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183화 (183/556)

24-25. 제2차 아넥시 방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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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넥시는 원래 작은 도시이다. 주변 지역은 영양가 없는 황무지라 농사짓기에는 영 좋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인근의 척박한 땅에서 소규모 농사를 짓거나 아넥시의 주 산업인 포도주 시장에서 인부로 일했다.

포도주시장이라 해도 개인 상대로 영업하는, 카르카냑의 주점가처럼 흥청망청한 분위기는 아니다. 아넥시는 중간상인들을 위한 포도주 집산지에 가깝다.

그래서 짧은 시간 열리는 매우 짧지만 치열한 경매나 협상이 있을 뿐. 굳이 이 외딴 데다가 황량한 도시에 놀러 오기에는 블랑독에는 다른 즐길 거리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보통 아넥시에 대한 평가는, 여기 들르는 중간 상인들 기준으로도 '재미없는 시골 마을'에 가까웠다. 고대 아란 제국의 흔적인 무너져가는 성벽 따위야 구경거리 축에도 미치지 못했고.

원래 아넥시의 영주도 그다지 활발하거나 살가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나마 농촌 특유의 모두 같은 일을 한다는 사람 간의 유대도 없다 보니 주민들 대부분은 성실하지만 음울한, 어쩐지 화난 구석이 있는 임금 노동자들이 되었다.

때문에 지금처럼, 모든 주민이 한 가지 일을 위해 열성적으로 나서고 마을이 북적거리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게 전쟁을 위해서라는 점은 참 슬픈 일이지만. 하나의 목적과 하나의 믿음을 위해서,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었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포탄이 성벽에 명중했다. 사방으로 파편이 날리고 견디던 힘을 잃은 벽돌 몇 개가 후두둑 무너져 내린다.

"나무통 가져와! 망할 자식들 어지간히 좀 쏘지!"

"끄응, 무겁네... 조금만 더!"

여기저기서 벽돌로 된 성곽을 구성하는 외벽이 내려앉고 있었다. 오밀조밀 돌끼리 딱 맞아 서로 지탱하며 버티던 석재들은 돌 몇 개 깨지거나 빠진다고 갑자기 무너지진 않는다.

하지만 한 구역에 끊임없이 쏟아진 포탄은 '몇 개'를 크게 넘어서는 양의 벽돌을 부수고 있었다. 이게 심해져서 외벽에 크게 구멍이 나면 상대적으로 덜 견고한 성벽 내부 충전물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다행히도, 성전군이 동원한 포대가 소구경의 야포들뿐이었기에 아직 그런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끊임없이 포격이 거듭된다면 갈수록 성벽의 손상은 커질 것이다.

수비군들은 그날을 최대한 늦추고 싶어했지만,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포탄이 쏟아지는 외벽을 수리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무너지고 주저앉은 외벽 일부나, 포탄에 맞아 부서진 성가퀴를 막기 위해 흙을 담은 통과 자루로 임시 처치를 할 뿐이다.

다만 이런 임시방편으로는 개인용 소화기의 총탄이면 모를까, 포탄을 막는 것은 무리이다. 당장은 포탄의 운동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다 해도 큰 구멍이 뚫리면 흙이 밖으로 흘러나가기 때문이다. 빈 껍데기만 남은 나무통이 포탄을 막을 수 있을 턱이 없다.

팍! 파팍!

"앗 시팔!"

"뭐야, 맞았어?"

"크으으윽...."

"으... 징그럽구먼. 내려가서 가시 뽑고 붕대라도 감고 와."

폐기된 술통의 마른 판자가 총탄에 맞아 깨지면서 날카로운 조각이 되어 손등에 고슴도치처럼 박혔다. 치명상은 물론 아니지만, 내버려두면 피가 과도하게 나고 상처가 덧날 위험이 있다.

성벽 위를 보강하는 병사들은 자신들이 노림 받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멀리서 솜씨 좋은 사수가 성가퀴가 부서져 나간 부분을 집중적으로 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아무리 용감한 병사들이라고 해도 반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아넥시 공방전은 기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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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광! 퍼어엉!

탕, 타탕! 타당!

아넥시 공방전은 기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쉴 새 없이 포탄이 성벽을 두드려대는 와중에, 무너져가는 성벽을 조금이라도 지켜보겠다고 쉴 새 없이 통과 자루를 나르는 수비군들이 있다.

그리고 그 용감한 수비군들을 성전군 저격수가 노린다.

다른 성전군의 일반 총병들은 포격이 떨어지는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꺼렸다. 실제로 오발사고가 나서 아군 포탄에 두 명이나 죽었다 보니 지휘관들도 공격을 강요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그것도 느슨한 산개 대형으로 지원사격하는 총병들의 명중률은 형편없었다.

사실상 대부분의 유효 탄은 저격수들이 내고 있다. 물론 이 저격수들을 지휘하는 것은 나브리치오 델 로카라소, 법황청 소속 추기경 보좌주교 페르곤의 동생이었다.

저격수들은 일반 사수보다 조금 먼 거리에서, 수비군이 모습을 드러내는 아주 잠깐을 노려 사격 하고 있었다.

통상적인 화승총 사수는 50미터에서 70미터 거리에서 교전한다. 소위 말하는 명사수라 불리는 자들도, 그 거리 내에서 잘 맞추는 것을 연습하지 더 먼 거리에서 쏘는 것은 생소한 편이다.

나브리치오가 이끄는 저격수들은 대부분 이 ‘명사수’의 범주에 들어가던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잠재 능력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다. 평생 쏴본 적이 없으니, 굳이 비싼 화약을 태우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선발된 이들은, 간단한 훈련을 통해 평소보다 조금 먼 표적을 노리는 것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100미터에서 120미터 정도 거리에서 성벽 위를 노릴 수 있게 되었다.

50 ~ 70 미터와 100 ~ 120 미터의 차이는 사람이 뛰어도 순식간에 주파할 수 있는 상당히 짧은 거리이다. 길어도 70미터, 짧으면 30미터. 평범한 병사도 전력으로 질주하면 10초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화승총 사수에게는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보다도 먼 거리이다. 다소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제 막 사격을 배운 초보 사수에게 100미터 넘는 거리의 표적은 달에 있는 표적이나 다르지 않다.

조준도 힘들고 맞추기는 더더욱 힘들다는 이야기다.

“표적이 움직입니다. 왼쪽··· 왼쪽··· 곧 부서진 부분으로 나와요···.”

“흐음···.”

나브리치오 본인은 잠시 숨을 멈추고 표적을 겨누고 있었다. 총구 위의 가늠쇠가 성가퀴가 무너진 부분과 겹쳐진다. 방아쇠만 당기면, 그 좁은 공간을 납탄이 휘몰아 지나갈 것이다.

그는 자신의 형, 페르곤 보좌주교에게 맹세했다. 항상 성실한 형은 아르누아 루케 추기경을 많이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의 신실한 행동이 결과를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에 크게 충격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브리치오는 이 보잘것없는 요새를 반드시 점령해 보이겠다고, 성벽 위의 적 지휘관들을 모조리 명중시키겠다고 맹세했다. 형은 동생을 믿는지 안 믿는지, 고맙다 말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었다.

따악!

평소보다 약간 탁한 발사음. 화염과 연기를 뿜어낸 나브리치오의 애병이 뒤로 밀리며 총구가 거칠게 튀어 오른다. 충격을 받아낸 어깨와 오른팔이 욱신거린다.

“명중! 명중!”

“확실해?”

“그렇다니까요, 대장. 핏방울 튀는 걸 분명히 봤어요!”

“그래, 잘했다.”

사격을 마친 나브리치오 로부터 우측으로 5미터 정도 떨어진 망가진 바리케이드 뒤에는 그의 ‘관측수’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그다지 좋지는 않은, 싸구려 망원경을 한 손에 들고 헤실헤실 웃고 있다. 비록 싸구려이고 뿌옇게 보일지언정, 성벽 위는 나름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기구였다.

유난히 폭발할 때 연기가 심하게 나오는 흑색 화약을 사용하는 화승총 사수는 사격 직후에 자신의 표적을 볼 수 없다. 연기에 시야에 가려 자신의 성과를 알 수 없기 때문으로, 반드시 대신 봐줄 관측수가 필요하다.

그롬콜리라는 이름의 이 새로운 파트너, 관측수는 제법 똑똑했다. 자신과 나브리치오의 예비용 총을 옮기며, 가끔 시키면 재장전도 꽤 빨랐고, 눈도 좋았으며 무엇보다 말이 잘 통했다.

저격수가 직접 확인하지 못하는 표적의 명중 결과는 반드시 관측수가 확인해줘야 했다. 문제는 서로 다른 표적을 보면서, 같은 표적을 보고 있다고 확신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원래 나브리치오는 자신이 사격통제를 맡고, 소수의 저격수가 팀을 이루어 지정된 표적을 저격하는 특별한 시스템을 도입하려 했다.

사격을 통제해 효율을 높이며, 위협 요소를 먼저 제거해 이쪽의 안전도 도모할 수 있으니까.

문제는 조준 중에 시야가 좁아진 동료 사수들이 도무지 나브리치오의 통제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뭔가 감정이 있어서 일부러 따르지 않는 건지, 그냥 멍청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결국 빠르게 포기했다. 괜히 억지로 가르치려다가 괜히 감정 건드리면 될 협력도 안 되니까.

그 와중에 그나마 똘똘하게 그의 지휘를 따르고 말도 잘 통했던 것이 그롬콜리였다. 생긴 건 주디칼리 상업도시 뒷골목 양아치처럼 생겼으면서, 눈도 좋았고 센스도 있었다.

다만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나머지 사수들은 각자 장기인 거리에 맞춰 지정 장소에 배치해 자유롭게 사격하게 한다. 그리고 나브리치오와 그롬콜리는 짝을 이룬다.

다만 나브리치오가 사수이자 지휘자, 그롬콜리가 관측수이다. 표적을 확인하고 지정하고, 사격까지 모두 나브리치오가 결정한다. 그롬콜리는 필요한 경우 재장전과 표적 명중 여부를 확인한다.

밋밋하고 좌우로 길기만 할 뿐, 표지가 될만한 요소가 잘 없는데다가 적이 자꾸 움직이는 성벽 위가 목표이다.

어지간히 말이 잘 통하지 않으면 누구를 노리고 있는지도 공유가 안 된다. 다행히 그롬콜리는 말귀를 잘 알아들어 도움이 되었다.

나머지 사수들이 자유롭게 사격한다고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들이 적에게 만드는 혼란을 이용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적의 장거리 사수··· 저격수를 끌어내기 위한 미끼가 될 수도 있었다.

방금도 그렇게 성공했다. 오랫동안 이쪽을 살피다가, 상체를 내밀어 총을 겨누는 적을 간발의 차이로 명중시켰다. 조용히 성벽 위를 살피며 뜨겁게 달구어진 총을 장전한다.

“대장, 새 총 드려요?”

“아니, 멀리서 정확하게 쏠 때는 이게 더 좋아.”

총열이 유난히 길고,, 열에 의해 변형되어 장전하기 귀찮을 법도 하지만, 익숙한 나브리치오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눈으로 보지도 않고 능숙하게 장전단계를 이어간다.

“그 검은 옷··· 저거 맞지?”

“어··· 덥수룩한 머리카락 보니까 맞네요! 그 대장! 저놈이 저 성의 성주죠?”

“그건 모르지. 다만 영향력을 끼치는 놈은 분명하다. 부하들 앞에서 저 놈 머리통을 떨궈 주자.”

“네 대장!”

다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지금까지 꽤 자주 전장에 나왔지만, 이렇다 할 대어급 표적은 아직 맞히지 못했었다.

하지만 저격수의 본질은 다른 사수가 노리지 못할 핵심 인사를 노리는 데 있다. 저 여기저기 나타나며 항상 주변에 뭔가를 떠드는 자는 가치 있는 표적이 분명하다. 주변 모두가 그가 떠들 때 집중하니까.

“저번에는 맞춘 줄 알았는데···.”

당시에는 관측수가 없어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음 전투에 멀쩡하게 나타났기에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설령 맞았더라도 치명상은 아니겠지.

그 빚을 지금 갚는다.

“나무통사이··· 보이십니까?”

“음.”

대답이 짧은 것은 무심해서가 아니다. 입을 벌려 말하면 조준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이야말로···.

가늠쇠 위에 덥수룩한 머리 위로 투구를 쓴 얼굴이 나타난다. 멀어서 잘은 보이지 않지만, 체격이 좋아 보이는 남자이다. 확실히, 주변이 그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저건 대박이다.

주의 깊게 기다려, 적의 상체가 노출되기를 기다린다. 머리만 노리는 것은 위험했다. 두 개의 나무통이 만나는 점, 곡선을 이룬 통의 측면 형상 때문에 드러나는 틈이다.

뭔가 떠들며 옆으로 걷는다. 정확히 가늠쇠가 목울대 살짝 아래를 겨눈다. 진짜로 목울대까지 보이는 것은 아니다. 느끼는 것이다.

사격에 백발백중은 없다지만, 이번에는 명중률이 90··· 아니 85퍼센트는 된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 방아쇠를 슬쩍 누른다.

그 자신만을 위해서, 명품 총기 기술자가 무려 여섯 번이나 압력을 조절해준 방아쇠였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장치가 고정된 격철을 풀어준다.

콰아앙!

“이런 시발!”

총구 화염과 뿌연 연기가 눈앞을 가린다. 이상하다. 분명 당긴 것은 화승총 방아쇠인데, 어마어마한 폭음이 들렸다. 욕을 한 것은 그롬콜리였다.

“뭐야? 어떻게 됐어?”

“어떻게고 뭐고 성벽이 작살이 났어요!”

“무슨···.”

그롬콜리의 말대로, 성벽 위는 엄청난 흙먼지에 휩싸여 있었다. 지금까지 명중된 포탄이 냈던 흙먼지와는 비교되지 않는 엄청난 규모이다.

당연히 화승총 한 발로 낼 수 있는 위력이 아니다. 설마··· 자신이 화약통이라도 명중시켰나? 설마, 설령 명중시킨다고 해도 곧바로 폭발에 이르기는 어려웠다. 뭣보다 성벽 위에 화약 통이 왜 있겠나.

“포격! 아군의 포격입니다!”

“아···.”

분명 형에게 들었다. 예전에 이단자들의 습격에 당했던 공성포 중 하나를 간신히 회수해서 수리했다는 이야기다. 조만간 전투에 투입되면 승리가 머지않을 거라며 기뻐하면서 해줬던 이야기인데···.

왜 하필, 그가 확실한 표적을 잡은 순간이란 말인가.

“...일단 철수하자. 이런 난리 통에 적도 다시 모습을 드러내진 않겠지.”

“그, 그런데요 대장··· 할크와 두르망이 죽었는데요···.”

“그걸 왜 이제 말 하는 거야···.”

“저도 지금 봤어요.”

할크와 두르망은 나브리치오의 사격 위치보다 20여 미터 앞에서 성벽을 노리던 두 저격수이다. 벼락치기 훈련을 받은 명사수 중에서 제법 뛰어난 편이었던 부하들이다.

그런데 둘 다 죽었다니··· 누구한테 죽은 거지 대체.

나브리치오가 아까 한 명 쏴 죽였으니, 양측의 저격수 숫자는 적이 -1, 아군이 -2가 됐다.

한숨이 나온다. 1만이 넘는 대군을 이 잡듯이 뒤져 모았던 명사수들이다. 이제와서 또 찾을 수 있을지, 찾더라도 어디까지 적응시킬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우선 돌아가자.”

“네, 대장. 저 망할 놈의 대포가 성벽 때려 부숴서 전투 끝내 버렸으면 좋겠네요!”

“그래··· 망할 놈의 대포지만.”

성을 함락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고, 나브리치오와 형인 페르곤 보좌주교의 목적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그의 호언장담은 물거품이 된다.

싫다고 할 수는 없으나, 어딘가 속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까 그 검은 옷 대장은 어떻게 됐을까요?”

“...글쎄.”

“대장 총이든, 대포알이든 맞고 뒈졌어야 하는데!”

다음 공격에 모습을 드러내는지 확인해보면 되겠지. 만약 살아있다면··· 정말 화가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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