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08화 (308/556)

35-31. 생뢰르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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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보겠습니다! 제가 가서 막겠습니다 공작 전하! 예비대를 맡겨 주십시오.”

“...부탁하네.”

크루사다 틴토 데 타라트라바 공작의 사령부는 벌집 쑤신 듯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다.

수 많은 참모들과, 끝도 없이 몰려오는 전령들이 공격당한 벌집의 일벌들처럼 끝없이 떠들며 끝없이 떠돌고 있었다.

대혼란 속에서 유일하게 ‘질서’라고 한다면, 그들 모두의 머리속에 있거나 입에서 나오는 것은 하나같이 ‘절망’이라는 것이겠다.

“적이 갑자기 강해진 것이 아닌가?”

“아닙니다, 저기, 가장 오른쪽에 새로 튀어 나온 적이 강한 겁니다!”

“하지만 중앙부의 아군도 무너지고 있소! 사상자가··· 사상자 보고를 보시란 말이오.”

“카바티레 공이 전사하셨습니다! 카바티레 연대에는 이제 초급 장교들 밖에 없습니다. 시급히 대체 지휘관이 필요합니다!”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정보의 홍수는 그다지 잘 짜여진 편이 아닌 지휘부의 참모진이 수습하여 보고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 있었다.

허나 상관 없었다.

보고를 들어야 할 입장인 크루사다 공작 역시 전령들이 고래고래 질러대는 치명적인 보고들은 다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시라스 군은? 알시라스 군은 어떻게 되었나?”

“그게··· 지금은 혼전 속에 빠져 들어서 확인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만한 병력이 아무것도 못하고 어떻게 되었다는 말인가? 알시라스의 왕제 전하는 소식이 없나?”

“그게··· 그게 조금 전에 ‘나에게 맡겨라’라는 전령이 오기는 했습니다만···.”

“이런 미··· 하, 알겠다. 다시 전선을 살피도록!”

“옛, 알겠습니다!”

참모들 사이에 오가는 언사도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모두가 한계까지 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재 상황은 전황 해석이나 보고 따위가 필요 없을 정도로 명확했다.

타라트라바 군 전열의 전면적인 붕괴.

전군의 우측 절반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미 길게 뻗어있는 전열은 기괴한 형태로 휘어 있었다.

무섭게 습격해오는 적군의 공세를 가까스로 막으며, 이리 꺾이고 저리 꺾인 전선은 그냥 봐도 위태로워보인다.

이를 막아야 할 예비대는, 이미 무너질 지경인 전선을 지탱하기 위해 내보낸 상황이었다.

지금 후방에서 재편중인 예비대라고 해 봤자, 한 번 적에게 크게 당하고 퇴각해온 병력들이다.

재편성해서 다시 적진 앞에 내보낸다 해도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병사들의 공허한 눈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들은 이미 동료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이는 것을 보았고, 이를 뒤로 하고 간신히 살아 돌아온 자들인 것이다.

장교들이 다시 그들을 이끌고 불리해진 전선을 돕기 위해 나아가려고 한다.

몇몇은 마지못해 무기를 들고 대열을 복구하고 있으나, 다른 몇몇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한 표정으로 대열로 복귀하기를 주저한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타라트라바 공작령의 군대는 길가에서 농사나 짓던 농부 나부랭이들을 긁어 모아온 오합지졸이 아니다.

대부분이 어느 정도 군사 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이다.

라솔 군대와 경쟁하며 이스키비르 강을 건너던 시기만 해도···.

아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부와 영광을 함께 거머쥐기 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호기를 부리던 자들이 아니던가.

그런 그들이, 마치 천둥벼락을 동반한 폭풍우를 처음 보는 소년처럼 떨고 있었다.

“크루사다 공작 전하··· 적군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알고 있네. 방금 다오스 경이 예비대를 이끌고 출발하였으니···.

“그게 아닙니다. 적의 진격이 아군의 후퇴 속도보다 빠릅니다. 이대로라면 우측익이 분절되어 버릴 겁니다!”

“...뭐라고?”

보고 그대로였다. 새로이 적 기준 좌측 끄트머리에서 나타난 적은 엄청난 속도로 타라트라바 군의 방어선을 비스듬하게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다른 적들이 비교적 수평하게 공격해오고 있다면, 저 부대만은 혼자 각도가 혼자 가파르다.

적을 마치 거대한 낫이라고 한다면, 그 낫의 머리처럼, 혼자 다른 각도로 밀고 들어오며 이미 혼란에 빠진 타라트라바 보병들을 몰아대고 있었다.

자칫하면··· 정말로 대열의 일부가 끊기며 고립될지도 모른다.

“공작 전하, 지금이야말로 기병이 나서야 할 때가 아닙니까?”

“....”

“출격을 허락해주십시오!”

크루사다 공작은 말 없이 자신에게 보고를 한 남자, 짧은 머리카락의 청년을 바라본다.

리브리오라는 이름의 젊은 기사.

그의 아버지는 크루사다 공작령의 실력자이며, 이번에도 많은 기병과 보병은 물론, 장남까지 파견해온 고마운 귀족이다.

그래서라도, 이 청년이 위험에 처하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아무리 나라를 위해서건, 명예를 위해서건이라고 이름을 가져다 붙인다 할지라도 소중한 후계자인 장남을 잃고도 아무렇지도 않을 아버지는 없을 테니까.

따지고 보면 다른 수 많은 병사들도 어느 집안인가의 귀한 아들들이겠지만 말이다.

다만 그들의 집안은 리브리오의 집안 만큼 힘이 있지는 않으니까, 그들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에는 부담이 없다는 것인지.

크루사다 공작은 자신도 제법 음모꾼이 되어가고 있다 생각했다.

“이제는 제대로 된 예비대라고는 저희 기병대 밖에는 없습니다, 전하.”

“...그렇군.”

리브리오의 말에 크루사다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패잔병이나 다름없는 소수의 예비대를 제외하면, 아직 후방에 있으면서 전투 의지를 잃지 않은 것은 아직 전투에 발도 들여놓지 않은 타라트라바 기병 뿐이다.

거의 천 명 남짓한 강맹한 전력.

수적으로야, 적군이 훨씬 많지만 무장이나 질 측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주군인 크루사다나, 기병 지휘관인 리브리오나 비슷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공작 전하, 아니 주군! 출격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반드시 전황을 뒤집고 우측 끝의 아군 연대를 무사히 구해 돌아오겠습니다!”

“...허락하겠소.”

“감사합니다! 이 리브리오, 가문의 명예와 제 목숨을 걸고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시오. 부대와 함께 무사히 돌아와야 하오.”

“...알겠습니다.”

리브리오는 엄숙한 표정으로 인사를 마친 뒤 기병대로 떠나갔다.

그가 크루사다 공작의 말을 단순한 격려로 받아들였는지는 모른다. 허나 크루사다 공작은 진지하게 요구한 것이었다.

못해도 천 명의 기병대니까, 아무리 기세등등한 적군이라 해도 지금처럼 행동하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로 하기 싫은 일이지만, 더 시간이 흐르기 전에 끝내 놓아야 할 일이 있다.

혹시 모르니까, 살려달라고 울부짖어 놓기는 해야한다.

“전령 있나?”

“옛, 공작님! 말씀하십시오.”

“라솔의 퀸토 변경백에게 보낸다. 아군, 붕괴 위험 있음.”

“퀜토 변경백에게··· 아군, 붕괴 위험 있음··· 이대로 전달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게.”

“아, 알겠습니다 공작님!”

아직 스무살은 되었을까 싶은 젊은 연락 장교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다름아닌 크루사다 공작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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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식들은 괴물인가! 그림자의 악령이라도 되는 건가?”

“아, 알아보고 오겠습니···.”

“멍청한 녀석! 정말로 적이 그림자의 악령일 리가 없지 않나!”

“죄, 죄송합니다 변경백 각하.”

퀸토 로르카 데 페니베라다, 라솔의 이스키비르 하류 주둔군 사령관은 젊은 장교에게 화를 내고 곧바로 후회했다.

요령이 부족할 뿐, 성실한 부하에게 괜한 소리를 했다.

전장에서 농담을 한 적이야 많지만, 그건 주로 이기고 있을 때, 여유로울때 한 것이다.

이처럼 초조해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적은 기껏해야 엘랑키아의 두 발 달린 돼지들이 아닌가?

라솔의 ‘진짜 군인’들에게 이렇게나 버틸 수 있을리가 없었다.

심지어 자신들은 이미 적의 주력을 한 번 이기고, 황급히 만들어진 두번째 방어선을 뚫고 있는 게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 하류 주둔군의 네 검천사 중 셋이 달려 들고 있었는데도 쉽게 뚫지 못하고 있었다.

타타타타탕! 타탕! 타다당!

타당! 콰앙! 타타타탕!

타타타탕! 탕! 탕탕! 뻐엉!

세 가지 종류의 발사음이 뒤섞여 들리고 있었다. 소리만 들어도 전장에서는 알 수 있는게 많이 있다.

먼저 총병 밀집대형 일제사격의 소리.

양측이 아직 질서를 갖추고 화력을 주고 받고 있다는 반증이다.

서로가 감당 가능한 이상의 화력을 쏟아 부어, 감당 가능한 이상의 사상자와 전의 저하를 일으켜 무너지게 하려는 안간힘의 소리이고.

다음으로, 간간히 들리는 포격의 소리.

띄엄 띄엄 들리는 것으로 보아 어느 쪽이건 특별히 많은 수의 포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보병 연대들이 바짝 붙어 총격을 교환하는 와중에 포성이 들린다는 것은···.

포병들이 보병 대열 거리까지 포를 끌고 들어와서 포격을 쏘고 있다는 말이다.

당연하지만, 특별히 획기적인 조준 장치나 탄도 안전장치가 없는 흑색화약의 전장식 야포는 가까울수록 명중률이 높아진다.

화승총으로 교전하는 보병 대열 사이에 낀 야포는, 그만큼의 위력을 보여준다.

평범한 쇠구슬을 쏘아 대건, 총탄을 잔뜩 담아 산탄으로 쏘아대건 마주한 적 보병에게는 사신이나 다름 없겠지.

하지만 반대로 포병들 역시 적의 총격에 노출된다. 상대도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히 자신을 향해 포구를 들이댄 포를 먼저 제압하려 할 것이다.

당연히 집중사격의 대상이 된다.

그러니 지금 포병들은 그런 위험 속에서도 사격을 계속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마 몇 번이나 포수가 적의 사격에 쓰러졌고, 다음 사람으로, 어쩌면 옆에서 사격하던 보병의 도움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띄엄 띄엄 단발로 들리는 총소리는, 그 와중 어딘가에서는 서로 너무 가까이 접근해 백병전이 벌어지고 있음을 말한다.

아마도 창벽과 창벽이 부딪치고, 이를 엄호하던 총병들은 그 와중에 휩쓸려 들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창병 옆에 쪼그려 앉아 총구를 쑤시며 장전하고, 누군가는 창대 아래 고개를 숙이고 가까워오는 적의 총병을 노리고 있겠지.

정말 백병전에 휘말려버린 총병은, 사격을 포기하고 묵직한 화승총을 몽둥이 대신 휘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세가지가 명확하게 말하는 또 한가지가 있다.

전장의 이 국면에서, 서로 어마어마한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서로의 코 앞에서, 적이 먼저 장전하면 내가 죽는다는 생각으로 꽂을대를 마구 쑤셔댄다.

사람에 따라서는, 차라리 꽂을대를 던져 버리고 적진으로 뛰어 들어 백병전을 하고 싶다 느낄지도 모른다.

그만큼 장전된 적의 총구 앞에 서는 것은 공포스러운 일이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비가 오지 않을까? 비가 와서 서로 불이 꺼져 버린다면, 이 빌어먹을 치킨 싸움은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르는데.

정말 별의 별 생각이 병사들의 마음속을 스치고 있으리라.

“적의 연대는 두 개 인가?”

“예, 옛!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서로의 복장은 다르나, 깃발의 형태나 무장으로 보았을 때 1천 명에서 1천 5백 명 규모의 연대 두 개가 맞습니다.”

“천 명? 천 명 짜리 연대라고?”

“그렇습니다, 변경백 각하!”

“젠장할, 개망신이군.”

“...각하?”

“아, 아니다.”

하류 주둔군의 네 검천사 연대는 모두 2천 명이 넘는 규모의 연대이다.

아무리 지금까지 다소 무모한 공세를 취하며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고, 여타 이유로 조금씩 차출된 병력이 있을지라도 연대의 규모는 이쪽이 우위가 분명했다.

게다가 이쪽은 3개 연대.

저쪽은 2개 연대.

병력 면에서 보든, 전력 면에서 보든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적이 방어준비를 해서 다소 유리하다고는 해도, 이쪽은 이스키비르 하류 주둔군이다! 라솔의 수호신, 검천사들이라는 말이다!

분통이 터지지만, 아마 이것은 전방에서 싸우는 장병들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특히 자부심 덩어리인 연대장들이 그렇겠지.

타타타탕! 타타탕!

타당! 콰아앙! 타타타탕!

워낙 총격의 밀도가 높아, 전에 없이 화약 연기의 장벽이 빽빽하다. 교전의 세세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긴장한 상태로 조금씩 이동하는 아군의 후위만 보아도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다.

마치 안개처럼 시야를 가로막은 연기의 벽 너머로, 펄럭이는 적의 연대기가 보인다. 두꺼운 천에 색색의 실로 그림을 그려 놓은 것인지 멀리서도 잘 보인다.

희끗희끗한 연기 너머로, 격렬한 전투의 흔적을 보여주듯 총알 구멍이 뻥뻥 뚫린 적의 깃발.

도저히 견딜 수 없이 증오스러웠다.

“...지금 당장 우노스 연대에게 전달하게.”

“옛, 변경백 각하! 어떤 내용입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깃발을 빼앗아 오게. 무슨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 봐야겠다고!”

“알겠습니다! 즉시 저 깃발을 빼앗아 올것, 무슨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 확인···.”

“뒷 이야기는 됐다!”

“으읏, 넵!”

또 다시 죄 없는 연락 장교에게 화를 내고야 말았다. 퀸토 변경백은 스스로에게 불쾌감을 느끼며 혀를 찬다.

하지만 아직은 이기고 있다. 그것만이 그를 지탱하고 있는 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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