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58화 (258/556)

32-1. 인사 정보 작전 군수

강 건너로 집결하고 있는 적군 중, 강력한 부대가 강 하류에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언제, 어떤 방법으로 도강할지 모르기에 반드시 이에 대응해야 했다.

그래서 말한 직후에, 나는 말을 정정했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해야했다.

“라솔 군이 드 레뮤즈 영지 이외를 통해서 공격해올지 모른다 생각합니다. 대응 방침을 정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분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최근 겪은 적 없는 초유의 사태이다.

우선 블랑독 시절에는, 고맙게도 모두가 나를 신뢰해주었다.

그래서내가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고 있었기에 의견을 모을 필요도, 주변을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내가 판단하고 명령을 내리면 모두가 열심히 그대로 진행해주었으니까.

게다가 당시에는 절대적인 정보 우위에 있었다. 당시에 정보를 얻는 것은 세 가지 방식을 통했다.

먼저 당연하지만 아군 측에 우호적인 지역. 우리가 지키기 위해 싸우는 블랑독이 전쟁터이니 매우 당연했다.

다음으로 아쥬흐가 보유한 방대한 상인 네트워크의 정보가 있었다.

군대의 이동은 물자의 이동이니까, 이를 통해 적의 집결지를 알아내고 상당히 정확하게 주공 방향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적극적인 아군의 정찰이다.

물론 오로지 정찰만을 위한 부대는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광역 정찰을 소화해주었던 정찰 연대의 활약이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철저하게 중대급 이상 지휘관들에게 정보 수집과 전달의 중요성을 교육했다.

이 세가지는 시너지를 이루었고, 내 판단도 있었지만 유능한 정보 참모들이 적절하게 정보를 종합해 내 판단을 도왔다.

역시 참모들 역시 블랑독 출신이라는 점이 큰 가산점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지금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 곳은 이웃 나라, 그것도 적대적 관계인 라솔의 영토이다.

당연히 정보를 수집하고자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였지만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당연히 적지이니 지역민의 정보 제공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정보 제공자라는 것은 갑자기 만든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단 한 줄의 정보를 위해서, 휴민트에 10년의 세월을 공 들인다 하지 않는가.

라솔에서 활동하는 상인들도 쉽게 정보를 내주지 않았다. 역시 국가간의 전쟁 상황에서는 그들 역시 정보책이 되는 것을 꺼리게 되는 것이다.

당장 정보를 주고, 블랑독 상단과 관계를 쌓고 정보료로 제법 큰 돈을 만지는 것은 구미가 당기는 일이리라. 하지만 그 이상으로 라솔 왕국과는 척을 지는 일이다.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거래하고, 심지어는 살아야 하는 땅의 주인을 거스르기는 힘들다. 전문적인 정보원이 아닌 이상 예상했던 한계였다.

아군 정찰부대를 통한 직접 정찰은 당연히 어려웠다. 보낸다 해도 낯선 땅에서 충분한 효율을 얻기는 힘들었고.

게다가 가끔씩 들어오는 정보도 완전히 맹신하기는 어려웠다.

라솔에는 수 많은 귀족과 수 많은 군대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어디에서 군대가 소집됐다더라’ 혹은 ‘어느 백작의 군이 이동했다더라’ 등의 소식이 이번 전쟁과 직결되는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

결국 명백한 정보는 ‘전쟁이 다가오고 있다’고 모두가 인지한다는 분위기 뿐이었다. 들인 노력에 비하면 초라한 성과였다.

그렇게 대응이 필요하다 생각해서 회의를 요청한 것이 무려 사흘 전인데··· 이제서야 간신히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아마 라몽 드 레뮤즈 백작이 윽박지르듯 말하지 않았다면 더 늦어졌겠지.

불미스러운 난투극까지 있었던 상황에서 분위기는 결코 좋지 않다. 하지만 다 같이 싸우고, 또 이기기 위해 모인 것이다. 할 일은 할 수밖에.

내가 발제를 한 후, 모두가 조용하자 작위의 급은 부족하더라도 실질적 최상급자인 라몽 백작이 입을 연다.

“본인은 군사에 대해 잘은 모르오. 적이 강을 건너는 것을 기습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게 아니오?”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이었다.

드 누아 영지에서 당시 적이었던 네그라타 용병단을 상대할 때도 강을 건너는 적에게 피해를 강요했었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게 좀 어렵다.

“온당하신 말씀입니다, 백작님. 다만 그 건너는 장소를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스키비르 강은 너무나도 길어서, 사실상 엘랑키아와 라솔 국경 전체가 후보지입니다.”

그리고 나는 지도의 서쪽 부분을 툭 쳤다.

“그리고 강 쪽에 집중하는 사이, 적은 바닷길을 통해 엘랑키아에 상륙할지도 모릅니다.”

내 말을 들은 참여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점은 예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엘랑키아도 해군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왕도 베르마유가 있는 북부에 몰려있다.

남부의 해상 전력을 다 모아 봤자, 라솔이 작정하면 알아도 못 막는 수준의 작은 배들 밖에 없을 것이다.

“강변을 감시하면서 중요지를 지키는 것은 어떻소이까?”

처음 보는 얼굴의 나이 든 기사가 묻는다.

“그것도 좋은 생각입니다만, 지켜야 할 중요지가 너무도 많습니다. 최악의 경우, 흩어져 있다가 필요할 때 집결하지 못해 힘을 못 쓸 수도 있습니다.”

서부 귀족의 군대가 추가되어 아군의 숫자는 상당히 늘어났지만, 길고 긴 이스키비르 유역이 중요 거점을 모두 지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적의 병력 이동이나, 수송선 준비 등의 정보를 미루어 짐작할 수는 없습니까?”

이번에는 드 레뮤즈의 가신, 세샤르 드 레도쿠르 자작의 질문이다.

“저희 군에서는 노력을 해보았지만, 적지에서 정보수집이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자칫하다가 표면적인 정보에 휘둘리다가 기만책에 걸릴 수 있습니다.”

적은 바보가 아니다. 제발 이세계물인데 왜 주인공 보정으로 적들이 저능아가 아닌 것인지, 신이 있다면 멱살을 잡고 물어보고 싶은 말이다.

사실 지금 내 반응이 썩 좋은 방식은 아니다.

이래도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데빌즈 애드버킷도 아니고 이런 회의에서 무척 안좋은 대응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사전 조율이 전혀 안돼있고 내 말솜씨도 부족하니··· 차선책으로 직설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되 예의 바르게라도 말해야지.

잠시 사람들이 토론을 시작한다. 몇 명은 앞으로 나와서 내가 걸어 둔 지도를 보기도 한다.

토의되는 내용을 들으며 나도 생각에 잠긴다. 사실, 딴 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열이 뻗쳐서 험한 소리라도 할까봐 싶어서였다.

하고 싶은 일이 끓어 올라도 가능한한 참는다. 나는 사령관급끼리 따져도 최하급이니까.

많은 이들이 말하는 내용이 뻔하다. 경험과 지식은 적으나 자신의 군사적 탁월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 귀족 양반들이 떠들 법한 이야기다.

군사의 기본은 네 가지. 바로 인사, 정보, 작전, 군수이다.

이 네 개의 기둥이 전쟁이라는 쓸데없이 거대하고 화려한데다 생산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 잡아먹는 신전을 지탱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지휘관들, 특히 귀족들이 이를 무시한다.

철저한 신분제도의 심각한 문제점들 중 하나가, 어떤 머저리라도 혈통만 좋으면 수백 수천의 목숨을 다루는 사령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경우는 주로 정보와 보급 부분이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 잘 모르는 데다가, 이해하기도 싫어하는 이들의 전가의 보도.

‘그건 니들이 알아서할 일이지.’

가 여기도 적용되고 있었다.

정보 자산을 하찮게 생각하며, 지휘관으로서 생각하지 않아도 될 영역으로 여기는 것이다.

제대로 된 정보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 노력, 자원과 희생이 들어가는 지 상상도 못하겠지.

평범하게 정찰병을 파견한 중거리 감시 정도로 생각하겠지 말이다. 그런데 의외로, 지휘관이 신경 못쓰면 병영 외곽 경비조차 잘 안 돌아간다.

이쯤에서 슬슬 이야기를 정리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여러분! 잠시 여기를 봐 주십시오!”

익숙하고, 역겨운 목소리.

바로 올리앙 드 브레겔 남작의 목소리였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라몽 백작 앞에서 죽은 사람의 표정을 하고 있던 주제에 지금은 아이돌이라도 된 듯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방금, 제 주인이며 숙부이신 앙비토 드 몽파르지에 공작님의 측근이 정보를 전해왔습니다. 직접 저 가증스러운 숙적 라솔의 항구를 돌며 수집한 정보라고 합니다!”

봉인이 뜯긴 채, 다시 둘둘 말린 두루마리를 한 손에 들고 치켜들고 있었다. 그 옆에서 앙비토 공작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거만하게 앉아 콧수염을 만지고 있었고.

“오오, 역시 대단하십니다!”

“아무도 해내지 못한 것을 해내셨군요!”

주요 참석자들이야 숫자가 비슷비슷 하지만, 객원 참석자 중에서는 서부 귀족들이 많았기에 환호소리는 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떨떠름한 생각이 들었으나 정보를 알아왔다니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라솔 북부의 항구, 이리다스에서 온 정보입니다. 라솔 왕국의 전함과 상선들이 국왕의 명령에 의해 집결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이미 60여 척으로, 그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오오오! 그럼 적은 바닷길을 통해 침략할 것이 분명하군요.”

“해안 방어를 충실히 해야 하는 것입니까?”

흐으음, 역시 그랬나. 다시 환호하는 귀족들 사이에서, 나는 맥빠진 한숨을 내쉬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도 비슷한 정보는 알고 있었다. 상인들이 전해주는 ‘민감하지 않은 정보’에 포함될 정도의 큰 정보였으니까.

하지만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60척이 100명 씩 실어 나른다 쳐도 6천 명. 터무니없이 거대한 수송선들이 포함되어 있어도 1만명 안쪽이다.

침공의 주력 부대로는 너무 적고, 양동 부대로는 너무 많다. 상륙한다 해도 운 없는 남작령 하나 둘 정도나 털어먹을 수 있을까, 반드시 포위섬멸당한다.

때문에 앞으로도 감시는 하되 완전히 의지할 수는 없는 정보로 여기고 있었다.

“자아, 보시지요 블랑독의 용병님. 이 정보가 어떻습니까? 이를 바탕으로 작전을 준비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음···.”

종합적인 정보 수집이 중요하다는 것의 반례 수준이다. ‘일부’ 정보를 획득하고 이를 틀림없는 사실이라 믿어 버리는 실수를 범하는 것.

정보를 맹신했는데 그게 적의 기만책이었다면? 혹은 그냥 잘못된 정보라면?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후자라면 그나마 적이 조금 유리한 정도겠지만, 전자라면 아군이 파멸한다.

설명하려는데 갑자기 열이 확 올라서 독설을 퍼붓고 싶어졌다. 참자, 참어.

나는 저 밉살스러운 남작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라몽 백작을 포함한 연합군 인사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사실은 저희 쪽도 그 ‘첩보’는 접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정보의 출처를 알 수 있을까요?”

“정보의 출처라니! 앙비토 드 몽파르지에 공작께서 직접 전하신 정보라지 않소?”

엉뚱하게도 분노 어린 목소리는 또 다른 이름 모를 귀족 지휘관에게서 터져 나왔다. 이래서 귀족 나부랭이들이란.

“출처는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정보원의 보호를 위해 일부만이 공유하는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정보의 진위를 판별하기 위해 체크할 아주 많은 요소 중 시작일 뿐이니까요.”

“끄으음···.”

“이리다스의 상선 징발에 대해서는 저희도 파악은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아직 진위 여부에 대해 확인이 필요합니다.”

가능한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었다. 나도 혀가 꼬일 것 같다. 내 말을 들은 상당수는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지만, 또 적지 않은 수는 눈에 분노의 쌍심지를 켜고 나를 노려본다.

저 분노한 올리앙 남작처럼 말이다.

“저만한 수의 함대를 집결시키는 이유가 대체 뭐가 있겠소이까, 용병님! 알비온 침공이라도 한다는 말이오?”

“그건 맞습니다만, 제가 걱정하는 것은 라솔 측의 기만 공작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나는 재빠르게, 요점을 머리속으로 정리한다. 여기서 설명 잘못했다가는 큰일날 것 같았다. 올리앙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내 편을 들어줄 사람들에게 할 말이다.

“이번 적 침공의 주체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망한 에드메르 공작은 라솔 국왕의 친동생입니다.”

그러니, 국왕이 직접 지시하거나 최소한 그 직속의 원수급 지휘관을 보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상인들의 원성을 묵살하고 배들을 특정 항구에 ‘무의미하게 집결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정보 자체는 사실일지라도, 그 의도가 함정일 수 있습니다.”

최대한 또박또박, 하지만 단숨에 말하고 좌중을 둘러본다.

라몽 백작은 평소처럼 뭐 씹은 표정이며, 앙비토 공작은 명백하게 불쾌한 표정이었다.

정보를 구해왔다고 자랑하려 했는데 내가 초를 쳐 버렸으니까. 게다가 지금 나는 올리앙 남작과 이미 척을 진 상태니까···.

“반박하기는 했습니다만, 그와 별개로 사전에 정보를 수집하신다는 그 판단력에는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이쯤에서 당근을 하나 던져주자. 아, 정말 힘들다 힘들어. 하지만 용병료 받아 부하들을 먹여 살리려면 귀족님들 비위 맞추는 게 직업인 걸.

그리고 약간은 진심도 포함되어 있다. 앙비토 공작 외에, 다른 누가 사전에 정보 수집을 했던가.

어떤 연유로 군을 이끌게 되었는지, 어떤 이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칭찬할 만한 넓은 시야였다.

“앙비토 공작님, 저 용병이란 자는 공작님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아니 젠장, 아니라니까··· 답답해서 허파가 입으로 튀어 나올 것 같았다.

앙비토 공작은 올리앙의 분탕질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지만 말이다.

“이야기는 잘 들었소이다.”

다음으로 입을 연 것은 다행히도 라몽 백작이었다. ‘다행’이긴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지.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럼 블랑독에서 여러 차례 전투에서 승리한 승장인 그대에게 묻겠소.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드디어 왔다! 내 의견이 최대한 반발을 줄이려면,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이어야 한다. 그것도 신분이 높으면 좋겠다.

나는 2초 정도 머리속에서 말을 다듬었지만 사실 대답할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스키비르 유역의 경비를 계속하면서, 주력군은 집결해서 기다려야 합니다. 적이 정말로 국경을 넘으면 이를 요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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