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73화 (273/556)

34-2. 명예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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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별로 안 중요한 것 같지만 중요한’ 일을 확인하고 다니던 나는 손님이 찾아왔다는 말에 서둘러 사령부로 돌아왔다.

이런 시기에, 이런 장소에서 손님이라니. 심상치 않은 일이리라 예상은 했지만···.

누군지 들어보니 역시나 더더욱 심상치 않은 일이더라.

사령부에 돌아오니, 왠지 지빌링엔 연대장 에르만 슈피리와, 신뢰하는 부관 첼레스티나가 이 매우 중요한 손님을 접대하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난 두 사람은 상당히 긴장한 모습이고, 또한 피곤해 보인다.

“오셨습니다, 콘도티에레!”

“콘도티에레, 손님이 오셨어요오···.”

“그래 수고했다. 내가 모실게.”

두 사람이 경례하고 떠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딱딱하게 굳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묘하게 기뻐하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단순히 부담스러운 자리를 벗어날 수 있어서 기뻐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뭐가 기쁜 건지 모를 일이다.

“앙비토 드 몽파르지에 공작님, 트랑카벨 자작 가문의 대리 사령관 에트입니다. 인사드립니다.”

아무튼 들어가서 인사를 했으나, 반응이 없다.

앙비토 공작은 불편한 야전 의자에 앉아서는, 다리를 교차하고 두 팔을 늘어뜨린 자세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뭔가 생각을 하는지 ‘응시’라기 보다는 그저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는 말이 맞겠다.

앞에 놓인 차에는 손도 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음? 아, 미안하군. 잠시 생각에 빠져 있었네.”

한참 후에야, 앙비토 공작이 사과한다.

이 사람은 또 왜 이러지. 기존에도 몇 차례 만난 적이 있고 식사를 한 적도 있지만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다.

대부분은 그저 회의, 혹은 식사만 마치고 돌아가버리곤 했었으니까.

이 대화는 왠지 다소 힘들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왜 하는지 모를 굳은 각오를 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저희 트랑카벨 파견군의 병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미리 알지 못해 적절한 환영을 하지 못한 점을 깊이 사과드립니다.”

“귀공은 블랑독에서 온 자들의 사령관이지 않나?”

···대화라는 것은 캐치볼과 같아서 주고 받는 거다. 게다가 갑자기 다른 공을 던지는 건 예의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라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참는다. 그리고 이 정도는 결례 축에도 끼지 못하지 뭐.

다만 상대가 어떤 의도로 질문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 조심스럽게 대답하기로 한다.

“네, 그렇습니다. 트랑카벨 가문에서 군사 관련을 위탁받았으니까요···.”

“역시 그렇군. 그럼 귀공 역시 깃발을 가지고 있는가?”

“깃발··· 말씀이십니까? 무슨 깃발을 말씀하시는 건지···.”

“귀공은 가문의 중요한 신하이지 않은가? 귀공의 주군은 공을 세운 신하에게 깃발을 하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래···. 얼마 전 쿠앙트뢰 마을에서 갑자기 소년 종자들에게 공격당할 뻔 했던 일 이후로 가장 놀랐고, 가장 어이가 없었다.

열심히 안 돌아가는 머리를 짜내서 상대의 의도를 추측해본다.

혹시 무언가의 은유인가? 혹은 귀족들 사이에서 쓰는 특별한 뜻을 가진 단어인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다 포기하고,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대화를 이어가기로 한다. 어쨌든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혹시 군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그것 말이네.”

역시 문자 그대로의 깃발이 맞았다.

“저는 따로 사용하는 표식은 없습니다. 다만, 트랑카벨 가문의 지휘권을 위탁받은 대리 사령관이기에, 전시에는 트랑카벨 가문의 사령기를 함께 위탁받아 사용했습니다.”

“역시 있는 것인가! 귀공의 사령기를 보여줄 수 있는가?”

들으면 들을수록 대체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는 대화이다. 고개를 이리 저리 돌리는 게, 여기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추측하는 모양이다.

아까에 비하면 뭔가 대화의 캐치볼이 적당 적당하게 오가는 것 같기는 한데 말이지.

내가 던졌다가 받는 게 공인지, 사과인지, 진흙 뭉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번에는 지휘권을 분할하여, 저는 일부 파견군만 이끌고 왔기에 여기에는 없습니다. 블랑독에서 트랑카벨 본군을 이끌고 계신 아실 자작님과 함께 하고 있겠지요.”

“그렇군··· 여기에는 없는 것인가···.”

앙비토 공작의 밝아졌던 얼굴이 급속도로 시무룩해진다.

아니 여기 깃발이 없는 게 그렇게나 실망할 일인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저 외람되는 질문일지 모르겠습니다만, 드 몽파르지에 가문의 군대에도 깃발은 있지 않습니까?”

“있기는 하나, 그저 소속을 표시할 뿐이네. 이를 휘날리는 자들의 용맹과 긍지를 표현하도록 배려하지 못해 애석할 뿐이군.”

“네··· 그거 안타까운 일입니다.”

“역시, 귀공은 이해하는구나.”

“그럼요, 이해하고 말고요.”

전혀 이해 못했다.

마치 심통이 난 아이를 달래주듯 무조건 긍정하는 중이다.

다만 그래도 공감하는 상대를 만난 것이 즐거운 것인지, 앙비토 공작의 얼굴에는 살짝 미소가 떠올랐다.

지금 봐도 참 멀끔하게 ‘귀족적으로’ 잘생긴 얼굴이다. 군살 없이 훤칠한 키에 하얀 얼굴, 다소 왜소해 보이기는 하지만 여자에게 인기 많을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말은 지금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절반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

“방금 여기서 나간 귀공의 부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네.”

“네네, 좋은 부하들입니다.”

에르만과 첼레스티나 이야기겠지. 다행히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다.

“대화를 나누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기도 했지만, 또한 도중에 한가지 궁금한 점이 떠올랐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그들이 말한 내용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네. 하지만 분명, 그 자들은 귀공의 가신은 아닌 것으로 들었네.”

“네, 그렇습니다.”

“봉토나 서약으로 묶인 관계도 아니고. 또한 금전 계약으로 묶였다고는 하나, 귀공과의 직접적인 고용관계는 아니지 않은가?”

“정확하게 이해하고 계십니다.”

다음에 에르만과 첼레스티나를 만나면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해야겠다. 이 난해한 공작님을 완벽하게 이해시켰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겠지. 나는 다음 질문을 기다린다.

“그런데도 어째서, 그 두 사람은 그대에게 목숨을 바친다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할 수 있는가?”

“어···.”

또 대답하기 난해한 질문이다.

아니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일단 그 두 사람과는 상당히 오래, 특히 첼레스티나와는 정말 오래 알고 지내기는 했지만 내가 생각을 꺼내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하··· 그게 참, 뭐랄까요.”

나는 본문을 세상에서 가장 신빙성이 없어보이게 만드는 마법의 말머리를 넣고야 말았다.

“아무래도 용병들의 관계라는 것이, 돈이 묶인 사업적인 관계이다 보니 다소 포장이나 윤색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어떤 경우인가?”

“예를 들자면··· 반드시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마치 그런 것처럼 과장해서 말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죠.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정말로 목숨이 아깝지 않다는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흐음···.”

통했나? 앙비토는 단정하게 정돈된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귀공의 말은, 그 두 사람이 나에게 거짓을 말하였다 이 말인가?”

“그, 그건 아니지요!”

아니! 아니아니!

논리가 왜 그 쪽으로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살짝 울화통이 터졌지만 표출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감쪽같이 속았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듣기에는 진담으로 들렸네. 만약 그들의 충심이 진담이라면, 이를 의심하는 것은 섬김을 받는 자로서 너무한 처사는 아닌가?”

“...온당하신 말씀입니다.”

갈수록 태산이고 할말을 잃었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자칫하면 누구보다 충실한 두 사람, 연대장과 부관의 충성심을 거짓일 수도 있다며 부정한 꼴이 아닌가.

내 의도야 어떻든 못된 상관이 될 뻔 했지.

일단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이 공작은 겸양이나 과장의 언어, 예절의 언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통상 ‘행간’이라 표현하는 부분 말이다.

오로지 문자 그대로만 해석을 하니, 나도 거기에 맞춰서 말을 주고 받아야 한다.

다루기 어려운 사람인데 계급까지 높으니, 말을 조심해야겠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일부러 비꼬고 행간에 함정을 심어서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행동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그런 기미가 보였다면 나도 이렇게 얌전히 듣고만 있지는 않았겠지.

이 아마도 엘랑키아 전체에서 고귀하기로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히지 않을까 싶은 대귀족 나으리는 최소한 악의를 가지고 나를 대하지는 않는다.

···대체 올리앙 드 브레겔 남작은 어떻게 된 거지? 당연히 수하의 언행은 주군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 생각했었는데···.

내가 오해를 했던 건가?

아무튼, 공작은 나를 더 나무라지는 않았다. 마치 대화를 시작하기 전처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을 뿐.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하나 싶었을 때 입을 연다.

“귀공, 나는 아무것도 이룬 적이 없는 인간이라네.”

“...?”

이건 또 갑자기 까다로운 공이다.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뭐가 맞는 코스지? 갑작스러운 자극에 혹사당한 뇌가 사실 캐치볼은 극한의 스포츠가 아닐까 하는 망상까지 도출해냈다.

하지만 다행히, 내가 반응하기 전에 공작은 말을 이어간다.

“내 아버님, 선대 공작께서 항상 말씀하시고는 했네.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다.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말아라’ 라고 말일세.”

“...!”

내가 이해한 게 맞나? 이 귀족 도련님이 아버지에게 심한 말을 들었다고 말한 게 맞겠지?

“과연 아버님의 말씀은 옳앗네.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무능한 인간이었지. 무능한 인간이니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해볼까 싶어서 최고 수준의 교사들을 불러 배우려 노력했었다만.”

“그, 그러셨습니까.”

“허나 무엇 하나 제대로 된 수준에 이른 것은 없었네. 학문이나 무예와 같은 귀족의 소양도, 낚시나 매사냥과 같은 유희도, 악기 연주나 작곡, 그림과 같은 예술조차도 말이지.”

무거운 말이다.

당연히 외모나 그 동안 내가 당한 일만 생각하고 멋대로 살아가는 인간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쓸모 없는 인간으로, 그나마 아버님이나 가문에 폐를 끼치지는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살아보려 하였으나 가문의 의무가 나를 부르고야 말았구나···.”

탄식하듯 말하는 앙비토 공작의 표정은 정말로 어두워 보였다.

···고백하자면 이런 자기파괴적인 언사를 하는 귀족은 주디칼리 시절에 몇 명 보았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거짓이었다.

그저 고뇌하는 자신에 취한, 과대망상증 환자들이었다는 말이지.

그런데 앙비토 공작은 좀 다르다. 정말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나? 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조금 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더욱 그럴지도.

설마 이것 마저도 나를 놀리기 위해서 하는 거라면, 꼼짝없이 속을 수 밖에 없겠거니 싶다.

분명 내가 알기로, 앙비토 공작은 아버지인 선대 공작의 눈 밖에 난 후계자였다가 선대가 급사하는 바람에 겨우 몇달 전 작위를 이었다고 했지.

뭐,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으니까. 배부른 투정을 한다고 고깝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는 재난이 분명하다. 분명 내가 이리 되는 것을 원치 않는 만큼, 귀공 또한 원하지 않았겠지.”

“저는 딱히 그런 것은···.”

뭐 앙비토 공작이란 사람을 알아야 원하든 말든 하니까.

“아무것도 할 줄 몰라 슬프거니와, 그럼에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더욱 슬프구나··· 그러니 귀공에게 부담을 안길 수 밖에 없군.”

솔직히 제대로 이해했는지 자신이 없다. 다만 완곡하게나마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생각해도 될까?

공작은 무언가 대답을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거 식은땀이 나는데 갑자기.

“같은 목적을 가진 일군의 장으로서 주제 넘는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연합군의 승리를 위해 견마지로를 다 하겠습니다.”

한참만에 짜낸 대답이다. 이게 정답이 맞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조심스럽게 올려다 본 앙비토 공작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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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비토 공작은 수하들과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주변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치장한 무리이다. 그러나 으레 따를 법한 풍악은 커녕, 조용한 대화 소리 조차도 들리지 않는 기이한 모습이었다.

앞서 가는 주인의 생각은 모르겠으나 뒤따르는 수하들은 그 특이한 분위기에 숨이 막히는 눈치였다.

그래서인지,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자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다.

“오늘 목적하신 바는 잘 이루셨는지요?”

“음? 물론이네. 아주 ‘명확’하게 내 의지를 전달하였으니.”

“오오, 정말 다행입니다. 트랑카벨의 용병들은 제대로 못 배워 다소 무례하기는 하나, 게중에서도 나은 축이라지요.”

주군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군의 기분이 좋다’라는 것을 확인한 수하들은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훨씬 좋아진다.

좀처럼 자신의 의사 표출을 잘 하지 않는 주군이다.

비록 귀족이면서도 대단히 천한 행동을 해, 가문에 폐를 끼쳤던 올리앙 드 브레겔 남작이라 해도 유일하게 마음이 통하는 인간이기에 곁에 두었었다.

그를 잃은 후, 항상 침울해하던 앙비토 공작이 처음으로 기분이 좋아 보인다.

수하들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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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힘들다.”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어깨를 두드렸다.

앙비토 공작과의 뭔가 목적 모를 회담은 그다지 길지 않았으나 진이 빠졌다.

대화를 많이 하기는 했으나, 내용까지 제대로 통했는지는 모르겠다.

무엇 하나 ‘명확’하게 의사를 주고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까놓고 그냥 자기 생각을 말해 주었으면 좋을 텐데··· 차라리 측근인 올리앙 남작을 실각시킨 것을 원망이라도 하던가···.

그나마 이쪽에 악의를 가지지는 않았다고 해석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잠시 몸 여기저기를 비틀며 기지개를 펴던 나에게 첼레스티나가 찾아왔다.

“콘도티에레? 전갈이 왔어요.”

“어디에서?”

“라몽 드 레뮤즈 백작님께서 보내신 전갈이네요.”

“아 그래? 무슨 내용이지?”

“내일 아침 일찍 방문하겠다. 이상이에요오···.”

“...뭐?”

···이 넓고 넓은 엘랑키아 남부에는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사람이 두 명 있다.

그 중 한 명과 방금 대화 했고, 나머지 한 명이 내일 아침에 만나자고 연락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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