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20화 (220/556)

28-10. 마르사코르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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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변 참모 장교들, 그리고 전령들과 가볍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라고 해도 뭐 대단한 것은 아니고, 선 채로 따뜻한 차와 딱딱한 빵 조각을 삼키는 것에 불과했지만.

전투가 길어질수록, 먹을 수 있을 때 먹어 놔야 한다. 잠도 비슷한데, 일상 생활과 달리 전투 상황에서는 정말 급박하면 잠도 식사도 불가능해지니까.

지금도 전방에서 대치하는 병사들은 밥을 못 먹으니 나도 안 먹는다? 그건 아마추어가 할 법한 소리다.

그런 생각할 시간에 얼른 쳐먹고 교대를 해 주던가, 걔들도 밥 먹을 수 있게 다른 조치를 강구해야지. 아무튼 좀 먹을 수 있을때 먹으라고 좀.

솔직히 아무 맛도 안 나는 퍽퍽한 빵이다. 그나마 여기가 건빵이 아닌 게 어디야. 게다가 사령부니까 따뜻한 차와 함께 먹을 수 있어서 감지덕지랄까.

반죽을 대체 어떻게 한 건지, 먹을 때마다 생각한다.

빵을 입에 넣고 따뜻한 차를 마시면 찻물이 빵을 통과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만 빵 자체는 그대로 있는 마법과도 같은 음식이다.

내가 아무 말 없이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으니 다들 내 흉내를 내고 있다.

다만 첼레스티나는 조금씩 잘라서 입에 넣는다. 참고로 이건 조신하고 예뻐 보이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부관이라 조심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 있으면 중간에 내 대신 대화하고 보고해야 해서 그런 거니까. 예뻐 보이려고 해서가 아니지만, 동료 입장에서는 고맙고 예쁜 짓은 맞네.

참고로 첼레스티나도 전령 가방 열어서 서류 꺼내다 보면 빵가루 후두둑 떨어지는 아주 평범한 용병이다.

콰아앙!

“푸우웁!”

어떻게든 입 안의 빵을 녹이기 위해 차를 들이마시던 나는 굉음에 놀라 차를 도로 뱉어냈다.

“웁웁, 뭐지 무슨 일이지?”

“콘도티에레! 언덕 위에! 언덕 위에 폭발이에요!”

“폭발? 어··· 폭발이라고?”

확실히.

방금 치솟아 오른 화염이 서서히 잦아들고, 보기만 해도 불길한 까만 연기가 하늘에 닿을 듯 피어 오르는 것을 보면 큰 폭발이 있었던 것은 같다.

위치는 언덕의 가장 높은 곳, 적 포대의 후방.

하지만 나는 더욱 놀랐다. 그건 그냥 폭발이 아니었다.

거대한 화염의 파도였다.

언덕 위쪽이라 확실히 보이지는 않으나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언덕을 온통 덮을것 같이 피어오르는 화마의 끝이 보였기 때문이다.

“불? 산불이 난 것인가?”

“네에? 콘도티에레, 설마 화약에 불이 붙어서 산불이 난 것일까요?”

“아냐··· 아무리 폭발이 났다고 해도, 저렇게 넓은 면적이 갑자기 화염에 휩싸일 수는 없어.”

“네에, 그럼··· 산불이 나서, 그게 화약 더미에 옮겨 붙었겠네요!”

“응, 아마도 그렇겠지? 그런데··· 이상한 점은 또 있어”

왜 산불이 난 것을 몰랐지? 우리야 언덕 아래라서 비탈에 시야가 가려서 그렇다 치자. 지금처럼 불이 언덕 꼭대기까지 넘실대기 전까지는 보지 못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숲 바로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적군은 왜 불이 나는 걸 몰랐을까?

당연히 숲을 지키는 경비 병력도 있었을 테고, 화약고를 숲 안에 만들었다면 이를 지키는 예비 병력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 정도의 귀찮은 포진을 실행한 적장이 그런 기초적인 실수를 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드니까.

산불이 났다면 분명 전조가 있었을 것이다. 전조를 놓쳤더라도, 대화재라는 것은 엄청 시끄럽다. 숲의 짐승들도 난리를 피우기에 절대로 모를 수가 없는 일이다.

이미 사람의 손으로는 끌 수 없는 불이 됐더라도 ‘미리 알기만 했으면’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화약이라도 빼서 대폭발은 막을 수 있었겠지. 그럼 지금 언덕 위처럼 저런 대혼란의 아수라장은 피할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지금 언덕 위가 술렁거리는 것을 보면 적은 불이 저렇게 번지기까지 몰랐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설마 인위적으로 불을 질렀을까?

저렇게 단기간에, 적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짧은 시간에 숲이 불타오른 것을 보면 누군가 준비를 하고 불을 지른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적군이 있는 언덕 꼭대기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장소에서 말이다.

최소한 내가 시킨 적은 없으니 우리는 아니다. 후방에 침투하는 현대적 특수 작전이란 듣기에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내가 시킨 것은, 기껏해야 벼랑을 올라가서 적 포수 저격을 좀 해보라는, 아주 소박한 임무니까. 그러고보니 그 ‘언덕 부대’는 무사히 도착 했을까. 폭발에 휘말리면 안 되는데.

그 이상의 고도의 정밀 타격 작전을 하기에는 확실한 정보의 수집, 그리고 그 정보의 정확한 전달, 즉각적인 지휘 등 부족한 게 너무나도 많다.

정보만 해도, 가령 스파이가 적 화약고의 위치를 확인해서 보고했다고 치자.

그리고 폭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가 있다고 해도, 스파이는 그 전문가에게 정확한 위치를 알리기 어렵다.

지도를 그려 표시한다? 정확한 축척 지도를 손으로 그리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그릴 수 있다고 해도, ‘스탠다드’가 되는 지도가 없다보니 정확한지 확인도 불가능해지니까.

하물며 실무를 해야하는 전문가가 그 지도를 보고 정확한 위치 정보를 습득했는지 확인도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A라고 말했는데 상대방은 B라고 알아 드는 일이 얼마나 흔한 일인가 말이다.

결국 정확한 정보가 필요한 특수 작전은 정보의 가공과 분석 능력이 고도로 발달한 후에야 가능하다. 정확한 축척의 지도, 사진, 통신 기술 등은 말해야 무엇 하겠나.

잡생각이 길어졌는데, 아무튼 내가 ‘적 후방을 타격해 화약집적소를 폭파하라!’고 명령을 내려봤자 이런 상황에서 실행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워 게임처럼 미니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대에서 멀어진 부대와 즉각 통신이 가능한 것도 아니니까.

괜히 아군끼리 위치도 모르는 상황에서 오인 전투나 안 하면 다행이지.

그래도 이건···.

“콘도티에레! 설마 이게 콘도티에레께서 기다리시던 ‘적의 틈’ 인가요?”

“어? 뭐? 음, 그래··· 틈이기는 한데···.”

“대단해요! 어떻게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상하신 거죠? 이걸 기다리신 거군요?”

“아냐··· 틈은 틈인데··· 너무 큰 틈이네.”

첼레스티나가 호들갑을 떠니, 아직 빵을 다 먹지 않은 주변 참모와 전령들, 그리고 경비병들도 술렁대는 분위기다.

아냐, 아니라고.

솔직히 어떤 지휘관도 ‘적진 후방에서 갑자기 산불이 활활 타올라서 화약고가 날아가 버리는’ 행운이 따라 줄 것으로 생각하고 전술을 짜지는 않는다고.

내 난감한 심정은 바로 이어진 사건으로 인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게 되어버렸다.

펑! 퍼펑! 꽈아앙!

“2차 폭발인가!”

“화염입니다, 포대 쪽이에요!”

“우와아악!”

이번 폭발은 규모는 작았지만, 더 여러번 터졌다.

아마도 화약 집적소에서 포병이나 전방의 총병 부대로 옮기기 위해 준비한 2차 집적소에서 터진 폭발이겠지.

폭발의 충격에 줄기 채로 찢겨진 나무가 불에 활활 타며 허공을 나는 것은··· 통쾌하기는 했지만 무서운 광경이었다.

나는 슬쩍 눈을 돌려 소규모로 분산해 놓은 우리 화약 집적소 쪽을 바라보았다.

저기 불이 놓여 폭발한다라···.

솔직히 멘탈을 유지하면서 전투 지휘를 계속 할 자신이 없다.

하물며 우리는 평지라 널찍널찍하게 자리를 잡아 놔서, 화약 집적소가 만약에라도 폭발하면 피해는 거기서 그친다.

하지만 적이 자리잡은 언덕 위는 훨씬 좁은 공간이라는 것이지.

그리하여 지금 적병들의 머리 위로는 불똥이 비처럼 내리고 있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손가락을 들어 바람의 방향을 살핀다.

“첼레스티나! 전 포병대에 전령!”

“네에, 콘도티에레! 언덕 위로 집중 포격 할까요?”

“아니, 포격 중지. 장전 후 대기하라고 해.”

“네에··· 네에? 그, 그래도 될까요 콘도티에레?”

“바람이 이쪽으로 불고 있거든.”

“아앗! 네에!”

그제야 알았다는 듯 첼레스티나가 박수를 짝 치면서 활짝 웃는다. 아마도 블랙 코미디였다면, ‘성전군을 더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겠네요!’ 하면서 웃지 않았을까?

“한번에 더 잔뜩 죽일 수 있도록 대기하는 거네요!”

“...응 뭐 그렇지.”

역시 세상은 평범한 블랙 코미디보다 약간 더 잔혹하고 희극적인 모양이다.

그리고 밤이나 낮이나 주신 타령을 하는 적에게는 애석한 일이겠지만, 정말로 주신이 있다면··· 아마도 적 편에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이렇게나 큰 틈을 만들어서 보여주다니 말이다.

아니면··· 그 주신이라는 양반이 우리 편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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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열기가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던 보병 부대를 덮쳤다.

“빨리 빠져! 빨리 빠져!”

“위험해! 으으윽! 늦었다 전부 조심해!”

“총병들 우선 빠져나가!”

언덕 끝, 숲 가장자리에서 대기하던 성전군 용병 부대들이 미처 자리를 벗어나기도 전에, 화마가 숲을 덮쳤다.

폭발로 생긴 뜨거운 공기의 흐름이 거칠게 숲속을 달리면서 생긴 일이다.

최근 가뭄으로 인해 가물어 있던 나무들은 열기가 다가오자, 순식간에 바짝 말라붙어서는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생나무는 불에 잘 타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허나 이미 숲의 상당부분을 불태우고 있는 엄청난 화염은 그 상식을 뒤집기에 충분하다.

그 열기에 생나무들을 순식간에 땔감이 되어 더더욱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따다닥! 따닥!

“으아아악!”

“흐이익! 키이이익!”

따다닥! 따당!

“뜨, 뜨거워! 뜨거워!”

“아흐윽···.”

대피가 늦은 병사들이 심한 화상을 입었다. 아니, 단순한 화상의 문제가 아니다.

방에 넣든 탄띠에 고정하든, 화기에 예민한 화약 덩어리들을 잔뜩 휴대하고 다니는 총병들이 문제였다.

적지 않은 수가 몸에 붙은 상태로 탄약포가 폭발해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당황해서 탄약 가방을 몸에서 떨어뜨리려다 폭발하는 바람에 손가락이 온통 잘린 병사도 있다.

여기저기서 몸에 불이 붙은 병사들이 흙바닥에 나뒹군다.

“빠, 빨리 이쪽으로! 부상자들을 챙겨라!”

“알겠습니다!”

라모리 스텐던 휘하의 보병 대장, 기직스 미슈람 알메르타트는 기가 막혔다. 급한대로 명령을 내리고 안전지대로 부하들을 이동시켰으나 이미 늦었다.

그의 부대는 성전군 전체에서 최후의 예비대라 숲속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응이 느렸다.

그들이 대기한 장소는 안전한 대신, 전장이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연대장인 기직스 자신도 초조해하며 끊임없이 울리는 포성과 총성만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더니 오른편 어딘가에서 요란한 폭발음이 들렸다. 병사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보니 뭔가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어제 밤에 보급관들이 늦게까지 물자를 옮긴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화약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확인을 위해 전령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2, 제3의 폭발이 울렸다.

노출된 뺨이 따가울 정도로 건조하고 뜨거운 바람이 후욱 하고 불어왔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가 밟고 선 푹신한 풀밭이 이미 바짝 말라 그을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건조한 숲을 달리는 화염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으으, 아아아!”

“사, 살려줘··· 아파아···.”

보기에도 끔찍한 중화상자들이 연이어 실려온다. 화상은 면적이 넓어 덧나기 쉽고 관리하기는 어렵다. 과연 치료해서 살려낼 수 있을까?

다급한 마음에 한숨을 쉬며 이리저리 주변을 확인한다.

그가 아끼는 부하들, 성전군 최후의 예비대가 불과 몇 분 만에 거지 꼴이 되었다. 아직 전투에 투입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마에 화상을 입어 벌겋게 벗겨지고, 투구 아래 머리카락까지 타버린 채로 혼이 빠진 눈을 한 병사들이 애처로웠다.

적지 않은 수가 화상을 입고 다쳤을 뿐만 아니라, 많은 무기를 그대로 버리고 올 수 밖에 없었다.

불타는 숲에서 빠져 나가야 하는데 거치적대는 장창을 버리고 나온, 화약 가방을 팽개치고 나온 병사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무사히 살아서라도 왔으니 다행이지.

지휘관으로서 자랑스럽던 정예부대는 이미 없었다. 억울해서 이가 갈린다.

전투를 준비하며 최적의 형태로 소부대를 배분하고, 언제라도, 어떤 진형이라도 대응할 수 있게 아침부터 한 배치가 엉망진창이 됐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아직 적의 얼굴도 보지 못했는데 어째서 이런 재앙이 벌어진 것인가.

“잠시 병사들을 챙겨주게. 라모리 총사령관께 다녀와야겠어!”

“알겠습니다, 기직스 경.”

서둘러 사령부쪽으로 달려간다. 불타는 숲을 오른쪽에 두고 달리다보니, 너무 뜨거워서 뺨이 익을 지경이다. 더워서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사령관께서는 어디 있는가?”

“모, 모르겠습니다!”

지나가다 만난 병사들에게 물어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들 모두 엉망진창이 되어 부상자를 챙기고 자기 소속 부대를 찾고 있었다.

숲에 대기하고 있던 부대는 기직스의 부대 뿐만은 아니다. 라모리 사령관의 직속 부대, 그리고 울터 선배가 지휘하는 기병의 상당수도 숲 속에 있었다.

“제길!”

피를 흘리며 널부러져있는 말의 시체가 여럿 보인다. 하나같이 갈기와 꼬리가 새까맣게 타 있고, 등이나 허리 언저리에 심한 화상이 있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해 날뛰는 말들을 안락사 시킨 모양이었다. 그것 자체도 슬픈 일이지만, 대체 예비 전력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공포스러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뜩이나 병력면에서 열세인데, 예비대가 없다면 전투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어쩔 수 없다. 일어난 비극은 비극이고,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에게는 지휘관으로서 의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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