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70화 (270/556)

33-6. 쿠앙트뢰 조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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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겻다!”

“만세에! 수고했어!”

전투 개시의 신호탄을 멋지게 쏘았으나, 전투 후반부에는 관전자가 되어버렸던 포수들이 대열을 정돈해 귀환하는 기병들에게 환호한다.

적의 중앙이 사실상 붕괴되어 허리가 끊긴 직후, 적은 허무할 정도로 쏜살같이 전투를 포기하고 물러났다.

그 때문인지, 훌륭하게 전투를 이끌고 귀환해 보고하는 제31 몽세나 정찰 연대의 지휘관들의 얼굴에서는 어딘가 불만스러운 표정이 보인다.

적의 얄팍하디 얄팍한 방어선을 제대로 돌파하여 드디어 최종 승리를 거두나 싶었는데 적이 그대로 도망쳐 버렸으니.

무너진 아군 일부를 그대로 팽개치듯 도망쳐 버린 것이라, 추격할 틈도 없었다.

그러니 우리 훌륭한 승리자들이 어딘가 불만스럽고 맥이 빠진 느낌을 받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이는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결사의 각오와는 정 반대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지휘 방식에 대해서는 나도 잠시 잊고 있었다.

뜨내기 용병들을 희생물로 내주고, 용병단의 핵심 세력을 지키는 움직임이다.

비열하다고 해야 할지, 효율적이라고 해야 할지.

부대가 하나로 똘똘 뭉쳐있는 상태에서 잘못 패배하면, 보통 그 부대는 핵심 기능을 잃어버리고 와해된다.

그러나 이처럼 일부 개인 용병들만 희생시키고 도망친다면 용병단 자체는 살아남는다.

당연히 언제든지 자신들도 버려질 수 있다 생각한 용병들이 떠나고, 지휘부가 악평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이런 기마 용병들의 대부분은 ‘말을 탈 줄 알고, 말을 가졌다는 장점밖에 없는’ 불한당들이 대부분이다.

떠나더라도 갈 곳이 마땅치 않다는 말이지. 이런 집단이니 가능한 꼬리 자르기 전술이다.

만약에 내가 지난 전쟁에서 단 한 번만 이런 전술을 썼어도, 트랑카벨 군과 블랑독 연맹군은 절대로 하나로 뭉치지 못했을 것이다.

참 기이한 일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모양새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은데, 결과와 평가는 이리도 다르게 나오다니.

어쨌든 나는 이런 자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분명 승리와 자신들의 이득을 저울질 할 때가 왔을 때, 망설임 없이 후자를 택해버릴 자들이니까.

그래도 뭐, 이기는 동안, 유리한 동안에는 아주 싼 값으로 동원할 수 있는 기병대니까 이렇게 부담없이 외부로 돌리는 것이겠지.

분명 라솔 본군에는 제대로 된 중기병과 경기병들로 이루어진 부대가 있으리라.

“힘든 전투,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무언가 해 보기도 전에 전투가 끝났습니다. 엘리스토프 부연대장의 활약이 컸습니다.”

연대장 로베르 드 나뵈프와 치하와 겸양을 주고 받는다.

휘하 중대장들 역시 늠름한 모습으로 내 인사를 받는다.

이들은 말하자면 오늘 싸웠던 상대와는 정 반대에 위치하는 이들이다. 편성이나, 출신이나 말이다.

연대장부터 해서, 중대장들은 모두 블랑독의 중하급 귀족이나 향사, 자유민 출신이다.

병사들도 모두 블랑독의 산악도시 몽세나나, 그 주변에서 태어난 이들이다. 이들에게 패배와 도주는 명예를 잃기에 앞서 고향을 잃는 일이지.

동료들도 전부 몇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들이니까, 그런 유대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이들을 굳건히 전장에 서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적의 재빠른 도주는 일종의 비대칭 전력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들은 당장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어쨌든 매우 잘했다.

자칫하면 큰 희생이 날 수도 있었던 싸움을 훌륭하게 마무리지었다.

이제 저 보병 부대, 마로텍스 백작령 군대의 지휘관을 만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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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소! 정말 고맙소!”

루젱 드 마로텍스 백작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렇게 재빠른 기병대는 엘랑키아 천지에 어디에도 없을 것이오! 그런 교묘한 기동이라니, 실로 감탄했소이다!”

억세고 커다란 손으로 내 팔을 붙잡고 마구 힘드는데, 손목이 부러지는 줄 알았다. 하긴, 평생 냉병기를 들고 휘두르며 싸워온 기사들의 악력이야 강한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이 겉으로만 봐도 베테랑 군인 백작은 후방에서 지휘만 하는 타입은 절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끊어지기 직전인 내 손목이 증명하고 있으니까.

“레뮤즈 동쪽의 블랑독에서 온 분들이라 들었소! 그대들과 같은 든든한 동지들과 나란히 싸울 수 있다는 것은 실로 주신께서 안배하심이구려!”

루젱 백작 개인에게야 악감정은 없지만, 역시 이런 말을 들으면 쓴웃음을 짓게 된다.

이단으로 몰려 토벌과 척살의 대상이 되고, 법황청과 온 대륙의 공적이 된 것이 바로 얼마 전 아닌가. 아니, 약간은 지금도 현재 진행일지도 모르지.

그런데 지금은 드 레뮤즈 백작령도 파문 확정 상태이다. 뭐 거기 조력해서 싸우는 지원 가문들, 마로텍스 가문 역시 파문 위험에 처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인간 개인, 혹은 집단간의 관계는 이리도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자네도 잘 했네! 이렇게 지원군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 했으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백작님!”

옆에 서 있던 젊은 기사, 루바르 드 카스부드 역시 루젱 백작에게 극찬을 받는다.

그의 주변에는 소년 종자들 역시 서 있었는데, 모두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는, 아주 중요한 경험을 쌓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로베르 연대장의 본대 뒤를 따라서 함께 돌격했었다.

일부는 실제로 퇴각하려는 적과 교전을 벌이기도 한 모양이다. 그들로서는 귀중한 첫 실전 경험을 쌓은 것이니, 종자로서 좋아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들이 앞으로도 성장하고, 건강하기를 빈다.

아무튼 지금 우리는 협력관계이다. 그러니 일부러 불리한 싸움도 도와줬잖아.

“크게 승리했는데 적을 얼마나 처치한 거요? 오백 명? 천 명?”

천에는 많이 못 미치고, 오백은 아마 넘었겠지. 그리고 저런 식으로 지리멸렬하게 도망쳤으니 비전투 손실도 제법 있었겟지만···.

아니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루젱 백작님, 죄송스럽지만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가급적 빨리 북쪽으로 후퇴하시어 아군 주력과 합류하셔야 합니다.”

“어이쿠, 내 정신이. 그런 상황이었지.”

“불필요한 것은 최대한 버리고, 빠르게 이동하셔야 합니다. 저희 제31 정찰 연대가 호위하며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말이지···.”

지금까지 한결같이 호쾌하던 루젱이 갑작스럽게 난색을 표한다. 무슨 일이지.

“남쪽에서 처음 아군이 기습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주변에서 생존자들을 최대한 모아 퇴각했소이다. 제대로 통제가 되는 부대는 내 연대밖에 없었으니까···.”

“아 그런 일이 있었나요? 잘 하셨습니다. 그 생존자들은 어디에 있나요?”

“숲 속에서, 지금 나오고 있소이다.”

“음···.”

나는 당황스러움으로 인한 신음이 나오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그래도 눈이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겠지.

‘생존자’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방금 마로텍스 연대가 숲을 등지고 결사적으로 저항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숲에서 나오는 초라한 무리, 말 그대로 패잔병들의 숫자는 상당히 많았으며, 그나마도 끝이 없었다.

“...숫자가 몇이나 됩니까, 백작님?”

“나도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대략 1200명 정도가 아닐까 싶구만.”

“부상자가 많습니까?”

“보시다시피··· 그렇소.”

이래서야··· 후퇴가 늦어져 루바르 경의 전위 정찰대와 약속이 어긋난 것도 이해가 간다.

상당수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고, 멀쩡히 살아남은 자들도 혼이 빠진 모습이다.

그나마 대부분은 무기마저 버리고 왔는지 맨손이다. 대체 이스키비르 강 북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백작님?”

“내가 보고 받은 것만 최소 네 군데에서 교전이 벌어졌소. 그것도 도강을 막을 틈도 없이, 라솔 놈들 상당수가 이미 강을 건너와 있었고.”

으··· 이건 내 예상보다도 훨씬 최악의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전령도 못 보내고, 봉화에 불도 못 붙였겠지.

내 얼굴이 흐려졌는지, 루젱 백작 역시 표정이 안좋아진다.

“어떤 부대는, 강변의 아군을 도우러 달려가다가 미리 매복한 라솔 놈들에게 기습당했다고 하더구려···. 결국 크고 작은 교전은 전부 패배한 모양이고.”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아직 적도 산개된 상황이라 다행이었지, 주변에서 적들을 격퇴하고 쫓기던 패잔병들을 불러 모았지. 그리고 후퇴를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렀소이다.”

“네··· 어려운 후퇴길이었겠네요.”

휴, 감탄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고결한 일이기도 하고.

드 마로텍스 영지군과 합치면, 거의 3천 명은 넘지 않을까 싶은 숫자이다.

이들을 잘 살려서 돌아가면 단순 전력으로만 따져도 큰 이득일 것이다. 거의 2개 연대를 편성할 수 있는 전력이니까.

그리고 아예 몰랐으면 모를까, 이렇게 엮인 시점에서 포기하고 빠지는 선택지는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

여기서 버리고 도망쳤다가는 서부 귀족들과의 협력은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 없겠지.

반대로 어떻게든 무사히 살려서 돌아간다면··· 아무리 오만한 귀족들이라 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이 또한 장기적으로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서둘러 행군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본대로 전령을 보내고 부족한 물자를 구할 수 있나 알아봐야겠습니다.”

“오오, 고맙소. 그깟 라솔 놈들, 끝까지 뿌리치며 함께 가 봅시다!”

“그래야지요.”

머리속으로 몇 가지 경우의 수를 돌려보고, 자잘한 계산을 몇 개 돌려본다.

이런 젠장··· 뭘 해도 빠듯하고, 뭘 해도 위기다. 발버둥이 말 그대로 최후의 발버둥으로 끝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계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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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솔 왕국 이스키비르 하류 주둔군, 코루냐 연대는 엘랑키아의 작은 마을을 점령한 상태였다.

아마도 직전까지 엘랑키아 수비대가 근거지로 사용했던 것 같은 이 마을은 완전히 비어있었다.

주민들은 이미 피난을 간 모양이고, 여기 머물렀던 엘랑키아 군은 어디 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어쩌면 어제 벌어졌던 전투에서 전멸했을지도 모르고.

“서쪽 지구에서 엘랑키아 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전멸했거나, 어디로 숨은 것 같습니다.”

“좋아, 다음은 후속 아군에게 맡기자. 10분 후, 행군 준비를 마치도록!”

“알겠습니다, 연대장!”

마티오 가엘 데 프라가도는 코루냐 연대의 연대장이다. 하류 주둔군 4개 연대 중 가장 어린 마티오에게 이번 전투는 연대장이 된 후 첫 출전이다.

연대장으로서는 첫 출전이지만, 경쟁이 심한 정예부대인 하류 주둔군에서 특출나게 승진할 만큼 실력과 경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 덕택에, 하류 주둔군 사령관인 퀸토 로르카 데 페니베라다 변경백은 마티오의 연대가 선봉을 맡도록 허락했다.

검의 대리인을 수호했던 4인의 검천사 자매 중, 코루냐는 막내이다.

네 개의 뿔을 가졌으며 가장 호전적이고 용맹했다는 수호천사가, 마티오는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 그 이름에 먹칠을 하는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수호천사 덕분인지 전초전은 연전연승이었다.

머저리같은 엘랑키아 놈들은 기껏 강변에 병력을 배치하고는 제대로 감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예상보다도 훨씬 쉽게, 자신에게 주어진 두 곳의 도하 지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

모두 여섯 곳의 동시 도하작전은, 그 중 최소 한 곳, 최대 세 곳은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한 도박적인 공격이었다.

만약에, 네 곳 이상이 실패한다면 작전 자체를 취소하고 철수하기로 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너무도 손쉽게, 모든 구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나마 덩어리가 큰 부대 하나가 끈질기게 저항을 해서 귀찮았는데, 그나마도 북쪽으로 쫓아보냈으니, 당장은 주변에 아무 위협이 없었다.

“할콘 남작의 부대가 돌아왔습니다, 연대장!”

“뭘 하다 이제야 돌아온 거지?”

마티오는 가볍게 짜증을 냈다. 진짜 남작인지도 확실치 않은 불한당이 이끄는 이 용병 기마대는 정말 죽어라 말을 듣지 않았다.

그나마 실력은 확실하다고 하고, 선봉 부대 입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기병 부대라 참고 있었지만 갈수록 도에 지나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바로 얼마 전에도 멋대로 적을 잡아오겠다며 추격에 나서지 않았던가.

이대로 놔두면 괜히 주변 마을을 약탈할 것 같아서 사후 승인을 해주기는 했다면 역시 찝찝했다.

기왕 약탈할 거라면 적 보급품이나 약탈하는게 좋지. 겸사겸사 적의 전력도 줄이면 좋고.

듣기로는 들개처럼 적의 주변을 맴돌면서 약화시키고, 낙오자가 생기게 해 조금씩 갉아먹는 악랄한 전술에 익숙하다고 한다.

“지, 지금 도착했습니다만···.”

“무슨 일인가?”

“병력이 많이 줄었습니다··· 적과 교전하다 패배한 것은 아닐지···.”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마티오는 혀를 찼다. 확실히, 2천 명이 넘는 꽤 큰 세력을 자랑했던 할콘 남작의 기마대는 훨씬 초라해진 꼴로 귀환했다.

전투에서 패배하고 도망친 부대 특유의 의기소침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완전히 패배해서 이리저리 도망다니던 엘랑키아 패잔병들을 쥐 잡듯이 잡아 죽이며 기세등등하던 게 생각나는 데 말이다.

하여간 이런 놈들과는 함께 싸우기 싫었지만, 제대로 된 기병대를 기르기에는 ‘예산 문제’가 심각했다.

게다가 주변의 라솔 영주들은 막대한 하류 주둔군의 유지 비용, 즉 방패 세를 징수당하고 있는 입장이기에 기병까지 소집했다가는 반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이런 자들과 함께 하고 있었는데, 아니 전쟁은 이제 막 시작했는데 전력을 반이나 까먹다니.

그보다, 주변에 그렇게 위협적인 적이 남아 있었던 건가?

이건 자세한 보고를 들어보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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