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32화 (232/556)

28-22. 마르사코르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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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다.

정말이지 너무 많다.

성전군 기병 지휘관, 울터 콜린스는 급한 지시를 몇 개 내리고 주변을 살핀다.

“적의 화력이 너무 강합니다! 돌파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선두 중대가 재차 돌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측면에서 도우면···.”

“전진! 우리가 선봉이다!”

이번 전쟁에서 너무 많은 동료들을 잃었다.

타타탕! 타타타탕!

타탕! 타당!

사방에서 총소리가 울린다. 아군과 적군이 치열하게 총격전을 주고 받으며 일격이탈을 반복한다.

“적군이 가진 무기가 이상합니다! 이 속도로 달리면서 저 정도의 화력이라니 대체···.”

“적의 절반은 잘 무장된 총기병입니다.”

“후방에서! 후방에서 새로운 적이 나타났습니다! 속보로 접근 중!”

그리고 적이 너무 많다. 사방이 적이다.

보병과 기병으로 이루어진 울타리가 그들을 옥죄어 오고 있었다.

지금은 아직 여유가 있고 기동할 공간이 있다. 산발적으로 공격해오는 적을 위협하여 물리칠 화력도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답은 물론 부정적이다. 그렇다면 여기 오래 머물수는 없다.

애초에 적진의 후방이고, 당연히 최대한 빨리 이 장소를 벗어나야만 했다.

하지만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할까.

부대를 어떻게 나누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부대를 최대한 살리면서 효율적으로 전과도 올릴 수 있을까.

울터 콜린스는 타고난 기병이었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가 존경하는 라모리 총대장을 비롯한 주변 상관과 동료, 부하들도 대체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멀리 북쪽의 섬나라, 알디온 왕국 출신이다.

봉급을 더 많이 준다는 이유로, 빌린 싸구려 짐말에 처음 올라 ‘기병’이 되었을 때, 스스로도 뭔가 남다른 점이 있다 생각했다.

처음으로 전장에서 적 기사를 말에서 떨궈 막대한 보상금을 챙겼을 때가 그러했고.

전공을 세워 세 명의 부하를 지휘하는 분견대장이 되었을 때도 그러했다.

기병으로서 그는 남다른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적과 아군의 상대 거리와 움직임, 예상되는 적의 화력, 적이 준비한 것으로 예상되는 전술, 실루엣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병력 숫자까지.

그 덕택에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천명 이상의 기병을 지휘하는 연대장이라는 지위까지 올랐다.

남들이 설명하라고 하면 설명이 어려웠다. 어째서 그쪽으로 부하들을 이끌었는가, 어째서 그 타이밍에 돌격했는가 등등.

답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였다. 그게 특수한 감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주변 정보를 통찰해서 내린 논리적 결론인지는 잘 모른다.

완전 초짜 용병 시절부터 ‘저쪽으로 가면 살 수 있을것 같았기에’ 그리 달렸던 거니까.

어찌보면 적의 단단한 방해를 이리저리 피해서 적 후방까지 이르고, ‘뚜껑을 닫으려는’ 후방 보병의 기동을 피해 약간의 자유와 시간을 얻은 것도 그런 판단 덕분이었다.

하지만 뭔가 잘못됐다.

전부터 느끼고는 있었다. 정확히는 그가 따르는 용병단장이자 사령관인 라모리 스텐던이 법황과의 계약에 따라 성전군으로서 이 땅에 도착했을 때 부터일까.

블랑독이라는 이름의 이 낯선 땅은 그에게서 무언가를 자꾸 빼앗아갔다.

여기서는 이상하게 그의 판단은 계속 벗어났다.

마치 지금처럼.

또 오답을 고르고 말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돌파를 할 수 있다 생각했으나, 돌격은 곧바로 틀어막혔다.

그 결과로 많은 부하들, 특히 부대의 핵심인 중견 장교들이 계속 줄어가고 있었다.

수족처럼 움직이던 숙련된 부하들을 잃자 부대의 반응이 느려지고, 그 결과로 또다시 불필요한 희생이 늘어만 갔다.

돌파를 위한 또 한번의 공세가 좌절로 끝났다. 얼굴이 파랗게 질린 연대 참모 장교가 울터를 찾아왔다.

“대, 대장님, 선두 부대가 퇴각해왔습니다. 추가로 공격하라 하신다면 재차 공격에 나서겠지만···.”

“남은 예비대를 총투입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돌파한다.”

“아, 알겠습니다!”

애초에 병력을 나눈 것 부터가 잘못이었다. 괜히 병력을 나눈 탓에 전력이 분산되어 적의 울타리 안에 갇힐 지경이 되었다.

저 멀리서는 기괴한 기성을 지르는 기병대가 집결하고 있다. 대체 적은 기병을 어디에 숨겨놨던 것이지? 적진 돌파 전에 적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한 방향에 전력을 집중해 적 기병 전력을 부순다.

이렇게라도 중앙을 돌파할 수 있다면 아군은 다시 행동의 자유를 얻고, 적은 연대급 기병대 하나가 와해되는 것이다.

애매한 포지션으로 분산되어 있던 예비대가 빠르게 전방으로 이동한다. 이제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

“간다! 단숨에 적을 돌파한다!”

“전진!”

“가자!”

울터의 명령을 받은 기병대가 크게 세 개의 돌격 대형을 만들어 말의 속도를 올린다.

평지에서의 표준적인 돌격 대형으로, 특히 중앙의 부대는 방금까지 후방에서 대기하던 힘이 넘치는 병력이다.

“전진! 전진!”

100여명 단위로 나뉘어진 각 기병 대열은 말머리를 맞춰 질서정연하게 나아간다.

연대장 울터 역시 대열의 중심부에서 아군을 통제하며 적진의 상황을 확인한다. 양 측의 거리는 멀지 않다. 이제 1분 이내로 교전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데··· 적군의 상태가 뭔가 이상하다.

“뭐지? 적이··· 멈춰 있습니다.”

“무엇을 노리는 거지?”

적군은 마치 보병처럼 멈춘 상태로 말의 어깨를 나란히하고 대기하고 있다. 마치 인간과 말로 이루어진 대열처럼.

권총과 중장갑으로 무장한 총기병이 선두에서 단단한 횡대 대형을 이루었으며, 그 후방과 측면에서는 용기병들이 화력지원을 한다.

“겁쟁이 자식들 뭐 하는 거냐!”

“이젠 말 타기도 무서운 거지?”

아군 대열에서 조롱이 터져나온다.

그럴 수밖에. 기병이란 원래 그런 존재이다. 무기를 다루는 것 만큼이나 말을 다루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아무래도 말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 자체가 사회 계급적인 특권이라는 인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계급이 높으면 높기 때문에 프라이드가 높고, 낮으면 낮기 때문에 프라이드가 높다.

울터의 생각에서도 어처구니가 없는 방식이다. 적 지휘관은 기병 지휘관으로서 자존심도 없나? 기병 부대를 마치 벽처럼 세워놓고, 뭐 하는 짓인가.

적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점을 가져가면 될 뿐.

“측면을 넓히고 반포위에 들어간다!”

“알겠습니다, 대장님. 중앙은 이대로 전진합니까?”

“중앙 돌파 의도는 변함 없다. 적을 완전히 와해시킬 뿐.”

“옛!”

보아하니 중앙부는 잘 무장된 귀족 기병들이지만, 측면은 권총이 아니라 보병용 장총으로 무장한 용기병들이다.

중거리 화력에서 일시적으로 우세를 점하겠지만, 백병전에 들어가면 추풍낙엽일 것이다.

“돌격! 단숨에 돌파한다!”

“돌격! 전군 돌격!”

“돌겨억!”

최선두 대열이 일제히 권총과 검을 치켜든다. 말이 속도를 올린다.

울터의 기병대는 갑주는 그다지 중무장한 편이 아니지만, 검과 총 같은 무기만큼은 대단히 신경을 쓴 기병대이다.

어차피 화약이 주무기인 전장, 무거운 갑주가 주는 장점은 제한적이다.

실제로도 중무장한 귀족 기사단을 상대로 몇 차례나 승리를 거둔 바 있었고.

“와아아아아아!”

“돌겨억!”

선두가 빠르게 멈춰있는 적을 향해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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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우···.”

제8 벨모제 기병 연대장, 마브리엘 마슈레는 긴장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이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말발굽이 바닥을 때리는 진동이 느껴진다.

지금 그는 ‘특이한’ 방어 전술을 쓰고 있다. 콘도티에레의 지시로 훈련했던, ‘공격 의도가 명확한 경무장 병력’을 상대로 한 전술이다.

부수적인 효과로 적의 적극성을 올려줘 섬멸전을 벌이기 좋다고 하던데, 과연 적은 기세가 올라서 정면과 측면으로 돌입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 ‘기병 장벽’은 결코 만만한 상태가 아니다.

원래는 적이 모르게 보병 사수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전술이지만, 대신 전방을 향한 화력을 극대화시키는 형태로 개량된 전술이다.

최전열의 방벽을 이룬 부하들의 긴장이 느껴진다.

양측의 거리가 100미터 안쪽이 되었다.

탕! 타탕!

총소리가 들린다. 사거리가 긴 총기를 지닌 적군이 산발적으로 쏘는 소리였다.

“신경쓰지 마라. 우리는 우리 거리에 들어오면 사격한다.”

철저하게 훈련된 제8 기병 연대의 총기병들은 여전히 총구를 하늘로 향한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멀어서 잘 맞지도 않는다.

양측의 거리 50미터.

“으랴아아아!”

“돌격!”

“돌겨억! 죽여버려!”

적군이 속도를 올린다. 올린다고 해도 전속력으로 모둠발로 달리는 것은 아니다. 말의 네 다리 중 두 다리만 번갈아 땅을 딛는 빠른 걸음에 가깝다.

“용기병, 발사!”

“쏴라!”

타타타탕! 타타탕!

총기병들 사이에서 굉음과 함께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러나 총기병들은 여전히 굳건한 자세로 권총을 겨누고 있을 뿐.

발사는 총기병 바로 뒤에 배치된 용기병들이 한 것이다.

“으으윽!”

“악!”

적지 않은 성전군 기병들이 말에서 떨어진다. 그들 입장에서는 예상하지 않은 화력일 것이다. 보통은 이 거리에서 잘 사격하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다. 총기병들이 사용하는 권총의 적정 사거리는 더 짧다. 약 20에서 30미터 정도 거리.

능숙한 기병들 사이에서 권총은 ‘사격 무기가 아니라 아주 긴 창’이라고도 불리는 이유가 있었다.

“쏴라!”

“쏴!”

타타탕! 타당! 타탕!

탕! 타타타탕! 타아앙!

양측의 거리가 30미터쯤 되었을 때, 총기병들이 일제히 권총을 발사한다. 양측 기병 사이를 하얀 연기가 뒤덮는다.

다시 한 번, 두 자루 째의 권총으로 바꿔 든 총기병들이 사격을 가한다.

타탕! 탕!

타타타타타탕!

그 후열, 촘촘하게 늘어선 총기병들 사이로 총구를 들이민 용기병들의 2차 지원 사격이 이어진다.

기병들의 발 끝이 서로 닿을 정도로 빽빽하게 늘어선 총기병들의 두 자루 권총 사격, 그리고 뒤에서 긴 총신을 내밀어 사이로 발사하는 용기병의 지원사격.

단위 면적당 화력 밀집도라는 점에서 밀집대형을 취한 총병들의 일제사격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

“커어억!”

“읏, 맞았어!”

“화력이, 화력이 강하다! 물러서지 마!”

“으아아아아! 내 팔!”

그리고 그 화력은 기세 좋게 몰려오던 일개 기병 부대의 기세를 꺾기에 충분했다. 돌격을 이끌던 선두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돌격의 위력은 분산되어버렸다.

부대를 구성하는 모든 멤버가 똑같이 용감하고 똑같이 능숙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특별한 구성원만 가려 뽑은 특수한 부대의 경우는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만, 보통은 능숙한 숙련병과 미숙한 보충병이 섞이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 돌격을 하거나 대열을 이룰 때, 정면과 모서리 등 위험하고 중요한 곳에 숙련병들이 배치된다.

아무리 기질이 용감한 신병이라도, 갑자기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적진으로 뛰어들라 하면 망설이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대체로 신병으로만 이루어진 부대에 무리한 돌격 명령을 내리면, 삼 분의 일만 공격에 임하고, 삼 분의 일은 눈치만 보며 뒤따르다 중간에 흩어지며, 삼 분의 일은 아예 돌격을 시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 용맹하고 능숙한 숙련병들이다.

그들이 앞에서 돌격을 이끌고, 교전에 들어가서는 나란히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덜 용감한’ 동료들 역시 전투에 뛰어들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밀도 높은 사격으로 이 ‘이끄는 역할의 용맹한 숙련병’들 사이에 대량의 사상자를 만들어 낸다면?

순간적으로 부대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다.

돌격해오는 100명의 부대에게 사격을 가해 10명을 죽였으면, 나머지 90명에게 돌격당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하지만 그 10명이 전부 선봉에서 돌격을 이끌던 정예들이라면, 그 10명을 잃으면서 나머지 90명이 갑자기 방향을 잃어버릴 수 있다.

보병이라면 그나마 동료와의 물리적 거리가 훨씬 가까워 쉽게 통제가 회복되지만, 기병은 그렇지 않다.

이는 전술적이기에 앞서 논리적이고 심리적인 문제였다.

“왜 멈춰있나! 돌격해! 적의 총은 비었다!”

“겁 먹지마! 나를 따르라!”

뒤늦게 후속해온 기병 장교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선두 기병들을 수습하려 한다.

아마 10초 정도만 더 있었다면 분명 부대는 수습되었겠지.

하지만 기병간의 싸움은 1분 만에 승패가 결판나기도 한다.

“돌격!”

“돌겨억! 돌겨억!”

“돌격!”

잠깐 머뭇대던 성전군 기병의 선두를 제8 벨모제 기병 연대가 역으로 덮친다. 자욱하고 매캐한 냄새가 나는 화약 연기를 뚫고, 투구와 갑옷으로 중무장한 총기병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빈 권총들을 권총집으로 되돌리고, 뽑아든 검을 높이 치켜든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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