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64화 (264/556)

32-7. 인사 정보 작전 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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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 무렵,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와 제36 프리즈마라 기병 연대가 마지막 보급 부대를 호위하며 함께 도착했다.

이제 트랑카벨 가문이 보내기로 한 병력이 드 레뮤즈 영지에 도착했다.

같은 블랑독 연맹 소속으로, 드 레뮤즈 가문과는 훨씬 돈독한 사이인 드 누아 소속의 지원군도 도착했기 때문에 1만을 훌쩍 넘는 막강한 대군이 집결한 것이다.

이렇게 트랑카벨 가문은 약속을 지켰다. 드 레뮤즈 가문과의 약속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라몽 백작이 약속을 이행할 차례이다.

다행히도, 이 자존심 강한 백작은 질질 끄는 일 없이 약속을 이행했다.

드 레뮤즈 영지와 모든 직속 가신들의 영지에서 오늘 부로 모든 정순파 신도들에게 사면령이 내려졌다.

이제 정순파를 믿는다는 이유로 차별하거나 처벌받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이유로 괴롭힌다면, 괴롭힌 쪽이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

물론 이미 영지에서 포고령을 통해 정순파를 모조리 추방한 상황이니 무슨 의미가 있냐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원래 이런 일은 공공연한 선언이 중요하고, 기세가 중요하다.

이제 트랑카벨과 드 레뮤즈, 드 누아가 모두 정순파를 용납하는 상황이다. 더 이상 엘랑키아 남부에서 쉽사리 종교를 이유로 탄압하기는 힘들어 질 것이다.

게다가 과거 라몽 백작의 정순파 탄압은 온건하다면 온건하다고 할 수 있는 형태였다. 가지고 갈 수 있는 재산을 가진 채로 ‘추방’만 했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 종교적 탄압을 원했다면 피의 재판을 열고 참혹한 학살을 할 수 도 있었으리라. 재산이 탐났다면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게 했을 수도 있고.

그리고 아마 이런 모습이 최소한 법황과 교단, 과격한 광신도들에게는 좋게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약간의 화해 실마리는 남을 수 있었고 이런 선언에 이를 수 있었다. 무자비한 학살이 있었다면 블랑독과는 지독한 원수가 됐겠지.

그리고 이걸로 드 레뮤즈 가문은 파문 확정이다.

벌써부터 레뮤즈 성의 성직자들이 저주를 퍼부으며 임지를 떠나고 있었다. 파문이 내려진 지역에서는 성사를 못하니까,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블랑독에서는 같은 경우에 생각보다 많은 사제들이 파문된 신도들을 위해 남았었다. 종교의 순기능이란 이런 거겠지.

공동체를 지키고 사람을 자비롭게 하는 것.

이단을 탄압하며 신앙을 부르짖는 추기경과, 순종의 의무를 어기면서도 신도들의 곁에 남은 촌구석 사제 중 누가 주신의 뜻에 가깝다는 말인가.

만약 전자라면, 교단은 조만간 무너질 것이다.

사면령에 더해서, 라몽 백작은 추방당한 정순파의 재산을 보상하겠다는 포고령도 함께 내렸다.

비록 전쟁이 끝나고 1년 후 부터 순차적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고향에서 쫓겨난 정순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길이 열린 것은 분명하다.

여러모로 불합리하긴 하지만, 하층민의 인권 따위는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 시대에서 나름 의미 있다 생각한다.

그렇게 정치적, 종교적 문제들이 차근차근 해결되는 동안, 나는 군사적 문제를 열심히 해결하고 있었다.

앞에 말했듯 트랑카벨 파견군은 다시 집결하여 언제라도 전투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훈련을 맡은 드 레뮤즈 영지군 역시 그럭저럭 군대로서의 형태는 갖춰지고 있다.

물론 아직 대열을 갖춘 상태로 기동전은 무리다.

그래도 대열을 유지하면서 화력을 교환하는 것, 선을 긋고 지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는다.

다행히 라몽 백작의 인기가 나쁘지 않아서인지, 고향을 지키는 싸움이어서인지 사기는 나쁜 편이 아니다.

오히려 수준이 제각각이고 하나의 부대로 훈련을 받았는지 의문이 가는 서부 귀족들의 군대가 걱정 되는데··· 알아서 잘 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콘도티에레, 미리 연락주셨던 대장님들이 오셨어요오.”

“아, 그래. 나도 곧 갈게.”

“네에, 콘도티에레!”

부차적으로, 서부군 출신 귀족들과 약간의 접점을 가지게 되었다.

나도 낯선 사람들, 심지어 사회적 계층도 높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은 젬병이긴 하다. 그래도 이것도 다 내가 짊어져야 할 의무들이다···.

다행히도 이들은 나름 호감과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 서로 예의를 갖추고 대한다.

주로 훈련을 책임진 기즈 드 콜롬브 경이 빠르게 어리버리한 시골 청년들을 빠릿빠릿한 신병으로 바꾸는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참관을 한다거나.

혹은 ‘모르는 사람이 봐도 대단하지만 아는 사람이 보면 감탄만 나오는’ 슈토르히 연대의 시범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니까.

특히 나름 군사적 식견을 가진 지휘관 경험자들이 많아서 다행이었다. 원래 ‘기술자’ 끼리 교류는 공통 관심사가 있다보니 잘 풀리는 법이거든.

여기까지 겪고 보니, 올리앙 드 브레겔 남작이 얼마나 심각할 정도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었는지가 단박에 느껴졌다.

능력 없는 중간관리자의 특징인, 딱히 하는 일은 없으면서 자기를 통하지 않으면 어떤 협업도, 교류도 금지했던 모양이니까.

결투라는 다소 무리수를 써서라도 배제해버린 라몽 백작이 결과적으로 옳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정작 가장 중요한 서부의 대귀족, 앙비토 드 몽파르지에 공작과는 여전히 서먹서먹한 상황이다.

아니 이게 몇 번 밥을 같이 먹고 전략 교류도 좀 하기는 했는데···.

라몽 백작은 원래 같이 있는 다른 인간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데 달인이다. 심지어 한 마디도 안 하고도.

앙비토 공작은 몇 번 만나봤더니 마찬가지로 사교성은 전혀 없는 사람이다. 좀 백지 같은 사람이랄까··· 업무 떡밥이라도 나눌 만큼 소양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유일하던 측근인 올리앙 남작을 잃고 당황스럽고 화가 난 것 같기는 했다. 그렇다고 강한 악의를 품은 것 같지는 않고.

거기에 내가 더해진다고 해서 뭐 개선되는 게 있겠나.

세상에서 가장 어색하고 남는 것 없는 연회 비슷한 게 끝났을 뿐이지.

그나마 수확이라면 ‘서로 뒤통수를 칠 것 같지는 않다’ 정도일지 모르겠다.

···괜찮을까 연합군.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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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까지 날카롭게 간 시퍼런 타라트라바 강철날이 섬뜩한 빛으로 번뜩인다.

원래 타라트라바 지방은 고대 아란 제국 시절부터 질 좋은 강철이 생산되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니 오늘날, 라솔 왕국의 군인들이 그 강철로 만들어진 무기를 선호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우웁, 끄르륵!”

“그흐흑!”

잘 관리된 날카로운 강철 단검이 유감없이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단숨에 목울대를 파고 들어가자 시뻘건 피가 쏟아진다.

갑작스러운 기습 공격에 두 명의 경비병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는 피는 비명소리를 막는다.

피를 공급받지 못한 뇌가 활동을 멈추자 병사들의 몸이 축 늘어진다.

비슷한 기습이 모두 세 군데에서 더 일어났다. 모두가 거의 동시에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일어난 것이다.

“쉽군.”

피로 젖은 칼날을 닦아내며, 기습을 성공시킨 남자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제 그의 역할은 절반은 끝났다. 나머지는 그의 기습공격으로 무방비가 된 엘랑키아 군의 병영으로 접근하는 검은 그림자들이 해결할 것이다.

“무엇··· 으아앗!”

“악! 커헉!”

“으읏, 허어어억!”

잠시 후, 빈약한 울타리로 보호받고 있던 작은 주둔지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지기 시작한다.

탕! 타탕!

타탕, 탕! 타다당!

타타타타탕! 타타타타탕!

처음 총소리는 없었으나, 일단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굉음과 함께 불꽃이 피어 오른다.

가뜩이나 강에서 피어 오른 새벽 안개로 시야가 좋지 않은데 뿌연 화약 연기가 더해진다.

“기습이다! 기습이야! 윽!”

“어디야! 악!”

“일어나! 일어나!”

이제 모두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지만 너무 늦었다. 더 이상 정체를 숨길 필요가 없게 된 습격자들의 공세가 기세를 더했기 때문이다.

“뭐냐··· 웁!”

“남작님, 기습입니다! 모두 집합해!”

“흐이이익! 헉! 커컥!”

타탕, 타타탕!

비명과 고함이 오가는 와중에 총소리가 더해졌다. 적이 오는 방향조차 모른 채로, 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속절없이 쓰러져간다.

이곳은 이스키비르 강 북안, 엘랑키아의 영토였다.

기습에 성공한 쪽은 라솔 왕국의 하류 주둔군, 우노스 연대의 베테랑들.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학살당하는 쪽은 작전 계획에 따라 강변에 분산 배치된 어느 엘랑키아 귀족의 군대이다.

“커허억!”

단검을 휘두르며 스스로를 지켜보려던 중장병 하나가 종아리를 칼에 찔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와 맞서던 라솔 병사는 두 자루의 검을 유려하기 휘두르며 비명이 나오기 직전 상대의 목숨을 끊는다.

강변의 경비병들을 소리 없이 쓰러뜨리고, 강에서 조금 떨어진 병영까지 다가와 불침번들을 마저 쓰러뜨린다.

그 후에는, 후속한 아군과 함께 무방비 상태의 적군을 학살할 뿐이다.

들키지 않기 위해서, 작은 배를 타고 강을 반쯤 건너온 베테랑들은 강변에서 잘 보이지 않는 얕은 사각에 내려 무기를 머리 위에 이고 걸어서 접근했다.

엘랑키아 수비군 측도 바보는 아니어서, 깊이를 알리는 말뚝을 발견되는 대로 뽑고 경비를 증원하는 등 노력했으나 아무 소용 없었다.

라솔 군, 하류 주둔군은 벌써 몇 차례나 치밀한 연습을 한 상태였다. 야밤에 아무도 모르게 강을 건너와 반대편의 경비 상태를 기록해 돌아가곤 했었다.

그러니 물 밖으로 보이는 말뚝이 없이도, 배에서 내려 가슴까지 차는 물을 헤치고 강변까지 걸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어둠을 틈타 얕은 강변에 숨었다가, 해가 뜨자마자 기습을 감행한다.

그 결과가 현재의 일방적 기습이다.

우노스, 도레, 테라얀, 코루냐.

주신의 명을 받아 검의 대리인을 호위했다던 검천사 네 명의 이름을 딴 연대들은 라솔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가진 정예군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습 공격에 특화된 특수 부대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평범하게 창과 총을 다루며 밀집 대형을 유지하는 정규전에 익숙한 야전군이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서 어떤 무기든 쓸 수 있고, 회전이 아닌 소규모 접전이나 비정규전에서도 활약할 수 있을 정도로 경험이 많을 뿐이었다.

이를 최소한의 군사 교육밖에 받지 못했으며, 심지어 방심에 빠져 있었던 엘랑키아의 작은 병영이 막아내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버텨라아! 버텨라! 이대로 짐승처럼 죽을 생각인가!”

하지만, 그 와중에도 예상처럼 잘 되지 않은 게 있었다.

생각보다 병력이 많았다. 결국 단시간에 충분히 죽이지 못했고, 소수지만 장창과 총기를 들고 밀집 대열을 만들 시간을 주고 말았다.

“우트랭의 깃발을 욕되게 할 순 없다!”

“남작님을 따르라!”

“발사! 장전되는 대로 쏴!”

수십 명 정도의 엘랑키아 보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대응사격을 시작했다. 강을 건너온 기습이라 라솔 군도 숫자가 많지는 않다.

지지야 않겠지만, 이대로라면 불필요한 희생이···.

타앙!

지금까지와 조금 다른 총성이 울리더니, 부하들을 이끌고 절대적인 열세를 되돌려 보려던 남작의 몸이 풀썩 쓰러진다.

구심점이 될 주군이 사라지자, 다시금 싸울 힘을 얻었던 병사들의 마음 속에서도 전의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으윽, 으아악!”

“살려줘!”

조금 전까지의 기세는 간 데 없이, 밀집 대열이 힘없이 무너지고 만다. 일방적인 살륙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 때, 병영 외곽에서 다른 소란이 일어난다. 뭐라 알아듣기 힘든 고함, 비명이 이어지더니 이어서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새벽 안개를 뚫고 울린다.

“말? 누구지?”

“살아남은 놈이 있었어! 말을 타고 도망친다!”

왼쪽 팔을 힘없이 늘어뜨리고, 좌반신이 완전히 피로 젖어버린 누군가가 필사적으로 말을 달리고 있었다.

“쏴! 쏴버려!”

“늦었어 젠장!”

“시팔, 다 잡아 놓고···.”

오랫동안 준비했던 기습 공격이 고작 이런 오합지졸 한 부대를 섬멸하기 위함일 리가 없다.

강 건너를 동시다발적으로 타격하고, 교두보를 얻는 게 첫번 째 목적.

다음은 적을 기습해 완전 섬멸하여 정보 전달을 늦추는 것이다.

어차피 곧 알게 될 테지만, 이 새벽의 몇 시간을 얼마나 지켜내느냐가 주력부대의 안전에 무엇보다 중요할테니까.

“빌어먹을 다 망쳤···.”

타앙!

또 다시, 탁한 총성이 울린다.

막 사지를 벗어났다 생각했던 부상자가, 잠시 상체가 흔들린다 싶더니 그대로 뒤로 넘어가 말에서 떨어진다.

기수를 잃은 말은 당황한 듯 좀 더 달리다가 멈춘다.

정보 차단에 성공한 것이다.

“와··· 십년 감수했네. 누구지?”

“그, 새로 들어온 저격수 솜씨 같은데. 이 안개 속에서 이 거리를 저격하다니···.”

“엘랑키아에서 이단군 연대장 숨통을 끊었다더니, 허세가 아니었나보네.”

“잡담할 시간이 없다. 어서 남은 놈들 처리하고, 강 건너에 신호 보내!”

“알겠습니다, 대장님.”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자욱한 강 안개가 걷힐 무렵에는, 크고 작은 나룻배들이 이스키비르 강을 수도 없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 배들이 빛나는 갑옷을 입은 라솔 병사들이 가득 태우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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