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68화 (268/556)

33-4. 쿠앙트뢰 조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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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가벼운 갑옷과 소형 방패, 아주 가끔 권총과 화승총, 던질 수도 있는 짧은 창 따위로 무장한 경기병 무리다.

그에 비해서, 숲을 등지고 몰린 마로텍스 백작의 보병 부대는 지금 상황이야 어떻든, 흉갑을 걸친 창병과 총병이라는 구색은 갖추고 있었다.

기동성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의 점에서는 절대로 밀릴 수가 없는 차이다.

투구와 흉갑을 걸친 창병이 나란히 서서 한 걸음씩 전진하기만 해도, 화기로 무장하지 않은 기병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투창을 던진다고 해도 각도가 아주 잘 맞지 않는 한 단단한 흉갑이나 투구에 튕겨 나올 가능성이 높고. 어지러이 얽힌 빽빽한 창벽 자체에 걸려 위력이 반감되는 경우도 많으니.

즉 정면에서 보이는 면적의 70퍼센트 이상이 보호가 된다는 말이다. 그에 비해서 기병이 어물쩡거리다 근거리에 붙게 되면 바로 끌려 내려오겠지.

훨씬 난투전에 익숙하고 무장도 잘 된 성전군의 포악한 전투 성직자들이나 노련한 종교 기사들도 마르사코르 언덕에서 수도 없이 죽임 당하지 않았던가.

즉, 제대로 붙어서 싸운다면 절대로 질 수 없는 상성 관계이다.

그런데 전투 초장부터 주도권을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저렇게 밀리고 있는 것이다. 아마 경험 문제도 크겠지.

암만 기동력으로 다른 난점을 커버한다고 해도, 서로 대군이 전선을 이루어 밀고 당기는 싸움에서는 경기병에게 분명한 한계가 있다.

다른 병종 아군의 지원 없이는 자력으로는 전선을 만들거나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미 패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습당했을테고, 갉아먹히듯 동료들을 잃으면서 마음이 꺾인 것이겠지.

마음이 꺾인 병사는 자신이 가진 힘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발휘하지 못한다.

상대에 대한 공포가 너무 커져서 상대의 역량을 과대평가하고 만다.

그러니까 아주 조금, 옆에서 도와주기만 해도 마로텍스 백작의 부대는 홀로 설 수 있을 것이다. 나름 전쟁 경험도 있는 사람이라지 않나.

마침 삼면을 포위하고 있는 적 기병대는 멋대로 신을 내고 있었다.

라솔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런 숫자만 채운 경기병들은 전문성이 없는 오합지졸 약탈자일 가능성이 높다.

제대로 된 기마 전투술은 없는 채로, 그럭저럭 말을 탈 줄은 알고 자기 소유의 말도 있는 어중이떠중이들을 모은 부대란 말이다.

단기간에 기마 용병을 모으기에 가격대 성능비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물론 질은 형편없지만, 그래도 기병이니까.

반대로 용병 개인 입장에서도 특별한 전문성이 필요 없고 덜 위험한 편이며, 약탈의 기회는 많으므로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

적지의 민간인이나 전열이 무너진 도망병들 상대로는 깡패짓을 하다가, 제대로 무장한 적 상대로는 한 없이 작아지는 그런 모습.

참고로 프리스마라 연대는 거의 반드시 전장에 있다라고 해도 좋을 이런 경기병대를 카운터치는 전술로 성장해온 부대이다.

전장에서 자주 보이는 짜증나는 존재지만, 우리 주력 병력으로 맞서기에는 곤란한 적의 카운터 카드이니 나름 수요가 있다 이 말이지.

아무튼 저런 놈들은 익숙하다. 그리고 명색이 동맹군이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펑! 펑! 펑! 퍼엉!

순차적으로 네 발의 가죽포가 불을 뿜었다.

최대한 적에게서 움직임을 숨기기 위해, 그나마 굴곡 있는 사면 반대편에서 장전까지 마친 후, 후다닥 밀고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포병 두 명이 다룰 수 있는 가벼운 포 라는 장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재장전! 냉각이 끝나는 대로 발사해!”

“옛, 콘도티에레!”

오늘은 냉각술, 정확히는 ‘열을 옮기는 기프트’를 사용하는 트랑카벨 병사 레미 라타니에가 활약해주고 있다.

제한된 능력이니 당연히 대구경 포에 쓰는 게 중요하지만, 지금은 가죽포밖에 없으니까.

참, 이것도 연사가 힘들어서 실패한 병기나 다름 없는데 기프트와 궁합이 잘 맞아서 맹활약이다. 시험삼아 4문 만들어둔 것을 마르고 닳도록 잘도 쓰고 있다.

그렇게 쏘아진 4발의 포탄은 모두 적진 안에 떨어지기는 했다.

산개대형으로 눈 앞의 초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니 어딘가에 맞기야 했겠지. 정말 재수없는 몇 놈은 눈 먼 포탄에 치여 죽기도 했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목표는 적을 당황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 목적은 성대하게 성공했다. 사방을 살피던 적은 언덕 능선 너머로 비죽 튀어나은 작은 가죽포를 발견하지는 못했으나···.

뒤이어 피어오르는 흙먼지와 총기병대의 전진을 보지 못할 수는 없었겠지.

로베르 드 나뵈프 연대장이 직접 이끄는 2개 연대의 총기병 중대를 선두로, 그 측후방을 용기병들이 지키는 포진이다.

온 몸을 갑주로 두르고 두 자루의 권총으로 무장한 총기병들은 제대로 기병전 훈련을 받지 못한 경기병들에게 재앙이나 다름 없다.

또한 아무리 전문 백병전 요원은 아닐지라도, 숱하게 전투에 참여했던 용기병들 역시 만만치 않다.

일단 중거리 화력 면에서 비교도 안 되니까 붙는 것도 일이고 말이다.

“마로텍스 백작님을 구해주세요!”

“엘랑키아 만세! 드 레뮤즈 만세!”

이쪽 언덕에 남은 소년 종자들이 펄쩍 펄쩍 뛰며 외쳐대고 있었다. 아 그러니까 우리는 라몽 백작 부하는 아니라니까.

소년들의 응원이 들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로베르의 돌격대는 위풍당당하게 적을 향해 나아간다.

자, 이쪽에서는 소리나는 화살을 쏘았다.

목적은 물론 적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다.

샌드백이나 다름없는 마로텍스 백작의 대응 못하는 부대를 일방적으로 패다가 갑자기 우리가 나타난 것이니까.

적군은 자기들끼리 뭔가 의견을 나누는가 싶더니, 커다란 세 개의 원진을 만들었다.

역시, 한 명의 지휘관 아래에 배속된 부대가 아니라, 여러 명의 대장들이 지분을 나눈 부대다.

···한마디로 오합지졸 중의 오합지졸이란 말이지.

그래도 숫자는 2천 명 가까이 된다. 지금 정면에서 당당하게 도전하고 있는 로베르 경의 돌격대만으로 상대하기는 부담스러운 숫자이다.

펑, 퍼벙! 꽈앙!

재장전을 마친 포대가 다시 불을 뿜었다.

이번에는 유효타가 꽤 나왔다! 그 사이에 적이 좀 더 뭉쳤기 때문이다.

“이런 시버럴! 계속 날아오잖아!”

“흐아악! 맞았어! 내 다리!”

“가만히 있어! 어차피 섞이면 못 쏜다!”

느슨한 기병 원진을 네 발의 포탄이 훑고 지나가며 사상자를 냈고, 맞은 건지 그냥 놀란 건지 말에서 떨어지는 모습도 보인다.

여러모로 기마술에 익숙한 모습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괜찮은 징조인 것 같기는 한데.

적의 느슨한 부대 중 두 개는 로베르의 돌격대를 상대하고, 나머지 하나는 망신창이가 된 보병 부대를 마저 패려는 모습이다.

거리가 멀어 의사소통이 잘 안 될 텐데도, 제법 역할 분담이 괜찮다.

부하들이 오합지졸이라는 점과는 다르게, 지휘관급들은 나름 경험이 좀 있어 보인다. 어쩌면 서로 손발을 오래 맞춰온 협력자들일지도 모르지.

어쨌든 우리가 할 일은 바뀌지 않는다.

“적이 포위하려나?”

“아아··· 아! 어떡하지?”

소년 종자들이 호들갑떠는 소리가 들린다.

좌우로 넓게 퍼진 적들이 로베르 경의 부대를 반포위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 이대로 로베르 경의 부대가 전진을 계속 한다면 반드시 반포위에 당하고야 말겠지.

중거리에서는 권총의 화력에 밀리고, 붙어도 중기병과의 백병전에 밀릴 것으로 판단한 것인가.

그러면 원거리에서 사격만 한 번 견디면 백병전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용기병들을 노리려는 것이겠지.

나름 괜찮은 판단이다. 항상 적의 약점만 찾아 물어뜯는 들개처럼 살아온 녀석일 테니까.

하지만 너희는 어쨌거나 낚였다.

“히야아아아아!”

“돌격! 돌격!”

적 세 부대 중 둘은 이쪽을, 하나는 보병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 완전한 사각에서, 남겨둔 마지막 카드가 뒤집히며 모습을 드러낸다.

제31 몽세나 정찰 연대의 나머지, 3개 중대의 추격 기병들이 무기를 치켜들고 함성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뭐야? 어디서 온 거야!”

“적이다! 적이다!”

그나마 질서를 좀 찾았나 싶었던 적의 전열이 다시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적의 의문에 대해 답을 말하자면, 처음부터 저기에 가져다 놨었다.

견인 가죽포 포병대가 포격 준비를 하는 동안. 평지의 굴곡을 최대한 이용해서, 혹시라도 너머로 보일까, 혹은 먼지가 심하게 일까 봐 말에서 내려 고삐를 끌면서.

반쯤은 도박이었다. 뭐 들킨다고 해도 그대로 싸워 버리면 그만이란 생각도 있었고.

제대로 된 정규 기병대였다면, 아니 기병이 아니라 보병이라도 이런 얄팍한 기습 따위에는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부대가 장교를 많이 두는 이유는 물론 지휘 문제도 있지만, 접적하지 않은 방향에서는 정찰과 정보 수집도 아주 중요한 임무라서 그렇다.

하지만 이 오합지졸은 당장 싸우는 방향에만 집중을 한 것이고, 별 효과는 없었지만 대포까지 쏴대며 시선을 끌었던 작전은 딱 들어맞았다.

흔해빠진 마술 트릭이나 비슷하다. 사람은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면 당연히 없을 것으로 생각하니까.

추격기병들은 마로텍스 백작의 부대를 견제하고 있던 적군의 후방을 덮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돌겨억! 으아아아아아!”

“트랑카벨! 트랑카베엘!”

타타탕! 탕탕!

따다다당!

속도를 올려 돌진하는 추격기병들의 전방에서 총성과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고, 당황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전방의 적 기병대가 우수수 말에서 떨어진다.

그대로 양측의 선두가 뒤섞여 백병전이 벌어진다.

바로 이어서 돌입하는 후열의 추격기병들도 마찬가지로 총탄을 발사한다. 전열에 의해 고착되었던 적들이 또 다시 상당수 쓰러진다.

적이 창을 가졌기에 다소 걱정하긴 했다. 일단 백병전에 돌입만 할 수 있으면 기병창은 언제나 위력을 발휘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투창을 던질 틈은 없었고 짤막하고 가벼운 창은 일제사격부터 뿌리고 돌입하는 추격기병들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역시 백병전에서 장전된 총은 가장 든든한 친구이다. 역설 같지만 역설이 아니다. 명중률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총구를 상대에게 대고 쏘는 것이니까.

예상대로, 적은 제대로 된 백병전을 수행할 능력이 없었다. 아마 오합지졸이니까, 그러고 싶은 의사도 없겠지.

적이 조금만 강해도 꽁무니를 빼고 도망치는 놈들이니까.

다만 이번에는 안타깝게도, 그 도망칠 방향에 방금 전까지 두드려 맞으며 이를 갈던 엘랑키아 보병대가 있었다.

“흐아아아악!”

슬픈 말의 울음소리가 기수의 비명소리와 함께 전장에 울린다. 당황해서 반사적으로 반대로 도망치던 라솔 기병의 말이 그대로 창날의 벽에 뛰어 들었던 것이다.

당연히 말은 고슴도치처럼 창에 찔렸고, 기수는 그대로 날아올랐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다지 유쾌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원 온 ‘기병대’의 갑작스러운 등장, 그리고 일방적으로 자신들을 괴롭히던 적군의 일부를 그대로 밀어 붙이는 것을 보았다.

방금까지 두려워서 마주 보는 것조차 두려웠던 적의 기병들이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엘랑키아 보병들의 바닥까지 떨어져 있던 자신감과 투쟁심에 불을 붙였다.

“지원군에 맞춰 적을 포위해!”

“아군 안 맞게 조심하고! 사격에 주의해!”

“밀어 붙여! 밀어붙이라고!”

사기가 박살날 대로 박살나서 어거지로 간신히 유지되던 엉망진창이던 창벽이 갑자기 가지런해졌다.

그리고 느리게나마 전진을 시작한다. 자유롭게 거리를 늘렸다 줄일 수 있던 방금 전의 라솔 기병들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 쪽에서는 추격기병들이 매섭게 돌입해 밀어 붙이고 있었다.

반대 쪽에서는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얻어 맞으며 찌그러져 있던 보병들이 갑자기 되살아나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이 되어 다가온다.

요행히 양 끝단에 배치되어 있던 자들은 몰라도, 나머지는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말았다.

사이에 끼어 찌그러지는 수 밖에.

“전진! 전진! 줄 맞춰!”

“발사!”

따당! 타타타탕!

살짝 얄미울 정도로 순식간에 기운을 회복한 우리의 동맹군, 마로텍스 백작의 부대가 예상보다도 부지런히 제 역할을 해주기 시작했다.

창벽이 진출하며 공간적 시간적 여유를 만들어 주자, 총병들 역시 사격각을 만들기 시작했다.

역시 신병들이지만 나름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분명했다. 압박감과 공포감을 풀어주자 곧바로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쏴라!"

타타타타탕!

총병 중대가 천천히 전진해 적을 밀어내면, 이웃 중대와 벌어진 틈을 총병들이 채운다.

일제사격이 터지면 이웃 중대에 달라 붙은 적이 쓰러진다.

그럼 자유로워진 이웃 중대가 다시 전진해, 수평을 맞춘다. 이러면 다시 단단한 하나의 창벽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모범적인 협력 전술을 사용해 지금까지 빼앗기기만 했던 전장의 공간을 장악해 나간다.

계속 공간을 빼앗긴 라솔 기병들은 동료들과 부딪치지 않고는 달릴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러 그대로 와르르 무너져 도망친다.

그 무질서한 도주를 새롭게 장전된 총병들의 사격이 덮친다.

마로텍스 백작의 보병대는 완전히 되살아났다.

설령 이제 비슷한 규모의 적이 다시 덮치더라도 아까처럼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겠지.

제31 몽세나 정찰 연대의 추격기병들이 잘 싸워줬다. 무기와 갑주에서 딱 한 단계씩 우세한 덕을 많이 봤다.

기병 싸움에서는 이런 차이가 잘 드러난다는 말이지.

이제 나머지 적을 청소한다. 적은 여전히 삼 분의 이가 남았으니 실수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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