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1. 제2차 아넥시 방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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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광! 펑! 퍼펑!
포구를 떠난 포탄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적진으로 날아간다. 일부는 적진을 넘어가 북 로데브 강물에 떨어졌지만, 나머지는 또 적진 앞이나 내부에 정확하게 떨어졌다.
그런데···.
“코, 콘도티에레! 이상해요오?”
포병대를 지휘하던 첼레스티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에게 말한다. 그녀의 말투에서는 두 가지 감정이 짙게 느껴진다. 당황함과 불신감.
한마디로 자신이 눈으로 본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포탄이 떨어지는데 저따위 잔재주를 부리다니··· 간이 큰 거야 그냥 무모한 거야?
“...원래 저런 놈들이 있어. 용병 밥 좀 많이 먹은 인간인가 보네.”
“네에··· 으음, 계속 포격해도 괜찮을까요?”
“일단은 포격을 계속해. 포탄은 충분히 있지?”
“네에, 화약은 충분히 챙겨오기는 했는데요···.”
첼레스티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포대로 돌아간다.
“저 녀석들 뭐지! 저래도 되는 겁니까?”
“으으음··· 제가 보기에도 이상하기는 하네요. 그래도 콘도티에레께서 계속 쏘라고 하시니까!”
“아, 알겠습니다.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쏴야겠습니다.”
“그래요! 등짝에 포탄을 떨궈주라고요?”
“알겠습니다, 포술장님!”
포병들 역시 첼레스티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이다. 그야··· 저런 꼴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만도 하지.
적의 양 측면에 얇게 배치된 보병부대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있다. 주무기가 장창과 화승총인 보병이 바닥에 엎드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총병은 엎드린 자세에서는 사실상 장전을 할 수 없다. 총알 밀어 넣기야 그렇다 쳐도, 화약 다질 때는 중력의 힘에 의존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애초에 총열이 조금만 길어도 앉은 자세에서도 장전하기 힘들고.
심지어 창병은 제대로 된 밀집 대형을 이루지 못하면 그냥 불편한 무기 든 쓸모없는 병사 하나일 뿐이다. 전투 시작 직전에 얼른 일어나면 된다고? 멀쩡히 선 자세에서도 대열 정돈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아니 설마··· 지금 아군이 기병 없다고 배짱부리는 건가?
“발사!”
퍼퍼퍼펑! 뻐벙!
장전을 마친 첼레스티나의 포병이 다시 한 번 불을 뿜는다. 8문의 포대가 일제히 불을 뿜고 새까만 포탄이 적진을 향해 날아간다.
펑! 투웅!
우리 포수들도 약이 올랐기 때문인지 이번 포격은 상당히 정확했다. 적 대열 바로 근처에 떨어지며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날아간다.
하지만 큰 효과가 없다. 본래 적진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운 없는 적병의 몸을 헤집어 놓고 피와 죽음, 그리고 공포를 뿌려야 했을 포탄은 무의미하게 엎드린 적의 머리 위로 날아갈 뿐이다.
“하아··· 재장전! 곧바로 다음 포격에 들어갑니다!”
첼레스티나가 짜증이 났는지 평소보다 짜증 섞인 말투로 소리를 지른다. 포병들 역시 욕설을 한마디씩 하며 재장전 작업을 이어간다. 게다가 적진 한가운데 있는 부대는···.
“혀, 형님! 적군은 포탄 날아오는 게 보이는 건가요?”
“그럴··· 리가? 그냥 우연이겠지?”
“하지만··· 방금 피한 것으로 보였어요!”
“으으음··· 그, 그냥, 우연일 거야?”
사령부 부근에서 적진을 지켜보고 있던 지빌링엔 연대장의 부관이자 친동생인 스테펜 슈피리가 당황하여 묻는다. 에르만 슈피리는 애써 부정하려 하며 대답한다.
날아오는 포탄을 보고 피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적진 중앙의 부대는 실제로 그러고 있었다. 방금도, 정확히 측면으로 이동하면서 비운 공간 바로 앞에 아군의 포탄이 떨어진 것이다.
“코, 콘도티에레, 설마 적군은 포탄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피한 것입니까?”
에르만 슈피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당황함에 말을 잃었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다.
피 흘리는 흑곰, 지빌링엔 연대는 샹다메리 전투에서 쏟아지는 포격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돌격했던 용맹한 부대이다.
아마 적의 포탄이 자신의 부대에 떨어지고 있어도 이런 표정을 짓지는 않겠지.
“포탄을 보고 피한다기보다는, 포탄이 어디 떨어질지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긴 하네요.”
“설마 그런··· 그게 가능한 것입니까?”
“그런 묘기가 가능한 베테랑 용병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부대의 선두에서 장기자랑 하듯이 보란 듯 피하는 경우는 처음 봅니다.”
내 말을 들은 에르만과 스테펜이 질린 표정으로 내 얼굴을 보다가 다시 적진 쪽을 바라본다. 스테펜은 정말 분하다는 듯, 자신의 흉갑을 주먹으로 쾅 두드리며 외치듯 말한다.
“그런 게 가능할 줄은 몰랐습니다! 크읏··· 역시 저는 아직 연대장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군요!”
“으음, 저건 괜히 적을 도발하기 위한 잔재주 같은 겁니다. 평범한 전투 배치에서 어설프게 포탄 피하려고 시도하다가 전열 무너지면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그, 그렇습니까?”
지금 적은 우리가 기병도 없고, 당장 공격을 시도하지는 않으리라고 보고 여유를 부리는 것이다. 보병과 보병의 싸움에서는 대열 유지가 전부나 다름 없는데 저런 짓을 하는 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지.
“콘도티에레! 보병 공격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저희 지빌링엔 연대는 언제라도 선봉에서 피를 흘릴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에르만이 주먹 쥔 손의 엄지손가락 쪽을 가슴에 가져다 대는 북방식 경례를 하며 말하자, 동생인 스테펜이 황급히 따라 한다. 참 믿음직스러운 형제이다.
“그럼 한가지 해 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네요.”
“옙! 무엇이든 즉시 실행하겠습니다.”
나는 에르만 연대장에게 간단한 설명을 시작했다. 아, 첼레스티나도 불러야겠다. 이번 명령은 포병의 지원도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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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접근합니다! 강에서 먼 쪽, 아군의 좌익 쪽입니다!”
“음, 알겠다.”
정찰병이 보고하고,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다. 적군이 긴 종심으로 우회하여 접근하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녹색 미로, 농장에 접해있는 비탈을 따라서였다.
“드디어 적군이 공격을 시도하는 모양이군. 좌측의 중대장들에게 전달해라. 전투 준비다.”
“알겠습니다! 우측은 현재의 엎드린 자세를 유지합니까?”
“굳이 일어날 필요는 없겠지. 이대로 유지한다.”
“옛, 대장님.”
자프론 푸코데모스, 성전군 사령관 라모리 스텐던 휘하의 보병 연대장은 전령을 파견해 대응 준비를 한다.
오랫동안 전장에서 용병으로 살면서, 일개 창병에서 연대장 지위까지 올랐다. 그러면서 한가지 특수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이쪽을 노린 적 대포의 발사 순간을 볼 수 있다면, 대략 탄착점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 자신과 주변의 소부대에 한정이지만, 절대로 포탄에 맞지는 않을 자신이 있었다.
1천 명 이상의 부하를 지휘하는 연대장이 된 지금은 이 능력을 쓸 일은 많지 않았다. 전투를 앞둔 상황에서 밀집 대형을 풀고 이리저리 포탄을 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쓸만할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 개 대치하며 포격을 주고받는 상황이다.
당장 전투가 벌어지지 않을 상황에서, 신뢰하는 베테랑 중대 병력을 이끌고 일부러 적 포대 앞에 나선다. 그리고 쏟아지는 포탄을 슬쩍슬쩍 피해주는 것이다.
아, 물론 대포의 숫자가 너무 많으면 불가능하다. 그 많은 포구에서 나오는 포탄의 탄착점을 예측하는 것도 힘들뿐더러, 알아도 죄다 피할 재간은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10문 미만의 소규모 포대라면 얼마든지 피할 자신이 있었다.
“자, 우리는 좀 더 전진한다. 좌익 중대들이 백병전을 준비하니까 우리가 버텨야겠지?”
“알겠습니다!”
“전진! 연대장님 착탄 예측만 믿고 갑니다.”
자프론은 베테랑 중대를 이끌고 10미터 정도 전진했다. 양군의 거리로만 따지면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다른 부대와의 위치 격차를 생각하면 상당한 차이이다. 부대 전체에서 한 부대만 불쑥 튀어나와 있는 상황이니까.
그의 베테랑 중대원들은 입으로는 엄살을 떨면서도, 상당히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이런 식으로 적의 포격을 유도하고, 더 나아가 발끈한 적의 공격을 유도하는 것으로 승리한 경험이 많았으니까.
돌격은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이다. 당연히 철저한 준비와 사전 작업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포격이 안 통한다고 발끈해서 뛰쳐나오면··· 그만큼 쉬운 상대가 없다.
이번 적 역시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이기고 있다는 기세까지 탔다. 무모한 돌격을 해 온다면 어떻게 요리해줄까.
적의 공세를 정면으로 받아치는 건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퇴각하기 전, 한 방 먹여주고자 하는데 굳이 힘 싸움에 나설 필요는 없겠지.
그러면 차라리 못 이기는 척, 병력을 슬쩍 빼고 측면을 공격할까? 창병 사각 대형을 갖춘 적을 단시간에 무너뜨리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니까, 반포위를 해서 힘을 빼놓을까?
적군이 점점 가까워져 온다. 멀리서 봐도 체격이 좋은 창병들이 선두에 서 있다. 아마도 정예 병력이겠지. 총격을 집중해 숫자를 줄여놓으면 나중에 다시 맞부딪치게 되었을 때 우위에 설 수 있으리라.
적도 나름 똑똑하게 지휘하고 있다. 정예 병력의 일부만 돌출시켜서 유리한 싸움을 가져갈 생각이겠지.
자프론 푸코데무스의 휘하 용병들도 이번 라모리 총대장의 지시에는 살짝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불리한 상황에 부닥칠까 두려워 다 이긴 전투를 포기하고 병력을 빼 버린 상황 말이다.
뭐, 총대장의 판단을 불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대로 적의 지원군을 상대로 싸웠어도 충분히 이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힘들게 녹색의 미로에서 길을 개척해가며 전진했는데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오던 길을 되짚어 퇴각한 것에 불만인 부하들이 많았다.
아마 이번 싸움은, 라모리 총대장이 퇴각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자신들, 보병들이 힘을 쓸 자리를 마련해 주려는 목적인지도 모른다.
물론 자프론 자신은 그렇게까지 큰 불만은 없었지만, 기회가 되었으니 부하들이 힘껏 날뛸 기회를 주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이었다.
뻐버벙! 퍼엉!
“온다! 온다!”
“적이 쐈어!”
멀리서 들리는 포격음이 전장을 뒤흔든다. 자프론은 즉시 발사 순간의 연기가 피어오른 적 포대를 노려본다. 거기서 쏘아진 포탄을 역추적하여 탄착지점을 찾는 것이다.
남들이 보면 묘기나 다름 없는 이 작업은, 모두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우선 포탄이 발사된 지점을 찾는다.
다음으로 눈에 보이는 포탄이 있는지를 확인한다. 내가 맞을 예정인 포탄은 새카맣게 허공을 가르는 작은 점이 보이게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포탄이 바람을 가르며 나는 소리를 듣는다. 거듭 말하지만, 내가 맞을 예정인 포탄이면 또렷하게 파공음이 들린다.
표현하자니 느긋해 보이지만, 1초도 안되는 시간에 직관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포탄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으읏!”
그런데··· 파악이 안 된다!
우선 눈으로 포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귀에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설마, 적의 포격은 이쪽을 노리지 않는 것인가?
“젠장!”
눈치를 보며 자프론의 지시만 기다리던 베테랑 용병들이 놀란다. 탄착점을 알려주어야 할 그가 갑자기 욕설을 내뱉었기 때문이다.
쿵! 쿠웅!
“으아아악!”
“커헉!”
“아아악! 내 다리! 다리!”
대신 소리는 좌측에서 들려온다. 다가오는 적군을 맞이하기 위해 주섬주섬 일어나 창병 대열을 다시 구성한 좌측에서 말이다.
“뭐야 이 자식들, 어디다 쏜 거야?”
8문의 대표 모두가 막 자리에서 일어난 부대를 노렸다. 지금까지 포격을 피하기 위해 자리에 엎드려 있다가, 접근하는 적 보병을 상대하기 위해 막 일어나서 밀집 대형을 다시 갖춘 부대였다.
당연히 갑작스럽게 부대를 훑고 지나간 8발의 강철 포탄에 끔찍한 피해를 입은 것은 당연했다.
영리한 녀석들이다. 자프론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어찌 보면 당연하고도 합리적인 조합이다. 적군이 엎드려서 포격을 피한다? 그러면 일어나게 하면 되지!
하지만 전투의 혼란 속에는 그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경우가 너무도 많다. 작전 지시가 갈수록 간단하고 명확해지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니까.
게다가 포격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자 발끈해서 튀어나온 적이라면··· 더더욱 그랬어야 했는데.
“적 보병이 멈췄습니다! 아앗, 총병들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타타타탕! 타타탕!
막 8문의 일제사격에 큰 손해를 입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자프론의 좌측 부대에 다음으로 쏟아진 것은 납탄의 세례였다.
당연히 선두 창병에 의한 공격에 대비하고 있던 성전군의 밀집 대형이 속절없이 적의 포격과 이어진 총격에 무너지고 있었다.
“크아아악!”
“총병 앞으로! 총병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된 거야? 모두 침착하라!”
갑작스러운 선제공격에 패닉에 빠지기 시작한 부대는 명령이 잘 통하지 않는다. 장교들조차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와중에, 서로 모순된 명령을 받은 일반 병사들이 무너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