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17화 (217/556)

28-7. 마르사코르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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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랑시아가 말한다.

“그대는 주의 뜻에 따라 살 지어다. 영의 수족이 되어 행할 지어다. 대리인이 걸었던 길을 따를 지어다.”

“우리는 주의 뜻에 따라 살 거외다! 영의 수족이 되어 행할 거외다! 대리인이 걸었던 길을 따를 거외다!”

모스탈 요새 수도원의 무장 수도사들이 외친다.

성녀의 어깨와 두건 위로는 하얀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기프트 발동의 의미.

그 아름다움과 장엄함에, 의식을 구경하고 있는 성전군 병사들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한다.

“주신의 뜻을 대리해 이 전장에 섰으니, 너희들 자신이 이단을 벌하는 철퇴가 되리라!”

“우리들 자신이 철퇴가 되리라!”

“나아가라, 주신의 아이들아! 이단의 땅을 이단의 피로 정화하라! 주신의 이름으로!”

“주신의 이름으로!”

의식을 마친 무장 수도사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주변에서 의식에 참여하고 있던 성전군이 일제히 함성을 지른다.

그 맨 앞에는 남다르게 큰 키, 얼굴을 덮은 끔찍한 화상자국과 흉터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네부카디 델 카스트로소 수도원장이 있었다.

그 상처들은 한 번에 난 것은 아니다. 이미 시간이 흘러 아물어버린 상처 위에, 다른 상처가 또 생기기를 반복한 흔적.

거듭된 고통의 기억이 마치 비늘처럼 층을 지어 덮인 모습이다.

이 상처투성이의 사나이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더니, 다시 무릎을 꿇는다. 성녀 랑시아의 바로 앞에.

그럼에도 키 차이가 워낙 많이 나다보니, 눈높이는 생각보다 많이 차이나지는 않는다. 성녀와 수도원장, 두 고위 성직자의 눈이 마주친다.

“나의 투사님. 이번에야말로 함께 싸울 수 있게 되었네요.”

“영광입니다, 성녀님. 저의 모든 것은 우리 신앙과 법황 성하, 그리고 성녀님을 위해 존재합니다.”

“가세요. 가서 신의 군대를 이끌어, 라모리 사령관이 내린 임무를 수행하세요. 이 전장에는 당신의 처벌을 받아야 할 이단자들이 너무도 많네요.”

“따르겠습니다, 성녀님.”

네부카디는 마지막으로 짧게 인사를 마치고,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가면 수도사들 사이로 돌아간다.

단 한명의 ‘입’을 빼고는 모두가 침묵을 서원하고, 가면으로 얼굴을 가려 신분조차 숨긴 집단.

오로지 이교도와 이단자들과의 싸움만으로 성사와 기도를 대신하는, 법황청이 보유한 최강의 무력 집단이 모스탈 수도회였다.

“이단자들의 피를 성전에 바쳐라!”

“와아아아아아!”

“주신의 군대를 주신의 손으로!”

“주신의 군대를 주신의 손으로! 와아아아!”

당당한 발걸음으로 전장으로 나아가는 네부카디 수도원장이 주어진 병력은 직속인 무장 수도사들을 제외하면 1500명 정도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았다. 많은 성전 참여자들이 ‘교단 유일의 공인 성녀’와 ‘법황의 철퇴라 불리는 무장 수도회’와 함께 싸우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본래라면 별볼일 없는 오합지졸이다. 실력보다 마음만 앞선, 성전의 편승자들.

그러나 ;오합지졸이었던’ 이 제대로 조직되지 않은 병력의 무리는, 방금 성녀의 성사에 참여한 이후 신앙심이 최고로 충전되어 있었다.

“가자!”

“가자아아아!”

“으아아아아아!”

다소 무질서하게, 그러나 힘이 넘치는 무리가 언덕을 내려가 전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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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모 델 안프로니오 대공은 불안한 눈빛으로 새롭게 등장한 지원군들을 살폈다.

어쩐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움찔하게 되는 화상투성이 수도사가 이끌고 온 어중이떠중이들이다.

용병으로서 참여한, 평범한 전투였다면 절대로 신뢰하지 않았을 집단이다. 절대로 1인분을 할 수 없는 부족한 병사라 판단했겠지.

본래 전투에서 보조 전력인 경보병이나 정찰병 이상의 역할을 맡기 어려웠을 이들이, 성전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괜찮을까요?”

아소모의 참모 장교가 걱정스러운 태도로 말한다. 평소 안프로니오 연대가 함께해본 적 없는 ‘동맹군’의 모습에 거부감과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사실 그것은 아소모 대공 본인도 마찬가지였지만, 여기서는 함부로 티를 낼 수는 없다. 어쨌든 도와주러 온 자들이니.

“저들의 우두머리인 네부카디 수도원장을 보지 않았나?”

“그··· 화상이 심한 거한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네 보았습니다. 보기보다는··· 말이 통하는 냉정한 사람이더군요. 역시 성직자라 그런지.”

“나도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네. 교단이 키우는 사냥개 같은 인간이리라 생각했는데, 괜히 미안해지더군.”

네부카디 델 카스트로소라는 이름의 수도원장은··· 압도적으로 개성적인 외모와는 다르게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병력 투입에 앞서 현재 전장의 책임자인 아소모 대공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부터가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증거였다.

지원군에 대해서는 총사령관인 라모리 스텐던 경과 미리 상의는 했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무작정 전장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광신도의 무리 정도를 생각했었고. 아마 전장에 혼란을 불러올테니 없는 것 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네부카디 수도원장은 아소모를 찾아와 지원이 필요한 지역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수도원장 자신도 몇가지 의견을 내기는 했으나 주로 아소모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나름 전술적 식견도 있어 보였고, 협의는 2분여 만에 끝났다.

그리고 지금, 제각각의 무기로 무장한 무질서한 천 명 이상의 병력이 안프로니오 연대가 굳건히 지키고 있는 대열 안쪽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적절한 거리에서 명중만 시키면 방어구와 무관하게 거의 반드시 치명상을 입힌다. 그런 가공할 무기인 화승총이 수천 자루나 불을 뿜는 전장이다.

이 전장의 주인공은 적진으로 끊임 없이 화력을 투사할 수 있는 총병과, 총병을 보호하며 모든 방향에서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창병이다.

그 외의 병종, 심지어 기병이나 포병과 같은 병종들도 단독으로는 이 총과 창으로 이루어진 보병 대형을 쉽사리 상대하기 어려웠다.

물론 적의 총병과 창병에 대응 가능한 충분한 보병 전력을 보유한 상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 부터는 기병도 포병도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오히려 서로의 공격력 부족으로 교착상태에 빠지기 쉬운 보병 밀집 대형간의 힘싸움을 이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총과 창 이외의 무기, 주로 짧은 백병전 무기 등으로 무장한 보병의 무리는 그런 상황에서도 가치가 좀 떨어지는 편이다.

하물며 그들이 제대로 된 집단전 훈련도 받지 않았고, 전술적 역할을 맡아본 경험도 없다면?

철두철미하게 훈련 받은대로 행동하는, 어찌 보면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초월한 정규 보병 부대가 지배하는 전장에 그들이 설 자리는 없다고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아소모 대공이 보기에, 지금은 조금 달랐다.

왜냐하면 현재 전선은 철저한 교착상태이기 때문이다. 창병들의 창은 서로 얽혀있었으며, 그 와중에 총병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서로 창날과 총화를 주고 받으며 사상자만 늘어갈 뿐인 상황이다.

게다가 적군은 바리케이드 등으로 좁아진 정면으로 병력을 밀어 넣느라, 보다 작은 규모의 부대들로 쪼개진 선형 대형을 취하고 있었다.

이건 자칫해서 한쪽 구석이 무너지면, 단숨에 전과가 확산될 수도 있는 구조이다. 사면을 전부 철통같이 지키는 사각 대형을 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즉, 모루는 준비되었다. 아군도 적군도 모루에 같이 올라가 있는 꼴이기는 했지만.

여기에 무질서하지만, 과도할 정도로 열정적인 성전군 보병들이 들이닥친다면?

잘하면 단번에 적의 연대 하나를 궤멸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총사령관 라모리와 현장 지휘관인 아소모 대공이 협의한 전술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총소리와 창대 부딪치는 소리. 창날이 갑옷에 스치는 기이하게 소름끼치는 소리. 집중하는 병사들의 나지막한 기합과 부상병의 신음 뿐이던 전장에 새로운 함성이 울린다.

전투 위치로 이동한 지원군이 지르는 고함이다.

모두 네 군데로 이동해 배치된 성전군 보병 부대가 한꺼번에 지른 소리이다. 전장에서 치열하게 창날과 총화를 나누고 있던 양군이 모두 어리둥절해한다.

그러나 완전히 허를 찔린 제51 포르망제 의용보병 연대와 달리, 안프로니오 연대의 장교와 병사들은 지원군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이런 특이한 형태일 줄은 몰랐겠지만.

“돌겨어억!”

“이단자들을 죽여!”

“우와아아아!”

창병은 적 창병에 맞선다.

총병은 적 총병에게 화력을 집중한다. 가능하면 적 창병을 저격해 아군을 지원한다.

어느 쪽이든, 최대한 버틴다.

철저한 교전 원칙에 따라 관성적으로 행동하고 있던 제51 연대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질적인 적군의 기습에 크게 놀랐다.

변변찮은 짧은 무기로 무장한 무리의 습격은 상정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제대로 된 방어 대형을 취하고 있었다면 굳이 대응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쉬운 상태이다.

하지만 지금은 ‘제대로 된 방어 대형’을 취하기가 어려웠다.

“온다! 적이 온다!”

“뭐야? 산적떼야 저 자식들은?”

“장전! 서둘러!”

수백 명의 무질서한 돌격대가 함성을 지르며 블랑독 연맹군의 측면을 노렸다. 50명 정도의 총병 대열이 지키는, 비스듬히 뒤로 물러서는 형태의 측면이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면, 집중 사격으로 무모하게 접근해온 적에게 치명적인 최후를 안겼을 것이다.

탕! 탕!

“구령 없이 쏘지 마! 사격 준비해!”

타당! 탕!

“제기랄, 더 다가오면 우리 소대는 백병전을 준비한다. 아군이 장전할 시간을 벌어야 해!”

“알겠습니다!”

“쏴라!”

타타탕! 타앙!

혼란.

실수로 이미 쏴버린 숫자와 아직 장전이 되지 않은 숫자가 빠져버린, 힘 빠진 일제사격은 적의 접근을 막는 저지력을 발휘하는데 실패했다.

적지 않은 선두 대열이 쓰러졌음에도, 기세가 전혀 떨어지지 않은 성전군 보병 대열이 마지막 바리케이드를 뛰어 넘었다.

다행히도, 안프로니오 연대가 블랑독 연맹군을 막기 위해 설치한 바리케이드는 적의 공세도 늦추는 방해물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러난다! 뒤에서 예비 창병이 오고 있어!”

“장전을 어디까지 했는지 잊지 마!”

“천천히 물러나! 대열 무너지면 안 돼!”

총은 확실히 백병전에서는 그다지 좋은 무기가 아니다. 매우 무겁기도 할 뿐더러, 너무 가까운 적은 조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불편하고 과하게 무거운 둔기 이상의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백병전에 들어간 총병이 대열을 무너뜨리고 백병전에 전념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선두 총병들이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주면 된다. 적을 죽이지 못해도, 후위에서 장전하는 아군을 위한 시간만 벌면 된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몰려온 적군은 말 그대로 코 앞에서 들이대는 총구의 제로 거리 사격을 맞고 폭풍에 휘말린 갈대 꼴이 될 것이니까.

하지만 방어나 대열 유지 따위는 도외시하고 돌진해온 성전군은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적이 온다!”

“이단자 새끼들!”

“크흐윽!”

“죽여라! 죽여라!”

백병전에 얽혀버렸다. 양측은 치열하게 죽고 죽이는 싸움을 시작한다.

아무리 총병이라고 해도 기본적인 투구와 갑옷을 입고 있고, 보조 무기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특히 제51 연대는 블랑독 북부의 하급 귀족이나 지주 출신이 많다. 가뜩이나 미운 성전군이 덤벼드는데 겁에 질리거나 호락호락 맞아 줄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덤벼 시팔!”

“케에엑!”

망치처럼 거꾸로 잡고 내리 찍은 화승총 개머리판에 투구를 두들겨 맞은 병사가 코피를 뿜는다. 맞은 부분이 움푹 들어가 있다.

그런데도 허우적대듯 들고 있는 검을 앞으로 내밀듯 찌른다. 칼 끝이 흉갑을 긁고 지나가면서 끔찍한 소리를 낸다.

“빌어먹을 자식!”

그대로 적대하는 두 사람이 얽힌다. 총병은 불편한 사격 무기를 던져버리고 허리춤에서 짤막한 단검을 뽑는다. 거꾸로 잡고 어깨를 찍는다.

그제서야 성전군 병사의 몸이 스르르 주저앉는다. 그러나 주저앉은 무릎이 축축한 땅에 닿기도 전에, 바로 뒤에서 다른 적이 달려든다.

탕! 타탕!

“억!”

“끄흑!”

흥분하여 시뻘겋게 충혈된 적병의 얼굴이 뒤로 훽 넘어간다. 후열에서 장전을 마친 동료가 쏴 주지 않았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다시 일어선다.

흥분해서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가려는 총병의 어깨에 크고 따듯한 손이 올려진다. 뒤를 돌아보니 소대장의 얼굴이다.

“물러선다! 싸우면서 물러선다! 훈련 대로 해야 해!”

“아, 알겠습니다!”

땅에 떨어진 총을 주워든다.

“이런 시팔!”

당연히 화승의 불은 꺼졌고, 총에는 질척거리는 진흙이 잔뜩 묻어있었다. 총구로 들어가지는 않았나 걱정이 된다.

“총기 청소하느라 애 좀 먹겠네. 어쩔 수 없지, 자 물러나자! 바로 뒤에 창병이야.”

“옛!”

전투는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전장을 갑자기 등장한 성전군 돌격대가 휩쓸고 있었다.

제51 연대의 소부대들은 여전히 잘 버티고 있었으나, 고립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전선을 전체적으로 후퇴할 수 밖에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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