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56화 (256/556)

31-6. 전장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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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뮤즈 주둔지 난투 사건’

산 넘어 산이라더니. 모처럼 큰 맘 먹고 소집한 첫 지휘관 회의가 결렬되자 화 난 첼레스티나를 위로하며 돌아와보니, 사건은 이미 벌어져 있었다.

하늘이라도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지빌링엔 연대의 에르만 슈피리 연대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귀여운 부관, 스테펜 슈피리와 함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제 휘하 중대장 알골 딘다르트를 비롯해서, 전부 일곱 명의 장병들이 인근 임시 주점을 갔다가 다른 군 소속의 무리와 싸움이 붙었다고 합니다.”

“전투에 앞서서 처음 보는 아군끼리 시비가 붙었다는 말인가···.”

사실 흔하다면 흔한 일이다. 전투를 앞두면 기이한 고양상태가 계속되니까.

가혹한 전투 상황에 대한 두려움, 성공과 승리에 대한 욕망, 같은 일을 위해 모인 다수의 동료들과 함께한다는 묘한 안정감이 뒤섞인 괴상한 정신상태가 된다.

평소에는 닭 한마리도 못 죽일 것 같던 사람도, 전투 상황에서는 적의 멱을 따고 배를 가른다.

본디 전쟁이라는 것이 제 정신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원래 전투 직전과 직후가 그 ‘미친 상태’가 가장 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남의 부대는 물론 같은 부대 동료들 끼리도 주먹다짐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당연히 가급적 이를 통제하려고 하지만, 전쟁에 나가는 것 자체가 본능을 거스르는 일인지라 맘대로 잘 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면 이렇게 사건이 터지기도 하는 것이고.

심지어 지휘관에 따라서는 권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눈감아주는 경우도 있다 하고.

“크게 다친 사람은 있나요? 설마 무기까지 꺼낸 건 아니겠지 설마···.”

“그것만은 알골 중대장이 잘 제어했다고 합니다.”

“휴,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런데 상대측 우두머리가 검을 뽑았다고 합니다.”

아니 뭐 그런 머저리 새끼가!

건전한 상식이있는 사회인이라면, 싸움을 한다 쳐도 무기를 꺼내고 말고가 아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 것이다.

아니 싸움 자체가 건전한 일은 아니지. 하지만 그래도 서로 맨손으로 싸우는 것과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법률적으로 상해죄 앞에 ‘특수’가 붙는 경우는, 무리를 지어 작당했거나 무기를 사용했을 때니까. 법정에서도 굉장히 질 나쁜 범죄로 무겁게 다스리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리 법률면에서 발전하지 못한 봉건시대 엘랑키아 한복판에서도 그런 점은 똑같다. 사람 사는 데가 다 비슷하고 통념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니까.

지휘관이 주군이며 법관의 역할을 하게 되는 군대에서는 약간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군대는 본디 전투를 하는 집단이고, 남을 죽이는 게 직업인 자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그러니 다른 누구보다도 무기에 익숙하고 가까이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군의 기강을 흔드는 내부 다툼은 비교적 가볍게 처벌하되, 무기를 뽑아 든 경우는 매우 무겁게 처벌한다. 무기에 가깝고 익숙하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한편으로는, 설령 주먹다짐이 벌어졌어도 ‘아직 선은 넘지 않았다, 그러니 여기서 진정하자’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두 행위에 대한 처벌에 격차를 두는 것일지도 모르지.

“날붙이에 다친 사람이 있나요?”

“날붙이에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만··· 팔이 부러진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누가 그랬지요?”

“그게··· 칼을 뽑은 엘랑키아 인 장교입니다.”

“하아··· 거 참.”

술집에서 주먹질을 하다가, 적이 무기를 뽑아 들었고, 이쪽은 무기를 안 쓰고 그걸 제압했다 이거지.

단순히 멍들고 긁힌 상처 정도라면 서로 술 깨고 정신차리면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골절이라니 좀 애매하네.

죽은 사람이 없어서 다행··· 이라고 해야하나.

“상대 측은 모두 몇 명 이었나요?”

“15명 입니다.”

“어휴, 여섯으로 열 다섯을 두들겨 팼구나.”

나도 모르게 감탄을 하고 말았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잘못을 했는데 칭찬하는 듯한 뉘앙스가 있으면 안 되지.

역시 산맥의 바위처럼 단단한 지빌링엔 용병들이다. 허접한 엘랑키아 녀석들로는 상대가 안되겠지.

“싸운 이유가 뭐라고 합니까?”

“그건 도무지 입을 열지 않습니다. 콘도티에레께 보고드리기 위함이라고 해도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흠···.”

완고하게 말을 하지 않는다면, 상당히 엄중한 이유, 혹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유겠지.

평소 알골 딘다르트 중대장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엄중한 이유일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그들에게 소중한 뭔가를 함부로 언급했을지도.

뭐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지. 서로 잘못한 게 있으니 저쪽에서도 좋게 넘어가주면 좋겠는데.

“전원 휴식 몰수에 추가 근무, 그리고 책임자인 알골 중대장은 이틀 동안 자기 숙소에서 근신합니다. 지금 어디 있나요?.”

“영창을 만들어서 가둬 두었습니다.”

없던 영창이 갑자기 생길 수는 없으니, 어디 울타리 같은 것 만들어서 가둬 두었겠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명예형’ 이다.

“아마 그쪽에서도 큰 목소리를 내지는 못할 것 같긴 합니다.”

라고 나는 사안을 너무도 가볍게 생각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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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아귀가 맞아도 이렇게 더럽게 맞아 버릴 수가 있구나.

“분명 서로 잘못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러니까 서로 사과하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하지만 이 쪽은 팔이 부러졌습니다. 중상자가 생겨 전력에 차질이 빚어지게 생기지 않았나요.”

젠장, 그 꼴보기 싫은 낯짝을 이렇게 빨리 다시 보게 되다니.

하필이면 올리앙 드 브레겔 남작, 아까 회의장에서 정말 안좋은 첫 만남을 가졌던 젊은 귀족이 찾아왔다.

“하지만 두 배가 훨씬 넘는 숫자와 싸우는데, 그 쪽에서 무기까지 뽑아 들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먼저 주먹질을 시작한 것은 귀군 측 장교라더군요. 게다가, 무기를 뽑았다는 것은 확실한 일입니까? 우리 병사들은 아무도 그렇다고 증언하지 않는군요.”

이런 빌어먹을 논리 같으니라고. 목격자라고 해 봤자 임시 주점의 직원들 아니면 누군지도 모를 다른 군의 병사들 뿐이다.

그러니 한 쪽에서 말을 완전히 맞춰버리면 진실을 묻어버리는 것은 쉬웠다. 뭐 CCTV 같은 게 지켜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이 올리앙이라는 남작 녀석, 겉으로는 정중하고 엄숙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말투나 표정에서 언듯 유열이 느껴진다.

이를테면 건수를 잡았다 이런 건가? 매 사냥 건 처럼 기싸움을 걸려 하는 거야 설마?

그러면 이건 단순 몇몇 병사 개인간의 주먹다짐 사건이 아니다. 분명 지휘부 관련으로 이쪽을 찍어 누르려고 하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양측을 불러 이야기를 들어보고, 필요하다면 법정을 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렇게까지는···.”

“호오, 용병님의 군대는 원칙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시나요?”

나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 눌러 참았다. 바로 옆에서 듣고만 있던 첼레스티나가 엄청난 살기를 발하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까지 화를 냈다가는 뭔가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이 자식, 평소에 어떻게 말하면 상대가 열 받을지 연구하는 것 아냐? 그게 전략이고 전술이면 나폴레옹이 따로 없었다.

“올리앙 남작님, 한번 생각해보세요. 재판을 한다 해도 명백한 사실을 가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데 진상을 어떻게 밝히겠습니까?”

“어렵다는 이유로 피해서는 안 되지 않겠나요?”

자신의 명대사가 마음에 들었는지, 슬쩍 웃기까지 한다. 아니 뭐 말이야 바른 말이기는 한데.

이렇게 철저하게 서로 입을 맞춰 놓은 상태에서 진실을 찾아내려면 제3자의 증언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유리하게 증언할 제3자 증인’을 어거지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건이 벌어진 임시 주점 직원들 중에는 은화를 얻을 수 있다면 거짓 맹세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다 떠나서 주점 직원이 아님에도 직원이라 우기는 누군가를 만들어 올 수도 있겠지. 거짓말을 한 번 하나 두 번 하나 상관 없다 여긴다면 말이다.

제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정말 기싸움인가? 실적 있는 용병 나부랭이들 버르장머리를 초장부터 잡아 두려는 건가?

“저는 여기서 말끔하게 일을 마무리하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지금은 전시이고, 당장 내일이라도 출동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 말고도 할 일이 많잖아 그리고. 아직 드 레뮤즈 군의 훈련은 궤도에 오르지 못했고, 그 후에는 각 군의 손발을 맞추는 합동 훈련도 반드시 해야 한다.

사과하고 넘어갈 수 있다면, 차라리 사과하고 넘어가고 싶다는 심정이다.

“작은 일부터 바로 세워야, 전체가 바로 서는 법입니다.”

“...기어코 군사 법정을 여셔야 겠습니까?”

“다른 방법이 없다면 말입니다.”

“일단 사과부터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으음···.”

아직 사과를 할 수는 없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문제가 해결된다면 기꺼이 얼마든지 허리를 숙이겠다만, 이건 자칫하면 트랑카벨 가문과 엮인 문제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사과를 한 다음, 상대가 고집부려 재판까지 가게 된다면 우스운 꼴이 된다. 설마 이런 함정까지 팔 정도로 비겁한 인간은 아닐 거로 생각하지만.

“사흘 후, 저희 숙부이신 앙비토 드 몽파르지에 공작님이 귀환하십니다. 그 때 다시 의견을 나누도록 하지요.”

“예··· 에? 뭐라고요? 사흘? 어디 가셨길래 사흘 후입니까?”

“이런 이런, 용병님, 아까 회의장에서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숙부님께서는 막하의 여러 지휘관님들과 함께 사냥을 가셨습니다.”

이런 젠장, 장난하나 진짜. 부하들이랑 사냥 갔다길래 당연히 오늘 저녁에는 들어오는 줄 알았지. 사흘? 사아흘? 지금 전쟁하려고 모인 건데 제정신인가?

나는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최근 없어졌던 수전증이 다시 생길 지경이야.

게다가 옆에서 첼레스티나가 뿜어내는 살기 때문에 소름이 돋아서 피부가 따끔따끔할 정도였다.

“아니··· 앙비토 공작께서는 어째서 사흘 동안이나 자리를 비우신 겁니까?”

“본래 들짐승들은 사람의 거주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지 않겠습니까?”

“그 의미가 아니라, 전쟁을 앞두고 어째서 사흘이나 병영을 비우냐는 뜻이었습니다.”

“저도 숙부님의 큰 뜻은 잘 모르겠으나, 전쟁을 앞두고 휘하 장군들과 협력체계를 갖추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닐까요?”

그걸 그리 잘 아는 인간이 왜 우리와는 ‘협력체계’를 갖추려는 생각이 조금도 안 보이는 건데.

더 열받는 것은, 올리앙 남작은 내가 질문한 의미를 잘 이해했으면서도, 일부러 동문서답을 했다는 심증이 강하게 든다는 것이다.

나도 상대 열받으라고 깐죽대는 대화에는 다소 소양이 있다 생각했지만, 이 인간은 진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프로 깐죽꾼이다.

“그럼 사과하실 생각도 없는 듯 하니, 숙부님께서 돌아오시면 다시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쟁 통에 굳이 일을 그렇게 크게 만드셔야겠습니까?”

지휘관급이 이렇게 모이는 큰 재판이 되면, 자연스럽게 진행은 더뎌지고, 조사는 신중하게 이루어 질 것이다.

허나 그렇게 내려지는 판결도 그만큼 무거울 가능성이 높았다.

“저희 브레겔 가문의 가훈은 ‘정의집행’ 입니다.”

그의 잘생겼다면 잘생겼다고 할 수 있는 얼굴에는 정말로 밉살스러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리고 가훈은 무슨 놈의 가훈이야. 공작의 조카 남작이면 장가가기 전까지 임시로 받은 가문 내 작위겠지.

부자집에서 자식에게 어디 가서 꿀리지 말라고 사업체 명의로 명함 파주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인데.

“이런 데서 정의를 찾는다고 의미가 있겠습니까?”

“정의는 용도나 의도와 무관하게 세우고 지켜야지요. 이거 참, 역시 반역향 블랑독에서 오신 분이라 그러신가요?”

···뭐?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반역향이라고?

나는 상대가 일부러 도발한다고 100퍼센트 확신하면서도, 도저히 참기가 힘들었다. 이건 분명 의도가 있다, 나를 함정이 빠뜨리려고 하는 거다.

전장에서 딱 먹음직스러운 돌격 각을 내주는 적의 측면을 보고 신중해지는 것처럼, 열심히 마인드 컨트롤을 해 화를 가라앉힌다.

“정의란 좋은 것이지.”

갑자기 막사 밖이 웅성웅성 시끄러워지더니, 누가 온다는 소리도 없이 덩치 좋은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들어온다.

내가 여기서 아무리 급이 딸리고 모욕받고 있다 해도 그래도 일군을 이끄는 사령관이다.

이런 식으로 방만하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특히 이 경우는 명백했다. 핏기도 없고 윤기도 없어 유난히 병적으로 보이는 흰 얼굴.

라몽 드 레뮤즈 백작이었다.

“라, 라몽 백작님! 여기는 어쩐 일로···.”

올리앙 드 브레겔 남작 역시, 얼굴에서 이죽대는 웃음을 싹 걷어더니 진심으로 놀란 것 같았다.

“일정이 바뀌어서 조금 서둘러 도착했더니, ‘나의 군대’ 지휘부가 텅텅 비어 있었소이다.”

특유의 못마땅한 미소에, 비꼬는 듯한 목소리.

“그런데 ‘나의 군대’가 싸우기도 전부터 무너져가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그 진원지로 오게 되었소.”

이런 젠장, 할 말이 없다. 내 의도야 어떻든 연합군을 콩가루로 만들고 있는 데는 나도 일조를 하고 있는 와중이니까.

그나저나 대체 뭐 하러 온 거지··· 무슨 보고를 해야 할까.

나는 잠시 멈추었던 뇌를 열심히 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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