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86화 (286/556)

35-9. 생뢰르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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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한다, 우리 병사들. 원래부터 강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잘 해 줄 줄은 몰랐다.

라솔 군은 내가 과거에 보고 들어 알고 있던 군대와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있었다.

강인하고 저돌적인 보병 중심이라는 전술의 기본은 그대로지만.

상상 이상으로 극단적인 화력 집중 전술이라니··· 솔직히 정말 놀랐다.

화력 집중보다 조금씩 번갈아가며 쏘는 로테이션 전술을 중시하는 엘랑키아나 주디칼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물론 각각의 전술은 장단점을 가지고 있고, 명백하게 하나가 다른 하나의 상위 호환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전투가 길어질 수록 격차는 줄어들고 말이다.

하지만 저런 극단적인 화력 집중은 대단히 높은 숙련도와 기강이 필요하다.

그래서는 아니지만, 우리 병사들에게 가르치면서도, 더 심한 적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것 까지 가르치지는 않았다.

그래서 당황할 법도 한데··· 생각보다 잘 대응해주고 있다. 대응이라는게 어떤 희생이 발생해도 견디며 더 아프게 되먹여주는 것이라는 게 가슴 아프지만···.

당연한 일이지만 전술 전략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한다.

전쟁은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는 일이고, 그 당사자들에게는 말 그대로 평생이 달린 일이다.

최전방에서 싸우는 병사들에게는 당연히 목숨이 왔다 갔다 하면서, 거기서 세운 전공으로 출세를 바라볼 수도 있는 한편으로는 기회가 될 수 있고.

군을 일으킨 주체인 군주나 사령관들은 좀 더 안전한 곳에 있더라도, 대체로 패배하면 정치적 생명이 끝장난다.

그러니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효율적으로 싸우기 위해 너도 나도 고민하고 여러가지를 고안해 적용한다.

물론 정보의 전파 속도나 수집 능력 문제로, 지난 전투의 전훈이 곧바로 다음 전투에 반영되는 것은 어렵다.

뭐 무기 수급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도 있고.

가령 신생 트랑카벨 영지군의 재건은 나름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이는 1년에 가까운 넉넉한 준비 시간과 고용주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니까.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참전자들의 입소문을 통해서라도 전투의 양상이 전해진다. 그럼 정책이나 군사 책임자들은 이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고, 느리더라도 최전방에 반영된다.

그게 대륙 전체의 군대와 전술이 양상이 조금 다르기는 할지라도 비슷비슷하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화하는 이유이다.

전투가 화력을 앞세운 살육전으로 흘러가는 기조에는··· 나 자신도 불에 기름을 부었다는 생각에 약간 찔리는 점이 없진 않다.

아니면 뭐, 그냥 수렴 진화일 수도 있지. 결국 시간을 들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해결책은 거기서 거기니까.

상상 이상으로 독한 적을 만나기는 했지만, 우리에게는 든든한 지원이 하나 더 있었다.

“이런 포병 운용은 처음 봅니다!”

나름 대대로 대륙 최고의 전술가들을 배출해내는 ‘사설 교육기관’, 자이트리츠 전쟁관 출신인 아인멜츠가 감탄할 정도의 포병이다.

“첼레스티나 부관님의 포병 지휘는 정말 대단하군요. 한 수 배우고 싶을 정도입니다.”

뭐, 내가 봐도 첼레스티나가 좀 대단하긴 하지.

원래 전장을 3인칭으로 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감각에, 충분한 숫자의 포대와 아껴쓰지 않아도 될 정도의 탄약 보급이 더해졌으니···.

막강한 트랑카벨 보급 부대의 승리이기도 하다. 성녀님의 지갑의 가호가 우리 병사들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엄청나네 첼레스티나. 이렇게 할 생각이었구나.”

“에트 참모장께서 미리 지시하신 배치나 전술이 아닌가요?”

“첼레스티나가 새벽부터 미리 전장 돌아다니면서 준비하는 걸 봤으니까요. 보고는 받았지만 자세한 설명은 듣지 않았습니다.”

“호오··· 정말 이상적인 사령관과 전방 지휘관 관계네요.”

부하가 칭찬 받는 걸 들으니 괜히 뿌듯하다. 하긴 강해진 트랑카벨 영지군이 칭찬 받을 때도 이랬지.

뭔가 슈토르히 연대가 너무 변태적··· 차별적으로 강해서 자꾸 묻히기는 하는데, 트랑카벨 정규 연대도 엄청나게 강하단 말이지.

첼레스티나는 전장이 정해지자마자, 일찍부터 예비대인 슈토르히와 지빌링엔에서 지원자들을 모아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거기 통나무를 박아서 기틀을 만들고, 파낸 흙을 나무 통과 바구니에 담아 작은 요새를 만든 것이다.

여기에 많지는 않지만 포를 배치했다. 전선에서 가깝지만 안정된 위치에서 끊임없이 발사되는 포는 그 숫자 이상의 역할을 해줄 테니까.

그 뿐 아니라, 이 포대를 보병 대열보다 조금 앞으로 튀어나오도록 건설한 점이 돋보인다.

일차적으로 전투가 격화되고 혼전이 벌어지면 포대가 포대로서의 역할은 못하겠지만, 예비 보병을 투입하면 난공불락의 성채가 되겠지.

난전 상황에서 아군은 점령할 수 있지만, 적은 접근 못하는 벽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든든한 일이니까.

거기 더해서 포대의 모서리에는 공간이 좁아 2문 정도지만, ‘측면’을 향하는 포구가 있었다.

방금도 아군에게 바짝 붙은 적이 일제사격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는 그 순간, 적의 측면을 향해 포를 쏴 버렸다.

그걸 맞은 적군으로서는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얻어 맞아온 분노가 화력으로 전환되는 고조되는 타이밍을 빼앗긴 꼴이 되었다.

실제로 포대의 측면 사격 지원 범위에 있었던 연대들은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받았다.

보포 조합의 기본이지··· 1+1이 2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건 전쟁 하는 입장에서 당연한 사실이고.

다만 트랑카벨 파견군이 맡은 좌익 쪽 상황은 이렇고···.

중앙인 드 레뮤즈 영지군은 평범하다.

적군은 평범하게 접근해왔고, 평범하게 화력을 주고받고 있었다.

왠지 적군이 보기에 주 승부처는 양 측면이라 생각한 것인지, 중앙 돌파를 하려는 모습은 전혀 없다.

투입된 병력의 숫자도 그다지 많지 않고, 적극적인 움직임도 없으니까.

아마도 적군이 크게 두 덩어리의 병력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도 이유가 아닌가 싶었다. 아무래도 각 부대의 전투 지경선 부근은 신경이 덜 쓰이게 마련이니까.

아무래도 현상유지만 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아군 전체에서 가장 훈련도와 경험이 부족한 드 레뮤즈 군의 보병들이 압박을 덜 받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점이다.

그리고··· 문제는 우익이다.

명백하게도, 우익의 서부군의 수준은 평범하다. 상상 이상으로 엉망진창인 오합지졸도 아니고, 특출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특수부대도 아니다.

그래도 몇 개월 동안 함께하며 손발을 맞췄다는 샹다메리에서의 엘랑키아 국왕군에는 살짝 못 미치는 정도일까.

그냥 평범한 엘랑키아 보병이다. 대영주들의 소집령에 따라 집결한 주력군에 소영주들의 병력이 추가되고, 조직 완성을 위해 약간의 용병이 포함된 형태.

대단한 기동전이나 공세의 주체가 되기는 어렵지만, 전열을 유지하고 적과 화력을 교환하는 전투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봤다.

문제는 거기 달라 붙은 적군의 좌익이 생각보다 훨씬 강한 병력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공세의 첫 기세는 상당히 대단했고, 이를 제압하기 위해 지불한 손해가 상당히 큰 것 같았다. 지금은 다시 전선이 균형을 되찾기는 했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드 레뮤즈 가문의 기병대장, 소베트르 드 랑두제 경이 이끄는 레뮤즈 기병대가 지원을 가기로 했지만···.

내가 연대를 천 명 정도의 작은 규모로 쪼개는 이유 중 하나는, 별도의 지휘 구조를 두고 예비대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3천명 구성의 완편 연대가 주는 안정감은 대단하지만, 전술적 활용에 따라 1200명 구성 연대 두 개보다 할 수 있는 역할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작은 연대 두 개를 합쳐서 하나의 대열을 갖추는 것은 가능하지만, 큰 연대를 갑자기 전투 중에 두 개로 쪼개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어거지로 쪼갠다 한들, 둘 다 제 역할을 못하는 반쪽짜리 구조가 될 수도 있고.

이런 점들을 고민하다보니 나온 결과가 화력을 확장한 1200명이라는 결과였다.

좀 더 큰 규모의 적 연대와 대등하게 교전이 가능하며, 중기병 돌격에도 한 번에 쓸리지 않을 정도의 안정성을 가지는 규모이다.

드 레뮤즈의 연대는 숙련도 문제로 애초에 전술적 역할을 한정지었기에 규모를 크게 두었지만, 서부군은 내가 함부로 개입하기 어려운 일이었기에 내가 보기에는 다소 비효율적으로 거대한 보병 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게 별도의 기동 예비대를 두기 힘든 구조가 되었고 현재 아쉬운 부분이 되었지만.

뭐 아무튼 이제 전투는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전방 부대들은 예정대로 교전에 들어갔고 힘 대 힘 싸움에 접어들었다.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는 지금이, 사령관과 예비대가 활동할 때이다.

"프리스마라의 코바르 경을 불러줘."

"옛, 콘도티에레!"

프리스마라 기마 용병대를 이끄는 코바르 리메니에디는 그룬발트의 무시무시한 정예용병대 사이에서 기병을 이끌고 지금껏 살아온 사람이다.

위협적인 보병의 대군을 상대하는 데 이 이상의 경력자는 없겠지.

아··· 이렇게 생각하면 제31 정찰연대의 로베르 드 나뵈프 경이 아쉬워 하려나. 그거야 뭐 역할이 좀 다르니까.

분명 로베르 경도 이번 전투에서 한 단계 더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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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젱 드 마로텍스 백작은 강렬한 적의 공세에 간신히 대열을 유지하고 있었다.

루젱 백작의 연대는 현재 전군의 가장 우측을 맡고 있다. 위험하고 어려운 자리이지만, 기꺼이 맡은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현재 상황은 그렇게 좋지 않다.

왼쪽에서 대열을 이어줘야 할 동료 보병 연대들은 적의 첫 공세를 견뎌내지 못하고 조금씩 밀려났다.

다행히 지금은 전선이 안정되긴 했지만, 원래 수평이었던 보병 대열이 마치 느슨해진 빨랫줄마냥 호를 그리며 후방으로 쳐진 상태이다.

"우리 연대도 좀 더 후퇴해서 수평을 맞추도록 유도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보다 못한 연대 참모가 그렇게 건의할 정도였다. 루젱 백작의 연대 하나만 앞으로 튀어나와 있으면 집중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우측을 지켜줘야 할 기병대가 자리를 떠난 상태.

지금은 적 기병을 몰아 붙이고 있으니 불리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음, 좀 더 두고 보도록 하지. 우리 연대가 이 정도에 쓰러질 정도는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백작님."

"모두 힘을 내라! 깃발을 더더욱 높이 올려라! 라솔 놈들에게 여기 엘랑키아의 강자들이 모여있음을 알려줘라아!"

지휘관 루젱의 가열찬 외침에, 오랫동안 이 노 백작의 곁에서 싸워온 병사들이 호응하여 함성을 지른다. 아직 여력이 남았고, 싸워갈 수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역시 불안한 점이 없지 않다. 서부군은 여러가지 이유로 아직 하나로 뭉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령관인 앙비토 드 몽파르지에 공작은 나름의 책임감은 보여주고 있지만, 역시 너무나 오랫동안 유약했던 사람이라 의지가 되진 않았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저 그런 별 역할 못하는 가문 좋게 태어난 도련님일 뿐이다.

오히려 이것 저것 해보겠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며 부하들 복장을 터뜨리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며, 루젱 백작은 병력을 재배치했다.

“루젱 백작님! 기병이 승리했습니다! 라솔의 도적떼가 사방 팔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고 있습니다!”

“오오, 정말인가! 역시 노브리크 자작! 이런 큰 전투에서도 확실하게 자기 역할을 해 주는군.”

이런 혼전 상황에서는 다른 아군의 승리가 큰 힘이 된다. 전체적인 전황이 유리해지고 있다는 반증이며, 지금 겪고 있는 힘든 싸움이 끝나간다는 이야기니까.

“기병대에 들리도록 함성을 질러라! 우와아아아아!”

“우와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최전방에서 적과 무기를 마주대고 있지 않은 후위 병력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른다.

소란스러운 전장을 지나 노브리크 자작의 기병대에까지 들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로 인해 사기가 크게 오르고, 주변의 아군 보병들에게 루젱 연대의 의기가 전달된 것은 분명하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날카로운 창날과 매서운 총탄이지만, 결국 그걸 쓰는 것은 인간이니까.

적 기병대를 완전히 패퇴시킨 엘랑키아 기병대는 전열을 가다듬는 듯 방향을 전환한다. 선두에 적의 피로 갑주를 적신 용맹한 기사들의 모습이 늠름하다.

역시 엘랑키아는 기사의 나라이다.

루젱 백작은 어쩌다보니 젊은 시절부터 평생 보병 지휘관으로 싸우고 있었지만, 이런 때면 역시 기병을 동경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분명 이번에도 기병들이 결정적인 일격을 날려 전투를 승리로 가져오겠지.

아니나 다를까, 기병의 엄호를 잃어버린 적이 부랴부랴 보병을 전개해 엘랑키아 기사들에 대응하려 한다.

여기서는 싸울 필요 없이 적의 신경만 끌어도 좋을 것이다. 그 때문에 적은 예비대를 저 쪽으로 돌려야 할 것이고, 정면의 엘랑키아 보병대가 당할 압력은 줄어든다.

그러니 적을 슬슬 끌고 다니며 약점만 노려도 된다. 그걸로도 역할은 다 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갑자기 방향을 바꾼 최우익의 엘랑키아 기사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 뭐지 노브리크 경 재차 돌격인가?”

“새로운 표적을 발견 한 것일까요?”

“으으음··· 노브리크 경···.”

분명 루젱의 본진과 반대 방향이니까, 자신이 보는 것과는 다른 광경을 보겠지. 그러니 생각이 있어서 움직이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하지만 적은 원래부터 측후방 공격을 예상했다는 듯 단단한 사각대형을 갖추고 있다.

포병은 분산 배치했으므로 한 점으로 돌격해야 할 표적은 없다.

대체 노브리크 자작의 기병대는 어떤 표적을 노리고 있는 것인가.

루젱의 불안함 속에, 전투의 향방을 바꿔 놓을 수 있는 3천기가 넘는 막강한 엘랑키아 기사들이 적의 측후방으로 돌아 이동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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