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11화 (211/556)

28-1. 마르사코르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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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의 시작은 아침 안개를 가르는 포격이 알렸다.

“1번포 발사!”

“쏴라!”

펑! 뻐엉! 퍼펑! 펑!

아군 1번 포대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10여문의 화포가 몇 초 단위로 순서대로 화염과 연기, 그리고 가공할 위력을 가진 포탄을 토해낸다.

순서대로 쏘는 이유는 물론 탄착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순서대로 쐈으니, 탄착되는 순서로 어디서 쏜 것인지 알 수 있다.

아군이 쏜 포탄은 적진에 명중하지 못한 채 허공을 넘어가 버리거나, 적진에 도달하지 못하고 비탈에 박히기도 했다.

하지만 몇 발은 아침부터 일찍 대열을 갖추고 있던 적군의 덩어리를 파고 들어갔다. 가지런하던 창날의 숲이 흐트러지는 것을 보며, 포병들이 승리의 함성을 지른다.

포탄의 탄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척 다양하다.

당연히 포술장의 조준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 외에도 포탄의 형상, 포신의 마모도, 화약의 상태와 분량 등등 너무도 많은 문제가 있다.

거기에 직접 확인이 불가능한 표적지의 지표면 특성 및 대기 상태까지 별의 별 요소들이 정확한 포격의 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포술은 이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것이고.

우리 포대를 지휘하는 것은 내가 아는 대륙 최고 수준의 포술 전문가이다.

첼레스티나는 어제 마지막 작전회의가 끝나자마자, 각 연대 포대장들을 불러 모아 각자 담당 위치를 정했다. 그리고 보병 부대로부터 인력을 지원 받아 포병들과 함께 새벽 일찍부터 준비를 마쳤다.

오늘 예비대에 편성되는 인원이라고 해도 다들 고생이 많았다. 많은 보병들이 새벽부터 흙투성이로 고생해준 덕분에, 완벽한 수준의 포병 진지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번 포병 진지는 이전에 비해 훨씬 대단한 수준이다.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흙을 담은 통과 바구니는 당연히 상당한 양이 준비되었다.

만약에라도 적의 공격이나 실수로 화포가 파열되는 경우 주변에 영향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포 사이사이마다 세워두는 것은 기본이니까.

그리고 포대 앞에는 그다지 깊지는 않지만, 적 방향은 완만한 비탈에, 이쪽 방향 벽면 각도는 수직에 가까운 참호와 도랑의 중간쯤 되는 구덩이도 파 놨다.

포대 앞에 나지막하게 쌓아둔, 흙 담은 자루와 함께 포대의 정면을 보호하는 것이다.

만약에라도 적 보병이나 기병의 접근을 막는 역할도 하겠지만, 적 포탄의 각도를 교란해서 혹시라도 포대 내로 포탄이 들어올 확률을 최대한 낮추는 목적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투를 앞둔 병사들을 고생시켜가며 평소보다 빡빡하게 준비한 이유가 있다.

퍼억!

“으아아악!”

“자 진정해! 우리는 괜찮다!”

“다친 사람 있나? 없어? 그럼 장비 점검하고, 재장전!”

포탄이 흙에 박히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흙먼지가 일어난다. 적도 소수이지만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철저하게 준비한 덕분에 적의 포탄은 아군 진지의 방어 축성에 막혔다. 하지만 포격이 계속된다면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차츰 탄착 정보를 얻어가며 적의 포격도 차츰 정확해질 테니.

이번에 숫자로만 따지자면 포병 화력은 아군이 압도적이다. 원래 각 연대가 보유한 경야포에, 아넥시에서 노획한 포의 일부도 이번에 끌고왔으니까.

문제는 적 포대가 적진 깊숙이, 가장 높은 명당자리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래서는 지금까지의 다른 전투처럼, 우세한 화력을 이용한 대포병 사격으로 약화시키고 시작할 수는 없다. 거기까지 사거리가 닿지 않거나, 닿더라도 유효한 타격을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높은 장소에서 우월한 시야와 포각을 활용한 적의 포격은 더 정확하게, 멀리까지 도달할 것이다.

때문에 첼레스티나는 이 점을 고려해 평소보다 포병 진지를 강화한 것이다.

“콘도티에레! 1차 배치가 마무리 되었어요!

“그래, 수고했어 첼레스티나.”

“네에, 그런데··· 적 포대는 우리 포대를 공격할 생각은 없는 것 같네요오···.”

“흠, 그렇네.”

나와 첼레스티나는 한가지를 가정하고 시작했다. 바로 적이 화약이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야··· 우리가 오랫동안 성전군의 후방을 괴롭혀왔고, 아넥시에서 결정적으로 적의 병참을 파탄냈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겠고.

개인 화기인 화승총용의 고운 화약에 비해서, 대형 화포용의 거친 화약은 유통이 잘 안되는 편이다. 부피나 비용 문제도 있어서 비축도 적게 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러니··· 아넥시 성문 앞에서 있었던 대폭발이 성전군이 보유한 화약의 상당량을 태워 버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정말 하늘에 닿을 지경의 폭발이었다고 한다. 나도 정확히 폭발력을 계산할 수는 없지만, 대포 몇 문 용 정도의 화약이 날아간 것은 아니리라 추측된다.

실제로 전투 직후에 식량과 예비 무기를 그렇게 많이 노획했는데, 화약 노획량은 별로 많지도 않았고.

때문에 적의 대포병 사격을 유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어두운 새벽에 진지 축성 작업을 마친 것이고.

방어력이 충실한 포대라면 별 피해 없이 적의 화력을 흡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안타깝게도 적의 포격은 몇 발 없었다. 자신들이 보유한 화력과, 아군의 준비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있다는 이야기겠다.

그렇다고 정말 몇 발 쏘지도 못할 정도로 화약이 부족할 것이다 라는 안일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분명, 적은 몇 차례 일제사격을 하며 치명적인 포격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있을 것이다. 아마도 몇 시간 분량의 비축량은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하겠지.

그러지 않고서는 저렇게 공을 들여 좋은 위치에 포대를 배치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문제는 위치, 정말로 그 위치가 절묘하다는 데 있다.

이번에는 수적으로 우세한 아군이 공격하기 좋은··· 말하자면 적의 ‘주 방어선’은 비탈이 완만한 중앙이다.

여기라면 한번에 4~5개 연대가 한꺼번에 공격을 개시할 수 있을 정도로 넓고, 비탈도 심하지 않으며 지형도 복잡하지 않다.

그리고 적의 포대는 여기를 딱 비스듬한 측면에서 보고 있다.

적 포병의 숙련도에 따라서는, 탁 트인 언덕을 오르던 우리 병사들은 측면에서 쏟아지는 포탄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아군 포병이 도울 수 있는 부분이 극도로 제한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저 비탈이 우리 병사들의 피로 물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안 돼.

절대로.

나는 우리 애들을 그렇게 죽일 수는 없다.

우리 애들은 아마 명령을 내리면 망설임없이 공격개시선에 가서 서겠지. 훈련받은대로 보조를 맞추고, 멋진 군기를 휘날리며 전진하겠지.

결국 전쟁이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이긴다, 라는 중2병 만화같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위험을 맞이하더라도, 좀 더 가치있는 위험을 맞이하게 해야 하니까.

“첼레스티나, 예정대로 포격 시작해줘.”

“네에, 콘도티에레! 포격 개시할게요!”

“잘 부탁해!”

첼레스티나가 대답 대신 멋지게 주먹을 가슴에 부딪히는 경례를 하더니, 마치 사슴처럼 펄쩍펄쩍 뛰며 포대로 달려간다.

명중이 잘 안되고, 각도가 잘 안맞으면 뭐 어때.

우리는 화약이 많다. 아주, 매우 많다.

하루 종일이라도 쏠 수 있을 정도로 많다.

그간의 전쟁에서 노획한 물량도 적지 않고, 그래도 부족하면 우리 ‘성녀님’이 무한한 지갑의 권능으로 산처럼 쌓아 주셨으니까.

“전 포대, 포격 개시!”

“발사!”

펑펑! 뻐버벙!

한 발씩 순차적으로 발사하던 탄착점 관측과는 다르다. 이미 첫 탄착 관측으로 최소한의 오류를 수정한 본사격은 화끈하게 한꺼번에 터져나간다.

무수히 많은 포탄이 적의 살과 뼈를 부술 기세로 허공을 가르고 날아간다.

적진을 화력으로 덮어 버리면 그 중에 몇 발은 맞겠지.

나쁜 녀석들, 블랑독을 빠져 나갈 수 있을 때 안 빠져 나간 대가를 치르게 해 줄 거다.

감히 우리 군대에 맞선 것을 후회할 정도로 포탄을 뒤집어 써 봐라.

포병은 첼레스티나에게 맡겼으니, 나는 뒤로 돌아 천막으로 돌아간다. 천막에는 공격을 준비하는 우리 블랑독 연맹군의 연대장들이 모여있다.

정확히는 ‘보병 연대장’들이다. 이번 전투에서는 아무래도 지형상 기병의 활약이 제한되거나 보조에 그치니까.

아넥시 전투에서는 기병들이 활약해 주었으니, 이번에는 보병의 차례가 왔다는 느낌이다.

[트랑카벨 가문 소속] - 총 6000명

제11 벨모제 보병 연대 - 1200명

제15 델레망드 보병 연대 - 1200명

제16 몽세나 보병 연대 - 1200명

제21 카르카냑 보병 연대 - 1200명

제22 몽세나 보병 연대 - 1200명

[드 누아 가문 소속] - 총 2010명

드 누아 북부 연대 - 930명

드 누아 남부 연대 - 1080명

[용병 연대] - 총 1060명

슈토르히 연대 - 1060명

모두 9천명이 넘는 대군이다.

트랑카벨 영지군 소속의 연대들은 훈련받던 신병들을 받아 완편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이야 블랑독 피난민들과 열의 높은 남부 주민들이 앞을 다투어 지원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방심하면 안된다. 지금은 아직 병력 동원이 잘 이루어지고 있지만, 무한정이라 생각할 수는 없지.

사람의 목숨은 당연히 소중한 것이고, 함부로 생각할 수 없다.

그것과는 별개로 전쟁을 하는 자라면 휘하 병력을 때 되면 보충되는 ‘숫자’로만 판단하면 안되는 것이기도 하고.

여기에 아마도 하루 이틀 내로 아실이 이끄는 별동대가 합류할 예정이다.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와 지빌링엔 연대, 그리고 제51 포르망제 의용보병 연대가 포함되어 있으니 이 또한 3500명에 이르는 대병력이다.

“각 연대에 배정된 위치는 사전에 전달받아 숙지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물론입니다, 콘도티에레!”

대부분이 젊은 편인 연대장들은 매우 자신만만하다. 문자 그대로, 명령이 내려지면 곧바로 쏟아지는 포화 속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겠지.

아··· 슈토르히 연대의 루트비히 녀석은 상당히 툴툴댄 후에 그러겠지만. 잘 하면서 은근히 툴툴대는 녀석이니까.

“콘도티에레, 외람되지만 한가지 요청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제16 연대를 선봉으로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다들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눈치를 보던 때, 제16 연대의 아리위스 드랭쿠 연대장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연대장들 중 최연장자인 이 노 군인은 여울목의 전투에서 전위를 맡아 드라멜른 기사단과 싸워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다만 샹다메리 전투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치열한 구역에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상자도 적어 숙련병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기도 했다.

그러니 선봉을 맡겠다는 의도 자체는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아리위스 경! 새치기는 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저 나이 순 대로 하자 이 말일세!”

“형님만 아니었어도 어휴···.”

왁자지껄 웃음이 터진다. 전투를 앞둔 지휘부지만 분위기는 좋다. 나도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건의는 들어주기 어렵다. 이번에는 말이다.

“아리위스 연대장과 제16 연대의 열의에는 감사를 표하지만, 이번에는 허락할 수 없습니다.”

“크흠, 물론 콘도티에레의 판단을 따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느 연대가 선봉을 맡게 됩니까?”

모든 연대장의 궁금증일 것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한다···. 나도 살짝 놀려주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이번에는 선봉이 없습니다.”

모두들 한 대 맞은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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