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09화 (209/556)

27-7. 신에게 바치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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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익! 히이이익!”

“저쪽! 저쪽에!”

“거기도 이단자들이 있어! 사방이 적이야!”

한 무리의 무장한 사내들이 허둥지둥 도망치고 있었다. 무장도 제각각, 복장도 제각각. 그리고 어딘가 조합이 잘 안 맞는것 같고, 남의 것을 빌려 입은 듯 어룰리지 않는다.

흔해빠진 하급 용병의 모습이다.

투구는 어느 시장에서 중고로, 흉갑은 어느 전투에 참여했을 때 죽은 보병에게서 노획, 장화는 뜨내기 동료와 주사위 놀이로 구한다.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모인 장비들이 통일될 일이 없었다. 게다가 자신에게 잘 맞는지 아닌지 경험해볼 기회도 별로 없었다.

그저 무구 한 벌을 맞춘게 행복할 뿐인 그런 시절인 것이다.

그마저도 다 못 맞춘 자들도 있었고.

여기의 이 병사들이 딱 그렇다.

나이도 스무살 전후, 전투 참여 경험은 많아야 두 번. 그나마도 지방 영주들이 옥신각신하는 소규모 분쟁.

실질적으로 죽고 죽이는 치열한 전투라기 보다는 어디 덤빌 테면 덤벼 보라는 기세 싸움에 가까운 그런 전투였으리라.

“어, 어떡하지? 대장은 어디갔어?”

“그 콧수염 새끼, 아까 혼자 말타고 도망치다가 뒈졌어!”

“뭐? 우, 우리는 어떡하고!”

고향에서는 평범한 청년들이었다.

남들보다 가난하고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냈을 뿐. 특별히 나쁜 짓을 한 적도 없고 그렇게 살게 될 거라 생각도 못했던 자들이다.

끼니조차 걱정해야 하는 가혹한 현실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운 기회와 희망, 그리고 약간의 금화에 혹해 고향을 떠났다.

저 멀리 엘랑키아 남부에서 이단들이 준동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교단에서는 신성한 전쟁을 준비한다는 소문과 함께 말이다.

귀족들은 성전군에 참여하기 위해 병력을 모으는 경우도 있었지만, 혹은 ‘기여’해서 천국의 문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자들도 많았다.

그들은 비용을 대고 용병대를 조직해 법황의 군대에 참여시켰다.

전쟁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귀족들이 비용을 대 편성하는 부대이다보니, 단기간에 많은 병력을 별다른 조건 없이 모집한다.

그렇게 ‘성전군’이 된 이 청년들은 이단을 토벌하고 정의와 신념을 새롭게 세운다는 꿈이 부풀었다.

고된 행군을 이겨내고, 훈련을 참아냈다. 전문적인 정예군의 기준에서 보면 별볼일 없는 기초 훈련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성스러운 전장에 선 그들이 직면한 것은 예상과는 조금 다른 현실이었다.

탕!

“으윽!”

마을에서 약탈한 곡물을 담은 작은 바구니를 여전히 끌어안고 있던 용병이 비명을 지른다.

옆구리에 총탄이 명중해 그대로 주저앉는다. 바구니에서 탈곡을 마친 밀알들이 흙바닥 위에 흩어진다.

“으아아악!”

“어디? 어디지?”

탕! 타탕!

“흐억!”

“도, 도망쳐!”

어디선가 날아오는 총탄에 병사들이 픽픽 쓰러진다.

하지만 어지간한 숙련자의 저격이 아닌 한, 거리는 100미터 안쪽이다. 절대로 숨기지 못하는 발사시의 뿌연 연기까지 포함하면 발사 흔적을 숨기지 못한다.

그런데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급박하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들고 있던 약탈품들을 팽개치고 달린다.

어디로 달리는지도 모른다.

그저 현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절망적인 발버둥에 가깝다.

탕! 타앙!

그리고··· 무의미하다는 점에서도 비슷했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수풀이나 언덕, 혹은 울타리 등 엄폐물에 숨어있던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흐윽! 흐아아악!”

“끄으으으···.”

살아있는 용병은 이제 둘 뿐. 그나마 한명은 허벅지에 총을 맞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울상이 되어 손바닥으로 상처를 막아보려 노력한다. 그러나 피는 작은 개울을 만들 정도로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정말로 운 좋게도 아직도 상처 하나없이 살아남은 용병은 무릎을 꿇는다. 항복의 의사를 표시하려는 동작인지, 그저 다리에 힘이 풀렸기 때문인지는 모른다.

“사··· 살려···.”

모습을 드러낸 트랑카벨의 병사들은 특별히 서두르거나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그저 천천히 다가올 뿐.

장비도 어느정도 통일되어 있고, 몸에 딱 맞게 고정된 각종 장구들이 위압감을 준다.

“살려 주···.”

콰악!

잘 맞지 않아 헐렁헐렁하던 철제 투구가 바닥을 나뒹군다.

둔한 고통이 목덜미를 덮쳤다.

“이 새끼! 이 새끼! 죽어! 죽어어!”

공포로 몸이 굳어버린 성전군 용병을 덮친 것은 트랑카벨 병사들이 아니었다.

집과 재산, 그리고 가족을 잃어버린 나이든 여인.

주름투성이의 손으로 꽉 쥔 농기구로 연거푸 젊은 용병의 몸을 난자한다.

본래 사람을 공격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도구는 아니다. 그래서 베이거나 찔린다기 보다는, 부순다는 표현이 맞게 용병의 몸이 변해간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는지 움찔움찔 움직이는 몸 위로 상처가 늘어나고, 피가 튄다.

“이 놈들! 어째서! 어째서어!”

늙은 여인의 입에서는 울부짖음이,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흐른다.

보다 못한 트랑카벨 병사, 총병 소대장 얀 고티에가 나서서 그녀를 말린다.

“이놈! 이노옴!”

“어머님, 이미 죽었습니다. 그만하시지요··· 손 다치십니다.”

“이, 이놈들이! 이 죽일 놈들이! 우리 남편을!”

“이제 괜찮습니다, 어머님. 저희가 왔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으흐흐흑··· 아이고오···.”

여인의 주름투성이 손에서 농기구가 떨어진다. 어찌나 강하게 잡았던지, 손가락 안쪽이 온통 까져 피가 흘렀다.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목 놓아 울기 시작한다.

주변에 둘러선 둘러선 트랑카벨 병사들의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보이지 않는 적에게 눈알을 부라리는 병사가 있는가 하면, 고향의 어머니가 생각나는지 눈시울을 적시는 병사도 있다.

“자, 우리 일 안 끝났다! 혹시 모르니 주변 경계하고, 절반은 마을 방향 수색한다!”

“알겠습니다!”

“드레소! 마을쪽은 네가 지휘해.”

“예, 소대장님.”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적을 발견하면 어떻게 하라는 지시는 하지 않는다. 항상 포로의 취급과 규정을 강하게 언급하던 콘도티에레의 지시가 생각난다.

허나 이번만은 그게 잘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트랑카벨 영지군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 병사들은 대부분 카르카냑 부근, 혹은 카르카냑 성 내에 사는 평민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이곳, 블랑독 북부에서 벌어지는 약탈과 살인, 방화가 남의 일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얀은 울고있는 여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위로라도 해주고 싶지만, 배불뚝이 흉갑을 입고 사람을 안아봤자 웃긴 꼴이 될 뿐이다.

“어머님, 저희 부대가 곧 마을로 진입합니다. 마을에 혹시 다른 주민들이 있을까요?”

“없어··· 다 죽거나··· 끌려갔어. 이틀 동안 벼락맞을 놈들 말고는 코빼기도 못 봤어···.”

“...알겠습니다. 어머님은 저희가 책임지고 모시겠습니다.”

그때, 늙은 여인이 눈물을 훔치더니 갑자기 눈을 크게 뜬다. 방금 막 생각이 났다는 듯.

“총각! 내 아들 살려주게!”

“아드님이··· 살아있습니까?”

“나흘 전에! 그 놈들이 젊은이들을 모아서는 끌고 갔어! 일꾼을 시킨다 했으니!”

“...이름이 뭔가요?”

“디라드! 디라드 실뱅! 총각이랑 비슷한 나이 또래일 거유! 내 아들 좀 꼭 살려주시게!”

“알겠습니다, 어머님. 제가 꼭, 디라드 실뱅을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얀 고티에는 머리속으로 몇 번이나 그 이름을 반복해서 외운다. 일을 시키려 데려갔다면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비록 소대장이라,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사람을 찾는 일이라면 그도 할 수 있으리라.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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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십시오, 성녀님! 이단자들의 군대가 지척에 도착했습니다!”

커다란 키. 사제복에 덧입은 극도로 실전적인 갑옷. 그 위에 걸친 가죽 앞치마와, 허리춤에 걸린 기괴하고도 소름끼치는 장비들.

무엇보다도 한 번 보면 절대로 잊지 못하는, 심각한 화상으로 절반쯤 녹아내린 듯한 얼굴.

모스탈 요새수도원의 원장.

네부카디 델 카스트로소가 헐떡대며 외쳤다. 그와 그가 이끄는 가면의 기마대, 모스탈 수도회는 방금 전투를 치르고 온 듯 숨가빠보인다.

“이제 갈 때가 되었나요···.”

검은머리의 단아한 외모. 법황청이 공인한 유일한 성녀, 랑시아 아스트로메다는 차분한 얼굴로 하늘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올려다 보았다.

숲 너머에서는 총소리가 여기까지 선명하게 들려왔다. 분명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겠지.

“...우리는 할 일을 했지요.”

“그렇습니다 성녀님! 블랑독은 언제고 정화되어야 할 악마의 소굴입니다!”

“네에.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오히려 우리가 악마로 각인되겠지만 말이죠.”

“못 배운 어리석은 이단자들의 생각입니다. 상관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보다, 떠, 떠나셔야 합니다 성녀님!”

“알겠어요. 모두의 희생을 헛되게 할 수는 없죠. 이제 ‘전투 전’ 우리 역할은 끝났습니다. 다음 역할은 전장에 있겠지요.”

“맞습니다!”

성녀 랑시아는 말을 돌려 전장의 소음을 등진다. 그 뒤를 모스탈 수도회의 강건해보이는 가면 수도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뒤따른다.

마을을 불태우고 약탈한다. 저항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

주신의 지상 의지를 대행하는 교단의 행동이다.

저항하는 자는 주신의 의지에 어긋나는 자로 간주된다.

게다가 블랑독 지역 전체와 모든 주민들은 이단 혐의가 있었다.

따라서 이단 혐의에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소명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오히려 신의 뜻을 거부하는 자들은···.

조사도 심리도 재판도 필요 없이 이단으로 간주된다.

그런 폭압적인 논리가 아직 법황군의 지배하에 있는 블랑독 북동부를 지배하고 있었다.

주신의 사도인 성녀와 수도사들의 손에 의해, ‘주신의 정의’가 집행되던 와중이다.

하지만 그 정의 집행은 안타깝게도 이단자들과 손 잡은 배교 집단, 트랑카벨 가문의 군대에 의해 멈출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쉬운 일이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감히 법황 성하가 파견한 성전군을 두고 싸우지도 않고 손쉽게 승리를 가져가려 한, 이단자들의 우두머리에게 철퇴를 내리기 위해서.

주신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을 그들을 처단한 전장으로 끌어내기 위해서.

기울어가는 전장의 무게추를 반대로 뒤집을, 단 한번의 승리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는 목표는 달성했으니까.

블랑독 북동부에서 정의 집행이 시작된 이후, 미적거리던 적군의 별동대는 엄청난 속도로 북상해왔다.

그리고 일부 순례자들이 엉성하게나마 짜 놓았던 방어선들을 때려 부수고 순식간에 육박해왔다. 설마 이렇게 빨리 움직일 것으로 생각 못한 몇몇 이단심판소가 함락당하기도 했으니까.

그럼 된 것이다. 이미 승리자라도 된 듯, 여유부리던 트랑카벨의 이단 군대를 유인하는데 성공했으니까.

이제 다음은, 전장에서.

성녀 랑시아는 머리속으로 다시 한 번, 사령관 라모리의 지시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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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실 자작님, 적이 물러났습니다. 선봉의 제10 연대가 무사히 적을 갈라놓았습니다! 이제 남은 지역의 소탕전에 들어가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리츠 경.”

후속하는 보병대가 부지런히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아실 트랑카벨이 이끄는 블랑독 연맹군은 본래 천천히 외곽을 돌면서 적의 잔당을 북쪽으로 몰아내고 점령지를 해방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어차피 전략적인 승패는 반 이상 가려졌다. 그렇다면 적을 굳이 전멸시킬 필요 없이, 천천히 블랑독에서 몰아내면 된다 판단한 콘도티에레의 전략이었다.

“적도··· 적도 불리한 싸움은 원치 않아 후퇴를 원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실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트랑카벨 가문의 계승자이자, 전방에서 군을 이끄는 주인공이라 해도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이다.

어쩌면 일부러 진격 속도를 늦춘 자신의 판단이 피해를 크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소년의 마음을 할퀴어 놓은 모양이다.

“저도 전쟁 밥을 10년은 먹어왔습니다! 당연히 퇴로를 마련해주면 알아서 도망치는게 맞습니다. 이 경우는 여기까지 오고도 전투를 포기 못하는 종교쟁이 놈들이 이상한 겁니다!”

커다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언제나 상냥한 모리츠이다. 목소리가 하도 커서 안 그래 보일 수 있으나, 그와 만나보면 누구나 그렇게 느끼리라.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 상냥한 모리츠조차 으르렁대듯 말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콘도티에레의 전략에 제가 방해가 되면 어쩌죠···.”

아실의 어깨가 움츠려 든다.

“아실 자작님!”

모리츠가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쾅 두드린다. 흉갑과 어지간한 사람 머리통만한 크기의 주먹이 부딪히면서 마치 포성과도 같은 요란한 소리가 울린다.

“콘도티에레에게 몰린 끝에 정신이 나간 적을 지금까지 몇 번이나 봤습니다. 평소라면 안 할, 남들이라면 안 할 괴상한 전략을 들고 왔었지요!”

“네···.”

“콘도티에레께서 한 번이라도 졌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그럴리가요! 졌을 리가 없습니다!”

“네, 지금도 그렇습니다!”

모리츠가 이번에는 조금 약하게, 다시 자신의 가슴을 쳤다. 자신이 거짓을 말한다면 이 심장이라도 바치겠다는 듯한 태도로.

“적이 괴상한 짓을 했을 뿐입니다. 그것도 하필이면 콘도티에레의 분노를 불러오는 형태로요!”

“...그렇네요.”

“네! 분명 전장에서 박살이 날 겁니다! 저희는 그걸 조금 도우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다행히도, 아실은 금방 기운을 차렸다. 모리츠와 마주보고 빙긋 웃는다.

이미 늦었고,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고, 계속 생각이 날 것이다.

그렇다면 하다 못해, 복수라도 해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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