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47화 (247/556)

30-3. 회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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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렇다할 발견 보고는 없는가?”

“아직입니다, 소베트르 경. 그게··· 죄송합니다.”

“아닐세. 다들 새벽부터 고생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네. 라몽 영주님께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아,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닐세!”

라몽 드 레뮤즈 백작이 임명한 영지군의 기병대장, 소베트르 드 랑두제 전 남작은 몸 둘 바를 몰라하며 고개를 조아리는 지방 영주의 하급 무관을 돌려보냈다.

“거의 다 잡았는데···.”

소베트르는 아쉬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는 며칠째 제대로 쉬지 못해서 푸석푸석해진 얼굴에, 눈 밑은 시커멓게 변해있었다. 그를 따라온 드 레뮤즈 가문의 기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그들은 드 레뮤즈 가문이 오렌시아 기사단을 비롯한 라솔의 파견군을 함정에 빠드렸던 ‘화형의 밤’의 생존자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나름 완벽한 계획이었고, 95퍼센트 이상 성공한 계획이었다. 당시까진 동맹이라 착각하고 있었던 ‘적’은 별다른 의심도 없이 함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안심하고 술과 고기를 즐기던 수천의 적은 무너지는 토사와 치솟는 불, 그리고 포위한 레뮤즈의 병력에게 참살당했던 것이다.

허나 역시 허술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철저하게 사방을 포위한다고는 했으나, 소베트르를 포함한 작전 당사자들도 사건 직전에야 알았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으니까.

일단 적의 군마를 모두 폭발로 죽이거나 쫓아내려고 했던 것은 일부 실패했다.

그 때문에 수십 기 정도의 적이 포위망을 벗어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보안을 지키며 긁어 모인 병력의 숫자도 빠듯했기에, 물리적으로 포위망 전체를 감싸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허둥대며 적대감을 보이고, 드 레뮤즈 군을 상대로 맞서 싸우려던 자들은 금방 제압당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똑똑했던 것인지, 아직 주변의 모든 군대가 기습 사실을 전해듣지 못했다는 것을 간파하고 빠져 나간 자들이 있었다.

오히려 외곽 경비를 서던 다른 가문 소속의 병사들에게 길을 묻고, 수고하신다고 인사까지 주고 받으면서 말이다.

나중에 앞뒤 사정을 들은 그 병사는 굉장히 심하게 자책했지만, 그로서는 충실하게 자기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 직후, 소베트르는 추격대를 편성해 뒤를 따라온 것이다.

“소베트르 경!”

갑자기 멀리서 사냥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린다. 병사들의 외침 소리도 들린다. 전투가 벌어진 분노의 외침이 아니라, 다급한 신호의 외침.

무언가 찾았는지, 다급하게 전령이 달려온다.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개들이 뭔가 발견했습니다!”

“알겠네, 어느 방향이지?”

“지금 개가 짖는 소리가 나는 쪽, 저 농가의 끝 쪽입니다.”

“고맙네!”

소베트르는 서둘러 말에 올라 달리기 시작한다. 주변을 수색하고 있던 병사들의 놀란 얼굴이 빠르게 멀어져간다.

이윽고, 가벼운 누빈 갑옷을 입은 병사들 여럿이 모여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소베트르 경, 여기 버려진 갑옷이 있습니다.”

“음, 보여주겠나?”

확실히, 농수로 부근에 버려져 있던 것은 오렌시아 기사단의 상급 기사가 입었을 법한 질 좋은 흉갑이다.

잘 손질되어 있기는 했으나, 몇 번이나 우그러지고 긁힌 흔적을 보수한 자국이 있었다. 최근에 생긴 상처와는 분명하게 다른 흔적이다.

착용자의 몸에 닿는 안쪽에 핏자국도 있었으나, 생명에 지장이 갈 정도로 많은 양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멀쩡한 몸으로 포위망을 빠져나와 도망쳤던 모양이다.

“저쪽에 억지로 타넘느라 울타리의 일부가 부서진 흔적이 있습니다. 개들이 풀밭에서 얼룩을 발견했는데 아마도 핏자국이 아닌가 싶습니다.”

“핏자국? 양이 많았나?”

“그건 아닙니다. 그렇게 큰 상처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군··· 흉갑의 흔적과도 일치하네.”

마침내 도망친 흔적을 찾아냈다. 여기서 아마, 적은 갑주를 벗어 던지고 늪지대를 지나 이스키비르 강을 건넌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강 건너는 라솔 왕국의 영토이다.

이렇게까지 흔적이 명확하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고생했지만 적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안타깝지만 추격은 여기까지인 것 같군.”

“...죄송합니다.”

“여기까지 놓쳐버린 내 잘못이 일차적으로 가장 크지. 미안하지만, 그래도 한동안 강변 수색은 계속해주게. 남은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알겠습니다, 소베트르 경.”

현지 영주의 도움으로 지원 받아, 적극적으로 수색에 참여했던 지방군 병사들은 낙담한 표정이다.

소베트르를 따라온 기병들 역시 갑자기 지쳐보인다.

“잠깐 점심을 먹고, 오늘까지만 수색을 계속해보지.”

“알겠습니다.”

보병들이 순번을 정해 쉴 자리를 마련해 앉고, 불을 피울 준비를 하자 기병들도 말에서 내린다.

점심이라지만 대단한 음식을 먹는 것은 아니다. 적당히 국물을 끓여 말라붙은 빵과 함께 먹는 정도.

자기 몫을 빵을 받아들면서, 소베트르는 지방군 병사들의 복장을 살핀다.

지휘관인 기사는 그나마 기사 다운 갑옷, 잘 정련된 최신 판금 갑옷을 입고 있다.

하지만 중견 지휘관인 부사관 중장병은 무릎까지 드리워진 미늘 갑옷을 입고 있었고, 일반 보병들은 천과 솜으로 부분 부분 두툼하게 누빈 갑옷을 입고 있다.

창병들의 창은 겨우 사람 키보다 약간 긴 정도였고, 사냥개를 다루며 가죽 조끼를 입은 정찰병은 긴 활을 들고있었다.

창에 기대서 경비를 서던 보병들이, 불 붙은 화승총을 조심스럽게 다루며 말에서 내리는 용기병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소베트르는 자신이 참여해서 비참하게 패했던, 여울목에서의 전투를 기억한다.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상세히 보고를 들었던 샹다메리의 전투도 기억한다.

이 병사들이 그런 전투에 참여하면 버틸 수 있을까? 아마 잠시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너무 짧은 창도, 과거의 무기에 맞춰진 시대착오적인 갑옷도, 치열한 화력전을 생각하면 낙후된 활도 말이다.

이들은 드 레뮤즈의 중앙 영지군에 소집되진 않았지만, 전쟁이 이들을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소베트르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변방의 남작이었다. 그런데 벌써 이런 생각을 하며 전쟁에 대해 아는 척을 하게 되다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이가 없다.

하지만 이들을 위해서라도 장비와 훈련의 개선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작년까지만 해도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베트르 가문의 병력도 한 세대 전의 낙후된 봉건 군대에 불과했었고.

하지만 소베트르는 살아남았다. 전장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빠르게 적응하고 변화한다는 것이다. 늙은 몸으로 어떻게든 현실에 따라가고 있는 자신이 조금은 자랑스러웠다.

대부분은 젊은 책사 친구인 아인멜츠의 도움이 컸지만.

어쨌든, 지방 영주의 병사들은 정규 전투에서의 역할은 그렇다 치고, 추격자로서의 임무는 성실하게 수행해 주었다.

‘화형의 밤’ 이후, 며칠 간의 추격전에서 모두 28명의 도망자들을 잡아들였던 것이다.

총 28명 중, 25명은 현재 사망했다. 저항하다 죽임을 당한 경우도 있었고 죽은 채로 발견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3명은 포로로 잡혔다. 모두 부상을 입고 마음이 꺾인 상태에서 항복했다. 기사 출신이나 용병 출신이나 별 차이는 없었다.

이것 저것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많이 했다. 아마도, 끝까지 잡히지 않고 도망친 소수 중에는 재무관이라는 상당히 높은 직위의 기사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더더욱 잡았어야 했는데··· 아쉬운 일이다.

이로 인해서 라몽 드 레뮤즈 영주님의 큰 계획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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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그나시오 올리메 데 트라가제토, 오렌시아 기사단의 재무관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오렌시아 기사단은 그에게 모든 것이었다.

에드메르 산타로 데 카르도라 단장과 기사단 형제들은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위그나시오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다.

하급 귀족가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소년 시절부터 오렌시아 기사단 소속의 수도원에서 자랐다.

신통치 않은 귀족 집안에서, 물려줄 재산이 없는 막내 아들을 신에게 바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당연히 가족이 그를 만나러 오는 일은 없었고,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족과 떨어져 울고 불고 하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형제들도 있었으나, 위그나시오에게는 의외로 수습 수도사의 삶이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그렇게 수습 수도사에서 견습 기사가 되었고, 교리든 검술이든 승마술이든 나름대로 잘 배우고 익혀갔다.

그가 성장하면서 기사단 조직도 성장했다. 아마도 신임 단장, 라솔 왕국의 왕자라는 분이 부임하신 이후였다.

기사단에는 낯선 신입도 많이 늘었고, 군사조직으로서 도와주는 하급 병사나 준기사들도 늘어났다. 수백 명이었던 오렌시아 기사단은 곧 수천 명이 되었다.

평소처럼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계속한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종교 기사단 조직 내부에서 승급을 거듭했고, 이내 기사단 서열 5위 안에 드는 높은 직위인 재무관이 되었다.

군사 조직과 행정 조직이 분명하게 나눠지지 않았고, 거의 모든 기사들이 양쪽 임무를 동시에 맡아서 하는 기사단 조직이다.

재무관은 안팎에서 도는 금전을 관리하는 한편, 기사단이 원래 보유한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을 관리한다.

동시에 기병대를 지휘하는 중견 지휘관이기도 하고, 기사단 전체가 출정하는 때에는 후위를 담당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가 가입할 때만 해도, 오렌시아의 성녀와 인연이 있는 영원의 샘물을 관리하는 비무장 수도회에 가까웠던 기사단 조직은, 차츰 본격적인 전투 집단이 되어갔다.

때로는 이단자를, 때로는 이교도를, 때로는 같은 주신 교도를 전장에서 상대했다.

어느덧 위그나시오 자신의 손에도 얼룩이 늘어갔다. 그만큼 흉터도 늘었다. 두 번 정도는 부상이 심해 생사의 기로에서 허덕댄 적도 있었으니.

원래 차분한 성격 탓인지, 전장의 긴장과 공포에도 익숙해졌다. 종종 마음이 무너져 울부짖는 신병들을 보다보면, 자신은 저렇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무장하지 않은 이단자들을 죽이거나 연행하는 일은 조금 힘들었다.

그가 직접 그들에게 고통을 가하지는 않으나, 그들을 인계받은 이단심판소에서 그들을 고문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안팎이 완전히 분리된 음산한 건물에서, 두꺼운 돌 벽을 뚫고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잠을 설칠 정도였으니까.

좁은 문 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후끈하게 느껴지는 열기와 지독한 냄새는 결코 자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건 옳지 않다 생각했었다. 주신의 교리에 이런 게 있었는가. 나름 열심히 수습 수도사 시절을 거친 그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빨리 철이 들었다고 해야할지, 그는 더 이상 의문을 가지는 대신 머리와 마음을 닫았다.

본능적으로, 이 기사단이 아니면 자신이 있을 장소가 없다 느꼈으니가. 그런 데 의문을 가지고 반발하는 이는 기사단에 있을 수 없다고 느꼈으니까.

진정으로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주신께서 막아주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는 똑똑하고 성실하되 신앙심이 투철하지는 않은 소년이었고, 청년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똑똑하기에 수많은 모순을 발견했지만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다른 많은 형제들처럼 행동하기로 했다.

그랬을 만큼, 기사단은 그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전부였으니까.

그 전부가, 며칠 전 블랑독 북서부의 어느 불구덩이에서 완전히 불타서 사라져 버렸다.

간신히 포위망을 벗어났던 그의 형제들은 지금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대부분은 살아있지 않을 것이다.

위그나시오를 포함한 ‘더 중요한 임무를 맡은’ 형제들을 안전히 보내기 위해 기꺼이 뒤에 남기도 했고.

어쨌든, 죽을 각오로 강을 건너, 라솔 왕국의 기사에게 발견된 시점에서 그는 혼자였다.

하지만 그는 돌아갈 것이다. 돌아가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에드메르 기사단장의 시체를 반드시 수습할 것이다.

“국왕께, 국왕 폐하께 급히 전할 일이 있소!”

“다, 당신은 누구요? 갑자기 폐하께 말을 전한다고 해도···.”

“왕제, 에드메르 공작께서 엘랑키아 놈들에게 살해되셨소!”

간악한 엘랑키아의 배신자들은, 지상과 천상의 분노를 모두 맞이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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