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 명예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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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찍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다시 눈을 감고 싶다.
그냥 딱 눈만 감아도 세상 모든 행복을 더 느낄 수 있을 법한 새벽이지만, 그럴 수가 없다.
라몽 드 레뮤즈 백작이 ‘아침 일찍’ 찾아온다 하였으니 준비해야지···.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움직여 꾸역꾸역 자리에서 일어난다.
대체 아침 일찍이 언제야 젠장.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므로 내가 불행한 이유는 충분히 행복해지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긍정적인 점을 찾아보자.
우선 어제 앙비토 드 몽파르지에 공작이, 오늘 라몽 드 레뮤즈 백작을 ‘여기서’ 만난다는 것은 두 사람이 지휘하는 군대가 가까이 있다는 말이다.
최소한 드 레뮤즈의 영지군과, 서부군 모두 당초 세웠던 계획대로 움직이고는 있다는 이야기지. 적의 침공로가 확인되면 재집결하기로 했으니까.
이것조차도 지켜지지 않았다면··· 정말 소름이 끼친다.
물론 처음부터 괜히 병력을 나눠 두지 않았다면 이 따위 걱정을 할 필요도 없긴 하··· 다시 부정적인 마음의 세계에 빠져들 뻔 했다.
이런, 자칫 다시 불행해질 뻔 했네.
게다가 각 군의 사령관 격인 두 사람이 나를 일단 동격의 사령관으로 존중을 해주고 있다는 이야기잖아.
이것 역시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당연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이기에 기쁜 일이다.
내가 반드시 주도권을 가질 필요는 없다.
라몽과 앙비토 두 사람 모두 엘랑키아 건국 시기부터 명망 높은 8대귀족 중 한 명이다. 벼락출세한 변경 자작가의 대리 사령관과 입장이 다르긴 하지.
이런 점은 나도 다 알고 있고 받아들일 수 있다.
걱정했던 점은 내가 완전히 지휘부에서 배제되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군이 멋대로 움직이는 상황이었지.
말이 안 되지만, 수시로 일어나는 일이다. 동격의 지휘관들이 여럿 있으면 흔히 일어나는 일이니까.
그리고 전투 지휘가 뭐랄까, 어정쩡하게 알고 있는 인간일수록 자기가 잘 할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뭐가 있다고나 할지···.
문외한일수록 말이 많아지고 단언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아니 다 지나고 보면 명확하지. 결과적으로 일어난 일을 확인하고 제반 정보도 모두 알 수 있으니까.
다만 전장에서는 ‘부족한 정보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상하면서 심지어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게 문제니까.
직책만 높은 초보자 사령관을 앉혀 놓으면 왕왕 일어나는 일이고.
일단 라몽 백작은 최소한 이런 사람이 아니다.
세상을 극도로 부정적으로 봐서 그렇지, 잣대 자체는 공정한 괴상한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특정 사람을 편애하는 것 없이, 모두 미워하는 게 아닐까?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그래, 잘 찾아보니 긍정적인 점이 꽤 많네. 세상이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니라니까.
최소한의 몸단장만 마치고 망상을 하고 있으려니, 부지런한 부관 첼레스티나가 방문자가 도착했음을 알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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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죄송합니다, 에트 경. 라몽 백작님께서는 오늘 반드시 뵙고 대화를 나누고자 하셨으나,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저희가 대신 오게 되었습니다.”
예상과 다르게, 나를 찾아온 사람은 라몽 백작이 아니었다. 바로 집사장인 드레피니와, 보병 지휘관인 세샤르 드 레도쿠르 자작이었다.
두 사람은 대단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깊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다.
라몽 백작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다니··· 그를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사람은 타인이 약속을 어기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스스로 약속 어기는 것을 싫어할 테니 말이다.
“그러셨군요··· 혹시 백작께서는 어딘가 편찮으신 겁니까?”
“흐으음··· 그게 말입니다···.”
드레피니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더듬는다.
아무래도 충실한 가신으로서, 주군의 치부를 드러내 말하는 것은 힘들겠지.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가스텔 드 누아 백작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 대충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라몽 백작의 얼굴만 봐도 누가 봐도 그다지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고 말이다.
그래도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가신에게 묻는 질문으로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경솔한 질문이었다고 사과하려 했는데···.
“드레피니 경, 다른 사람은 몰라도 트랑카벨의 사령관께서는 아셔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도움을 청하려면 먼저 솔직하게 사정 설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잠자코 있던 세샤르 드 레도쿠르 자작이 불쑥 끼어들었다.
“으음··· 자작님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
드레피니는 이런 상황이 괴로운지 조금 고민했지만, 세샤르 자작의 의견에 동의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에트 경, 저희 백작님께서는 오랜 지병이 있으십니다. 간혹··· 아주 간혹 발작이 일어납니다만,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실 정도로 고통이 심하신 모양입니다.”
평소보다 약간 느릿하게, 주군의 병증을 설명하는 드레피니의 얼굴이 갑자기 늙어 보인다.
이 충성스러운 노인은 몇 살이나 되었을까. 60? 70?
세샤르가 ‘경’이라는 호칭을 붙이기는 했지만 가문을 소개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귀족 태생은 아닐 것이다.
분명 집사로서 드 레뮤즈 가문을 오래 섬겨왔겠지. 라몽 백작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말이다.
“오늘도 이곳, 트랑카벨 영지군의 병영 근처까지는 오셨으나 어제 밤에 심하게 앓으시다가 지금은 안정되신 상태입니다.”
“걱정이 많이 되시겠습니다.”
“그래서 백작님께서는 저희를 보내시며 원래 직접 말씀하시려던 내용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드레피니는 살짝 고개를 돌려 세샤르를 바라본다. 눈빛을 받은 세샤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설명을 이어간다.
“백작님께서는, 에트 경을 연합군 사령부의 참모장으로 초빙하고자 하십니다.”
“저를요? 연합군의 참모장이라면···.”
“전쟁 중, 사령부에서 총사령관인 라몽 백작 각하를 보좌하시는 일입니다. 백작님 판단에 따라서 일부 지휘권을 이양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유고시에는 백작 각하를 대리하시게··· 되겠지요.”
이건 또 의외의 제안이다. 나보고 중앙 사령부에 들어와서 전투 지휘를 도우라는 것이다.
당장 생각하기에는 괜찮은 제안이다. 직위로 봐도 영전이라 할 수 있고, 전장에서 보다 많은 정보를 얻고 많은 병력을 통제할 수 있으니까.
이런 말은 절대로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지만, 솔직히 라몽 백작이나 앙비토 공작이나 전쟁은 초짜니까.
또한 라몽 백작은 자신이 건강 문제로 원활하게 지휘권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염두에 두고 있는게 아닐까.
만약 솔직하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고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이라면··· 동맹이니 연합군이니 하는 정치적인 문제는 차치하고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분명하다.
왠지 라몽 백작 본인이 왔다면 뻣뻣하게 갑질하는 척 ‘어이, 너 내 참모가 되어라’ 라고 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다만 여기서 걸리는 게 좀 여러가지가 있는데···.
우선 참모장은 지휘권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휘관 계통과 참모 계통을 약간 다른 커리어로 보는 경우도 있고.
내가 참모장으로 가면 트랑카벨 영지군을 누가 지휘하느냐 하는 것이지.
다음으로 내가 그렇게 지휘부의 핵심 위치에 서게 됐을 경우, 직간접적으로 내 지휘를 받아야 할 높으신 양반들이 그걸 받아들이겠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가급적 상세하게, 한편으로는 완곡하게 내 뜻을 전달했다.
하지만 드레피니는 내가 이런 점을 걱정할 것을 예상했는지 미리 답변을 준비해온 것 같았다.
“에트 경께서 데리고 오신 트랑카벨 영지군의 지휘권은 물론 유지됩니다. 거리나 업무 등의 문제로, 궐석 시 부지휘관을 임명하시는 것도 에트 경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이러면 되지 않을까요?”
“예, 뭐··· 그렇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귀족분들이 ‘벼락출세하신 에트 경’의 지휘에 불만을 품을까 하시는 부분은 말입니다···.”
드레피니는 잠시 말을 끊고 생각에 잠긴다.
말이 막혔거나, 할 말이 없는 눈치는 아니다.
오히려 할 말이나 알고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털어놓아야 할지 고민하는 느낌이라고 할지.
“그 점에 대해서, 백작님께서 많은 신경을 쓰고 계셨습니다. 백작님은 전쟁 전문가는 아니시지만 지휘권을 맡기시려면 활약할 바탕 또한 만들어 주어야 한다 생각하시는 분이시거든요.”
그랬구나. 솔직히 전혀 몰랐다.
트랑카벨 가문이 나에게 그랬듯, 권한을 아예 안 주면 모를까, 준다면 권위도 같이 줘야 하는 것이다.
많은 고용주들, 특히 높으신 귀족 나으리들이 권한만 주고 권위는 자신이 틀어쥔 채로 일이 잘 풀리기를 기대하지만 이는 어려운 일이니까.
분명 권한만 위임 받은 이들이 유능하면 유능한대로, 무능하면 무능한대로 현실의 벽에 부닥치다 실패한다.
라몽 백작이 군인은 아니지만 훌륭한 조직자이고 설계자라는 것은 알겠다.
하긴 무능하면 재산을 물려받을 수는 있어도 유지할 수는 없을 테니까.
“최근 에트 경께서는 쿠앙트뢰 마을에서 승리하신 적이 있지요. 그 후로 연합군의 지휘관급 귀족들 사이에서 여론이 갈라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귀족의 여론이요?”
자꾸 생각도 못했던 말들이 나오는구나.
“루젱 드 마로텍스 백작님이 대표적인 ‘친 에트 파’인물입니다. 기억하시지요?”
“네, 쿠앙트뢰에서 함께 싸웠던 연대장이십니다.”
“하하, ‘함께 싸웠다’ 라고요. 그러신 점이 호감을 사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루젱 백작님은 자신과 부하들, 그리고 다른 패잔병들의 목숨을 에트 경이 구해주셨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전하고 다니신 모양입니다.”
원래 서부 출신 귀족들 사이에서 나를 견제하는 움직임이 있었던 모양이다.
기가 막히지만 결투 재판에서 패배한 올리앙 드 브레겔 남작도 내가 음모를 꾸며 날려버렸다는 소문이 있었던 모양이고.
역사와 전통을 가진 귀족님들이 몽니 부리는 거야 익숙한 일이지만.
그래도 남을 음모꾼으로 몰아가는 건 그만 해 줬으면 좋겠다만.
“그래서 라몽 백작님께서는 이전부터 이 제안을 준비하고 계셨지만, 때가 되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서부군의 반발이 심하면 하나 마나한 인사니까요.”
“그렇게까지 준비하고 계셨는지 몰랐습니다. 죄송스럽네요.”
이 사과는 솔직한 내 심경이다.
생각해보면 그 동안 마치 나 혼자 세상 모든 근심을 짊어진 듯, 드 레뮤즈 군이나 서부 군이나 제 역할을 못하니 내가 보완해 줘야 한다고만 생각했었구나.
그 와중에, 다른 이들도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문제를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영역이나 방향은 다르겠지만.
지금은 내 이미지가 많이 개선되었으니, 주변에 설득하기도 좋다 판단한 모양이지.
“그리고 어제 앙비토 공작님께서 찾아오셨었지요. 공식적인 방문은 아니었지 않습니까?”
“생각해보니··· 하인 몇 명만 데리고 오셨었네요. 아니, 바로 어제 일인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허헛, 저희 땅 부근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그 정도는 알아야지요. 앙비토 공작님은 백지와 같은 사람이지 않습니까. 주변 사람들이 에트 경에 대해 좋은 이야기만 하니 만나보러 오신 것이라 합니다.”
확실히 드 레뮤즈 가문의 정보 수집력은 훌륭한 것 같다.
가스텔 드 누아 백작님이 넌지시 이야기해주셨던 내용도 기억난다.
성전군과의 전쟁 중, 전투 결과가 레뮤즈 성에 전해지는 속도가 카르카냑에 전해지는 속도와 엇비슷했다는 이야기다.
정보의 중요성을 안다는 점에서는, 트랑카벨 가문과도 일맥상통한 점이 있네.
“그럼 드 레뮤즈의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제가 라몽 백작님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도 괜찮겠습니까?”
“허어, 에트 경!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시지요. 우리 군에 감히 백작님의 판단을 의심하는 자는 없으니. 만약 있다면 이 세샤르 드 레도쿠르가 가만 두지 않겠소이다!”
“허허허, 믿음직합니다, 세샤르 자작님. 물론입니다, 이 드레피니 역시 미력하나마 돕겠습니다.”
두 충성스러운 가신의 다소 과장된 호언장담을 보면서 나도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드 레뮤즈 군 내부의 분위기는 일치단결한 모양이다.
“그럼 저도 라몽 백작님께서 결정하신 바를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오오,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트 경. 상세한 이야기는 백작님께서 깨어나시면 다시 장소를 잡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결정하고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권한이 커진다.
직위가 높아지고 권위 또한 커진다.
당연히 좋은 일만 생기지는 않겠지.
트랑카벨 파견군에 온전히 신경을 쏟지 못하는 만큼 보완도 필요할 테고.
하지만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상황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사실 라몽 백작과는 손발이 잘 맞는 게 아닐까?
자꾸 망상병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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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멀리 동쪽, 전쟁의 포성이 멈춘지 얼마 지나지 않은 카르카냑에서는 급박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바쁜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트랑카벨 가문의 장녀, 아쥬흐 트랑카벨은 새벽부터 산더미같은 서류를 검토했고, 고용인 두 명의 보고를 들었다.
수많은 글자와 숫자가 의미하는 데이터가 그녀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전쟁을 하는 데에도, 끝내는 데에도, 복구하는 데에도 막대한 금전과 물자가 필요했다.
심지어 트랑카벨 가문은 그 세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가문의 인사나 외교 부분은 할아버지인 아롱드 트랑카벨 자작이 대부분 맡아 하고 있었지만 경제 관련 업무는 아쥬흐의 역할이다.
잠시 섬세한 손가락으로 눈가를 꾹꾹 누르던 그녀는 문득 두 명의 남자를 머리속에 떠올렸다.
지금 아실은 영지군의 주력을 이끌고 블랑독 북쪽 어딘가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룬발트에서 왔던 성전군이 철수하지 않고 국경 밖에 머물며 호시탐탐 침입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성전이 끝났다며 귀환한 자들이 있어 세력이 줄었다고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콘도티에레 에트는 라솔의 침공을 막기 위해 멀리 서쪽으로 파견을 나가 있었다.
보고싶다.
사무치도록 보고싶었다.
일이 많은 건 괜찮다. 이건 다 그 두 사람을 뒷바라지 하기 위한 고생이 아니겠는가.
다만··· 두 사람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다면 일이 더 수월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뭐든 핑계를 대서 출전할 때 따라나설 걸 그랬다.
그런데 따라간다면 둘 중 누구를? 어떤 이유로?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어쩐지 부끄러운 생각이 든 아쥬흐는 망상을 멈추기로 했다.
자신이 아직은 여유가 있는 편인가 보다고 자조하며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의무대장님! 아쥬흐 의무대장님!”
낯익지만, 최근 한동안은 듣지 못했던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트랑카벨 의무대에서 그녀의 부관 역할을 했던 리타 드 리스바쥬 간호사의 목소리였다.
정말 장기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면 대부분 이미 완치되어 병원을 떠났다.
회복기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와서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최근에는 의무대의 보고를 들을 일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직접 찾아왔다는 것은···.
“무슨 일인가요?”
“깨어났어요! 깨어나!”
헐떡대는 리타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트랑카벨 군에 복무하다 전사한 친오빠를 둔 그녀는 상당히 용기있고 의지도 굳은 편이었지만 종종 호들갑을 떨고는 했다.
“그러니까, 누가 말인가요?”
“법황의 검은 성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