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79화 (279/556)

35-2. 생뢰르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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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연합군은 집결에 성공했다.

고맙게도, 라몽 드 레뮤즈 백작이 내준 사령관 이름 사칭···이 아니라 대리 권한은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지리멸렬하던 서부군에도 나름의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귀족들이 많이 있었다.

악의를 가지고 사보타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가이드가 없는 상황에서 산발적으로 내려지는 명령 사이에서 허둥대고 있는 부대가 많았으리라.

앙비토 드 몽파르지에 공작이 서부군을 제대로 통제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라 불안하기도 하다.

다만 이렇게까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적이 코 앞까지 나타나서 도발하고 있지 않았다면 자연스럽게 수습될 혼란이었겠지.

뭐 내 선에서 명령이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노골적으로 싫어할 귀족들도 있겠지.

그런데 그래서 어쩌시려고요? 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아무튼 명령은 라몽 드 레뮤즈 백작의 도장이 찍힌 채로 내려가고 있다. 꼬우면 돌아가시던가.

전체적인 배치는 총사령관의 직속 병력인 드 레뮤즈 영지군이 중앙.

그리고 우리 트랑카벨 파견군이 좌측익.

가장 마지막에 합류한 서부군이 우측익이다.

서부군에도 루젱 드 마로텍스 백작과 같은 베테랑 군인들이 있고, 나름의 전투 계획도 세워져 있다.

시간이 부족했으므로 충분한 논의는 못했으나, 드 레뮤즈 군의 우측 끝단에서 이어지는 나지막한 능선을 따라 알아서 배치하도록 했다.

병력이나 지휘체계가 균일하지 못하다는 것은 단점이겠으나 나름 경험 많은 병력과 장교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지금은 믿는 수 밖에 없었다.

“콘도티에레, 드 레뮤즈 영지군의 4개 연대가 배치를 끝마쳤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 시간이 부족했을 텐데 다행이다! 포병 배치는 마무리 됐어?”

“네에, 물론이에요 콘도티에레! 포대는 아침부터 건설하고 있었고요.”

병력이 집결한 점에 이어 정말, 아주 다행인 점은 아군이 수적으로 우세하다는 점과 먼저 전장을 선점해 기다리는 포지션이라는 것이다.

아군에는 숙련도가 떨어지는 병력이 꽤 많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충분한 숫자로 방어전에 들어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신생 드 레뮤즈 영지군] 보병 8000, 기병 3100

- 4개 보병 연대 총 8000

- 중기병 2200, 경기병 900

주 방어선의 한 가운데를 맡고 있는 드 레뮤즈 영지군의 4개 신생 보병 연대는 질서정연한 전투 대형을 갖추었다.

하지만 이는 미리 준비할 수 있는 방어전이기 때문이다.

만약 평지에서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공격과 방어를 주고 받는 기동전이었다면 이처럼 정연한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겠지.

충분하지는 못하나 최소한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을 정도로 훈련받았다.

적도 무리해서 정면으로 돌파하지는 못할 정도로는 믿어도 될 것 같다.

드 레뮤즈 가문의 기병은 사령부의 뒤편에, 전군의 최후 예비대라는 느낌으로 배치했다.

여기 불만을 가지는 기사들도 있었지만 예비대 없이 전쟁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중기병만 2천을 넘는 강력한 충격 부대이니, 측면에서 어느정도 결착이 나서 기병대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오면 그때는 출동할 가능서이 높다.

드 레뮤즈 가문에도 포병대가 있었다. 숙련도가 그다지 높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10문이 넘는 숫자이지 무시할 수는 없는 전력이다.

이들은 보병 연대 사이에 배치되었으며, 총격 사거리에 들어오면 후방으로 퇴각하기로 정했다.

숙련도가 떨어지는 포병대를 그나마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만약 정면의 적을 격퇴한다면 곧바로 방치된 포대에 재배치 되어 2차 포격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기회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좌측의 트랑카벨 파견군이 배치된 영역은 상대적으로 좁은 편이다.

하지만 조금 앞으로 튀어나와 있다.

이는 어느 정도는 중앙의 드 레뮤즈 보병대를 대신 지켜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트랑카벨 영지군 정규 연대] 보병 2480, 기병 650

-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 1200 + 지원병 160

- 제15 델레망드 보병 연대 1100

- 제31 몽세나 정찰 연대 650

[트랑카벨 영지군 용병] 보병 3750, 기병 2160

- 슈토르히 연대 1100

- 네그라타 연대 1700(보병) + 160(기병)

- 지빌링엔 연대 950

- 제35 프리즈마라 중기병 연대 800

- 제36 프리즈마라 경기병 연대 1200

[드 누아 영지군] 보병 1000

- 북부 연대 1000

지금 전선을 무작정 늘리기만 하는 것은 좋은 선택은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군의 우측, 중앙의 드 레뮤즈 영지군에게서 가까운 순서부터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 제15 델레망드 보병 연대, 드 누아 북부 연대, 네그라타 연대 순서이다.

이번에도 아군 대열의 한쪽 끝은 네그라타 연대이다.

병력이 1700명 정도로 가장 숫자가 많기도 하고, 방어선 유지 능력은 샹다메리에서의 치열한 공방전으로 증명됐으니까.

반대편 끝은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이다.

이들 또한 트랑카벨 영지군의 최선임 연대라는 자부심에, 실제로도 숙련도가 높다. 그리고 지원병이 추가되어 숫자도 가장 많은 편이다.

제10 연대에 추가된 지원병은 다른 연대에서 지원하여 차출된 보병들로, 다름 아닌 드 레뮤즈 계통 영지의 망명자들이다.

특히 정순파에 대한 탄압이 단초가 되었던 여울목의 전투에도 참여했던 베테랑들이 많았다.

그들 입장에서는 이제 정순파에 대한 탄압이 풀린 고향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니까, 일부러 지원자들을 모아 보내온 모양이다.

전군에서 모은 포대는 둘로 나누어 적절한 위치에 배치했다. 물론 이는 첼레스티나의 안목에 따른 것으로 훌륭하게 활약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단단하게 배치된 보병 대열, 그 후위의 예비대는 지빌링엔 연대와 슈토르히 연대이다.

지빌링엔 연대는 자신들이 예비대로 배치된 것을 다소 실망스럽게 생각한 모양이다.

다만 그들은 매우 용감한 용병대지만, 구성원의 숫자가 가장 적어 1천명을 밑돌았다.

결국 어느정도는 소모전이 될 수 밖에 없는 최전선이다.

여기에서 라인을 유지하며 화력을 주고받는 역할보다는 적의 약점을 파고들거나 아군의 약점을 보완하는 소방수 역할을 맡기려 한다 설명했더니 다행히 납득했다.

그리고 슈토르히는··· 물론 슈토르히도 최전선에 배치해도 잘 싸우겠지.

하지만 훌륭한 포텐셜을 가진 특수부대도 결국 최전방 참호에 배치하면 ‘좀 더 능숙한 알보병’이 되어 버린다는 말이 있듯이 다른 일을 맡기는 게 좋다 생각했다.

분명 그들 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 생길 것이다.

뭣보다 이번에 슈토르히 연대의 루트비히가 좌측익을 대표해서 중앙 사령부와 명령을 주고 받는 핵심 역할이다.

전투 초반에는 잠시 여유를 두는 게 낫다 판단했다.

또한 이 두 개의 용병 연대는 만약에라도 드 레뮤즈의 부대가 맡은 영역에 큰 문제가 생기면 이 또한 대처하기로 했다.

그래서 위치 또한 다소 중앙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좁게 형성된 방어선의 측후방으로 기병들을 배치했다.

오늘 전투의 주역은 당연히 보병 사각 대형끼리의 공방전이 될 것은 분명해보인다.

왜냐하면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라솔 군이 자신들의 장점이 그것임을 숨기지도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병은 엘랑키아가 강하고, 보병은 라솔이 강하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증명하는 공식이나 다름 없는 ‘사실’이기도 했고.

그러므로 오늘의 목표는 무슨 수를 써서든 적 보병의 진격을 멈추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보병 대열이 맞물리게 된다면, 그 다음부터는 상대적으로 우위인 아군의 기병대가 활약할 자리가 나올 것이다.

당연히 적군은 엘랑키아의 우세한 기병 전력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대응할 카드 또한 가지고 있다 생각해야지.

정말 수천의 기병대일지라도, 단 몇초의 방심에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법이다.

무모하게 초반부터 활용하다가 그런 꼴이 나느니, 후방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하는 것이 낫다.

그럼 최소한 적에게 계속 신경쓰이게 해서 유형 무형의 이득은 얻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여기 트랑카벨 가문에서 온 야전 의무대가 추가되었다.

200명 정도로 상당히 큰 규모였는데, 절반은 중앙군 사령부 부근에, 나머지는 트랑카벨 파견군의 후방에 배치되었다.

상황을 봐서 서부군의 후방에도 군의관을 파견할 예정이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우측익을 담당할 서부군의 배치가 끝났는데···.

답답한 일이지만 정확한 숫자는 자신들도 알지 못했다.

명단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병력을 서남부 여기 저기에 뿌려놨다가 재집결하는 바람에 현재 병력을 충분히 알 수 없다는 것에 가깝겠다.

[서부군] 보병 약 8000 기병 약 4000

- 3개 보병 연대

- 2개 기병 연대

나름 출신 지역에 따라 최소한의 부대 구분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초반의 낭비에 가까운 병력 배치와 불필요한 패전에서 입은 피해들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만약에 쿠앙트뢰에서 루젱 드 모르텍스 백작의 부대를 무사히 살려서 퇴각시키지 못했으면 그나마 이 전력도 거의 절반으로 폭삭 줄어들었겠지.

상대적으로 앞으로 튀어나와 배치된 트랑카벨 파견군 병력과 다르게, 비스듬히 날개를 접은 형세로 배치하도록 명령했다.

적의 공세의 힘을 최대한 줄이고 대열을 유지하는 데 최적인 배치이다.

전군의 가장 오른쪽 끝은 서부군 최고의 보병 지휘관인 루젱 드 마로텍스 백작이 맡아주기로 했다.

쿠앙트뢰에서도 용감하고 나름 합리적으로 싸워 주었으니 여기서도 잘 싸워주기를 바란다.

서부군의 보병 전력은 다소 불안한 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기병의 숫자는 상당하다.

처음 군을 일으킨 앙비토 드 몽파르지에 공작의 소집에 응해 소수의 중기병만 보내거나, 영주 자기 자신이 기사로서 참여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추태를 보여주기는 했으나, 이들은 썩어도 엘랑키아 기사들이고 대부분이 막강한 중장기병들이다.

대륙의 어느 누가 와도 결코 무시할 수 있는 병력은 아니다··· 라고 믿고 싶다.

통제가 잘 되지 않더라도, 저들이 우측 후방에 배치되어 있는 한 라솔 군에 대한 억제기 역할은 해 줄 것이다.

저들이 무서워서라도, 라솔 군이 함부로 대열을 변경하다가 모험적인 기동을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손발을 좀 더 맞춰 볼 기회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짝에도 쓸모 없이 아군 병력만 줄인, 자해 행위나 다름 없었던 분산 배치를 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일주일, 아니 사흘··· 이틀 정도만 느긋하게 손발을 맞출 시간이 더 있었더라도.

최소 한 번 이상 혼성하여 병력을 배치하고, 각자의 강점과 단점을 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시간은 커녕, 적의 코 앞까지 다가온 상황에서 결전이냐 퇴각이냐를 고민할 시간조차 없었다.

시간에 쫓겨 간신히, 그나마 효율적으로 배치한다고 한 것이 현재 상황.

시간을 들여 각 부대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서로 보완하는 유기적인 배치를 할 수 있었다면 연합군의 전력은 단순 숫자로 표기되는 것 이상으로 강해졌으리라.

이제 와서 아쉬워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결국 지휘 계통이 여러개로 분산된 부대의 어쩔 수 없는 약점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전투에 임하는 지휘관으로서 중요한 금언이 있다. ‘있는 거나 잘 쓰자’ 라는.

뭐, 이번에는 참모장이지만서도.

“짧은 시간에 훌륭하신 배치입니다. 그래도 에트 참모장께서 총괄 지시를 내리시지 않았다면··· 아찔합니다.”

“하아, 밥 값은 했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 이 이상으로 유기적인 배치는 불가능하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함께 배치도를 그리고 검토하고 있던 차석 참모, 아인멜츠 피노르 폰 자이트리츠가 말했다.

재능 있는 젊은이인 그가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운 일이다. 부디 실제로도 그래주기를.

내가 동트기 전부터 생뢰르반 마을 주변을 돌아다니며 전장을 살필 때 따라다녔기 때문인지 잠이 부족해 눈이 빨갛다.

오늘 내 위치는 트랑카벨 파견군의 후방이 아닌 드 레뮤즈 영지군의 후방, 전군의 중앙이다.

전에 없이 많은 숫자의 대군, 그것도 지휘체계가 따로 따로인 3개 군대의 연합군을 지휘해야 한다.

미친듯이 쏟아질 보고와 정보를 취합해 해석하려면 아인멜츠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아마 첼레스티나 혼자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젠장할, 가능하면 첼레스티나에게 포병 지휘를 함께 맡기고 싶은데. 여유가 생길지 모르겠다.

역시 참모 장교의 질과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렇다고 양성할 기회도 없었고, 갑자기 어디서 데려올 수도 없으니 말이다.

“콘도티에레! 적 포병이 전진하고 있어요!”

첼레스티나의 날카로운 외침. 드디어 시작인가. 앞에 늘어선 드 레뮤즈 병사들이 술렁거리는 것이 나에게도 느껴졌다.

나는 아인멜츠와 함께 병사들의 틈을 지나 전방으로 나선다.

“이건··· 완전히 우리를 얕보고 있네.”

“네에, 올 테면 와 봐라! 기병을 보내! 이러고 있네요 정마알!”

기가 차는지 첼레스티나가 분통을 터뜨렸다. 아마 포병 전술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녀에게, 현재 라솔 군의 포병 운용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포병만 덩그러니, 전방으로 나와 일렬로 늘어서 있다.

서로 간에 충분히 거리를 두고, 방향 전환도 자유롭고 유폭에 휘말릴 위험도 적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호 시설도, 가까이에서 지키는 직위 부대도 없다.

만약 기습적으로 기병을 보낸다면··· 어쩌면 후방의 다른 적군이 도착하기 전에 포병만 쓸어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유혹이 드는 배치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저러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군 포병이 적군 보병을 사거리에 두지 못하는 동안, 적 포병은 아군 보병을 사거리에 두게 되겠지.

젠장할, 적장은 똑똑한 인간이다.

보병도, 포병도 많이 써 봤으며, 자기 강점과 우리 약점을 잘 알고 있다.

펑! 퍼벙! 뻐엉!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게 방열된 적 포병대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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