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30화 (230/556)

28-20. 마르사코르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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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측과 전령을 담당한 정보 참모들이 쉴새없이 언덕을 오르내린다.

성전군 사령관 라모리 스텐던은 참모들이 수집하고 정리한 정보에 자신이 직접 눈으로 확인한 정보를 조합해 판단을 이어간다.

“안프로니오 연대에서 전령!”

“뭐라 하시나?”

“적군의 수가 계속 늘어 아군 피해 막대! 비탈로 후퇴하며 지연전을 계속하겠다! 이상입니다.”

“...알겠다.”

언덕의 측면 방어선을 맡고 있는 아소모 델 안프로니오 대공의 보고는 말하자면 담담한 비명소리라고 할 수 있겠다.

아소모 대공과 그 부하들에게는 과도한 요구를 했다.

1500명 남짓한 견실한 용병대. 교과서적으로 명확하게 그 역할과 한계를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과도한 요구를 했고, 아소모 대공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이는 법황과의 정치적인 관계 때문일 수도 있고, 아넥시의 패전에서 재빠르게 도망쳤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일 수도 있겠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아소모 대공과 안프로니오 연대는 자신들의 임무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그들은 언덕 측면에서 진흙 투성이가 되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몇 배의 적에게 공격을 당하면서.

지금 라모리가 당장 좌측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그들의 희생이 있었던 덕분이다.

하지만 그들이 벌어줄 수 있는 시간은 무한하지 않으리라.

빠르게 판단해야 한다.

빠르게 이겨야 한다.

지금 라모리에게 유일한 희망은 언덕 아래를 틀어막고 있는 적의 주 전선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적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 하게 붕괴시켜 퇴각시킨다는 전술적인 목표도, 병력을 최대한 많이 쓰러뜨려 전쟁 수행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전략적인 목표도 달성 가능한 유일한 방법이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적진에는 두 개의 쐐기를 박아놓았다. 그가 신뢰하는 두 지휘관. 보병대장 자프론 푸코데모스와 기병대장 울터 콜린스.

그들은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다른 아군이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 준 사이, 억지로 적진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그래서 뭐가 끝난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며, 사령관인 자신 또한 그들의 역할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응해야 한다.

영웅들로 이루어진 정예부대 하나가 전선을 뒤집어 놓고 승패를 가르는 것은 이야기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울터 경의 기병대가 우측으로 기동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좋은 판단이다.”

적 보병 연대들 사이에 억지로 틈을 내 후방으로 뛰어든 기병대가 우측으로 이동한다. 그 기병대의 진격 방향에는 자프론의 보병대가 있었다.

적진을 돌파한 두 개의 아군 부대가 적진 후방에서 서로 만난다?

전열에서 싸우는 전방 부대들로서는 설마 아군이 포위됐나? 하는 걱정을 하게 될 수도 있는 큰 사건이다.

때로는 포위 당했다는 현실보다도 포위 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더 위험할 수 있으니까.

당연히 적장은 이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지. 가능한 예비대 자산을 전부 저기에 때려 넣을 테고, 그건 라모리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다.

울터 콜린스는 기병 지휘관으로서 괜찮은 판단을 했다.

이제 자프론의 부대도 적 후방에 배후전개를 한다면 승패는 어느정도 반반으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자프론의 부대가 적의 예비대를 격파하고 행동의 자유를 얻게 된다면···.

“전령입니다! 자프론 연대에서 전령!”

생각하기 무섭게 전령이 도착했다. 눈으로 보면 아직 돌파구는 큰 진전이 없다. 아마도 기직스의 지원군이 추가되었으니 단번에 저돌적인 공격을 하려는 것을지도 모른다.

“무슨 일인가?”

“전령! 전방 중대의 피해가 심대, 공세를 멈추고 현재 위치를 지키는 것으로 전환하는 것을 허가 바람! 이상입니다!”

“...뭐라고?”

적진을 돌파하고, 수적으로 압도하는 적 예비대와 막 교전을 시작한 부대에서 보냈을 법한 전령이 아니다.

자프론의 연대는 분명 1000명이 훌쩍 넘는다. 거기에 기직스의 지원 병력 수백 명이 추가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1천명 남짓해 보이는 적 예비대를 돌파하지 못하고 현재 위치를 고수한다고?

공세종말점이라는 말이 있다.

어느 부대가 공격을 지속하다가, 유무형의 방해를 받아 결국 공세를 멈추게 되는 시점, 혹은 상태를 말한다.

물론 공세종말점에 도달했다고 부대가 와해되거나 전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지휘관이 판단하기에 무리해서 공세를 지속하다가는 공격을 계속하기는 커녕 오히려 반격 받아서 대피해를 입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성전군은 전군이 공세종말점을 넘어 투신하고 있는 상황이다.

라모리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용병단의 단장으로서 자프론의 건의를 들어주고 싶었다. 잠시 공세를 접고, 전열을 정돈해서 다음 단계를 살피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사령관으로서는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이 전투는 이미 수렁이나 다름 없다. 멈췄다가는 어디까지 빠져 들어갈지 몰랐다.

적의 함정이라도 어쩔 수 없다. 함정일지라도 어떻게든 디딤돌을 찾아 다음 걸음을 내딛는 수 밖에.

‘신중’이라는 선택지는 갑자기 배후에 불이 나서 보급품이 몽땅 타버렸을 때 사라져 버렸으니까.

“공세를 멈추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 기직스 연대의 지원을 받아 공격을 계속하도록! 이상이다.”

“알겠습니다, 총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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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토르히 연대는 3개의 병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경우가 없지는 않다. 화약 무기가 지배하는 현 시대의 전장에서, 주역이 되는 보병 병종은 당연히 총병과 창병이다.

그러나 여기에 보조 역할로 제3의 병종을 두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슈토르히 연대의 제3의 병종, 돌격대 역시 비슷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돌격대 지휘관, 선임 중대장 크레시미르 두브람은 창병 대열의 측면에서 부하들에게 간단히 전술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우리 차례다.”

“옙!”

“모서리 쪽으로 파고든다. 다들 알다시피, 창벽은 모서리가 약점이니까. 총병들이 집중사격해서 담당 장교들을 죽이면 우리가 돌진한다!”

“알겠습니다!”

크레시미르는 흥미로웠다.

같은 선임 중대장이지만, 사실상 슈토르히 연대장 대리인 루트비히 아린 폰 자이트리츠가 전투 초기부터 돌격대를 투입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신뢰하는 친한 전우이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꼰대라고 놀리며 괴롭히지만 한번도 그의 지시를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크레시미르가 생각하기에, 루트비히는 ‘콘도티에레와 가장 비슷한 사나이’였기 때문이다.

저 인간은, 아니 ‘인간들’은 무조건 옳다. 안 믿으면 손해. 이렇게까지 생각할 정도로.

지휘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일단 적이 일을 벌이도록 놔 둔다. 심지어 가끔은 박수치면서 ‘어이구 하고 싶은거 다 해’ 하면서 판을 깔아준다는 느낌까지도 든다.

그렇게 적이 뱃속을 보여주고 밑천을 드러내면, 그때부터 차근차근 행동을 시작한다. 마치 수금 작업을 하는 빚쟁이처럼, 조용하지만 철저하게.

그래서 크레시미르와 돌격대는 마지막까지 아끼다 안 쓰는 경우가 있었다. 마지막 상황을 위한 예비대로 취급되거나, 혹은 아예 유리해서 나올 일이 없거나.

그런 만큼 슈토르히 연대가 교전에 들어가자마자 출동 명령이 내린 지금 상황이 기꺼웠다.

불리하다, 진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안한다.

“고프릭, 자네도 준비 됐나?”

“네, 넵! 물론입니다 선임 중대장님.”

“하핫, ‘곰돌이 방패’ 첫 데뷔구나.”

“네, 네에··· 감사합니다.”

남달리 큰 덩치의 돌격대원, 고프릭 벨장은 어색하게 웃었고 주변 동료들이 낄낄거린다.

그가 들고있는 방패는 동료들의 방패보다 한 치수 커 보인다. 단단한 나무를 견고하게 짜서 쇠 테를 둘러 단단히 고정하고, 중심부에 쇠를 씌웠다.

거리와 각도에 따라서는 총탄도 튕겨내는, 돌격대 특유의 무장 중 하나이다.

샹다메리 전투 이후 카르카냑에 머무는 동안, 동료 소대원들이 돈을 모아 만들어주는 ‘특제 방패’였다.

···이유야 당연히 고프릭의 덩치가 너무 커서 표준 방패로는 몸이 다 안 가려져서 그랬고.

물론 고프릭의 괴력으로, 통상품도 충분히 무거운 이 방탄 방패를 자연스럽게 쓸 수 있었기에 돈 낭비는 아니었다.

곰돌이 방패라 불리는 이유는, 누구의 장난기였는지 남달리 커다랗고 깨끗한 방패에 큼직한 곰 얼굴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돌격대 친구들, 우리도 준비 됐어. 쏠까?”

옆에서 20여명의 베테랑 총병들이 말을 걸었다. 그들은 돌격대와 한 조, 돌격하기 전 마지막 지원 사격을 뿌려줄 동료들이다.

“좋아! 깔끔하게 부탁해. 딱 20발 이니까 딱 20명 만 죽여달라고?”

크레시미르의 말에 총병 장교가 킥킥거리며 입가에 물린 담배를 고쳐 잡는다.

물론 나름 명사수들만 거르고 걸러진 슈토르히 연대 총병들의 실력이라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번은 모서리라는 좁은 공간에 대한 일제사격이다.

아마 재수 없는 놈들이 두 발 이상 맞아서 20발로 20킬이라는 기록은 힘들겠지.

그보다 중요한 것은, 모서리를 지키는 담당 장교와 부사관들을 모조리 쓰러뜨리는 것이다.

밀집 대형이라는 것은, 그냥 사람을 줄지워 세워놓는다고 유지되지 않는다.

평범한 인간은 공포에서 멀어지고 싶어하고, 아군의 보호를 받고싶어 한다. 당연한, 누구에게나 당연한 본능이다.

이걸 무시하고 정신론 따위로 병사를 전쟁 기계로 만들고자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정말 마약이라도 먹여서 정신을 빼놓으면 또 모를까.

때문에 모든 군대는 가장 중요한 모서리에 다수의 장교와 부사관은 배치한다. 가장 위험한 곳이니까, 수당도 잘 주고, 예비 지휘관도 배치해 사상자가 생길 것도 대비한다.

그래서 한 두명 쓰러지면 곧바로 다음 담당자가 자리를 대체할 것이다.

그걸 못하도록 집중사격해서 모조리 쓰러뜨린다. 그래서 모서리 방어가 복구되기 전에 돌격대가 돌입한다.

이것이 계획이다.

“돌격대 친구들을 위해 구멍을 뚫어준다. 자, 조준.”

전투 중이라고는 상상도 가지 않을 정도로, 평소와 같고 작은 목소리였다.

고프릭은 그게 항상 신기했다. 소음으로 가득한 전투 중인데도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그게 또 의사소통이 된다는 점이.

“쏴!”

타타타타탕!

20발의 총탄이 일제히 발사되었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하지만 슈토르히의 명사수들이다, 20발은 날아가서 자기 역할을 다 했겠지.

크레시미르가 뒤편을 돌아보며 외친다. 그리고 자기가 가장 먼저 뛰쳐나간다.

“돌격!”

바로 뒤에 서있던 고프릭 벨장 역시 뒤따라 나선다. 잔뜩 힘을 축적하고 있던, 항상 맞는 옷이 없어 따로 바지를 맞춰야 했었다. 도저히 숨겨지지 않는 통나무와도 같은 허벅지 근육에서 뿜어져 나온 힘이 대지를 박찬다.

중대장인 크레시미르의 바로 뒤에 서야한다. 속도를 늦추지 않고 대열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은 모서리라는 ‘점’에 대한 돌격이니까, 크레시미르가 선두에 서는 삼각형 모양의 돌격 대형이다. 그게 그대로 적진에 꽂히는 순간, 쐐기처럼 밀집 대형을 벌릴 것이다.

돌격때 흔히 하는 기세를 올리기 위한 고함은 없다. 단단한 전투화 밑창이 흙바닥을 때리는 콱콱거리는 발소리와 가쁜 숨소리만 들린다.

애초에 6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거리. 아군 창병 대열의 측면을 지나, 적의 대열이 빠르게 가까워진다.

열 걸음.

방금 전의 총격으로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잠깐 느슨해져 있던, 긴장하기는 했으나 갑작스럽게 적이 돌격해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적의 얼굴이 커진다.

다섯 걸음.

거기 비례해서 적의 눈도 커진다. 당황해서 그렇겠지.

세 걸음.

입도 커진다. 뭔가 외치려고 한다. 창을 팽개치고 허리에서 무기를 뽑으려는지 허리띠 부근을 더듬거린다.

하지만 늦었따.

“으아아아아아!”

격돌의 직전, 억제하고 있던 함성소리가 해방된다. 모두가 고함을 지른다.

콰콱!

뿌드득! 콰직!

크레시미르가 가장 먼저, 펄쩍 뛰어서는 고함을 지르려던 장교를 덮친다.

그 바로 왼쪽 뒤에서 맹수의 포효와도 같은 고함을 지르던 고프릭이 방패를 앞세워 돌진해온다.

크레시미르의 돌격이 마치 날카로운 칼 끝처럼 정확하고 컴팩트하게 목표를 노렸다면, 고프릭의 돌격은 몽땅 뭉개버리는 거대한 망치처럼 휘둘러진다.

뒤늦게 이 방향으로 겨눠진 장창 따위는 아무 소용 없이 부러져 나간다. 인간의 ‘평균’을 한참 넘은 덩치와 힘, 무게를 가진 고프릭의 돌격은 ‘사람용’ 으로는 막지 못한다.

창대가 부러져 나가고, 긴 장대가 거치적 거려 오히려 여려명이 한꺼번에 고꾸라진다. 그 위를 돌격대의 군화가 거침없이 발고 지나간다.

그렇게 돌격대 병사들이 보이는 각자의 장기를 선보이며 적진에 깊이 꽂혔다.

“죽여라!”

“끄아아아악!”

“뭐야, 이 자식들? 막아!”

“멈추지 마!”

방패를 앞세운 첫 격돌에 이어, 폭이 넓은 짤막한 검들이 피를 탐한다.

사람 키의 두 배가 훌쩍 넘는 긴 창을 가진 적군이다. 게다가 비스듬한 측면에서 돌격당했다. 거기에 방패에 몸을 딱 붙인 적이 유난히 무거운 양날 검을 휘두른다?

일방적인 학살이다.

“히익! 끄아악!”

“우아아악!”

창대든, 손목이든, 머리통이든 상관 없었다.

돌격대의 양날 검은 뭐든 잘라버리도록 설계된 무기다. 찌르기와 베기 모두에 유용하고, 약간의 손목 힘만으로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도록 고안된.

비명과 함께 유혈을 수확하며, 돌격대가 적진 깊이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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