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23화 (223/556)

28-13. 마르사코르 언덕

퍼버버버벙!

뻐벙! 펑!

첼레스티나가 신호를 보낸 직후, 좌측, 1번 포대에서 일제히 포탄이 발사된다.

“우웃!”

나도 모르게 감탄의 신음을 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첼레스티나가 오랫동안 포술장들과 고민하며 맞춰놓은 조준도, 포격 타이밍도 완벽했다.

가운데가 패여 비탈이 완만해지는 지점에 집중된 포탄은 불규칙하게 튕기고 구르며 가로막는 모든 것을 찢어 발긴다.

최소 4발 이상의 포탄이 명중한 선두 중대의 중앙에 누더기와 핏덩이로 가득한 길이 만들어진다.

그 옆으로 그나마 운 좋았던 적들, 사지가 멀쩡한 인간들이 말 그대로 볼링핀처럼 나가떨어진다. ‘대열이 붕괴된다’는 표현이 절대 은유가 아니다. 물리적으로 밀집 대형이 찢어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대체 어떤 각도로 맞은 것인지, 어느 기사의 몸이 3미터나 허공으로 치솟는다.

이미 목숨이 끊어졌는지, 아니면 정신을 잃었는지, 기이한 방향으로 꺾인 팔다리가 망가진 인형처럼 멋대로 움직인다.

만약에 거인이 실제로 존재해서 사람을 쥐고 집어 던진다면 저런 꼴일까?

적진의 상황 또한, 거인이 갑자기 뛰어들어 패악질을 벌였으면 저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은 모습이다.

그러나 적의 진격은 멈추지 않는다. 모든 부대가 포격을 당한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도저히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던 칼같은 대열에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사망자가 나온 부대들은 빠르게 대열을 복구해 진격에 동참하지만, 아무래도 속도에 차이가 생긴다.

적의 최전선이 다시 접근하고 있다. 마치 방금 전의 대참사는 ‘없던 일’로 하겠다는 것처럼.

“다으음!”

첼레스티나가 다시 외친다. 한번 내려졌던 깃발이 다시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첫 신호로 발사된 것은 좌측 1번 포대 뿐, 나머지 두 개 포대는 아직 발포를 시작도 안했다.

이미 포격을 마친 1번 포대의 포수들이 부지런히 반동으로 밀려난 포를 원래 위치로 되돌리고 재장전을 시작한다.

첼레스티나는 다시 날카롭게 적진을 바라보며 타이밍을 잰다. 그녀의 다음 신호에 또다시 포격이 시작되겠지.

어느덧, 나는 스포츠 게임의 관중이라도 된 것 처럼 손에 땀을 쥐고 그녀와 적진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지휘관이 관중이 되어버리면 큰일이지만 뭐 잠깐은 괜찮겠지, 내 추가적인 대응은 전방에서 직접적인 교전이 시작된 이후에 하면 될 테니까.

“발사아!”

다시 깃발이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뻐버버버벙!

조금 멀리서 들리는 둔중한 일제 포격의 소리. 좀 더 준비가 잘 되었던지, 포격음의 집중도는 이쪽이 더 높다.

적진의 좌측에서 일어났던 일이, 이번에는 우측에서 일어난다.

딱 좋은 위치에 마치 사격대의 표적처럼 서 있던 적들이 또다시 우르르 쓰러진다.

몸에 충격이 전해질 틈도 없이, 깨끗하게 포탄이 뚫고 지나가는가 하면, 완반한 비탈에 튕겨 궤도가 불규칙해진 포탄이 맞아 옆으로 몇 미터나 날아가기도 한다.

유난히 인간들이 밀집한 공간에서 분쇄기처럼 에너지를 사방으로 흩뿌린 포탄도 있었다. 그 주변 동료들의 어깨 위로 쏟아지는 것은 손가락과 이빨, 그리고 다른 피에 젖은 뼛조각들이다.

물론 첼레스티나가 대단히 뛰어난 포술 지휘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비탈의 굴곡까지 사용한 완벽한 사용이다.

대량 학살이라고 표현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는 굴곡이 있는 평원 지대에서 포대를 활용하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두 번의 화력 폭풍이 적진에 몰아쳤지만, 아직 폭풍은 한 번 더 남았다.

“마지막!”

첼레스티나의 깃발이 또 하늘로 오른다. 이제 적군은 정말 가까워졌다. 조금 있으면 전방 보병 부대에서 총격젼이 시작될 것이다.

아, 첼레스티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것 같다.

아직 포격을 하지 않은 마지막 포대, 3번 포대는 가장 규모가 작으면서 동쪽에 치우쳐져 있다.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중앙 포격에 적합하지 않았던 포대이다.

적이 처음처럼 언덕 위에 있었다면 말이지.

그게 지금은···.

“발사아아앗!”

조금 더 날카롭고 높은 목소리와 함께 신호 깃발이 허공을 가른다. 첼레스티나의 모습이 마치 깃발을 들고 춤을 추는 이국적인 무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무희의 춤은 재앙과 죽음을 부른다.

아니, 아군 입장에서는 축복과 승리를 부른다고 해야 할까?

퍼퍼엉! 꽈광!

아군 전체에서 우측으로 치우친 위치니까. 더 먼 거리에서 포성이 울렸다.

적군으로 치면 좌측 전방이었으리라.

하지만 적 주력은 언덕 아래로 한참 내려온 상태이다.

즉, 3번 포대에서 발사된 포탄은 정확하게 적진을 측면에서 비스듬하게 훑고 지나갔다.

배치된 보병 부대를 면이라고 한다면, 포탄의 궤적은 선이다.

중간에 단단한 물체와 충돌해 궤도가 바뀌거나, 포탄 자체가 충격을 이기지 못해 여러개로 쪼개지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일직선으로 날아간다.

때문에 폭발력 없는 운동 에너지 탄을 쏘는 구형 대포술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 가장 많은 적을 경제적으로 죽이는 방법은 적이 몰려있는 곳에 쏘는 것이다.

때문에 옆으로 넓은 사각형 대형을 취하는 경우가 많은 전장에서 측면을 노리는 게 효과가 좋게 마련이고.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대각선으로 쏘는 것이다.

보병 대열은 통상 좌우 보다는 앞뒤로 빈 공간이 많으니까, 미친듯 폭주하는 포탄에 한번에 많은 적이 치여 죽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첼레스티나가 기다린 타이밍이 바로 지금인 이유가 있다.

최초의 1번 포대 포격이 적의 좌측, 2번 포대 포격이 적의 우측을 노렸다면, 이번 3번 포대의 포격은 적 정 중앙에 도저히 숨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냈다.

콱! 콰가각!

투둑, 철퍼덕!

원래 단단한 성벽이나 흙더미 등에 충돌하는게 아니라면, 자체적으로 폭발하지 않는 쇠구슬인 이 시대의 포탄이 낙하할 때 나는 소리는 그다지 요란하지 않다.

아군 최전열에서 불과 100여미터까지 다가온 적진에서, 이게 대체 어디서 뭘 해서 내는 소리인가 싶을 소름끼치는 소음이 들려온다.

보이지 않는 사신의 낫이 적진을 둔중하게 훑고 지나간다. 두 번, 세 번, 다섯 번.

그 낫이 이르는 곳마다 무서진 무기와 갑옷 조각, 잘려나간 팔다리, 피 섞인 혈점 파편이 뿌려진다.

촘촘하게 수직으로 서있던 장창의 자루가 몇 개씩 한꺼번에 부러지고 쓰러져 내린다.

멀리서도 눈으로 확인이 가능하기에 더욱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광경이다.

털퍼덕.

어깨가 붙어있는 적병의 머리로 보이는 물체가 몇 미터 앞으로 날아와서 떨어지는 모습도 보인다. 확신을 못하겠는 건, 어깨 아래나 이마 위쪽이 너무 심하게 훼손되어 피투성이였기 때문이다.

평생 전장을 볼만큼 봤다고 생각해온 나조차도 너무 놀라서 말이 안 나오는 광경이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소리를 못 낸다. 방금 전까지 환호의 함성도 지르고 자기들끼리 격려도 하고 하던 전방의 우리 병사들도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내 주변의 전령과 참모들도 입만 벌린 채 아무 말도 못하고 눈만 굴리는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자율 사격! 자율 사격!”

첼레스티나가 보급품 마차 위에서 능숙하게 깃발을 빙글빙글 돌린다. 역시 방금 적진에 불벼락을 내린 사람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제 각 포대는 알아서 장전하고, 조준점을 보정해서 발사하게 되겠지.

“콘도티에레! 첫 포격이 마무리 됐어요! 어떤가요?”

“어? 그··· 엄청 좋네! 수고했어!”

“네에, 에헤헤, 첼레스티나는 잘 했을까요?”

“어 완전 최고야! 완벽해! 무서워!”

“네에? 무섭다고 하셨어요?”

“아냐! 내가 잠깐 실수했네. 아무튼 다 최고야! 너희들 보기에도 그렇지?”

“그, 그렇습니다! 부관님 최고입니다!”

나와 참모, 전령들의 격찬을 받은 첼레스티나는 활짝 웃으면서 보급품 상자 위에서 뛰어 내려온다.

“이제 포병대는 원래 계획에 따라 포격 지원을 계속 할 텐데요, 다른 명령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콘도티에레!”

“그래, 고마워.”

포대를 보병 부대 사이에 배치해 근거리 화력을 극대화 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번 전투에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비교적 안전한 포대에 배치된 아군은

“이제 우리 차례다아! 사격 준비!”

“사격 준비이잇!”

전방의 아군 연대들이 개전을 준비하는 것이 보인다.

중대장이 사격 개시를 명하면 소대장이 판단하에 일제히 사격한다. 그게 트랑카벨 정규 연대의 사격 방식이다.

믿음직한 아군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두가지 두려움을 느꼈다.

첫번째는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적진에서는 비명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밀집 사각 대형에 포탄 하나만 굴러 들어가도 최소 서너 명, 많게는 열 명 이상이 끔찍한 꼴로 죽어 나간다.

아무리 철저히 훈련해도 몸뚱이가 뚫리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병사들에게 비명도 지르지 말라는 것은 무리다.

훈련이 잘 안 된 병력이라면 패닉에 빠져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려는 자들이 나올 가능성도 높았고.

그만큼 보병 부대가 포격에 가지는 공포심은 대단하다.

오죽하면 전투 전날 차라리 비가 내리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말이다. 비가 오면 격발을 할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거리가 떨어져 있음을 감안해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미친 새끼들, 무슨 약을 먹였는지, 무슨 최면을 걸었는지 알 방법이 없다.

최소한 우리 병사들이 지금부터 맞서 싸워야 할 상대는 ‘인간의 형체를 한 다른 무언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느낀 두려움은, 사실 이미 해소된 것이지만 치명적인 것이다.

만약, 내가 어쩔 수 없이 우리 병사들에게 언덕을 오르도록 시켰다면···.

방금과 같은 끔찍한 측면 교차 포격에 의한 피해는 다름 아닌 우리가 당했을 일이기 때문이다.

시야도 훨씬 좋고 포격하기 좋은 내리막 방향이니, 분명 비슷한 각도로 쐈을 때 더욱 처참한 결과가 나왔겠지. 우리 병사들은 포탄 맞아도 비명도 안 지르는 약쟁이들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정말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언덕 위의 적 포대는 지금은 조용하다. 산불에 휩쓸렸을까? 아니면 또 다른 계획을 준비하고 있을까?

확실히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계속 신경쓰고 있을 수밖에 없다.

“쏴!”

“쏴라!”

타타타타탕! 타타탕!

타탕! 타다다당!

“쏴라!”

타타타탕! 타탓, 타타타탕!

천지를 뒤흔드는 총소리가 울리며 아군 전열의 정면이 뻑뻑한 하얀 연기로 뒤덮인다. 적군이 50미터 안쪽으로 다가온 것이다.

성전군과의 마지막 결전이 될지 모르는 이 전투, 주력끼리의 격돌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망원경좀 주게!”

“여기 있습니다, 콘도티에레!”

전장을 확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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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타타탕! 따당!

“전열 교대! 전열 교대!”

“적이 온다아!”

타다당! 타타타탕! 탕탕!

트랑카벨 영지군, 제16 몽세나 연대장 아리위스 드랭쿠는 대열 후방에서 능숙하게 사격을 반복하는 부하들을 지켜본다.

이정도 근거리에서 두 차례의 일제사격이 이어졌다. 트랑카벨 영지군이 자랑하는, 대단히 밀도 높은 사격이다.

그러나 적은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신음소리 비슷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는 하지만, 아마도 허파를 다친 적이 내는 소리였겠지.

아리위스는 과거, 여울목의 전투에서 드라멜른 기사단과 싸웠던 경험이 있었다. 당시 제16 몽세나 연대는 완전 초짜들의 부대였다.

그러므로 이번은 이 약쟁이 기사단과 맞서는 두번째 전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드라멜른 기사단과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아예 꼭두각시 인형처럼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어느정도 감정을 느끼는 상대였다고 해야 할지.

신생 트랑카벨 영지군의 연대장으로서는 경력이 길지 않지만, 나름 트랑카벨 가문을 섬기는 기사로서 경험이 풍부한 아리위스이다.

본능적으로 적이 그만큼 더 까다로운 상대일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연대장님··· 적군이 대응 사격을 하지 않습니다.”

“저 놈들은 괴상한 무기를 쓰거든!”

전방은 아군 총병이 뿜어낸 하얀 연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옆에서 젊은 참모 장교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랬다. 저 약쟁이 기사단은 이전에도 특이한 무기를 썼었지.

따다닥! 빠각!

빡! 빠박!

“으아악!”

“으윽, 아악!”

“눈이 안보여!”

하얀 연기를 뚫고 적군이 다가오고 있었다. 막대한 희생을 뚫고, 근거리까지 다가온 적이 쓴 무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쓰는 화승총에 비해 유난히 두껍고 뚱뚱한 총신을 가진 동부식 대화승총. 조잡해보이는 무기이다.

위력은 좋지만 총렬이 짧아 명중률도 엉망이고, 유효 사거리도 형편 없다. 근거리용 산탄 용도로 쓰이는 나팔총과는 다른 무기이다.

여울목에서의 전투 당시에 콘도티에레에게 들은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정상적은 화승총 사거리에서 쐈을 경우’이다. 지금처럼 아군 전열에 아주 근접한 경우 상당한 위력을 보여준다.

보통 저따위 무기를 쥐어주고 ‘적진에 근접해서 사격해라, 적은 네 총 사거리의 3배 이상 거리에서 사격할테니 운이 좋으면 근접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명령을 내리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그 미친 짓을 태연하게 하고 있었다.

“저 염병할 무기 또 들고 왔네, 개자식들!”

“아군을 엄호해!”

연대 총병들 역시 여울목의 전투에 참여했던 베테랑들이 많다. 그들 역시 당시 겪었던 기이했던 전투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대열 유지해! 약쟁이 놈들에게 질 수는 없다!”

“트랑카벨을 위하여!”

“트랑카벨!”

적 총병은 우리 창병들을 집중사격하고 있었다. 그들이 자리를 비키자 총연을 뚫고 창날을 가지런하게 세운 창병 대형이 다가온다.

포병으로 그렇게나 때려 부쉈는데도, 멀쩡하게 대열을 유지해 아군 대열에 들이박고 있었다.

“약쟁이 기사단에게 질 수는 없다!”

타다닥! 따닥!

양측의 창날이 엮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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