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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화약의 용병대장-261화 (261/556)

32-4. 인사 정보 작전 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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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를 앞둔 알골 딘다르트에게 일주일은 빠르게 지나갔다.

드 레뮤즈 영지군이 부지런히 훈련을 받고, 블랑독에서 출발한 후속 병력이 차근차근 도착하는 동안이었다.

콘도티에레도, 같은 고향의 친구이자 연대장인 에르만 슈피리도 그를 배려 해줬기에 거의 완전히 결투만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 뿐 아니었다. 동료들도, 부하들도 일주일간 많은 편의를 봐 주었다.

가장 좋은 무기와 갑주들을 빌려주고, 평소라면 말썽을 부렸을 사고뭉치 부하들도 이번 만큼은 조용히 자신의 일과에만 집중했다.

중대장으로서 완전히 업무를 놓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을 결투를 준비하며 보낼 수 있었다.

“영광스러운 엘랑키아의 귀족님, 기사님, 지주와 자유민 여러분! 그리고 그 외의 모든 분들!”

알골 딘다르트는 용병이다. 10대 소년 시절부터 용병이었다. 때로는 지빌링엔의 동포들과 함께 싸웠고, 때로는 다른 용병단에 들어가 싸우기도 했다.

지금, 보기만 해도 가슴 벅찬 피 흘리는 흑곰의 깃발을 새롭게 걸 수 있었던 때까지, 그럭저럭 15년 가까이 전장을 걸어왔으니까.

정말 많은 전투에서 싸웠다. 상당히 많은 적을 쓰러뜨렸고, 그만큼이나 많은 동료들을 잃었다.

자기 자신도 이제 꼼짝 없이 죽었다는 생각을 한 것도 몇 번 되었다.

자신이 지금 사지 멀쩡하게 이 곳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절반은 천운 덕분이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일 대 일 결투는 처음이었다.

“엘랑키아 왕국의 대귀족, 레뮤즈의 통치자 라몽 드 레뮤즈 백작 각하의 이름 아래, 오늘 이 자리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두 무장한 남자가 주신께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싸우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은 없었다.

검술을 약간 배우기는 했으나, 스승이었던 선배 용병이 적탄에 맞아 사망하는 바람에 어중간한 수준에 그쳤다.

아직 한 사람 몫을 한다고 증명하지 못해 가난에 시달리던 시절, 무기나 임무를 고르는 사치는 부릴 수 없었다.

덕분에 어지간한 무기는 다 조금씩 다루어봤다.

검과 도끼와 같은 짧은 무기, 장창과 미늘창 등 장대 무기, 화약 무기는 물론이고 심지어 대포에 이르기까지.

허나 이 모든 방식은 아군에 의지해 적군과 싸우는 방법이지 ‘내’가 ‘상대’와 싸우는 방식은 아니었다.

“서쪽 진영, 서부의 대영주, 몽파르지에 공작가의 가신, 링보르의 남작 올리앙 드 브레겔 경!”

생각해보면 우스웠다. 그는 생존의 방식으로서 전투를 선택한 인간이지, 기사도 지주도 아니었다.

아니, 먹고 살만큼 수익이 나오는 땅이 있었다면 용병 따위는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그가, 명예를 지키기 위해 무장하고 상대에 맞서고 있었다.

이전이라면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특별히 비겁하게 살아왔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 다급한 것은 반짝거리며 짤랑거리는 금속 조각이었으니까, 명예는 먹고 살만 한 귀족님들이나 챙기는 것으로 생각했다.

“동쪽 진영, 지빌링엔 ‘피 흘리는 흑곰’ 연대의 중대 지휘관, 알골 딘다르트 경!”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창대를 잡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간다.

자리에서 일어서자, 갑옷끼리 부딪치며 익숙한 덜그럭 소리가 난다. 분명 소음이지만 묘하게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알골은 명예를 위해 죽고 산다는 의미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명예는 자신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것이 아니었기에 분노하고, 지키기 위해 거리낌이 없을 수 있었다.

귀족님들의 주군과 기사 관계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고용주, 아쥬흐 트랑카벨은 분명 자신와 지빌링엔 연대 장병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계약관계는 분명 금전관계이며, 돈을 받은 만큼 일을 해 줄 뿐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분명 돈 이상으로 소중한 뭔가를 받았다고 인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무엇이라고 분명하게 이름하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분명, 목숨을 내주더라도 절대로 잃고 싶지 않은 것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결투는 재판이며, 원한을 청산하기 위한 목적도, 구경거리를 위한 목적도 아닙니다!”

아까부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재판’을 진행하는 이는 라몽 백작의 집사장 드레피니였다.

노쇠한 외모로는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힘찬 목소리가 대체 몇 명인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모인 결투장, 아니 재판장을 울렸다.

“오로지 주신께 정의를 묻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러니 두 참가자는 부끄럽지 않은 싸움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무와 천으로 구분진 커다란 원형 결투장 한켠에는 나지막한 의자와 탁자가 있었고, 탁자에는 각자가 택한 무기가 놓여있었다.

알골은 검을 왼쪽 허리에 차고 미늘창을 세워 들었다.

마지막으로, 콘도티에레가 빌려준 권총 띠를 흉갑 앞에 두른다. 이러면 다른 무기를 쓰다가도 언제든지 곧바로 뽑을 수 있다 하던가.

오늘 그의 무장 중에는 빌린 것이 많다.

검은 자신의 것이지만, 권총은 콘도티에레의 것이고 미늘창은 빈더갈렌 중대의 베테랑에게 빌렸다.

갑옷과 복장은 대부분 자신이 쓰던 것이지만, 뺨을 가리는 기능적인 강철 투구는 신임하는 부하 중 한 명에게, 폭이 넓고 튼튼한 가죽 허리띠는 연대장 에르만에게 빌렸다.

새 무장이지만, 일주일간 익숙해진 덕에 원래 자신의 것처럼 그의 몸에 붙어있었다.

“지금부터, 결투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주신께서 참가자의 손을 빌어 행한 일입니다! 모두에게 명예로운 내일이 있기를!”

길고 고풍스러운 나팔소리가 시작을 알린다.

성큼성큼, 거리를 좁힌다. 긴장 탓에 벌써부터 몸에 땀이 난다.

반대편에서 결투 상대인 올리앙 남작이 다가선다.

불그스름한 색이 칠해진 판금으로 만들어진 전신 갑옷을 입은 그는, 검과 도끼 그리고 권총을 선택했다.

양측의 거리가 10미터 안쪽으로 다가가자, 양측의 움직임이 신중해진다.

알골은 좌반신을 앞에 두고, 왼손으로 미늘창을 잡고 비슴듬하게 상대를 향해 눕힌다.

오른 손은 흉갑 부근에서 대기한다. 언제라도 총을 뽑을 수도, 좀 더 나아가 검을 뽑을 수도 있는 위치이다.

아마 적이 보기에는 몸의 측면만 보일 것이다. 사격의 표적으로는 가장 좁은 면적만 보여주게 된다.

그 뿐 아니라, 미늘창의 머리 부분이 얼굴 정도 높이에 위치하도록 주의한다. 총구로부터 얼굴로 향하는 사선을 대부분 막는 위치다.

게다가 왼손에만 낀 두꺼운 쇠장갑의 손등 부분에는 거의 흉갑만큼 두꺼운 쇠막대가 들어가 있다.

즉, 이 자세는 총탄에 맞는다고 해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민한 자세다.

가장 위, 이마와 정수리 부분은 갑옷에서 가장 단단한 부분이다. 총탄이 튕길 가능성이 꽤 있고, 뚫더라도 위력이 많이 감쇄될 것이다.

실제로 이마는 갑주의 가장 단단한 부분이고, 관통된 총탄이 머리뼈를 뚫지 못해 이마에 찢어진 상처만 남기는 것을 본 적이 있으니까.

그 아래 노출된 얼굴은 미늘창의 비스듬한 날이 상당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납탄은 아주 조금이라도 스쳐도 형태가 쉽게 변하고 탄도가 뒤바뀐다.

적을 향한 어깨와 왼쪽 팔뚝은 몸에서 근육이 가장 많은 부위 중 하나이다. 게다가 손등을 강화했기에 손가락은 잃어도 왼손 자체가 악력을 잃지도 않을 것이다.

총탄이 관통해도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은 적고, 최악의 경우 팔을 하나 잃어도 어떻게든 계속 싸울 수 있다.

흉갑은 말할 필요도 없고, 허벅지와 무릎도 투구 만큼은 아니더라도 일단 철판으로 보호받고 있다. 혈관이나 관절이 당하지 않는 한, 단번에 무력화 되지는 않는다.

즉, 알골 딘다르트는 총탄을 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일단 맞는다 생각하고, 치명상이 아닌 총상을 입는 것을 전제로 계획을 세웠다.

어차피 총에 맞는 것이 처음도 아니었고.

“크윽!”

대치한 상대방, 올리앙 남작의 입에서 초조한 듯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오른손을 앞으로 겨눈 사격 자세를 취했으면서도 쉽게 쏘지 못한다.

분명 알골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이다.

거리는 불과 10미터.

손에는 평생 이런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세심하게 공들여 장전한 권총이 들려있다.

쏜다면 아마 아주 높은 확률로 명중할 것이다.

그러나 그걸로 적을 끝장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후우··· 제기랄, 비겁한 놈···.”

뭐가 비겁한지는 모르겠지만, 올리앙은 초조한지 자꾸 눈을 깜빡인다. 초조함으로 인해 총구가 떨리고 있었다.

상대, 알골 딘다르트는 알고 있었다. 쏘면 맞겠지만, 한 방에 무력화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 확신이 올리앙에게도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멀찍이서 결투를 지켜보는 관중들도 쥐죽은 듯 조용하다. 너무 많은 기가 억눌려 숨이 막히는 것 같다.

올리앙은 기사로서 무능한 인간은 아니었다.

검과 도끼를 비롯해 전통적인 무기 다루는 법은 물론, 레슬링 등 백병전과 관련된 평균적인 교육은 받았다.

사격면에서도, 나름 자부심과 확신을 가지고 방아쇠를 당기는 수준의 실력은 쌓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경험, 생사를 걸고 상대와 대치해본 적이 없다는 문제가 그의 어깨를 무겁게 내리 누르고 있었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 것은 계획된 기다리기 전술이 아니다.

그저 방아쇠를 당긴 후의 상황이 두렵고 감당하기 두려웠기 때문에 망설이는 것에 불과했다.

만약에 안 맞으면 어떡하지? 맞아도 별 효과가 없으면 어떡하지?

적도 권총을 꺼낼 텐데, 그 때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은 자신이 아닐까?

애초에 쏘고 나서 어떡하지? 다음은 운명에 맡기나? 곧바로 총을 버리고 돌진하나? 명중 여부를 확인한 후에 판단하나?

평소였다면 비교적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였으리라.

그러나 이 상황, 생전 처음 내몰리는 생과 사의 갈림길, 자신의 주군 앙비토 공작과 연합군의 맹주 라몽 백작을 비롯한 수백 명이 지켜보고 있다는 상황이 판단력을 무디게 했다.

평범한 다수 대 다수의 전장이었다면 적진으로 적당히 투사하고 다음을 준비해도 되었을 것이지만.

그래서 알골이 먼저 움직였다.

두려움과 망설임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대단한 움직임은 아니다.

그냥, 반 걸음 정도 나아갔을 뿐.

허나 양측 사이에 쌓일 대로 쌓여있던 팽팽한 살기가 폭발하는 효과가 있었다.

타앙!

총소리가 울렸다.

“큭!”

“썩을!”

찌이잉, 하고 알골의 머리가 울렸다. 순간 시야가 흔들리고 상체가 조금 들렸다.

생각보다 충격이 크고 여기저기가 따끔거린다. 정신 없는 와중, 설마 투구가 뚫렸나?

모르겠다. 살필 시간도 없었다. 최소한, 계속 생각은 하고 있고, 시야도 살짝 흐려졌지만 보이지 않을 정도는 아니다. 액체가 주륵주륵 흘러내리지도 않는다.

상대가 움직인다.

아직 연기가 나는 권총을 팽개치고 검을 뽑아들고 돌진해온다.

살짝 두통이 오는 머리로 열심히 생각한다.

권총을 꺼내 쏠까?

알골의 손가락은 이미 나무로 된 권총 손잡이 끝에 닿아 있다.

아니다. 이내 생각을 접는다.

자신은 평생 권총을 10발도 쏴 보지 않았다. 이번에 결투를 앞두고 벼락치기로 연습한 것이 전부였으니까.

아무리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막강한 무기라고 해도, 목숨이 걸린 순간에 익숙하지 않은 무기에 운명을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오른손은 권총을 쥐는 대신, 그대로 아래로 내려가 비스듬히 서 있던 창대를 움켜쥐고 들어올렸다.

살짝 좌상단을 향하고 있던 미늘창이 거의 수평으로 들리면서 적을 향한다. 팔을 접어 올리자, 수평 상태는 유지되면서 가슴 높이 정도로 올라온다.

마주보는 상대방 쪽에서는 갑자기 목을 향해서 쑤욱 하고 창 끝이 뻗어오는 느낌이리라.

그러나 그대로 힘을 줘서 찌르기에는 시간이 살짝 부족했다.

이는 올리앙이 기사로서 나쁘지 않은 선택을 했다는 반증이기도 했고,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알골이 고민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파가각!

돌진해온 올리앙은 과감하게도 왼손의 판금 장갑으로 창 끝을 쳐 낸다. 많이 쳐낼 필요도 없었다. 창 끝이라는 ‘점’만 피하면 안쪽으로 파고들 수 있으니까.

“으아아아아!”

“흐읍!”

기성을 지르며 돌진하는 올리앙에 맞서, 알골은 뒤로 펄쩍 뛰어 물러선다. 육중한 중갑병이 착지하자 부드러운 흙이 먼지를 일으킨다.

당연히 상대의 간격 안으로 파고 들 것으로 생각했던 올리앙으로서는 당황한 것 같다.

알골의 짧은 찌르기가 올리앙의 값비싼 흉갑을 그으며 소름끼치는 소리를 낸다.

하지만 짧지만 날카로운 스파이크 형태의 미늘창 끝은 흉갑을 관통하는데 실패했다. 한 점에 힘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골의 중심이 흔들린 다소 아쉬운 찌르기, 올리앙의 무모하기까지 한 과감한 돌격, 그리고 장인이 만든 흉갑의 ‘돈값’이 어우러져 이 상황을 만들어 냈다.

퍽! 콰장창!

“윽!”

어쩔 수 없이 미늘창을 버리고 한 걸음 나아가는 선택을 한다. 갑자기 간격이 좁혀지자 휘두르기 위해 비슴히 치켜 들었던 올리앙의 검 역시 갈 곳을 잃어버린다.

육중한 갑주로 무장한 두 사람의 몸이 마구 엉키고, 쇠 부딪는 소리가 귀가 아플 정도로 울린다.

서로의 첫 공격은 모두 실패했다. 2라운드는 온 몸을 철갑으로 감싼 중장병끼리의 육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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