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98화 (298/556)

35-21. 생뢰르반 전투

“절대 대열에서 멀어지지 마!”

“저격 담당들은 어쩝니까?”

“시팔, 무조건 창대 밑으로 기어 들어가! 이 새끼들 무기가 상당히 정확하다!”

많아야 수십 명 정도로 나눠진 프리스마라 기병들은 상처투성이 고래를 잡아먹으려 하는 상어처럼 주변을 빙빙 돌았다.

때로는 멀리, 때로는 대담하게도 화승총 사거리 안쪽에서.

이런 별볼일 없는 공격으로 타라트라바 보병을 전멸시킬 수도, 유효한 피해를 입힐 수도 없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면 오히려 무시하는 게 더 이득일 수도 있다.

상당수가 많은 경험을 쌓은 고참병들로 이루어진 타라트라바 보병 연대, 제대로 정면으로 공격해 오면 비슷한 숫자라 해도 경기병 나부랭이에게 밀릴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모서리에서 기묘한 공격에 노출된 병사 당사자들에게는 좀 다른 문제였다.

“개자식들아!”

“나가지 마! 나가지 말라니까! 아 젠장!”

“대열 벗어나지 마!”

저런 경기병 나부랭이들에게 이렇게까지 겁을 먹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라도 했는지, 공명심 때문인지 대열을 벗어나는 자들이 종종 있다.

특히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마주 쏘려 드는 실력에 자신 있는 총병이라거나, 지나가는 기병의 목이나 겨드랑이를 걸어 낙마시킬 자신이 있는 창병이라거나.

문제는 그런 충동적인 행동을 저지르는 이 쪽은 혼자인데, 상대방은 아니라는 것이다.

타앙!

“우욱!”

“커헉!”

비명소리는 두 군데에서 동시에서 나왔다.

하나는 상체를 낮추고 기회를 노리며 접근하던 프리스마라 경기병의 입에서.

다른 하나는 대열에서 뛰쳐나가 그 접근하던 경기병을 쏘아 맞춘 타라트라바 총병의 입에서.

애매한 각도로 휙휙 지나가서 맞추기 힘들다는 이유로 대열 밖으로 나왔던 총병은 방아쇠를 당기자마자, 다른 방향에서 접근한 적이 내지른 기병창에 관통당했다.

상대를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수단을 갖추면, 자신도 확실하게 죽게 된다.

이를 본 자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제기랄! 우리 기병은 뭐 하는 거야?”

또한 이런 분노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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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저희를 보내주십시오. 적 기병이 코 앞입니다.”

“아직은 기다려 주시오. 아직 적이 모든 수단을 다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계시지 않소?”

“그건 압니다만 상황이 어렵지 않습니까?”

“적의 상황도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지 않소? 게다가 라솔의 퀸토 변경백 군대가 적 방어선을 일각을 무너뜨리고 전진 중이오. 우리가 여기서 균형을 잡아 적이 대응하지 못하도록만 해도···.”

크루사다 틴토 데 타라트라바 공작은 지휘소에서 몇 명의 기사에게 둘러싸여 있다.

기사들의 분위기는 전에 없이 흉흉하다.

눈 앞의 타라트라바 공작이 상관이고 주군이기에 참기는 하지만, 당장이라도 폭발할 분위기였다.

그에 비해서 크루사다 공작은 무거운 얼굴로 거부할 뿐, 마주 화내는 기색은 없다.

그때, 누군가가 회의용 탁자를 강하게 내리쳐 쾅 소리가 난다.

“대체 우리 기병의 존재 이유가 무엇입니까! 적 기병을 격멸하고 아군을 보호해야 하지 않습니까?”

“리브리오 경··· 무례하지 않소.”

“무례는 죄송합니다, 공작님, 그리고 선배님들. 전투가 승리로 끝나면 얼마든지 처벌 받겠습니다. 패배한다면··· 살아있다면 뭐든 처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지금 상황은 아니지 않습니까.”

리브리오라 불린 젊은 기사는 크루사다 공작과 비슷한 연배이다. 짧게 깎은 머리카락을 분노로 떨면서도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노력한다.

방금 전보다 훨씬 낮아진, 하지만 분노가 확연히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공작 전하··· 그리고 저희 기사들 중에서도 불만을 가진 자들이 있습니다.”

“...말해보시오.”

“저희는 타라트라바의 기사들이 아닙니까? 분명 이 전장에서의 주장은 크루사다 공작님이시고, 그 주력은 타라트라바 군이 분명합니다.”

“리브리오 경, 그쯤 해 두시게.”

“아니오, 계속 들어보겠소.”

젊은 기사의 분노를 만류하던 다른 기사를 크루사다 공작이 만류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누가 주력을 타라트라바라 하겠습니까. 주공은 누가 보아도 좌익의 라솔 군이며, 저희 타라트라바 군은 조공이라 여기지 않겠습니까?”

“음···.”

“물론 라솔의 국왕께서 손꼽히는 정예군을 보내주셨고, 아군의 숙련도가 그에 미치지 못할지 모른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작님, 이는 우리의 전쟁이 아닙니까? 우리가 피를 흘려야 하지 않습니까?”

“리브리오 경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나, 보다 적은 희생으로 승리한다면 그것이 우리 타라트라바에게도 더 나은 일이 아니겠소?”

자신의 주군이 차근차근 해명하자, 리브리오는 흥분을 가라앉히는 모습이다. 완전히 납득이 가진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행동이 잘 한 짓은 아님을 알고 있다는 느낌.

“...또한 그런 라솔 측에 기병의 절반을 빌려준 것에 대해서도 납득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럴 수 있겠지. 허나 이는 긴밀한 전술적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오. 실제로 라솔 군의 공격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거기 우리 기병대 역할이 크고 말이오.”

“그건 그렇습니다만···.”

우물쭈물, 납득한 모양이다. 리브리오가 진정하자 주변의 다른 기사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크루사다 공작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 리브리오 경이라는 젊은 기사는 타라트라바 영내의 손꼽히는 대지주 가문의 장남이다.

그 뿐 아니라, 항의하기 위해 찾아온 기사들이 모두 타라트라바의 유력자, 한가락 하는 자들이다.

그 중에는 현 군주, 크루사다 공작의 지지자도 있고 반대자도 있었다.

리브리오 경의 가문은 중립에 가깝지만, 누가 군주가 되건 지원은 한다는 상식적 입장이었고 장남에게 상당한 규모의 병력을 붙여 파견해왔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 자리의 모두가 그런 입장이다.

오히려 병력을 이끄는 단일 군주로서 타라트라바 공작의 직할 병력은 한 줌 밖에 되지 않는다.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휘하 귀족은 별로 없고, 그나마 대안이 없으니 지지하는 편이긴 한 귀족들의 세력이 훨씬 크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입지가 그만큼 약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명백히 자신의 신하이자 명령을 들어야 하는 하급자인 리브리오의 무례에도 강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크루사다는 위험한 주공 역할을 라솔 군의 하류 주둔군이 맡아준다는 걸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야 타라트라바 군에서 사상자가 적게 나오니기 때문이니까!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리브리오가 방금 했던 말을 곱씹어 본다.

이는 우리의 전쟁이니, 우리가 피를 흘리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옳은 말이다. 좋은 말이기도 하고. 실제로 주군을 따라 가문의 병력을 이끌고 전장에 나선 리브리오가 한 말이니 모순도 없다.

게다가 타라트라바와 라솔은 말이 좋아 군신 관계이지, 역사의 절반 가까이를 서로 싸워온 원수 관계나 다름없다.

현재 어느정도 공동의 목표와 신뢰 관계를 쌓은 상태이고, 한 전쟁에 공동의 군을 보낸 상태이긴 하지만···.

또 당장 내년에 서로 전장에서 적으로 만날지도 모르는 상대이다.

아니, 최소한 수십 년 이내에는 그렇게 되겠지. 역사를 보면 항상 그랬으니까.

하지만 정말로 피를 많이 흘리게 되면?

일단 타라트라바 공국은 작은 나라이다. 지금 공작 직할 병력이 얼마 없는 이유는, 그나마 자신의 기반이 되었던 용병대가 전멸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의 장인이자, 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오렌시아 기사단장, 에드메르 산타로 데 카르도라의 출정 당시에 보냈다가, 드 레뮤즈 백작의 함정에 빠져 하룻밤 사이에 전멸하고 말았다.

이만한 피해조차 당장 복구하지 못하는 소국이 타라트라바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1만이 넘는 출정 병력이 큰 타격을 입는다면?

이는 자칫하면 10년이 지나도 복구하지 못하는 큰 타격이 될지도 모른다.

단순히 병력의 숫자, 무기와 보급품의 물량 이야기가 아니다.

냉정히 말해서 돈만 많으면 용병을 고용해서 어떻게든 병력은 재건할 수 있으니까. 실제로 많은 나라와 군주들이 그렇게 하지 않던가.

당장 리브리오 경이 이 전투에서 죽는다면, 그나마 크루사다 공작을 지지하는 편인 그의 아버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여기서 중요한 군사적 역할을 맡은 중견 지휘관들은 모두 타라트라바 공국의 중신들이기도 하다.

이들이 한꺼번에 떼죽음을 당하기라도 한다면, 이는 바로 국력 저하가 된다. 조직의 핵심 인력들이 인수인계할 틈도 없이 일제히 사망하는 것과 같다.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가신들과 나라를 위해서도.

크루사다 공작은 전장에서 소극적으로 행동하고, 희생을 줄여야 할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고 리브리오 경을 마냥 나무랄 수도 없다. 그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주군인 크루사다 공작을 따르고 있었으니까.

무례하다고 해서 역심이 있다는 식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경쟁자라 여기며, 음흉하게 기회만 노리는 자들보다 훨씬 도움이 되는 열정적인 기병 지휘관이다.

그래서, 이번 전쟁에 승리하고 엘랑키아에서 얻을 이권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를 바탕으로 타라트라바의 산업을 개발하고, 질 좋은 강철의 판로를 개척하며 작지만 강한 군대를 새롭게 조직할 수 있으리라.

그러기 위해서 이번 전쟁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그것도 많은 전공을 세워 전후 처리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어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많은 피해를 입으면 안 된다.

이겼더라도 희생이 크면 모두 헛 것이 되어버린다. 지금의 불안 불안한 정치적 상황 때문에라도 그렇다.

이 모순이 온통 크루사다 공작의 정신과 마음을 옳아메고 있었다. 자신도 힘들어 하던 부분을, 아무것도 모르는 신하에게 지적당하자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허나 나올 수 있는 불만이기도 하다. 자신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니까.

···억지로 참고 있었지만, 전장에서의 주역을 라솔 놈들에게 넘겨주는 것에도 거부감은 없지 않았다.

“귀경들의 생각은 모두 잘 알겠소.”

말을 조심스럽게 고른다. 이들은 부하들이고 신하들이지만, 함부로 대해서는 안되는 자들이다.

그나마 ‘이들 정도가’ 혼란스러운 소국 타라트라바의 영주들 중에서는 우호적인 편이고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주시오. 결정적인 때가 왔을 때, 귀경들의 힘이 필요하니까 지금은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게 아니겠소?”

‘나도 돈이 충분히 많은 부자 나라의 군주라서 기병을 충분히 기를 수 있었다면 한 부대쯤 얼마든지 보낼 수 있겠지만.’

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참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 대한 신하들의 우호도를 바닥까지 떨어 뜨릴 정신 나간 발언이니까.

“나에게도 시간을 주시오. 그럼 반드시, 귀경들에게 기회를 줄 테니.”

리브리오를 비롯한 기사들은 납득하고 돌아간다.

“후우···.”

그나마 다행이다. 사실 저들도 정말로 어떻게 해볼 생각은 없었으리라. 흔히 있는 의견 어필과 자신들의 세력을 잊지 말라는 주도권 싸움이겠지.

그래도 전쟁터 한 가운데서 이 모양이라니. 특별한 전령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예정대로 평이하게 흘러가고 있는 모양이라 다행이지만.

머리속의 복잡하기만 하고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을 지우고 전장을 살핀다.

알시라스 왕국의 망나니가 이끌고 도착한 지원군이 더해진 덕분일까, 아군의 공세는 힘차보인다.

하지만 그 힘차고 장대한 보병의 대군이 적을 그다지 밀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겁게 자리잡는다.

‘저렇게 총기를 많이 보유한 연대와의 싸움은 처음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비슷한 숫자로 소모전을 하면 반드시 밀립니다!’

전방에서 지휘하다가 총을 맞고 피를 철철 흘리며 실려가던 휘하 장교의 말이었다. 안타깝게도 피를 많이 흘린 때문인지, 그는 치료받다 사망했다 들었다.

다른 참모들은 ‘총병 비율을 늘렸으면 당연히 창병 비율이 줄어드니, 백병전에서 약할 수 밖에 없다’라며 자신을 안심시켰지만···.

중거리 정도의 사격전과, 그 간극을 채우듯 포병 치고 짧은 거리에서 쏘아대는 화력전으로 흘러가고 있는 현 상황을 보니 약간의 불안함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결국은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타라트라바 군이, 저들을 밀어내고 승리를 쟁취하리라.

적이 측면에 기병을 보냈다는 것은 적이 초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위협적인 중장기병이면 모를까, 실질적인 큰 피해를 입히기 어려운 경기병으로 타라트라바의 정예 연대들을 어떻게 할 방법은 없다.

아마 주력 보병끼리의 싸움에서 승기를 가져오면, 날파리 같은 경기병 측면 공세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되리라.

어쩌면, 그 승리는 라솔의 중앙 돌파보다 빨리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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