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96화 (296/556)

35-19. 생뢰르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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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탕!

타다당! 탕탕!

요란한 총소리가 띄엄 띄엄 들려온다.

유효 사거리까지 진격시킨 총병들이 한번에 참아왔던 화력을 쏟아 붓는 일제사격의 소리는 아니다.

그리 많지 않은 병사들이 거리를 두고 노리는 사격.

“으으윽!”

맨 앞줄에 서있던 창병의 흉갑이 폭발하듯 깨지며 은빛으로 빛나는 쇠 파편이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상처와 입에서 동시에 피를 뿜어낸 창병이 그대로 앞으로 쓰러진다. 주변 병사들은 놀란 듯 쓰러진 병사의 이름을 부르지만, 절명한 자는 말이 없다.

“시발새끼들!”

“조금만 참자. 저 놈들 우리 도발하는 거다. 말려 들면 안 돼!”

“으으으으!”

“좋든 싫든 복수할 기회는 생길 거다.”

“그 때 모가지를 따 주자고.”

황급히 전장의 반대편으로 이동한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는 기다리고 있다.

워낙 상황이 급박했기에, 분명 새 방어선을 만드는 즉시 적이 공격해오고 치열한 전투에 휘말릴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적은 곧바로 공격해오지는 않았다.

“버러지 같은 자식들! 저거 지금 간 보고 있는 게 아닙니까?”

“우리를 끌어내고 싶은 거겠지. 지들도 정면으로 한 번 더 돌파하기에는 자신이 없는 거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북쪽 방향으로 진격하며 대열을 돌파한 병력이 동쪽 방향으로 화력을 전환하는 것이다.

기병이라면 전투 대형보다 속도와 충격 방향이 중요하니 곧바로 방향을 전환해 대열을 포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병은 정 반대, 때로는 교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접근 방향과 대열의 형태에서 승부가 절반 이상 갈리기도 하니까.

게다가 아직 완전히 확보하지 못한 적진 한 가운데였던 장소에다, 협소하기까지 하니 숙련된 라솔 보병들이라 해도 공세 준비에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고 정직하게 대열 전환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소수의 경보병들을 내보내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저격하는 것으로 신경을 긁고 있는 것이다.

“얀 고티에 소대장,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목적은 당연히 소수라도 사상자를 발생시켜 상대를 괴롭히는 것이 첫째이고,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한 병력이 ‘사고’를 내는 것이 두번째이다.

사고란 구체적으로 폭주한 병력이 대열을 벗어나 독단적으로 공격을 감행하거나, 총병들이 탄환을 ‘낭비’ 하는 것을 말한다.

꽉꽉 들어찬 주력 병력을 향해 뿜어져야 할 가공할 화력이, 많아야 십여 명 되는 산개 대형의 보병들에게 발사된다면···.

이어지는 주력 병력의 공격에 빈 총으로 맞서야 하는 거니까.

물론 이쪽에서도 무조건 맞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남달리 구경이 큰 중화승총으로 무장한 데다가, 사격에도 익숙한 얀은 창병들의 그늘에서 조용히 짧은 받침대를 세우고 총을 얹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총을 겨눈다. 물론 총은 장전된 상태이고, 화승 끝에서는 빨간 불꽃이 조용히 타오르고 있다.

“후우···.”

가늠쇠 위에 적병을 얹고 숨을 내쉰다. 방금 총을 발사한 적이 아군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뭐라 외치고 있었다.

나름 귀족 출신인지, 소매와 옷깃에는 장식이 달린 옷을 입고, 은색으로 반짝이는 흉갑에는 뭔가 무늬가 그려져 있다.

허리에는 검이 대롱거리고 있고 투구 대신 쓴 검은 모자에는 큼직한 하얀 깃털이 바람 부는 대로 나부낀다.

표적은 이 놈이다. 딱 보기에도 직급이 높아 보이고, 유난히 손짓 발짓을 하며 많이 떠들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평소보다 조금 먼 거리의 사격이다. 혹시 빗나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어깨를 떨리게 했다.

연습할 때, 이 정도 거리에서는 세 발 중 두 발 정도 명중한다.

그래도 연대 전체에서 가장 높은 명중률이었고, 포상까지 받을 정도였으니까.

“힘내라···.”

“총병들만 믿는다고.”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인지, 뒤에서 누군가가 속삭이듯 말한다. 창병 동료들도 불안하겠지.

표적은 정했고, 정신 사납게 움직이다가 다음 번에 멈추는 타이밍을 노리기로 했다.

꾸욱 힘을 줘서, 방아쇠를 절반 정도 당긴다.

현재 얀의 중화승총은 지발식, 말 그대로 천천히 발사되는 방식이다.

기존에 쓰던 표준 크기의 화승총, 트랑카벨 정규 연대에 보급된 무기들은 즉발식이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용수철에 저장되어 있던 힘이 풀려나며 불 붙인 화승을 물린 격철이 떨어지고, 그대로 점화되면서 발사되는 방식이다.

그에 비해서 지발식은 방아쇠를 당기면 여기 연동된 격철이 같은 비율 만큼 움직이는 방식이다.

절반만 당기면 불 붙은 화승도 점화구에 절반만 가까워지며, 완전히 당기면 그제서야 점화되어 발사된다.

두 방식은 물론 장단점이 있다. 간편함이나 복잡함이나 고장가능성이나 등등.

하지만 방아쇠에 힘을 주는 과정에서 조준을 흐트러트리지 않을 정도로 숙련된 사수인 얀에게, 한계까지 발사 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지발식은 아주 잘 맞는다.

노리고 있던 적 장교가, 이제 재장전을 하려는 듯 총기를 수직으로 세우고 개머리판을 땅에 떨군다. 허리춤에서 탄약포를 꺼내 입으로 가져간다.

기회를 포착한 얀의 눈이 가늘어진다. 이미 절반 정도 힘이 실려있던 방아쇠에 꾸욱 하고 아주 조금, 아주 아주 조금의 힘이 더 실린다.

탁 하고 방아쇠가 끝에 닿는 느낌이 들자마자, 쉬익 하고 점화약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타앙!

바로 직후, 중화승총의 총구에서 붉은 화염과 함께 어마어마한 양의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발사의 반동이 뻐근하게 어깨를 때린다.

“우와아아아아아!”

뒤에서 동료 창병들의 함성 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마도 명중한 모양이다.

정작 사수인 얀은 하얀 연기가 눈 앞을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명중, 명중했습니다, 소대장!”

“이동! 이동!”

파트너 관측수의 뒤늦은 확인 소리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발사 흔적인 하얀 연기 뒤에 가만히 있어봐야 표적이 될 뿐이다.

지금은 한 발이라도 더 투사하는 것이 이기는 방법인 소모전이 아니다. 오히려 정확한 한 발로 적의 주요 표적을 명중시키는 것이 중요한 전초전이다.

그것도 아마도 장교급으로 보이는 적을 명중시켰다. 파급 효과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걸로 당장 역할은 했으니 이동해서, 안전한 곳에서 장전하고 다음 사격을 노리는 것이 연대에서 지정한 명사수들의 방식이다.

기병이든 보병이든 애매한 거리에서 산개 대형으로 도발하는 적들을 카운터 치는 방식이다.

탕! 타당!

타탓! 따앙!

얀과 유사하게 대응을 명령 받은 명사수들이 사격하는 소리가 근처에서도 들린다.

허리를 숙인 채 총기를 어깨에 메고, 한 손에는 받침대를 들고 이동하며 무심코 옆을 들춰보니, 얀이 노렸던 적 장교가 보인다.

아직 살아있다.

얼굴을 감싸쥔 채 흙바닥에 드러누워 몸부림치고 있었다. 멋드러진 깃털이 달린 모자가 엉망으로 구겨진 채 근처에 떨어져 있다.

“맞은 순간, 상판떼기 절반이 날아갔습니다! 멋진 저격이었습니다, 소대장!”

“아니 그런 걸 노린 건 아닌데···.”

관측수의 흥분 어린 칭찬을 들으니 어딘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아군을 노리는 적이 미운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러 고통을 주거나 중상을 입히려는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머리를 노린 것도 아니다. 가슴팍이 가장 만만한 표적이니까.

깨끗하게 심장을 관통하는 한 발, 적이 맞은 것을 인지하고 바닥에 쓰러지기도 전에 숨이 끊어지는 명중탄을 노렸지만···.

역시 자신의 기량이 부족했던 탓인지 총탄은 얼굴에 명중한 모양이다. 다른 표준 크기 화승총에 비해 구경이 큰 중화승총이라 끔찍한 상처가 난 모양이고.

미안하다는 생각까지는 아니지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다. 자신도 저런 사격에 맞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죽어야 한다면 맞은 줄도 모르고 한 번에···.

거기까지 생각하던 얀은 고개를 흔들어 헛된 생각을 떨쳐 버렸다. 맞을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은 반드시 살아 남을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고향으로,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 갈 것이ㅏㄷ.

겁쟁이가 될 수는 없지만, 전공 까지 세울 필요도 없었다. 그저 한 명의 총병으로서 역할을 한 다음 부모님과 동생을 보러 돌아갈 것이다.

“서두르자.”

“예, 소대장님!”

그러기 위해서 빨리 다음 한 발을 준비해야 한다. 방금 명중탄을 날린 덕인지 길을 비켜주는 창병들의 분위기가 뜨겁다.

의외로 숙련된 사수들의 반격이 효과적이었는지, 어정쩡한 거리에서 도발하던 적 경보병의 숫자가 확연히 줄어들어 있었다.

적 입장에서도 이런 데 내보낼 정도면 상당히 숙련된 사수이겠지, 쉽게 소모해 버리기에는 아까울지도 모른다.

그럼 한 명 더 쓰러뜨리면 두 배로 아깝겠지?

“퉷!”

탄약포 끝을 이빨로 뜯어 내고 종이 끝을 뱉어내며 생각한다. 혀 끝에 살짝 비릿하고 자극적인 맛이 느껴진다.

‘화약 오줌 걸러서 만드는 거 알지? 그거 오줌 냄새니까 혀에 안 묻게 조심해라.’

신병 때는 교관의 말을 믿었었다.

다만 화약 만드는 복잡하고 길고도 긴 과정을 알게 된 이후로 그게 탄약포를 주의 깊게 찢도록 유도하는 농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무튼 화약을 맛보는 일이 좋을 리는 없었다. 그래도 아무리 조심스럽게 뜯어도 조금쯤은 혀에 닿고 만다.

이러면 나중에 혀가 바짝바짝 말라서 목이 탄다. 화약이 주변의 물을 빨아들이는 역할을 해서라던가?

이건 정말이다. 습기를 쉽게 흡수하기에 기름종이나 단단한 상자 등으로 잘 보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스윽 스윽, 고운 화약을 다진 꽂을대가 이어서 누런 종이에 싸인 탄환을 밀어 넣는다. 딱히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한 장전 과정은 거침이 없다.

“후우···.”

다시 전면으로 나와 새로운 적을 찾는다. 이번에는 장교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소매로 하얀 레이스 장식이 보이는 녀석이다.

용병료로 벌었든 부모에게 물려 받았든 최소한 부자일 테고, 무기도 비싸고, 더 좋은 물건일 가능성이 높다.

타앙!

이번 방아쇠는 더 쉽고 빠르게 당겨졌다. 방금의 사격에서 망설임과 두려움을 함께 쏴버린 덕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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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반격이 상당히 거셉니다. 총을 다룰 줄 아는 놈들이 훈련시킨 부대입니다.”

“이제 와서 까다로운 녀석들이 걸렸군.”

라솔 왕국 이스키비르 하류 주둔군 소속의 네 검천사 중 둘째, 도레 연대의 지휘관 모겔레 보나디오 세구다는 아쉬움에 혀를 찼다.

적의 대응이 상당히 빠르다는 데서 추측은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거친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엘랑키아 돼지 녀석들이 언제부터 총 쏘는 법을 배웠다는 말인가. 혹시 이름 높은 부대인가?”

물론 여기서 말하는 ‘총 쏘는 법’이란 단순히 화약을 다지고 탄약을 밀어 넣어 점화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더럽게 무겁고 더럽게 불편하며 더럽게 부정확한 총기로 ‘그래도 맞추는’ 높은 기량을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저 총기를 수평으로 들고 방아쇠를 당길 뿐인 ‘사격’은 농부를 몇 주만 훈련시켜도 충분하니까.

하지만 산개 대형의 숙련병들을 내보냈음에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연대 제일의 명사수라 자타가 공인하던 중대장도 방금 얼굴의 절반을 잃는 중상을 입었으니까.

생각 외로 정확한 적의 사격에, 산개 대형이 슬금 슬금 뒤로 빠지는 게 연대장인 모겔레의 눈에도 뻔히 보였다.

검천사 연대 소속의 숙련병이면서 엘랑키아 돼지들의 사격에 겁에 질리다니, 한심스러운 노릇이다.

“법황청에서 보낸 이단 토벌군이 상대한 적 중에 상당한 정예 연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습니다. 그 부대일지도 모르겠군요.”

“하필이면 그 부대가 딱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는 말인가···.”

“최근 합류한 주디칼리 출신 사수의 말에 의하면 그렇다는 것이지 확인된 바는 없으니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번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기나 할 걸 그랬군.”

방금, 최전방의 엘랑키아 보병 연대 하나를 완전히 작살내고 선봉을 교대한 우노스 연대가 부러웠다. 그 적은 숫자는 많았지만 너무도 나약했다.

다음 공세를 맡은 자신들도 쉽게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번 적은 상당히 매운 맛이다.

혹시 쉽게 끝내려나 해서 유인책으로 산개 보병을 내보냈다가 역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사기가 더 떨어지기 전에 철수시켜야겠다.

“좋아 공세를 준비한다. 경보병은 후퇴한다.”

“옛, 연대장님.”

적은 측면을 지키기 위해 돌출되어 있다. 두 방향에서 두들기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저 방향도 시끄럽군. 타라트라바 군이 2차 공세를 시작했나?”

“그런 모양입니다. 알시라스의 지원군도 합류한 모양입니다.”

“허어··· 알시라스 지원군이 도착은 했군.”

자부심 높은 라솔 왕국의 군인이 보기에, 타라트라바는 산골 촌놈, 알시라스는 바닷가 촌놈이다. 아군이니 험한 말을 하진 않지만 그렇게까지 신뢰하는 상대도 아니다.

“결정적인 장면은 여기지! 자, 계획대로 공격 위치로!”

“옛 전달했습니다!”

적의 숙련도가 생각보다 높아 걱정되긴 하지만, 불필요한 희생이 늘어날 것에 대한 걱정이다.

불가피하게 돌출된 대형인 적에 대해, 이 쪽은 숫자도 두 배 정도 많다. 동등한 연대의 싸움이라면 패배할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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