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 생뢰르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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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보병 대열은 무리해서 거리를 좁혀오지는 않았지만, 전방과 측면을 경계하는 대형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도 행군대형으로 계속 이동하다가 아군 기병에 습격당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모양이지.
하지만 기병으로 공격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 헛수고이다.
애초에 ‘공격할 테면 공격해 봐라’라고 써 붙인 듯한 자신감 넘치는 대열에 기병 단독으로 공격해봤자 튕겨 나올 뿐이다.
“에트 참모장,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제는 연합군의 차석 참모가 된 아인멜츠의 얼굴은 다소 어둡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질린 모습이다.
내 마음속도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도권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율권은 가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는 싸울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정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정말 꼬여 버렸다.
만약 물러나려면 지금 물러나야 한다. 그래도 적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뭐 뿌리칠 자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면 뿌리칠 수야 있겠지만, 문제는 아직 합류하지 못한 서부군이다.
여기서 드 레뮤즈 본군과 트랑카벨 파견군이 빠져 버리나면 서부군도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벨브레인지 뭔지 하는 기병 지휘관 백작이 멋대로 공수표 날리고 추격하다가 매복에 꼴박하는 꼬라지를 보자면 못한다··· 가 배당이 높겠지.
“아인멜츠 경, 라몽 백작님은 어떻게 해도 나오실 수 없겠습니까? 지금 군을 하나로 묶으려면··· 라몽 백작님이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라몽 백작님은 책임감이 강하신 분입니다. 제가 직접 가서 꼭 모시고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현 상황은 제가 어떻게든 수습하겠습니다.”
라몽 드 레뮤즈 백작의 성격상, 결코 꾀병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지라도, 상징성은 중요하다.
특히 모든 면에서 정당성과 전통을 중시하는 귀족 무리를 한 데 묶으려면 말이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죽어라 말을 안 듣는 서부군을 무사히 합류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괘씸하고 답답한 인간들이지만, 그래도 잘 달래서 전력으로 써먹어야 하는 아군이다.
각자도생하자고 병력을 빼 버리면 난로 곁의 설탕 인형처럼 녹아버리겠지.
루젱 드 마로텍스 백작처럼 말이 통하는 군인도 있고. 사령관인 앙비토 드 몽파르지에 공작도 여건만 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결전을 결심했다.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서 결심한 것은 아니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명확한 방향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유리한 포지션을 점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 ‘그나마’ 추가 손실 없이 온전한 병력으로 싸울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늦든 빠르든 야전에서 승부를 낼 계획이기도 했다.
적이 더 내륙으로 들어가 분탕질을 저지르거나, 싸우기 곤란한 지형으로 들어가 불리한 전투를 강요받게 되면 더 골치아파진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나마 전투를 준비할 기회가 조금은 있는 지금 싸우는 편이 낫다.
마침 주변은 엘랑키아 기사들이 활약하기 좋은 개활지이다.
“콘도티에레! 명령하신대로 전달하고 왔어요오.”
“수고했어 첼레스티나. 집결지로 정한 장소는 어디야?”
“네에, 여기 지도에서··· 조금 북쪽! 네네, 이 마을이에요, 콘도티에레!”
“흐음··· 이 마을인가···.”
나는 지도 위에 작은 점으로 표시된 마을을 발견했다.
“마을 이름이 뭐지? 글씨가 작아서 잘 안보이네.”
“네에, 생뢰르반! 생뢰르반이네요, 콘도티에레!”
“생뢰르반이라···.”
나는 기묘한 울림을 가진 마을 이름을 입 안에서 몇 번 발음한다.
이번 일이 아니었으면 들어보지도 못했을 마을이다. 마을도 이런 식으로 역사에 이름을 올리기를 결코 원치 않았으리라.
최소한, 엘랑키아 역사에 치욕스러운 이름으로 남지는 않게 해야지.
“혹시 우회하는 적이 있으면 철저하게 막고, 나머지는 응전하지 말라고 전달해줘.”
“네에, 콘도티에레.”
“우리도 천천히 후퇴한다. 거리는 딱 지금 정도만 유지하면서.”
어차피 간혹 있는 작은 숲과 야트막한 언덕을 빼면 사방이 트인 개활지이다. 특별한 패를 숨기기에는 서로 너무 가깝기도 하고.
그래도 마지막 탐색전이 있을지도 모르니 주의해야 한다.
“정찰대 출발! 이도옹!”
첼레스티나의 외침소리를 들으며, 나도 말머리를 돌렸다.
결전의 장소 생뢰르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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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방에서 병력을 이끌고 행군하고 있던 크루사다 틴토 데 타라트라바 공작이 선두에 도착한 것은 오후가 좀 지난 후였다.
곧바로 퀸토 변경백과 크루사다 공작은 작전 논의를 시작했다.
“적은 물러서지 않고 응전할 생각이군. 그렇지 않소?”
“그렇게 보입니다. 결전을 결심한 것 같습니다.”
“흠, 그 전에 한 번 찔러 보는 것은 어떻겠소, 변경백?”
“아까와 같은 멍청한 적이었다면 모르겠지만, 갑자기 움직임이 침착하고 단단해졌습니다. 기병을 아끼기로 하지요.”
크루사다 공작의 제안에, 퀸토 변경백은 고개를 저었다.
적의 움직임은 전혀 다른 군대가 된 것 처럼 신중하게 일변했다.
조금만 살폈어도 이상함을 알아챘을 상황에서, 미친 황소처럼 함정으로 돌진했던 조금 전의 적장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선두에 배치된 병력은 퀸토 휘하의 라솔 하류 주둔군이니, 크루사다 공작 역시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시오. 나는 뒤에 처진우리 타라트라바 연대들에게 속도를 올리라 명령하겠소.”
“아, 그렇게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체력을 아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 내가 마음만 앞섰나 보오. 변경백의 조언대로 하겠소이다.”
전황이 계획대로 잘 풀리고 있는데다가, 그 계획을 제안한 것이 크루사다 공작이기 때문인지 공작의 기분은 매우 좋아 보였다.
게다가 퀸토의 조언은 합리적이었다. 그들의 군대는 이미 어제부터 상당한 강행군을 해오고 있었다.
“전투는 언제라고 보시오?”
“빠르면 내일, 늦어도 모레에는 전장에 도착하리라 생각합니다. 실제 전투 시작은··· 적장의 결심에 달렸습니다.”
“알겠소이다. 그때까지 선두 지휘는 귀공에게 맡기겠소.”
“특이 사항이 있으면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공작님.”
퀸토 변경백은 슬금슬금 물러나면서도 이쪽과 거리를 유지하는 적 기병들을 바라보며 살짝 아쉬움을 느꼈다.
전초전에 패배한 적이 혼비백산하며 도망치고, 그 뒤를 꾸준히 추격하며 거저 전과를 올리는 상황을 생각했지만 그렇게 형편 좋은 일은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낙오되는 적군을 잘라먹으며 적 주력을 밀어 붙인 끝에 약화된 상태로 결전을 강요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나타난 적은 그렇게 무질서한 멍청이들은 아닌 것 같았다.
적은 분명 지휘관이 여럿이고, 하나로 통제가 잘 되지 않고 있으리라.
이는 역사속에 나오는 엘랑키아 군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엘랑키아는 분명 크고 강한 나라였지만 지방 영주들의 권한이 너무 컸다.
그래서 국왕이 직접 중앙군을 이끌고 나서지 않는 한 통제가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어쩌면 지금 눈 앞에서 얼쩡대는 적군은 최근 할콘 남작의 부대를 무너뜨렸던 그 기병대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저 정돈된 움직임도 이해는 간다.
“그런데··· 흐음. 아드리아니, 저들은 엘랑키아의 기사들은 아닌 것 같지 않나?”
“말씀대로입니다, 변경백. 몸을 철갑으로 둘둘 만 것은 아니군요. 용병들이라도 고용한 모양입니다.”
“허어, 정작 기사들은 그런 추태를 부리더니. 분명 할콘 남작이 상대했던 부대도 대부분 흉갑만 입은 경기병이었다 했지?”
“분명 그렇게 보고했습니다.”
엘랑키아와의 마지막 대규모 전쟁은 한 세대 전의 일이다. 그 승전으로, 라솔은 이스키비르 남쪽의 영토들을 얻어냈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당시 참전했던 노인들은 ‘엘랑키아 기사의 막강함’에 대해 조언했었다.
그러나 아까의 교전에서, 지리멸렬한 모습은 도저히 이야기로 듣던 엘랑키아 기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할콘 남작이 이끄는 반은 도적떼나 다름없는 용병들이나 그렇게 추잡하게 도망칠 것이다.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엘랑키아의 기사들은 이렇게나 타락했다는 말인가? 질서는 용병들에게서나 찾을 정도로?
설마 모든 적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라솔로서는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드디어 이스키비르 북안에 라솔의 영토가 생기는 것이다.
엘랑키아와의 수백 년 전쟁의 역사 속에 처음 있는 일이다. 새로운 역사를 퀸토 자신의 손으로 만든다.
가슴이 뛰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머리속에서 병력을 세어 본다. 가상의 평원에 배치도 해 본다.
[라솔 왕국 이스키비르 하류 주둔군]
4개 정규 연대 보병 약 10000명
- 우노스 연대
- 도레 연대
- 테라얀 연대
- 코루냐 연대
2개 보조군 연대 보병 약 4000명
기병 약 3100명
- 하류 주둔군 보조 기병대 800
- 기마 용병 2300
[타라트라바 공국군]
보병 약 10000명
- 3개 타라트라바 정규 편성 연대
기병 약 4000명
- 중기병 2400명
- 경기병 1600명
보병이 약 2만 4천, 기병이 약 7천에 이르는 상당한 병력이다.
숫자로 따지면야 다소 열세일 수 있다. 이는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엘랑키아 군을 수로 압도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역사를 살펴보면 라솔 군은 항상 수적 열세 상황에서 승리해왔으니까.
그러기 위해 양성한 부하들이다. 네 검천사의 이름을 딴 하류 주둔군의 4개 연대는 훨씬 많은 적도 압도할 수 있으리라.
타라트라바 군대 역시 오랜 내전을 거치며 살아남은 알짜 병력이다. 물론 자신의 직속 병력만은 못하겠지만.
뒤늦게 후속하고 있는 알시라스 왕국의 지원군도 있지만 굳이 계산에 넣지는 않았다.
제 때 전장에 도착할지는 모르나, 이들 역시 수천에 이르는 서부 산악지대의 사나운 용사들이다.
도착한다면 이들 역시, 평화에 찌든 엘랑키아 군 도륙에 참여할 것이다.
전투를 앞두고 너무 마음이 들뜬 것 같아 자제하기로 했다.
결국 승패는 알 수 없는 일이고, 적 중에도 정예는 있을 테니까.
하지만 어떤 적이 나오더라도 자신의 부하들이 더 강하다. 그런 확신이 퀸토 변경백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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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라몽 백작을 만난 것은 저녁이 늦은 시간이었다. 벌써 주변이 어둑어둑하다.
아마도 병마에 시달리는 백작을 위한 전용 마차로 보이는 큼직하고 덧문이 닫혀있는 마차에서, 비틀거리며 백작이 내린다.
얼굴은 평소처럼 창백하고, 땀으로 젖어서 연신 손수건으로 이마를 훔치고 있었다.
옆에서는 집사장 드레피니와 다른 하인이 혹시라도 넘어지면 받쳐 주려는지 어쩔줄 모르며 따라다니고 있었다.
다행히도 라몽 백작은 비틀거리면서도, 무사히 미리 준비된 의자로 이동해 앉을 수 있었다.
반대편에는 물론 내가 앉았다. 이 장소를 마련한 것은 백작의 뜻이었다. 아마도 오랫동안 서 있기조차 힘든 모양이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 윤기 없는 얼굴은 실로 중환자나 다름없어 보인다. 제발 성으로 돌아가 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늦어서 미안하오, 에트 참모장. 더불어, 이전에 약속을 하고 가지 못했던 일에 대해서도 사과하지.”
백작의 말투는 고압적이지만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정말로 미안해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아닙니다, 백작님. 힘드신 와중에 면담을 요청해 죄송합니다.”
“빌어먹게도 일이니까.”
라몽 백작은 땀에 젖은 손수건 대신, 드레피니에게 새 손수건을 받는다.
“귀하도 참 안됐군.”
“뭐가 말입니까?”
“엘랑키아 남부를 지켜야 하는데, 같이 싸운답시고 나온 한 놈은 자기 몸도 못 가누고 골골대는 병자에, 한 놈은 백치 얼간이니까 말이오. 작위만 높고 쓸모 없는 머저리 둘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생각하겠지.”
또 라몽 백작의 입가가 묘하게 뒤틀린다.
나는 잠시 눈만 껌벅거리며 라몽 백작이 무슨 의도로 말한 것인가 생각하다가, 자기 자신과 앙비토 공작의 상황을 빈정거리는 것임을 깨닫는다.
아니 솔직히 답답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생각하진 않았는데.
내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자, 라몽 백작이 말을 이어간다.
“그게 이 땅의 법률이고 규칙이니 어쩌겠소. 뭐 좋아, 아인멜츠 경에게 전투를 결심했다 들었소.”
“그렇습니다. 장소는 서쪽의 생뢰르반 마을 부근입니다. 마을 동쪽에 그나마 포대를 설치하기 좋은 고지대가 있으니···.”
내가 지도를 펼치며 설명하려 하자, 라몽 백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멈추라는 듯 팔을 휘휘 저었다.
“세부 사항은 참모장에게 위임했소. 그리고 지금 설명한다고 그걸 내가 내일까지 기억할지도 모르겠고.”
“...알겠습니다.”
“서부의 백치 공작이든, 그 밑의 더럽게 말 안 듣는 멍청이 군단이든 다루는데 도움이 된다면 내 이름을 쓰시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없다면 말이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단숨에 쏟아내듯 말한 라몽 백작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 정도의 말을 한 것조차 힘든 모양이다.
“내가 할 말은 오로지 하나요. 이기시오. 반드시 이기시오.”
“...노력하겠습니다.”
“빌어먹을, 세상에 노력 따위는 아무 소용도 없소. 결과가 전부지! 이 초원을 내 가신들의 시체로 뒤덮어 놓고도 ‘노력했습니다’ 한마디로 끝낼 생각이오!”
라몽 백작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숨소리가 불규칙해졌다. 얼굴이 붉게 변한다.
당황한 드레피니가 손을 내밀었으나, 이를 거칠게 쳐낸다.
“이기기 위해 뭐든 써도 좋소. 내 이름을 사칭해서 멍청이들을 위협해서라도 말을 듣게 하란 말이오! 레뮤즈의 이름을 시궁창에 박아도 좋소! 내 구실 못하는 심장을 뽑아내서 바치라면 그것도 하겠소!”
“....”
너무 흥분했다. 이 자리의 모두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나는 붉게 상기된 백작의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인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눈물이 투명한 선이 되어 흘러내리기 전에, 백작이 소매로 거칠게 닦아낸다.
“이겨야 하오. 이겨야 한단 말이오! 그 버러지 같은 라솔 놈들이 내 땅을 짓밟고 내 백성에게 손대게 할 순 없소!”
“알겠습니다.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흥, 당연히 그래야지.”
나는 엄숙한 표정과 목소리로 대답했다. 진심이었다.
승패는 어느정도 하늘에 달린 일이므로 쉽게 승리를 입에 담지는 않는다. 분명··· 카르카냑에서 아쥬흐에게 승리를 약속한 이후 처음이던가.
그래, 이 전투의 승리 역시 ‘트랑카벨의 승리’에 부합하는 승리니까.
폭풍과도 같이 감정을 쏟아낸 라몽 백작은 하인들의 부축을 받아 마차로 돌아간다.
“에트 경, 어쩌면 백작님께서 전장에 모습을 보이시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꼭···.”
“약속드렸으니까요, 맡겨주세요.”
늙은 집사 드레피니는 몇 번이나 내게 허리를 숙인다. 그의 눈가에도 눈물 방울이 반짝인다.
라몽 백작도, 드레피니 집사장도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과거에 오해 했던 일이 미안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나도 온 힘을 다해, 내 일을 해야 한다.
“첼리스티나, 생뢰르반 마을로 이동하자.”
“네에, 콘도티에레!”
우선 전장을 살펴야지.
내일은 서부군을 찾아서 멱살을 잡아서라도 전장으로 끌고 와야 할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