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24화 (224/556)

28-14. 마르사코르 언덕

###

끊임없이 총성과 포성이 울리고, 비명소리와 성난 고함이 오간다.

수천 명의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격돌하는 병사들이 내는 소음이 전장을 가득 채웠다.

마침내 아군의 포화를 뚫고 마르사코르 언덕을 내려온 적 중앙군과 아군 전열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지난 이틀간, 서로 포격전이나 측면 공격만 주고 받았던 양군이었다.

나도 그렇지만, 적 지휘관 역시 먼저 패를 보이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상황을 방치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적군이 머리를 들이 밀면, 언제라도 잘게 갈아버릴 수 있는 전쟁 기계, 우리 장병들의 준비이다.

전투 초반이 지지부진했던 제일 큰 원인은 역시 양군의 정면에 위치했던, 애매한 경사의 길고 길었던 비탈이다.

어느 쪽이든 적이 지키는 앞에서 여기를 지나려면 상대의 치명적인 포화에 그대로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서두르더라도 최소 몇 분 동안이나 말이다.

몇 분은 객관적으로 보면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다.

양측이 한계까지 준비한 전투 초반의 몇 분은 최악의 경우 그 전투에서 발생하는 사상자의 절반 이상이 나올 정도의 아수라장이다.

화약을 한계까지 꽉꽉 눌러 담았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조준을 마쳤을 것이다. 게다가 불완전 연소로 인한 탄약 찌꺼기도 전혀 없는 깨끗한 포신과 총신 통해 발사되는 ‘초탄’의 위력은 이어지는 사격의 질과는 차원이 다르다.

몇 분이면 아무리 각도와 거리 등으로 제한되더라도, 2회 이상의 포격, 3회 이상의 총격이 오갈 수 있는 죽음의 시간이다.

그걸 개활지에서 묵묵히 맞으면서 전진해야 하는 선두 연대들은 자칫하면 부대의 기능을 잃어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 ‘결과’는 방금 다른 선택지가 없어 언덕을 내려와야 했던 적 선두, 드라멜른 기사단이 겪은 불지옥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으리라.

철저하게 준비한 첼레스티나와 3개 포대의 완벽한 교차 포격.

50미터 거리에서 시작되는 선두 연대들의 일제사격.

그 뻑뻑한 하얀 연기 속에 행군중인 병사들인 속절 없이 쓰러져만 간다.

아마 그 화력이 최대한 집중 된 3분이 안되는 시간 동안, 적군이 언덕 비탈에 남겨두어야 했을 전사자와 중상자는 최소 1천 명 가까이 될 것이다.

아마 적 지휘관이 생각한 ‘통행료’를 상당히 웃도는 희생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어쩔 수 없다’나 ‘필요한 일이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큰 희생이었겠지. 어지간히 냉정한 지휘관들도 자기가 오래 키운 장병들을 적진 앞에 보낼 때는 신중해지는 법이니까.

어쨌든 우리 입장에서는 기다려서 건진 대성공이다.

그리고 이 총성과 비명은, 내가 준비한 거대한 전쟁 기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소리이다. 우리 블랑독 연맹군이 말이다.

퍼버벙! 뻥!

꽈과광! 퍼엉! 꽝!

아군 포대는 끊임 없이 불을 뿜고 있었다.

아까처럼 첼레스티나의 정교한 사격 통제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포 단위로 포술장들의 판단 아래 적합한 목표를 찾아 포격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긴 내리막길과 완만한 굴곡이라는 전장 특성은 포병들에게는 최적의 표적을 제공해 주었다.

통상 양측의 전선이 충돌하여 백병전이 벌어지면 포각이 가려져 포병의 역할이 상당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전방이 싸우고 있어도 비탈을 내려오는 후속 적군이 포각에 잡히는 것이다.

넓고 숨을 엄폐물이 거의 없는 비탈은 포병들에게 마치 광각 파노라마와 같은 거대한 표적지가 되었다.

게다가 첼레스티나가 보여준, 지표면의 굴곡을 최대한 이용해 포탄을 불규칙 바운드로 쏴대는 테크닉이 더해지면 어쩔 수 없이 내리막길을 통과할 수 밖에 없는 적 보병의 피해는 커져만 가는 것이다.

아마도 적은 마약이든 최면이든 공포심을 거세해 버린 듯한 드라멜른 기사단을 선두로 들이 받고, 보다 전문적인 후속 병력인 용병 부대로 전선을 돌파하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확실히 대열의 폭이 좁은 편인 아군의 선형대형을 밀어내려면 압도적인 숫자의 장창 사각 대형으로 밀어 붙이는 게 답이긴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형 문제로, 적은 계속해서 불필요한 사상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전방의 적은 잘 짜인 방어선으로 몰아붙여 주저앉힌 채 피해를 강요한다.

후속하는 적에 최대한 피해를 입히고, 정신적으로도 흔들어 놓아 지원을 힘들게 만든다.

이렇게 보면 승리를 위한 전쟁 기계는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다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하나 있었으니, 드라멜른 기사단이 상상 이상으로 완강하고, 정신이 나간 놈들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적에게 안긴 피해만 따져도, 이 정도면 충분히 흔들릴 만한 막대한 희생이다.

원래 종교 기사단이 봉건 군대나 용병 부대에 비해서 광신적이고 완강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저들 입장에서는 ‘이단자’와의 싸움이니까 더 그렇겠지.

하지만 이렇게 단시간에 15퍼센트가 넘는 사상자를 떠안겼는데도 전혀 반응이 없다는 것은··· 정말 정신을 놨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 이상 피해를 입으면 전투에 참여한 조직 자체가 복구가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보통 전투에서 희생되는 비율은 더 용감하고 능숙한 부대의 기간 요원들이 더 높기 때문이다.

대열을 유지하고 부대의 강점과 전통을 신병들에게 전달할 장교와 부사관들이 싹 사라지면 부대가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거든.

실제로 여울목의 전투에서도 적장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던가?

당시 아군이 측면을 포위하려는 액션을 취하고, 전선의 절반을 지키며 싸우던 북부 귀족들의 연합군이 물러나자 드라멜른 기사단 역시 대열을 유지하면서 퇴각했었다.

하지만 적의 움직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이미 너무 깊숙하게 들어와 퇴각도 불가능하다 판단하고 있는 것일지도.

하지만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 최종 목표가 아군 전방에 끝없이 몰려오다가 사상자로 산을 쌓는 것은 아닐 텐데.

“대기 중인 기병대에 전령!”

“옛, 콘도티에레!”

“곧 활동할 일이 생길지 모르니, 준비하도록 전달!”

“옛, 곧 활동할 일이 생길지 모르니, 준비하도록 전달!”

전투가 마무리에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은 강하게 든다. 그리고 나에게는 아직 아넥시에서 적군을 쓸어버렸던 기병의 대군이 있다.

전투에는 참여도 하지 않은 쌩쌩한 상태로.

그러나 그 전에 한번 쯤 산을 넘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그 산이 물리적인, 눈 앞의 마르사코르 언덕일지도 모르고.

###

탕! 타탕!

따당! 탕탕탕!

혼전.

지휘관의 구령에 따라서가 아니라 총병 각자의 판단으로 장전과 사격을 이어나가는 상황이라 총소리는 단속적으로 들려온다.

타앙! 탕!

“머리나 몸통을 쏴! 이 자식들 뭔가 이상하다!”

“아, 알겠습니다!”

제16 벨모제 연대장 아리위스 드랭쿠는 고함을 지르며 자신도 전사자의 총을 들어 장전을 마친다.

타앙!

매캐한 화약 냄새가 더해지며 눈 앞이 뿌옇게 변한다. 적이 맞았는지는 물론 확인이 불가능하다. 총구를 위로 세우고 꽂을대로 총열을 닦아내며 주변을 살핀다.

다행히 그의 연대는 매우 잘 싸우고 있었다. 크게 물러선 곳 없이, 빽빽한 창날의 벽으로 적을 막아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승리는 분명하다! 양측의 사상자 교환 비율은 압도적이다. 적이 쓰는 괴사한 동부식 대화승총은 한 발 한 발의 위력은 강했지만 결국 보병 상대로는 과잉 화력이었다.

어차피 이 정도 교전 거리에서는 정말 운이 좋지 않은 한은 보병의 투구나 흉갑으로 총알을 튕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위력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치··· 그의 부하들은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허겁지겁 싸우고 있었다.

‘이건 좋지 않은데···.’

그건 약인지 최면인지에 취해 건들거리며 다가오는 적의 기괴한 공세 때문이었다.

“저기 또 온다!”

“오기 전에 막아!”

또 한 무리의 적 총병이 몰려온다. 사거리가 짧고 두꺼운, 조잡한 대화승총을 겨누며 다가온다.

‘통상적인 상황’의 ‘통상적인 적’ 이었다면 오히려 만만한 상태였으리라. 왜냐하면 트랑카벨 영지군의 제식 소총에 비해 사정거리가 짧은 무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자식들은··· 뭔가가 달랐다.

“쏴! 쏴!”

탕! 타탕!

적 하나가 쓰러지고, 둘이 명중당했는지 휘청인다.

“씨팔! 저새끼 안 뒈졌어!”

“아, 아직 장전 중이야!”

흉갑에 구멍이 뻥 뚫린 적은 두로 넘어질 듯 휘청이더니, 다시 자세를 다잡고 이쪽으로 다가온다. 저런 상처는 살아남기 힘든 큰 상처이다. 그런데도 멈추지를 않는다.

그 옆옆에 선 적은 오다가 포탄에라도 맞았는지 한쪽 팔이 거의 잘려나가 있었다.

깨끗하게 잘려나간 것도 아니다. 마치 거대한 힘에 의해 뜯겨 나간 것처럼, 팔꿈치 피부가 세로로 길게 뜯겨져서는 벌어진 허연 뼈가 보였으니까.

그런데, 그 더 이상 팔의 역할을 못하는 부위를 덜렁거리며 한 손으로 총을 겨누고 다가온다.

빠박! 따다닥!

적군이 사격을 시작한다.

“크으윽!”

“으아아악!”

그의 부하들도 두 명이 당한다. 아리위스 자신도 신경질적으로 탄환을 밀어넣지만 시간에 맞추기 힘들었다.

탕!

또 한 발의 총탄이 아까 흉갑에 구멍이 났던 적을 명중시킨다. 흉갑에 구멍이 하나 더 뚫리더니, 적은 비스듬히 옆으로 돌다가 쓰러진다.

제기랄, 적이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총에 맞으면 죽는다. 머리나 심장과 같은 급소를 맞추면 한 방에 죽는다. 죽기는 한다 이 말이다.

그러나 한 번에 절명시킬 수 있는 부위를 맞추지 않으면 저 꼴이 된다! 통증과 공포로 제정신이 아닐 것 같은 상처를 입고서도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유유히 다가오는 모습은 그 자체로 공포였다.

빠당!

한 쪽 팔이 없는 상태로 대화승총을 겨누었던 적이 방아쇠를 당기자, 총구가 하늘로 튀어 오르고 몸이 절반 쯤 휙 돌아가더니 바닥에 쓰러진다.

당연히, 저렇게 구경이 큰 총을 한 손으로 잡고 쐈으니 반동 제어가 안 될 수 밖에! 천만다행히도 총탄 역시 허공으로 튀어 버린 모양이다.

정말 무서운 것은, 그 상태로도 다시 일어서려고, 흙먼지를 뒤집어 쓴 상태로 주춤주춤 총대를 바닥에 대고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미친 새끼들!”

탕!

마침 장전이 끝난 아리위스가 10여 미터 거리까지 다가온 그 적을 겨누고 발사했다. 마침 반쯤 일어나 고개를 든 적의 이마에 정확히 명중했다.

그대로 피를 뿌리며 일어서려던 자세 그대로 땅바닥에 푹 처박힌다. 직전에 마주친 눈동자는 아무런 감정도 담고 있지 않았다. 이쪽에 관심도 없다는 듯, 저 반대편의 뭔가가 더 중요하다는 듯한 눈동자.

타타탕! 탕탕!

“욱!”

“크히이.···”

장전을 마친 아군이 우르르 사격하자, 아직 일어서 있던 적들이 모조리 쓰러졌다. 하지만 그 뒤로는 이번에는 창병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물론 아리위스의 제16 연대 역시 충분한 예비대는 있었고 어떻게든 막는 것은 문제가 아 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적 하나를 쓰러뜨리는 데 2발 이상의 총탄을 낭비하는 것은 너무나 큰 손실이었다.

분명 이기고 있는데도, 이거 혹시 밀리는 거 아냐? 라는 잡생각을 들게 하는 어수선한 전장. 특히 이번이 첫 전투인 신병들이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어 보인다.

화승총을 쏘는 법은 상당히 복잡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1분 가까이 걸리기도 하는 복잡한 동작으로, 그걸 언제 총탄에 맞을지 모르는 혼란 통에 반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훈련으로 어지간히 익숙한 사람도 실수하기 쉽다. 또한 주변에서 벌어지는 온갖 자극 때문에, 자신이 어디까지 했는지를 잃어버린다면 대형 사고가 터지는 수도 있다.

심지어 장전을 다 했다고는 해도 조준 실수 및 총기의 결함으로 인해 그간의 장전 준비가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싼 돈을 들여 총기를 지급하고 병사들을 훈련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어떤 적, 심지어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갑주로 무장한 중장기병조차도, 가장 초라한 총병이 쏜 총탄 한 발로 쓰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쏘는 절대적 한 발’로 쓰러지지 않는 적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훈련에서도 상정하지 않았고, 상식으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아리위스의 부하 총병들이 겪고 있는 혼란은 이런 점에서 기인하고 있었다.

제발 버텨라.

지금으로서는 그것 말고는 아리위스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 자신도 확신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는, 콘도티에레에 대한 깊은 신뢰가 숨겨진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설득도 최면도 아니다. 오로지 경험에서 비롯된 확신이다.

자신들이 겪는 위험은 분명 ‘버틸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을.

조만간 적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무언가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결코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트랑카벨을 위하여!”

“트랑카벨을 위하여어!”

다행히 그의 부하들도 아직 전의를 잃지는 않고 있었다.

그도, 제16 몽세나 보병 연대도, 좀 더 싸울 수 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