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57화 (257/556)

31-7. 전장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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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몽 백작에 대한 설명 기회는 우선 내 입장에서 먼저 주어졌다.

나는 가급적 객관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라몽 백작을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나에게는 편견이 적은 편이라 감안하자. 그래도 명백하게 내 고용주인 트랑카벨 가문에는 혐오감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니 라몽의 귀족적인 자부심, 남 위에 군림하는 통치자로서의 공정함에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이런 경우, 괜히 우리 편에 유리하게 거짓을 섞는다거나 일방적으로 싸고 돌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나는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목표 지향적인 인간이다. 이 연합군의 1차 목표는 빠른 시일 내로 군을 전력화해서 출전에 대비하는 것이다.

물론 최종 목표는 라솔의 침공에 맞서 출전, 적을 격퇴하고 국경을 지켜내는 것이지만.

그러니 제발 라몽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해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흐음··· 병사들끼리 주먹다짐을 한 정도는 그냥 하찮은 일 아닌가. 귀관들이 직접 나서서 다투어야 할 정도의 일인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내 말이 바로 그렇다. 지금 싸워서 서로에게 무슨 득이 있나?

“뭐 좋지. 올리앙 경, 귀하의 입장을 말 해보게.”

“그게··· 저희는···.”

갑자기 무슨 일이지? 올리앙 드 프레겔은 안색이 하얗게 질려서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한다.

왜 이러지? 조금 전까지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이죽거리던 거만한 귀족 나부랭이의 모습은 간 데 없다.

“저희 가문의 가신이 큰 중상을 입고 돌아와서··· 이에 대해 항의를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큰 중상 말이오?”

“다수로부터 부당하게 폭행 당해 팔이 부러졌다고 합니다.”

“허어, 그 외에 상처는 없는가?”

“그게, 이빨이 부러지는 등 다른 피해도 많이 보고되었습니다.”

다수는 너희들이 두 배도 넘는 다수였잖아!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참는다.

이게 재판이라면, 자기 차례가 오기 전에 반박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까.

“에트 경 측의 용병은 다친 바가 없는가?”

“크고 작은 상처가 있긴 하지만, 골절 등의 중상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흐음.”

이야기를 들은 라몽 백작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진다.

여러 차례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알게 된 점이지만, 라몽의 얼굴은 찌푸리는 것 외에는 표정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주 저런다.

심지어 그 표정은 상당히 다양하다. 미묘하게 얼굴 근육의 완급이 조절된다. 더 두려운 것은, 같은 일그러짐이 같은 감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헛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라몽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연다.

“서로 원인 제공은 상대측이라 주장하고, 결과적인 피해는 올리앙 경 측이 크구려. 에트 경은 당사자에게 어떤 처벌을 했소?”

“전원 휴식 시간을 몰수하고 추가 근무를 시켰습니다. 책임자인 중대장은 이틀 간 숙소에서 못 나오도록 처분했습니다.”

설명이 끝나자 라몽은 잠시 고민한다. 대체, 저 찡그리는 표정 뒤편에는 어떤 생각이 존재하고 있을까.

“빠른 방식과 느린 방식 중 무엇을 선택하겠소?”

“빠른 방식을 선택하겠습니다.”

“올리앙 경은?”

“저, 저도 물론 빠른 방식을···.”

여전히 우물쭈물하는 것이 올리앙의 모습이 뭔가 이상하다. 좋아하던 선배를 갑자기 만나서 당황하는 여고생같은 꼴이다.

뭐, 실제로 라몽 백작을 좋아하는 역겨운 상황은 아니겠지. 아마도 강약약강.

자기가 위에 있다 생각하면 함부로 대하고, 열세라 생각하면 함부로 대하는 방구석 여포가 분명하다.

“아란 제국 시절부터 내려온 유서 깊은 군법이 있지. 서로 다른 부대 사이에 분쟁이 벌어졌을 때 각각 책임자 1명을 본보기로 목을 매달고 양측의 분쟁을 없던 것으로 한다.”

아니 이건 또 뭔 소리여.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그림자의 침공에 맞서, 군인황제 샤로마가 대륙 전체에 소집령을 내렸을 때 시행한 군법이오.”

아··· 희미하게 기억이 난다. 샤로마 법이었나. 그거 너무 가혹하다고 해서 지금은 유명무실하게 폐지된 법이지.

스승님께 처음 들었을 때도 ‘아란 제국 놈들 미친 놈들 아냐?’ 라고 생각했었지. 아니 양측이 잘못했으면 잘잘못을 가려야지 둘 다 죽여버리면 어쩌냐고 물었었지.

당시 스승님은 뭐라 하셨더라? 아마도 샤로마 황제가 문제 삼은 그들의 죄는 다른 사소한 것이 아니라 대군의 행동을 방해한 것이다, 라고 하셨던가.

다른 잘못이야 어떻든, 죽을 죄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으니 죽이고 보겠다 이런 것이다.

당시에도 황당하다 생각했고, 스승님도 그게 옳다는 말씀은 안 하셨지. 너무 현대인 감성일지 몰라도 나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그나저나, 라솔의 왕제와 종교 기사단을 함정에 빠뜨릴 때도 고대 아란 제국 식의 예법을 사용해 안심시켰다고 했던 것 같은데. 빵과 소금을 담은 상자를 선물해서 말이다.

라몽 백작은 사실 은근히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총사령관이신 라몽 백작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희가 어떻게 토를 달겠습니까···.”

올리앙은 여전히 머리를 조아리며 납작 엎드리는 듯한 말을 한다.

“죄송하지만 저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장교도 병사도, 아니 군인이 아니라고 해도 자신이 저지른 죄 이상으로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나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일이 커지는 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렇다고 뭐든 넘길 수는 없다.

내가 거절하자, 라몽 백작의 표정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올리앙은 놀랐는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눈을 크게 치켜뜬다.

숱한 부하들을 위험한 사지로 보내는 게 직업인 인생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생각하는 원칙이 있다.

군대는 병사의 목숨을 연료로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다.

아, 물론 희생은 불가피하다. 전쟁이란 게 그런 거니까. 때문에 모든 희생은 가치가 있어야 한다. 최선을 다한 끝에야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비극이어야 한다.

단 한 명의 목숨도 내가 편해지고자 하는 목적으로 소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에트 경, 귀하도 분명 빠른 해결을 원하지 않았소? 게다가 그들을 처형하는 이유는 그만한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오.”

“...대군의 행동을 방해한 것이다, 입니까?”

“호오···.”

내 말을 들은 라몽 백작의 눈빛이 이채를 보였다. 아마도 모르고 있을 거라 생각한 것 같다. 그는 이어서 설명해보라는 듯, 턱짓으로 지시한다.

“일벌백계를 통해 군의 엄정함을 보이는 것은 좋습니다만, 너무 가혹하면 오히려 정의에 어긋나는 법입니다.”

“그렇다 하면, 귀경이나 올리앙 경과 같은 지휘부가 이런 하찮은 일에 매몰되어도 좋다는 말이오? 이런 중요한 때에.”

거기에 대해서는 또 할 말이 없었다. 군 내 감찰부나 헌병 같은 조직이 없으니까.

그럼 기존 직책자 중 누군가가 책임지고 맡아야 하고, 그 사람의 원래 일은 또 비어 버리겠지. 이는 군을 새로 조직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지금 시점에서 큰 문제이다.

“뭐, 좋소. 이 일은 향후 지휘관 회의에서 다시 다루겠소. 양 측 모두 그 때를 위해 준비하도록 하고, 만에 하나 거짓을 고한 자가 있다면 무거운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오.”

내가 중재안을 거부하자 화를 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의외로 선선히 안건을 ‘내일의 우리’에게 넘겨 버린다.

그래, 결정하기 어렵다면 결정을 미루는 것도 해결 방안 중 하나지. 그러다 보면 자동으로 해결되는 일도 있거든.

“그게··· 용병님, 에트 경의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당사자가 그런 처벌을 받았다면··· 굳이 라몽 백작님을 귀찮게 할 필요는···.”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올리앙이 완곡하게 빠른 해결을 원하고 나섰다. 뭐지, 가훈이 정의집행이라며?

“무슨 말이오, 팔을 부러뜨렸다면서 이틀 가둔 걸로 해결이 된다 하시는 거요?”

“그,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단기간에 상당히 싫어할 정도로 스펙타클한 입살스러움을 보여줬던 남자가 애처로울 정도로 떨고 있다.

갑자기 왜 저러나 생각해보니, 아까 라몽 백작이 이야기했던 ‘거짓을 고한 자가 있다면 무거운 책임을 면치 못할 것’에 쫄아서 그런가?

확실히, ‘내’가 상대라면 당사자들끼리 입을 맞추고 증거 조작질과 가짜 증인 소환으로 어떻게든 구워 삶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라몽 백작’은 다르다.

이 사람은 여기 모인 연합군 전체의 수장일 뿐더러, 엘랑키아 남부 최대 최고의 영주이다. 권위로 따져도 주변 귀족 가문들이 죄다 한 수 접어줄 정도니까.

그러니 은화 몇 푼에 거짓 증언을 하려던 자들은 모두 생각을 다시 하게 될 것이다. 드 레뮤즈의 세력권에서 계속 살려면, 장사를 계속 하려면 몇 푼으로는 수지가 안 맞는 것이다.

그랬다가는 올리앙이 ‘거짓을 고한’ 책임을 면치 못할 테니까··· 갑자기 몸이 달은 것인가?

“그, 그래도 일을 너무··· 크게···.”

“적당히 덮고 싶었으면 이 라몽이 알기 전에 덮었어야지.”

그러게 말이다, 이 멍청한 귀족놈!

“네··· 그, 죄송합니다, 백작님.”

“이후에 제대로 옳고 그름을 가리면 되겠소.”

올리앙이 다시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숙이자, 라몽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말을 마무리한다.

“그보다, 앙비토 공께서는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 들으셨소.”

“아 네넵! 휘하 제장들과의 회합을 위해···.”

매사냥 나갔다더니··· 여기서 더 끼어 들고 싶지는 않으니 참기로 한다.

“지금은 작전 회의가 중하니, 속히 귀환하라 하시오.”

“네 백작님! 백작님께서 일찍 오실 줄 몰라 자리를 비우신 것으로 압니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라몽 백작이 한 마디씩 할 때마다 멍청이 남작이 움찔대며 반응하는 꼴을 보니 체증이 다 내려간다.

작전 회의가 늦어지는 것은 매우 큰 일이니 역정을 내는 것도 당연하지. 그런데 정치적 문제가 굉장히 많다고 들어서 늦는다 들었는데 문제 없는 건가?

“에트 경, 보병 부대 훈련은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소?”

“물론입니다, 라몽 백작님.”

“흠, 호언장담에 어울리는 결과를 기대하겠소이다.”

···아 나름 성실하게 하고는 있지만 조금 긴장된다. 이게 대귀족의 권위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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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 라몽 드 레뮤즈 백작 주관하의 연합군 최초로 지휘관 회의가 시작되었다.

앙비토 공작은 사흘짜리 매사냥에 나갔다더니, 라몽 백작이 올리앙 남작에게 역정을 부리자마자 이틀 후 귀환했다.

제법 더운 날인데도 갑주 위에 얇은 비단 코트를 걸치고 곱슬거리는 장발을 늘어뜨린 멋쟁이였다. 만약 군사적 실력도 패션 센스를 따라간다면 명장이 분명해 보인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여러분.”

공작은 한 발을 뒤로 빼고 팔을 옆으로 벌리는 고풍스러운 사죄의 인사를 한다. 아니 저 집안은 정책으로 저 인사법을 가르치나?

비로소, 내가 며칠 전에 요청했던 회의는 참석자를 모두 채우고 시작될 수 있었다.

우리 군에서는 나와 부관 첼레스티나가, 드 레뮤즈 군에서는 보병대장 세샤르 자작과 참모 아인멜츠가 참석했다.

거기에 앙비토 공작과, 최근 병영에서 보이지를 않아서 뭐 하는지 몰랐던 올리앙 남작이 함께한다. 올리앙 남작은 어째 안색이 좋지 않고 전보다 마른 것 같은 인상이다.

마지막으로 의장인 라몽 드 레뮤즈 백작. 뭔가 자뻑같지만, 엘랑키아 남부의 실력자들이 모인 자리라고 할 수 있었다.

“바쁘신 와중에 모시게 되어 죄송합니다. 라솔 군의 수상한 동향에 대해서 조사하다 반드시 보고해야 할 사항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가급적 예의바르게 발제를 시작한다. 앙비토 공작은 희미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부관인 올리앙은 완전 폐급이었는데, 이 인간은 어떨지?

“향후 아군의 행동 방침에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첼레스티나, 지도 줄래?”

“네에, 콘도티에레.”

나는 첼레스티나가 건네준 두루마리를 펼쳤다. 엘랑키아 남부의 지도였다.

블랑독 서쪽 해안, 드 누아 백작의 영지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서쪽으로 흐르는 큰 강. 이스키비르 강 유역이 높이 올라오도록 벽에 건다.

“엘랑키아와 라솔의 국경이 된 이스키비르 강의 방어 계획입니다.”

내 손이 강을 따라 훑어 움직였다.

“라솔 군이 우리가 예상했던 구간 밖에서 도강을 시도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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