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63화 (263/556)

32-6. 인사 정보 작전 군수

라몽 드 레뮤즈 백작의 곁에서 자주 보이는 늙은 집사, 드레피니는 잠깐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질문을 하나 던졌다.

“에트 경께서는 서부의 명가 몽파르지에 공작 가문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아니요,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습니다.”

나는 일부러 다소 무례하게 대답했다.

그것이 진짜, 정말로 진심이기도 했지만 불필요한 이야기라면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된다고 선을 긋는 목적에서였다.

이번 결투 건도 가능하면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계속 신경이 쓰였다. 온전히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이건 문제였다.

그나마 어떻게 잘 수습 돼서 다행이지, 자칫하면 유능한 중대장을 잃을 뻔 했으니까.

그러니 제발 나를, 우리를 그냥 좀 놔 달라는 것이다. 드 레뮤즈 가문의 신병들을 전력화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거든.

“별로 관심을 두고 싶어하시지 않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향후 연합군 내에서 협력하실 상대인 앙비토 공에 대해서는 알아 두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세를 바로 한다.

영 내키지 않기는 하지만 다른 지휘관을 잘 알아두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신생 트랑카벨 영지군을 구성할 때도 중대장급 이상 장교들은 가능한 자주 접촉하고 직접 교육도 자주 했었지.

그러니 직위상 동급이고 격으로 따지면 더 위에 있을지 모르는 앙비토 공작에 대해서 알고 있긴 해야한다.

정말 싫지만, 개인적으로 싫다고 정해진 사업 파트너를 밀어낼 수도 없는 일이잖아.

“드 몽파르지에 가문은 저희 드 레뮤즈 가문과 비슷할 정도로 오래된 명문입니다. 엘랑키아 건국 시절부터 함께 해온 8대귀족이지요.”

“라몽 백작님네처럼 땅도 넓고 돈도 많나요?”

“정확히 비교는 해보지 않았지만 비슷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름도 높은데다 엄청난 부자집이라는 이야기구만.

“하지만 지금 몽파르지에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게 올리앙 남작과 같은 얼간··· 실례, 소인배가 제 세상인 양 날뛰게 된 이유입니다.”

“허어, 원래 공작의 측근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원래부터 앙비토 공의 측근이긴 했습니다만, 앙비토 공이 가문의 주인이 된 것이 최근 일입니다.”

“오호···.”

이야기가 그렇게 된 건가.

엘랑키아 전체에 비교할 수 있는 가문이 몇 안될 정도로 대단한 명문가.

하지만 아주 최근에 가문 계승이 있었고, 내부의 서열 정리가 잘 안되고 있는 상황이란 말이지.

“원래 앙비토 공은 가문의 막내, 공작가를 계승할 예정이 아니셨습니다. 하지만 원래 계승자셨던 형님의 신변에 일이 생겨 유일한 계승자가 되고 맙니다.”

신변에 일이라니, 보통 사망했으면 사망했다고 하니 뭐 다른 일이 있었나.

“선대 드 몽파르지에 공작님은 강철처럼 단단하신 분이었습니다. 최근까지도, 칠순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동하셨습니다.”

“설마··· 지금 공작님은 선대 공작님에게 계승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셨던 겁니까?”

“그렇습니다. 아마도 선대 공작께서는 원래 계승자가 돌아오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가문을 물려주시지 않았지요.”

“...그거 큰일이군요.”

봉건 제도는 땅을 지배하는 시스템이지만, 결국은 사람과 사람으로 엮여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가문과 땅을 물려준다는 것은 거기 엮인 인간 관계 또한 물려주는 일이다. 영토를 경영하고 지키는 데에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고.

선대 공작이 후계자였던 현 공작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면, 그 분위기는 가신들에게도 전해졌을 것이다.

현 공작, 앙비토 공은 못해도 서른 살은 넘어 보이는데 그 나이가 되도록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선대가 사망하고 떠넘겨지듯 공작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가문을 이어가기 위한 준비도 없이, 가신들의 인정도 받지 못한 채로.

와 이건 조금 동정이 가긴 하는데···.

대략 상상을 해보자.

트랑카벨 가문에 대리 사령관으로 부임을 하게 됐는데, 아무도 환영하지 않고 심지어 배척하는 환경이다.

으음··· 아쥬흐나 아실이 대화를 거부하며, 은근히 핀잔주고 괴롭히는 상황을 상상해보니 소름이 돋을 것 같은데.

블랑독 귀족들이 새로운 훈련이나 전투 방식을 거부할 때가 생각난다.

트랑카벨 남매들이나 톨마르 경 같은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내 편을 들어 줬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영지군은 초장부터 지리멸렬했으리라.

“그럼 하필 올리앙 남작 같은 소인배··· 얼간이를 곁에 두었던 이유가?”

“그렇습니다, 에트 경. ‘하필’ 그런 자를 곁에 둔 것이 아니라 그런 자 말고는 주변에 사람이 없었던 것이겠지요.”

드레피니의 설명을 들어보니 조금 알 것 같다.

올리앙은 주군인 앙비토를 ‘숙부’라고 부르며 은근히 친척 관계임을 과시했지만, 실은 먼 방계의 인물이었다고 한다.

항렬을 따져보면 숙부 쯤 되었던 것 같은데··· 실제로 나이차이도 얼마 나지 않았고 같은 혈통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관계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유일한 측근이다보니, 공작이 된 이후 남작령도 하나 마련해주고 했던 모양인데.

“하지만 그래도 유일한 공작의 후계자였는데 주변에 사람이 그리 없을 수 있습니까?”

“그걸 방해한 게 바로 올리앙 남작이었습니다.”

“아.”

음, 라몽 백작이 음모 비슷한 것을 꾸며서라도 배제하려고 한 게 이해가 가려 한다.

인간 관계라는 게, 개인적이고 호불호로 갈리는 관계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직책에 딸리는 업무적 관계도 있는 법이니까.

선대 아래에서 정치나 군사 등 업무를 맡았던 가신들이 직언하기에 껄끄러운 분위기를 만들었던 모양이다.

제대로 된 관료제와 봉건제 사회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암군으로 인해 국가나 조직이 한도 끝도 없이 나락까지 떨어지는 이유기도 하고.

“백작님께서는, 한동안 앙비토 공작은 자신에게 맡겨 달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에트 경?”

“라몽 백작님께서는 그럼 ‘앙비토 공작 사람 만들기’를 진행하려 하신다 생각해도 될까요?”

“허허, 어휘 선택이 다소 극단적이긴 합니다만 영 상관없지도 않다고 생각됩니다.”

드레피니는 사람 좋게 웃었다. 이 사람은 나이가 얼마나 될까.

얼굴만 보면 정말 굉장히 늙어 보이는데, 손발이나 눈동자, 그리고 목소리에서 보이는 노화의 징후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드 레뮤즈 가문과 드 몽파르지에 가문은 어떤 관계입니까?”

“혈연적으로는 별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 다만, 백작께서는 ‘어쩔 수 없이 만나야만 하는 이웃’이라 칭하신 적이 있습니다.”

나도 가끔 직관적이지 않은 표현으로 사람을 표현할 때가 있지만, 그건 내 망상 속에서다. 다른 사람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백작 양반은.

“...죄송합니다만 라몽 백작님의 인간적 거리감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허허, 그러신 면이 없지 않지요. 다만, 드 레뮤즈는 몇 대에 걸쳐서 드 몽파르지에에 막대한 양의 금화를 빌려드린 상태란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간적인 신뢰 보다는 차용증 한 장이 더 믿을 만 하지요. 무슨 관계인지 이해가 갑니다.”

“허허헛,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입니다.”

채권자와 채무자 관계라면 행동 원리가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네.

드 레뮤즈 가문의 집사장이 일부러 찾아와서 무슨 설명을 하려나 했더니, 확실히 불필요한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퉁명스러웠던 태도를 반성하게 된다.

“그러고보니, 그 패배자 남작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복부에 총상을 입은 것 같던데···.”

“옆구리에 관통상을 입었다 들었습니다. 치명적인 장기는 피했다고 하나 치료에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네··· 그건 다행입니다.”

“예, 모두에게 다행이지요.”

얼간이니 소인배니 욕을 하기는 했지만, 그리고 제 명줄을 줄이는 짓을 했지만 그래도 정말로 죽이는 것은 좀 꺼림직하다.

특히 아무리 정식 결투라고는 해도, 상대 파벌의 귀족을 죽였다가 부담을 안게 될 수도 있고 말이다.

드 레뮤즈 가문이든, 트랑카벨 가문이든, 알골 딘다르트 개인이든 그렇다.

그러니 적당히 다쳐서 어디 가서 요양이라도 하는 게 모두에게 좋겠지.

여러모로 마음의 부담이 좀 줄었다.

이제 좀 집중해서 내 할 일, 드 레뮤즈 영지군을 전력화시키고 연합군 체계를 다듬는 데 집중해지.

라몽 백작이 자신에게 맡기라 했으니, 맡기고 기다려보자. 어디까지나 연합군의 맹주이기도 하고. 무슨 결과가 나와도 납득하고 지지할 생각이니.

믿는다 라몽 백작!

###

“이 자식들아! 버텨, 죽어도 버텨!”

“창을 바닥에 대고 발로 고정해. 여기서 밀리면 다 뒤지는 거야! 고향이 불타고 마누라가 끌려간다고!”

아직 어리버리한 모습을 버리지 못한 드 레뮤즈 시골 출신의 신병들을 교관들이 닥달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훈련 책임자 역할을 맡은 기즈 드 콜롬브가 데려온 드 누아 출신의 하급 간부들이다.

기즈는 원래 트랑카벨 영지군의 창립 멤버 중 하나로,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의 중대장이었다.

고향도 카르카냑이고, 수비대에서 성실하게 근무해 장교로 추천받은 아롱드 영감님의 오랜 가신이니 블랑독 토박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러던 사람이 신병 조련에 탁월한 실력을 보여 한동안 드 누아에서 연대장 대리 역할을 하다, 이제는 드 레뮤즈 영지군까지 훈련하게 되었으니 세상 사는 알 수 없다.

당사자와 이야기 해봤더니 허허 웃으면서, 힘 닿는 데 까지 열심히 하겠다더라. 어서 전쟁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느리지만 꾸준히, 전쟁 준비는 계속되고 있었다.

병영 전체가 뒤집어질 지경이었던 난투 사건이 마무리되자, 확실히 좀 조용해졌다.

아니, 방금 교관들의 호령 소리가 들렸듯이 문자 그대로 조용해진 것은 아니고. 응당 병영에서 들릴 법한 소리 외에는 조용해졌다가 맞겠다.

결투 재판 이후, 확실히 여러 가지가 좀 바뀌기는 했다.

병사들이 섞이지 않도록 구역이나 시간을 나눈 점도 있겠지만, 더 이상 서로 다투는 문제는 없어졌다.

이전의 결투 재판은 대단히 예외적인 사항으로, 향후 이런 일이 있다면 ‘아란 제국 식으로’ 가혹하게 처벌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효과가 있을 테고.

대신 지휘관급 장교들 사이의 긍정적인 교류는 좀 늘어났다. 드 레뮤즈의 젊은 참모장인 아인멜츠가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건 최근 도착한 슈토르히 연대 녀석들의 차력쇼가 한 몫 했지.

그 칼 같은 대열 전환이나, 숨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연쇄 사격이라든가. 군대나 전술에 대해 잘 모르는 귀족들에게 직관적으로 대단함을 알려주는 방식이다.

군인이라면, 아니 남자라면 그거 보고서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는 게 말이 되나.

나도 잘 몰랐는데, 블랑독 밖에서도 ‘근위기병대장이 이끄는 부대를 격퇴하고 대장을 포로로 잡은 부대’라는 이유로 인지도가 좀 있는 모양이더라.

사실상 연대장 대리를 맡고 있는 루트비히는 자기네가 유랑 공연단이냐며 투덜댔지만. 그래도 그 날 특별식이 나가 병사들은 좋아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서부군 소속 간부들이 훈련장에 진지하게 참관하러 오는 모양이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라몽 백작은?

놀랍게도 권위가 더 높아진 것 같다. 이전에는 말로만 맹주였다면, 이제는 분명히 나나, 앙비토 공작보다 한 계층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는 느낌이지.

음··· 나중에 앞뒤 사정을 알고 나니 괜히 일을 크게 벌리고, 지빌링엔의 알골 중대장을 이용한 것 같아서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는데.

뭐 이런 게 다 정치고 음모라는 것이겠지. 역시 앞으로도 거리를 두고 살고 싶어진다.

그래도 라몽 백작은 분명하게 약속을 지켰다. 실제로 그 후에 나는 원래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거든.

단순 결투가 아니라 신에게 정의를 묻는 신명재판이라 해도, 뒷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텐데 걸고 넘어지는 서부 출신 귀족도 없고.

확실히 올리앙 남작이 목숨은 붙어있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치긴 한 것 같다.

상처가 좀 치료되자 어느 날 새벽에 수레에 실려서 야반도주를 했다는데, 진심으로 무사히 회복되길 빌어본다. 그 띠꺼운 성격도 좀 고치고.

“콘도티에레, 이스키비르 강 유역에서 또 보고가 왔어요!”

“무슨 내용이야?”

“네에··· 라솔 인들이 강변에서 지형과 물 깊이를 살피다가 발각됐다네요! 작은 교전에 벌어졌지만 서로 죽은 사람은 없다 하고요.”

“요즘 부쩍 잦아졌네··· 고마워, 첼레스티나.”

“네에, 헤헤!”

그 와중에 라솔 측에서는 대놓고 공격하겠다는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이게 단순히 도강을 준비하는 것인지, 긴장도만 높여서 아군의 신경을 무디게 하려는 것인지, 엉뚱한 방향으로 찔러서 기만책을 취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전부일지도 모르지.

그래도 주력부대가 강을 건너기 전에 계획 변경은 없다.

차근차근 병력을 준비하고, 그 후에 적의 공세에 대응하기로 했으니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