켜낸다! 보여주자고, 우리는 제10 카르카냑이다!”

“예에엣!”

자신의 소대는 아니다. 이웃 중대와 마구 뒤섞인 상태였으니까. 그리고 아마 다른 장교들도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얀은 제안이 아닌 명령을 내렸고, 그들은 받아들였다. 얀 자신도 뒤로 물러설 생각은 없지만 총을 잡았다.

기왕 장전된 것, 끝내주는 한 발을 쏴 줘야지.

허리띠 뒤편으로 손이 가, 처음 고향을 떠날때 가지고 왔던 손도끼의 감촉을 확인한다.

이번에야말로 이걸로 적을 죽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와아아아아!”

“라솔 개새끼들이 온다!”

“전투 준비잇!”

잦아들어가는 하얀 연기 사이로, 달려오는 적의 모습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주신의 영광이 왕국에!”

“주신의 영광이 왕국에있으라!”

또 빌어먹을 주신을 찾고 있는 개자식들이다.

얀은 숨을 깊게 들이쉰 후 받침대를 사용하지 않고 총을 조준한다. 어차피 이 정도 거리, 정밀한 조준은 필요 없겠지.

전투 순간에 자신은 뭐라고 외치는 게 좋을까. 적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일 때까지 아주 잠깐 생각한다.

“트랑카베엘!”

마지막 순간, 얀이 외친 것은 주군의 가문 이름이었다.

자신의 고향을 통치하며, 자신에게 무기와 갑옷을 지급했으며, 비참하게 짐승처럼 도살당하는 것을 피하게 해준 사랑하는 그 가문의 이름.

그 직후,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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