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60화 (260/556)

32-3. 인사 정보 작전 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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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장에서 갑작스러운 고발, 증인 발언 및 신문이 있었다. 엘랑키아 남부 귀족들이 절반이 있는 자리에서 말이다.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어쩐지 라몽 드 레뮤즈 백작은 예상을 했던 모양이고.

···결국 결투재판이라는 큰 일이 되어버렸다.

“결국 일이 그렇게 되었고, 일주일 후, 당사자인 알골 딘다르트 중대장은 결투재판에 나서게 되었네.”

나에게 불려온 지빌링엔 연대장 에르만 슈피리와 중대장 알골 딘다르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긴, 회의장에 있던 나도 갑자기 올리앙 드 브레겔 남작이 증인을 불러다 폭주할 때 엄청 놀랐었으니까. 라몽 백작의 카운터에는 더더욱 놀랐지만.

“만약 결투재판에 참석하지 않기를 원한다면···.”

물론 결투재판에 참여하지 않는 선택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자유의지’로 진행되는 재판이니까.

각자가 신에게 정의를 묻는다, 여기에 타인의 의지가 개입될 여지는 물론 없다.

“하겠습니다.”

알골의 대답은 빨랐다. 그래서 나는 약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줄 알았다.

결투재판에 참석을 피한다는 것은 상대의 주장이 전면적으로 옳다고 긍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모처럼 신에게 물을 기회가 생겼는데도 포기했다는 것이니.

그 이상으로 재판을 피한 자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부당한 참소자, 거짓말쟁이 등등.

거기에는 구경거리인 결투를 못 보게 막았다는 불만도 물론 있겠지만.

그런데 내가 알기로, 재판의 원인이 된 싸움은 ‘명예와 관련된 것이다. 그것도 남의 명예.

자신이 처할 곤경을 무릅쓰고 주먹을 휘둘렀던 이 강인한 지빌링엔 청년에게 그런 것을 선택할 여지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귀관이 주점에서 화를 냈고, 주먹질을 시작한 것은 아마도 트랑카벨의 영애 아쥬흐 양이 모욕받아서··· 가 아닌가?”

“네··· 맞습니다, 콘도티에레.”

내 말에, 알골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부끄러운 표정을 짓는다. 뭐 그런 종류의 것이라 예상은 했다. 그러니 억울한 와중에도 나에게 말을 하지 않았겠지.

“트랑카벨 가문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고마운 일이라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자네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어려움에 처하게 되어 유감이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명백한 기회를 받아 다행입니다.”

알골의 말라서인지 유난히 각진 턱이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듯 들썩거린다. 내 기억으로 그는 그다지 말이 많은 타입은 아니었는데.

“모욕당했을 때, 수하들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주인의 명예를 위해 싸운다는 소문이 나야 합니다. 그래야 함부로 입에 담는 자들이 한 번 더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함부로 말했다가 턱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렇긴 하겠지.”

“은혜를 입은 주인의 명예를 지키는 것은 당연합니다. 저는 기사는 아니지만 무장한 자로서, 그것 외에는 할 수 없으니까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내가 아쉽다. 나는 저렇게 철저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쉽지는 않겠지.

알골이 알아주어서 고맙다는 듯 미소를 짓자, 입가에 잔주름이 진다.

얼굴이 잔주름이 많고, 머리가 빠지기 시작해 이마가 널찍한 이 베테랑 용병은 실제보다 나이가 많아 보인다.

동고동락하며 함께 고생했을 터인데, 동년배인 연대장 에르만에 비해서 열 살은 많아 보인다.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백전연마의 용병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것저것 다 잘하는, 동네에 한 명 쯤 있는 사람 좋은 아저씨로 보인다고나 할까.

그러나 잘 보면, 이마나 뺨, 손등에 난 흉터가 그가 얼마나 용감한 보병인지를 알려준다. 그는 새로운 지빌링엔 연대, 피 흘리는 흑곰의 수석 중대장이니까.

그가 지금까지 숱한 전투를 거쳐오면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운과 실력 양쪽을 모두 가졌다는 의미이다.

“그럼 믿고 맡기겠네. 혹시 알 지도 모르지만 엘랑키아 식 결투에 대해서 설명해주겠네.”

“감사합니다, 콘도티에레.”

엘랑키아의 결투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규칙이 세 개 있다.

양측은 최대 세 개까지의 무기를 준비할 수 있다.

말은 한 마리까지 준비할 수 있다.

갑옷은 자유롭게 입을 수 있다.

그 외에는 무제한. 상대방이 죽거나, 의식을 잃거나, 패배를 인정했을 때 끝난다.

“무기 세 개라면··· 어떤 무기든 상관 없다는 것입니까?”

“그렇지. 다만 대포 같은 상례에서 벗어나는 장비라면 비난을 받을 걸세. 화기는 권총 정도가 적당하지 않겠나.”

말이 신명재판이지, 결국 구경꾼들이 배심원이나 다름없다. 허튼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았다.

그들은 명예로운 결투를 원하지만, 또한 볼 거리 많은 결투를 원할 테니까.

“어떤 무기를 원하나? 아직 시간은 일주일이 있지만 빨리 준비하는 게 좋겠지.”

내 말을 들은 알골은 잠시 고민하는 모양이더니, 금방 결론을 내린 듯 하다.

“저는 말을 타고 싸우는 법은 모르지만, 기병을 상대하는 법은 조금 아는 편입니다. 그러니 말은 필요 없습니다.”

그렇겠지. 기병 상대든 보병 상대든 지빌링엔 연대의 백병전은 내가 보증할 수 있다.

“무기는 검과 도끼창, 그리고 권총을 사용해야겠습니다. 검과 도끼창은 지금 쓰는 게 있으니 권총을 빌려야겠군요.”

검과 창이야 평소에 쓰는 익숙한 무기라 해도, 권총을 찾는 이유는 대단히 전술적인 이유이다.

전투에서 한 쪽만 사격 무기가 있다는 것은 거리를 마음대로 벌리지도 좁히지도 못하고, 공격 타이밍을 잡는 데도 제약이 생긴다는 것이다.

허나 장전된 총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대와 대등한 입장에 서게 된다.

“그건 내가 빌려주지.”

“그,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전투까지는 한참 남았고, 사령관이 나서서 총을 써야 할 정도면 이미 진 거니까, 자네들이 지켜주게.”

마지막으로 총을 쏴본 게 언제더라. 최근에는 연습 사격도 별로 안했으니까. 실전에서 썼던 것은 리니 능선에서 카렐의 심장을 쐈던 때가 마지막이구나.

나는 가슴 앞으로 찼던 총을 내려놓고, 상자에서 권총용 탄약포 다섯 개를 꺼내 나란히 놓는다.

“이건 연습용으로 쓰고, 결투재판 당일에는 공들여서 새로 장전해서 쓰게. 요령은 일반 화승총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감사합니다, 콘도티에레! 반드시 승리해서 무사히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래야지, 혹시라도 질 거란 생각은 전혀 안하니까.”

나는 부디 내 말이 깊은 신뢰를 담고 있기를 바라면서, 권총을 받아 든 알골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올리앙 남작이 어떤 재능을 가진 인간일지는 몰라도, 그래봤자 새파란 애송이 귀족이다. 백전연마의 용병이 질 거란 생각은 안한다.

하지만 싸움이라는 것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이고, 올리앙이 상상을 초월하는 운이나 재능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게다가 이긴다 해도 큰 상처를 입는다면 그건 본말전도이다.

참 걱정된다. 이러니 결투재판이 금지되었겠지. 이런 식으로 대영주급이 허락하지 않으면 흔히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천천히 준비해야 하니 남은 일주일 동안은 모든 업무를 면제하도록 하지. 에르만 연대장은 잘 챙겨주세요.”

“알겠습니다, 콘도티에레.”

느긋하게 충분히 준비해서, 반드시 이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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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토 로르카 데 페니베라다 변경백은 참모들과 함께 국왕에 버금가는 예의를 갖추어 말에서 내리는 공작을 맞이한다.

라솔이나 타국의 평범한 공작이라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크루사다 틴토 데 타라트라바는 평범한 공작이 아니라, 라솔의 봉신이기는 해도 독립국 취급을 받는 타라트라바 공국의 군주였으니까.

게다가 이번 전쟁, 엘랑키아 침공의 주장이다.

···무엇보다, 이번에 들어갈 막대한 비용을 책임질 물주이기도 하니까. 지갑을 열어주는 상대에게는 얼마든지 허리를 숙일 수 있었다.

“멀리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공작 전하.”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고 싶어서 힘든 줄도 모르겠더구려! 반갑소, 타라트라바의 공작, 크루사다 틴토요.”

두 사람은 인사를 주고받더니 이내 손을 맞잡는다. 그리고 건물 내부로 이동한다.

분위기는 유난히 화기애애하다.

통상 라솔 왕국과 타라트라바 공국은 사이가 나쁘기로 유명하다. 별 것 아닌 일로 서로 딴지를 걸기로 유명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크루사다 공작 입장에서는, 보병 대열의 핵심을 맡길 수 있는 든든한 지원군 1만이다.

퀸토 변경백 입장에서는, 오랜 꿈이었던 엘랑키아 침공을 이루어줄 물주이자 동료였다.

양국 사이의 해묵은 반목 관계보다, 이렇듯 서로에게 받을 수 있는 도움이 훨씬 크다보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높은 지위에 오른 두 사람인 만큼, 편견 보다는 상대의 실력을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두 사람 모두 그저 혈통 만으로 지금 지위에 오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작 전하, 피곤하시겠지만 잠시 제가 준비한 작전을 설명드려도 되겠습니까?”

“바라던 바요! 아직 내 병력이 다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빨리 방침을 정하고 싶소.”

두 사람은 서로의 전력을 공유하고,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제 친우인 서쪽 알시라스의 국왕께서도 병력을 파견해주시기로 했소.”

“예상보다 더 큰 대군이군요.”

[라솔 왕국]

이스키비르 하류 주둔군

보병 약 10300명

- 우노스 연대

- 도레 연대

- 테라얀 연대

- 코루냐 연대

기병 약 800명

- 보조 경기병대

[타라트라바 공국]

군주 친정군

보병 약 10000명

- 타라트라바 정규 편성 연대

기병 약 4000명

- 중기병 2400명

- 경기병 1600명

[알시라스 파견군]

보병 약 3600명

기병 약 300명

보병 총합 약 24000

기병 총합 약 5000

서로의 전력을 논의하며 간단히 정리해본 퀸토 변경백은 솔직히 많이 놀랐다. 이만큼의 병력을 준비해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략 2만 명 정도의 전력을 예상했다. 그 정도가 현실적이라 생각하기도 했고.

엘랑키아로 진격하고, 야전군을 때려 부수며, 몇몇 주요 거점을 점령하는 데 필요한 최저 전력이라고 생각했던 병력이기도 했다.

“정말 단단히 결심하신 것 같습니다. 크루사다 공작님.”

“군주가 된 이후 첫 전쟁인데다 부당하게 참살 당하신 장인 어른의 복수전이니, 어찌 허투루 할 수 있었겠소? 게다가 종교적 정당성까지 있으니 귀족들의 지원을 얻기도 쉬웠소이다.”

역시 종교라는 구실이 화수분이었다. 세속권력과 종교권력이 떨어지지 못하고 밀월관계를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세속 군주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교단에서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정당성을 부여해준다. 그게 전쟁이든, 개혁이든, 착취든, 혹은 부적절한 이혼이든지 간에.

그러면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은 세속 군주는 교단에 그만큼의 보상을 제공한다. 전형적인 기브 앤 테이크의 협력관계인 것이다.

단순한 장인의 복수전이기만 했다면, 타라트라바의 영주들은 이처럼 열성적으로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 종교적 권위가 더해지면 어떨까?

주신께서 시키신 중대한 일을 사역하던 오렌시아 기사단장이, 엘랑키아 놈들의 비열한 계략에 빠져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이에 주신의 지상 대리인, 법황 성하께서는 매우 슬퍼하셨으며, 곧 무도한 엘랑키아 놈들을 파문에 처할 것이다.

즉, 얼마든지 침공하고 파괴하고 약탈해도 된다는 꼬리표가 붙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아주 최근, 같은 엘랑키아 남부의 이웃 동네에 들어갔던 성전군이 어떤 꼴을 당하고 풍비박산이 났는지는 이미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많은 라솔과 타라트라바의 귀족들에게 엘랑키아는 ‘침략하고 싶지만 침략할 수 없었던 땅’이니까.

바로 종교적 권위가 딱 아쉽던 판을 열어 젖혀 준 것이다.

“공작께서 북쪽에 상선들을 집결시키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퀸토 변경백이 지도 윗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물론 해상 운송을 통한 전면적인 침공은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적이 일부라도 속아주고 병력을 낭비한다면 그 자체로 효과는 있지 않겠소?”

“훌륭한 기만책입니다. 일단 우리 육군이 진격한 이후에 물자 수송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겠구요.”

“바로 그렇소.”

역시 바다를 건너 대군을 옮기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했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 안전한 교두보로 옮긴다면 모를까, 한 번에 내릴 수 있는 전력이 제한되니 말이다.

“상인들이 싫어했을 텐데, 어떻게 배를 징발하셨습니까?”

“전쟁 후 작은 이권을 주기로 했소이다. 이스키비르 강의 운송권 말이오. 지금은 엘랑키아 상인들과 나눠 쓰고 있으니 여기 욕심을 낸 것이오.”

물론 세금은 인접한 라솔 영주들이 받을 테니, 여러모로 나쁠 것이 없었다.

“전부 훌륭하신 생각입니다. 저는 그 동안, 이스키비르 유역을 중점적으로 살피면서 대군이 강을 건널 수 있는 지점들을 찾아보았습니다.”

“호오, 들어 봅시다.”

“여기, 여기, 여기··· 모두 여섯 곳이 후보지입니다.”

“워낙 거대한 강이니 이리 많군. 그래서 어디를 공격하실 생각이오? 엘랑키아 인들도 그저 보고만 있진 않을 것 아니오?”

상대의 물음에, 퀸토는 살짝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야 말로 그가 머리속으로 수 없이 망상했던, 엘랑키아 침공 첫 단계의 핵심이었다.

“모든 지점을 동시에 공격합니다.”

크루사다 공작의 얼굴에 놀람이 번지는 것을 보며, 퀸토 변경백은 작은 기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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