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84화 (284/556)

35-7. 생뢰르반 전투

###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전방 총병 부대의 사격 명령은 중대장 혹은 소대장에게 일임된다.

최전선에서 적과 직면한 가장 절박한 이들이기에 가장 객관적으로 주변을 살필 수 있다.

때로는 공포가 너무 큰 나머지 판단을 잘못해 허공에 총알 낭비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대부분의 베테랑에게는 자신이 살아남으려면 부대를 ‘가장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아는 사실이다.

“쏴!”

“발사아!”

타타타탕! 타타탕!

타다당! 탕탕!

날카로운 총성이 오가며 거의 전선 전체에서 본격적인 보병 간의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라솔 군의 공격이 사선 형태로 이루어졌기에, 전투도 오른쪽 끝의 서부군에서 시작해서, 차츰 왼쪽 끝의 트랑카벨 파견대로 이어졌다.

후방에 있는 나에게까지 매캐한 화약 냄새가 풍겨온다. 최전방에서는 코가 마비될 지경이겠지.

여기저기서 하얀 연기가 피어났다가 바람에 씻겨 사라진다. 하얀 꽃 하나 하나는 인간의 목숨을 요구하며 피어오르는 것이다.

시야가 가려지거나 말거나, 이미 조준하기에는 서로 너무 가깝고, 병력의 밀집도도 높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빠르게 더 장전해서, 한 발이라도 많이 적진으로 날려 보내는 힘싸움이다.

“라솔의 사격 방식이 저돌적입니다! 이, 이렇게 가까이 붙다니!”

아인멜츠의 말은 거의 비명이었다. 이해는 간다 나도 놀랐으니까.

트랑카벨 영지군은 방어전일 때, 상황에 따라서긴 하지만 통상 50미터 전후에서 사격 개시하는 경우가 많다.

적이 자신을 쏴서 죽일 수 있는 거리에서, 짧아도 몇 초, 길면 10초 이상 기다렸다가 사격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첫 사격을 보통 적에게 양보하게 된다.

아무리 거리가 멀고, 명중률이 떨어지는 강선 없는 화승총이라 해도 치명탄은 확률대로 쏟아진다.

눈 앞에서 적이 발사한 하얀 연기가 확 퍼지고, 뭐가 휙휙 날아와 공기를 진동시키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저기서 흙이 패이며 먼지가 일어나고, 동료들이 쓰러지기 시작한다.

절명한 병사들은 마치 나무 둥치처럼, 선 자세 그대로 굳어 흙바닥에 널부러지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부상한 병사들은 상처 부위를 움켜쥐고 비명과 신음소리를 낸다.

병사들이 용기와 목숨으로 쌓아 올린 보병의 장벽이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허나 내 새끼들, 트랑카벨의 용사들은 공포도, 안타까움도, 슬픔도 노출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린다.

아예 반격의 기회가 없다면 모를까, 방아쇠만 당기면 나가는 총을 가지고 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기다린다.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복수의 시간이 올 때까지.

자신의 총이 최선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그 사이, 보병의 장벽에 뚫렸던 구멍들은 후열에서 나온 병사들이 채운다.

쓰러져간 동료들의 빈 자리를, 차가운 복수심을 불태우는 병사가 채운다.

같은 소대, 같은 중대의 병사들이다. 서로 모르는 사이일 리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무기를 팽개치고 상처를 살펴주고 싶은 친구나 친척, 심지어 형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그러면 안 되니까.

적의 총구 앞에 자신을 내놓고, 숨을 방법도 없는 병사들 입장에서는 고문이나 다름 없는 시간이겠지.

하지만 트랑카벨의 병사들은 지금까지 그걸 잘 해냈다!

그 몇 초를 어떻게든 기다리면, 훨씬 밀도 높은 첫 일제사격을 쏟아 부어 적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경험.

심지어 그 최초의 일제사격 단 한 번으로 부실한 적의 대열을 완전히 깨부숴 버리는 성공 경험을 몸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트랑카벨 정규 연대의 장점은 여러가지가 있고, 지금도 구성 병력 수에 비해서 훨씬 강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고 자부한다.

그들이 가진 장점들 중에서도 최고로 꼽을만한 건 그 강철로 된 장벽과도 같은 사격 군기다.

중대급 이상 부대 전체가 너무 먼 거리에서 명령도 없이 사격을 해버리는 최악의 상황은 정말 단 한번도 없었다.

···뭐 종종 신병들이 실수를 하긴 하지만, 그들도 전투를 거치며 빠르게 강인한 베테랑으로 단련되어 갔으니까.

그래서 항상, 트랑카벨의 병사들은 사격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같은 면적에서, 같은 시간 동안 더 많고 정확한 총탄을 적진으로 날려 보냈고, 같은 병력으로 더 넓은 면적을 커버한다.

지금까지 만난 적을 상대로는 항상 그랬었다.

그런데 그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상황을 보였다.

적은 트랑카벨 영지군 기준으로도 한계선을 넘어, 계속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총 한 발 쏘지 않은 채로 말이다.

“...라솔 보병이 만만치 않은데?”

나는 웃으려 노력하며 말했다. 이럴 때는 억지로라도 여유있는 척, 상정 범위 내라는 척을 해야 한다.

“...병사들이 잘 버텨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네.”

“반드시 그럴 거예요, 콘도티에레!”

첼레스티나가 평소보다 조금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한다. 평소의 묘하게 나른한 듯한 느낌이 싹 빠진 덕에 놀라서 돌아보게 된다.

“그야, 콘도티에레가 키운 병사들인데요? 슈토르히를 보고 자란 애들이라고요?”

“아··· 하하, 그랬지 참.”

그저 말 몇 마디가 오갔을 뿐이지만, 첼레스티나가 보여주는 강한 확신은 나에게도 힘이 된다.

“드 레뮤즈의 병사들 역시, 전에 없이 노력했습니다! 경험은 적지만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겁니다.”

아인멜츠 역시 이어서 말한다.

그렇지, 훈련 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배워야 할 것은 다 배우기는 했다. 그들의 강한 의지는 나도 확인했고.

그나저나 내가 그렇게나 걱정하는 것으로 보였으려나. 첼레스티나 앞에서는 한숨 하나도 제대로 못 쉬겠네.

“혹시라도 대열에 균열이 생기면 예비대를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해 줘.”

“네에, 콘도티에레!”

###

“발사!”

타타탕! 타타타타탕!

따당! 타타탕!

명령을 받은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의 선두 총병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긴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장전했던 화약에 불이 붙어 확 하고 타들어간다.

약간 과장을 섞어, 한 알 한 알 세서 완벽한 분량을 밀어 넣고, 꽂을대로 평소보다 열 배는 신경써서 꼼꼼하게 다져넣는다.

무작정 꾹꾹 누른다고 좋은 건 또 아니다. 요는 화약 전체가 균일한 상태를 이룬 하나의 덩어리가 되도록 하는 것이니까.

그래야지만 공기가 잘 통해 화약이 고르게 폭발한다. 발사되는 탄환에 에너지 전달도 잘 되고, 타다 남은 찌꺼기도 덜 남는다.

고참 소대장으로서, 신병 교육에도 몇 번 불려나갔던 얀 고티에는 자신이 배운대로, 그대로 전달했다.

아무튼 자세한 이론은 모르지만, 평소보다 신경을 써서 장전하면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쉬익 하고 점화약 타기 시작하는 소리 직후에 이어지는 요란한 총성과 뻐근한 반동.

불꽃이 번쩍 하더니 매캐하게 퍼져 나가는 자욱한 하얀 연기.

무사히 발사되었구나 확인하고, 곧바로 한쪽 무릎을 꿇는다. 고티에는 선두 대열에 속해있으니까, 이제 그의 머리 위로 후열이 사격할 것이다.

오늘 두 번째 장전이니, 총열 청소는 생략하고 곧바로 화약을 부어 넣는다.

안에 남은 불씨나 심각한 찌꺼기가 없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경험상 벌써부터 문제가 생긴 경우는 없었다.

탄약포 종이에 싸인 채로 총탄을 억지로 밀어 넣고 꽂을대로 쑤신다.

후욱, 후웅!

팍, 파파팍!

“끄아아악!”

“히이익!”

“악, 맞았어! 으으으···.”

희미해져가는 연기 너머에서 적이 쏜 탄환이 날아온다.

얀 고티에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고 총구를 찔러대던 꽂을대가 멈춘 것을 느꼈다.

두려움에 눈이 감길 것 같아, 일부러 힘을 줘 눈을 부릅 뜬다. 마치 총에 맞더라도, 날 쏜 놈이 누군지는 보고 맞겠다는 듯이.

공포의 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적도 일제사격을 한 모양이니까, 총탄의 비는 이미 아군 대열을 휩쓸고 지나갔다.

“손 멈추지 마! 이번엔 우리 차례다!”

“아, 알겠습니다 소대장님.”

손을 멈춘 부하들을 재촉하며 장전을 서두르게 한다.

주변에도 죽었는지 기묘한 자세로 바닥에 엎어져 꼼짝도 하지 않는 병사들과, 누워서 끙끙대는 병사들이 언듯 보인다.

허나 지금은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냉혹해 보이지만 해줄 수도 없다. 오로지 복수 밖에는.

그들이 후방으로 대열을 벗어나면 의무대의 군의관과 간호사들이 치료해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임무이듯, 자신에게는 다른 임무가 있다.

“쏴라!”

타타타타탕!

타다당! 타타타탕!

머리 위로 아군의 총탄이 날아간다. 후욱 하고 뜨거운 바람에 머리 위로 불어가는 것 같더니, 좀 잦아들었던 코를 찌르는 화약 냄새가 다시 짙어진다.

“콜록, 콜록!”

일시적으로 하얀 연기가 빛을 가려 주변으로 1미터만 떨어져도 아무것도 구분이 되지 않는다.

몇 명은 짙은 화약 연기를 잘못 들이쉬었는지 기침을 시작했지만, 다행히도 손은 멈추지 않는다.

고티에의 소대는 남달리 커다란 중화승총을 쓰고 있기에 앉은 자세로 장전하는 게 힘들었지만, 다들 어떤 식으로든 잘 적응하고 있다.

믿음직한 부하들이다.

총알을 총구 끝까지 잘 밀어 넣고, 점화구에 고운 화약을 조심스럽게 뿌리듯 밀어 넣는다.

이제 이 고운 화약에 불이 붙으면, 총열 내의 장약으로 불이 옮겨 붙어 탄환이 발사되는 것이다.

중화승총은 방아쇠를 당기면 용수철로 고정된 격철이 그만큼 내려가는 방식이니 격철을 당기는 단계는 생략한다.

마지막으로 격철에 물린 화승의 남은 길이를 확인한다. 충분했다. 바람을 불어 넣자 빨갛게 불씨가 살아난다.

방아쇠를 당기면 바로 발사가 되는 상태까지 완성한 얀은 주변의 소대원들을 살핀다.

보아하니 대부분 장전이 완료되었다.

얼굴에 흐르는 땀에 화약 연기가 엉겨붙어 벌써부터 꼴이 말이 아닌 부하들이지만, 그 눈빛만은 빛나고 있다.

믿음직한 동생 같은 마음에, 왠지 울컥하는 기분이 든다.

눈 앞에서는 화약 연기가 점점 잦아들고 있다. 희미하게 연기 너머로 검은 덩어리가 보인다. 적군의 모습이다.

“아, 아니? 왜 이렇게 가까워?”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목소리가 나와버린다. 허둥대는 모습은 부하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설마 지금 적 창병과 마주하고 있는 것인가?

창병 대열의 선두에 사격 부대를 얕게 카드 형태로 배치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말단 소대장이지만 교육받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잦아든 총연 너머로 확인한 적들은 모두 총을 들고 있었다. 일부는 분주하게 손을 놀려 장전하는 모습도 분명하게 보이고.

그런데 왜 이렇게 가까이 다가왔지? 그것도 총병을 앞세워서?

전투에서 적군과 아군, 두 부대가 서로 가까워졌다면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적군이 다가왔거나, 아군이 다가갔거나.

그런데 이번에 아군은 다가가지 않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로 장전삼매경에 빠져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당연히 적이 다가온 것이다.

목적은 무엇일까?

총을 들고 왔으니, 당연히 아군을 쏴 죽이기 위해서.

“이런···!”

얀의 입과 눈이 동시에 크게 벌어졌다. 위 아래로 흔들리던 적의 어깨가 멈췄다.

총연 속을 뚫고, 아군을 향해 걸어오다가 제자리에 선 것이다.

총을 비스듬히 앞에 들고 전진하던 사수가 제자리에 멈춘다면 그 이유는?

그야 당연히···.

“사격준비! 조준!”

“야, 얀 소대장님?”

“모두 조준해!”

“예, 옛!”

장전을 마치고 대기하던 중화승총들의 총구가 일제히 정면을 향한다.

첫 사격 이후, 특별한 사격 통제가 없다면 소대장 재량에 따라 사격 형태를 결정할 수 있으니 명령 위반도 아니다.

아마 다른 소대들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했을 것이다. 제발 그래야만 하는데.

“쏴라!”

타타타타탕!

중화승총들이 일제히 불을 뿜어냈다.

얀은 반동을 어깨로 받아내기가 무섭게 총을 수직으로 세우고 다음 장전을 준비한다.

“명령 기다리지 말고 각자 판단에 따라 장전하고 사격한다! 가장 빠르게!”

“예, 옛!”

“알겠습니다!”

첫 사격을 교환한 이후인데, 적이 이상할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

그렇다고 돌격해오는 낌새는 없었다.

이런 상대는 처음이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의 의도는 아마도···.

더 가까이 와서 이쪽 흉갑에 총구를 대고 쏘겠다.

일 것이다.

겨우 소대장이지만, 지휘자 교육은 성실하게 들었다.

사격 부대에게 상대적인 거리와 방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존경하는 콘도티에레가, 그리고 그가 키운 트랑카벨 영지군이 남달리 가까운 거리에서 사격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도 그렇게 배웠다.

아, 그게 효과가 있다는 것은 계속 이겨온 얀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런데 이번 적은 첫 사격 때에도, 먼저 쏘지 않았을 뿐더러, 거기서 열 걸음 이상을 더 들어왔다.

콘도티에레의 기준보다도 더 가까운 거리로 그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 사격을 당하면 아군은 어떻게 될 것인가.

“헉, 소대장님, 적이 이상하게 가까운데요?”

“그러니까! 빨리 장전해서 우리가 먼저 날려야 해!”

연기가 잦아들면서, 방금 중화승총 소대의 전과가 모습을 드러낸다.

적의 선두 대열 앞에는 시체가 여럿 늘어났고, 몇 명은 부상을 입었는지 쭈그린 자세로 끙끙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많은 적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이쪽에서 쐈으니, 이번에는 이쪽이 맞아 줄 차례. 라솔 특유의 억양으로 외치는 호령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적이 너무 가깝다. 총구기 유난히 크게 보인다.

“어··· 으으!”

“어, 어쩌다··· 어어?”

부하들이 내는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얀 자신도 온 몸의 털이 곤두서고 등짝에 얼음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평소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조준당하는 것이 이렇게 두려운 일일 줄이야.

눈을 질끈 감고, 자신도 모르게 기도를 시작한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