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166화 (166/556)

24-8. 제2차 아넥시 방어전

“사실 저도 몇 번 저격을 당한 것 같기도 합니다! 갑자기 눈앞으로 총알이 지나가거나, 제가 서 있던 성가퀴에 뭐가 박히거나 그렇더군요.”

자신이 미끼가 되겠다 선언한 방어 교회 사제, 요한 린데만 폰 아인푸르트는 그런 폭탄선언을 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스승님께서 저격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 이상하긴 합니다.”

“그렇긴 하구려···.”

제자인 아르옌도, 주민 대표인 루옹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키도 크고, 갑옷 위로 사제용 단망토도 걸쳤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성벽 위를 뛰어다니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수비군을 독전한다.

사제인지는 모르더라도 평범한 병사가 아니라는 것은 장님이라도 알 수 있겠다. 그러니 성벽 아래서 ‘영향력 있는 표적’을 노리던 저격수들은 분명히 알아봤을 것이다.

“저는 주신께서 허락하시기 전까지는 죽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주신께서 거두고자 하신다면 기쁘게 최후를 맞이할 것입니다. 다행히, 아직은 제가 지상에서 쓰일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 요한 사제가 여지껏 큰 상처 없이 무사했던 것은 정말 신의 가호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만, 조금도 쉬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그의 버릇이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라고 나름 상식을 지키는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신앙심이 깊은 편인 아르옌 수사가 속으로 생각했다.

요한은 황당해하며 걱정하는 제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침없이 말을 이어간다.

“저는 상대방 저격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아마 제가 노려진 것이 맞다면, 최소 몇 번은 빗맞힌 경험이 있겠죠.”

그럴 것이다. 요한은 전투가 있는 날이든 아닌 날이든, 하루도 빼놓지 않고 성벽에 올랐다. 항상 민병들을 독려하고, 소홀해지기 쉬운 성벽 길의 뒤편도 빠짐없이 점검했다.

급한 경우 반장을 대신해 전투를 지휘하기도 했다. 물론 인제 와서, 자신들을 돕겠다고 찾아온 외국 출신 사제의 지휘를 거부하는 수비군은 아무도 없었고.

그러니, 저격수 입장에서는 대단히 맞추고 싶은 표적이었음은 분명하겠다.

“저를 무척 명중시키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까지 실패했지요. 그럼 내일은 그 욕망이 더더욱 커지지 않겠습니까?”

“그럴 것 같습니다···.”

“그렇겠구려.”

요한 사제의 말은 논리적으로 틀리지 않다. 뭔가를 얻지 못할수록, 그 욕심은 점점 더 커지게 마련이니까.

“그러니, 저는 내일 투구 위에 하얀 천을 두건처럼 두르고 성벽에 오르겠습니다.”

“하, 하얀 두건을 말씀이십니까? 너무 위험합니다 스승님. 수백 미터 밖에서도 똑똑하게 보일 겁니다.”

“하하하! 아르옌 수사, 그렇기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겠나?”

제자가 말렸으나, 스승은 오히려 껄껄거리며 웃는다.

“어지간히 멀리서도 알아보고 찾아올 테니 말일세. 하지만 나는 주신께서 부르시기 전 까지는 무적이라네! 하하하하!”

“....”

대조적으로 주변 사람들은 모두 걱정된다는 표정이다.

“자, 그럼 내일은 잘 부탁하네, 아르옌 수사. 이 보잘것 없는 주신의 종에게 이끌린 욕심쟁이들을 잘 처리해 주시게나! 아, 참고로 스승의 명령이라네! 순명의 의무를 잊지 말게나.”

“...알겠습니다, 스승님.”

어쩔 수 없었다. 아르옌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순명의 의무로 강요당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르옌은 알고 있었다.

그의 스승, 요한 사제는 방어 교회 출신 중에서도 이름 높은 전략가였다.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럴 리가 없었다.

“그럼 저희 저격대에서도 솜씨 좋은 친구들을 보내겠습니다. 적은 한 명이 아니라지 않습니까?”

“오오, 바트로 경의 명사수들이 도와준다면 그거 감사한 일이지요. 하하하하! 다 같이 힘을 내 봅시다.”

아르옌은, 그리고 요한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어딘가 불안한 표정이었지만 특별한 이의 없이, 계획은 진행되게 되었다.

바로 '평소보다 눈에 띄는 차림의 요한 사제가 시선을 끌고 이를 노리는 적 저격수를 역으로 노린다'라는 다소 주먹구구인 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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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아압!"

"쿠엑!"

아넥시 성벽을 수비하던 민병이 끝에 쇠를 입힌 몽둥이를 세로로 크게 휘둘렀다. 방금 성전군의 병사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 성벽 위로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이다. 터엉! 하는 소리와 함께 위가 둥그스름한 투구의 정수리에 몽둥이가 명중했다.

"크으으윽!"

놀랍게도, 몽둥이에 명중 당한 상대는 잠시 휘청이나 싶더니, 악착같이 사다리를 잡고 달라붙는다. 코에서 방금 터져 나온 걸쭉한 피가 줄줄 흘러 내리면서도, 핏발 선 눈에서는 독기가 빠지지 않는다.

"이 시팔! 뒈져! 뒈지라고!"

"으윽, 크아악!"

당황한데다 약이 오른 수비병은 연거푸 쇠를 씌운 몽둥이를 휘두른다. 퍽, 빠각, 콰직!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아닌 것이 분명한 소리가 들린다. 인간의 몸이 끔찍하게 뒤틀리거나 망가져 가는 소리이다.

그럼에도 사다리에 매달린 성전군 병사는 악착같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투구를 써서 당장 치명상은 막아준다고 쳐도 충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철제 투구를 통하면서 다소 약해지기는 했어도 그 충격이 착용자에게 전해진다.

그 때문에 몽둥이가 휘둘러질 때마다 어딘가에서 피가 터진다. 아까는 코피. 이번에는 이마. 방금은 눈에서. 칠공분혈이라는 표현이 있다면, 거기 가장 어울리는 상태이다.

"이새끼야 좀 죽으라고!"

"잠시 비켜주세요!"

몽둥이를 휘두르던 민병 대신 요한 사제가 나선다. 그가 전투 첫날부터 사용했던 애병, '매우 평범한 손도끼'가 휘둘러진다.

가로로.

쩌적!

도무지 사람 몸에서 나는 소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기괴한 소리가 난다. 방금 전까지 연달아 몽둥이질을 하던 민병도 소름이 끼치는지 어깨를 부르르 떨 정도였다.

악착같이 달라붙어 있던 성전군 병사가 드디어 사다리에서 떨어져 뒤로 나가떨어진다. 마치 늦가을까지 나무에 붙어있다가, 숨이 끊어져 매미처럼. 얼굴로 도끼를 받고도 붙어있던 적병이 그제서야 떨어져 나간다.

허공에 핏방울과 부러진 이빨 조각을 남기면서 말이다.

"아이고 사제님! 고맙습니다! 이 놈들 이상합니다! 소가죽처럼 질겨요!"

"정말 그렇군요! 성전군이 이상한 약물을 사용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약물 말입니까! 하이고오... 주신님 섬기는 데 약물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저어기 델레망드 뒤편의 약쟁이 골목이 아주 법황청이겠소 법황청!"

"하아... 참 교단의 일원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아니 그걸 왜 사제님이 사과하십니까 참. 다음 기어 올라오는 놈은 제가 콧잔등을 깨 놓지요!"

"부탁합니다!"

손도끼에 질척거리며 달라붙은 핏덩이를 털어내면서, 요한은 다음 구역으로 이동한다. 그 뒤를 총을 든 제자 아르옌이 바짝 따른다.

"위험합니다, 스승님."

"전장의 한가운데서 위험하지 않은 이가 어디있겠나, 아르옌 수사."

"그, 그래도 말입니다."

"게다가 원래 낚시를 할 때 떡밥은 팍팍 뿌려야지, 아꼈다가는 아무 효과도 못 본다네!"

낚시는 모르지만, 요한 사제가 앞으로도 자신을 성벽 위에서 마구 노출시키려 한다는 것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총을 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나저나 정말 무겁고 덥구만!"

지금 요한 사제는 평소보다 무거운 투구에, 흉갑을 두 벌이나 입고 있었다. 딱히 본인을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라 사이즈도 애매한 판이니 불편하기 짝이 없으리라.

"스승님, 여기입니다."

"여기가 내가 죽을 자리인가...."

"천벌 받을 소리 하지 마십시오, 스승님."

자신을 생각해주는 제자가 유난히 날이 서 있는 것을 보면서 요한 사제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죽을 자리.

그가 말한 죽을 자리란, 오늘 성벽의 그 위치에 머물면서 적의 저격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럼, 제자인 아르옌 수사와 바트로 저격대에서 파견 온 두 명의 사수가 적을 찾아내고 가능하면 먼저 잡는 것이 작전이다.

물론, 총에 맞을 것을 가정하고 정말 표적처럼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각도를 고려해서 성가퀴에서 살짝 물러난 위치. 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소리를 지르며 시선을 끌 예정이다.

보일듯 말듯, 맞을듯 말듯. 애매한 위치에서 사격을 유도한다.

모두가 머리를 모아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 아넥시 전체에서 요한처럼 돋보이는 표적은 없었다.

“저는 여러분만 믿고 있습니다!”

“반드시 먼저 잡아내겠습니다!”

다행히 화승총은 사거리가 길지 않다. 아무리 대단한 저격수라도, 보이지도 않는 시야 밖에서 맞추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게다가 무겁고 거치적거려 아무도 보지 않는 장소에서 조용히 쏘는 것도 불가능하다.

가뜩이나 불편하고 맞추기 힘들어, 장전 되는 대로 쏴대는 것이 미덕인 무기. 그걸 굳이 안 쏘고 불붙은 화승을 태워가며 기다리는 적을 먼저 찾으면 된다.

성벽으로 살짝 고개만 내밀고 봐도, 공격해오는 적군이 바글바글하고 화약 연기가 자욱하다. 전투의 혼란 통에서 수상한 적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은 당연히 아니다.

그래서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요한 사제가 미끼가 되어 나서는 것이다. 일반 총병과 다른 움직임을 하는 저격수가 높은 가치를 가진 표적을 무리해서 쏘려다 범하는 실수를 유도하는 것이다.

당연히, 적이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진짜로 총에 맞을지도 모른다. 지금 요한 사제를 지켜주는 것은 평소보다 두꺼운 투구와 갑옷밖에 없으니까. 화약 무기 상대로 못 미더운 것은 당연하다.

“제 걱정은 말고, 수상한 자들은 몽땅 쏴 버리면 됩니다!”

제자의 타들어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한은 자신만만하게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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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걱!

“흐어억!”

탁한 소리가 난다. 탄환이 고기를 때리고 뼈를 부수는 익숙하지만 소름끼치는 소리.

성전군 총병 하나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움찔거리더니 앞으로 엎어진다. 잠시 움찔거리더니 숨이 끊어진 듯 굳어버린다. 어디 맞았는지 몰라도 거의 즉사였다.

반쯤 부서진 방패 판을 받침대로 삼아 총기를 얹고 쪼그려 앉아 성벽 위를 노리고 있던 참이었다.

성벽에서 약 100미터 정도 떨어진 장소. 일반적인 사격의 상식 기준으로 다소 먼 거리이다. 비숙련 총병의 경우, 이 정도 거리에서 격발했다가는 선임에게 두들겨 맞아도 할 말이 없는 거리.

“제기랄!”

최근 성전군에 참여한 이방인, 나브리치오 델 로카라소가 욕설을 퍼부었다. 움찔하고 달려나가려다 참는다. 며칠 함께 지내면서 정이 든 것도 있었고, 총에 맞은 상처를 보고 싶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상처를 보아야 확실해진다.

그저 눈 먼 유탄에 맞은 것인가.

아니면 분명히 이쪽의 존재를 알고 노리던 상대 측 저격수의 카운터 사격에 당한 것인가.

하지만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왜냐하면 아무리 벼락치기라지만, 싹수가 보여 선발해 교육했던 부하 저격수 중 벌써 두 명이 사망한 것이다.

시체를 옮기는 하급 병사와 인부들 사이에 섞여 아넥시 성벽에 다가갔던 나브리치오는 자신의 장기로 성을 함락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바로 장거리 저격. 나브리치오는 약 120미터에서 인간 크기의 표적을 50퍼센트 확률로 맞출 수 있다.

명문가에 태어나 대륙을 주유하며 자유롭게 살던 그는, 어느 애꾸눈 노인 화승총 사수의 실력에 매료되었다.

‘7발의 총알로 요새 하나를 함락했다’고 주장하던 주정뱅이 노인.

많은 사람들이 그를 단순한 재주꾼으로 여겼지만, 나브리치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7발로 요새를 함락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에게 술과 돈을 주고 사격술을 배웠다.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함락했다던 요새 공성전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가능하다. 분명히 가능하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욱 큰 확신이 들었다.

“어, 어떻게 하죠 대장?”

저 앞에서, 공격 차례를 기다리던 동료 저격수가 고개를 돌려 나브리치오를 바라본다. 그의 오른 손에는 검은 종이로 돌돌 만 원통 형태의 관이 들려있다. 딱 화승총 사격 거리 정도의 표적을 또렷하게 보기 위한 간단한 장비이다.

“빌어먹을···.”

위험하다. 아직 동료들의 숙련도는 높지 않다. 워낙 싹수있어 보이는, 원래 평범한 총병의 수준은 초월한 녀석들을 모으긴 했지만.

“아쉽지만 철수하자. 적 중에도 솜씨 좋은 놈들이 있는 모양이다.”

이를 갈며, 나브리치오가 말했다. 잔뜩 겁에 질려있던 동료가 얼른 자리를 떠나 그에게 다가왔다. 자신도 당할까 걱정된 모양이다.

머저리 같으니라고, 성벽 위를 관찰하랬더니, 성벽은 보이지도 않는 안전한 곳에 짱박혀 있었던 주제에. 이 녀석은 저격수로 제대로 활동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는 꽤 오랫동안 주디칼리를 돌며, 사격에 자신 있다는 전문가들을 찾아다녔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실력도 키웠다.

대부분은 장거리 사격을 그저 기예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브리치오 델 로카라소는 확신했다.

이건 전쟁을 이길 수 있는 기술이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저격 부대가 필요했다. 정확하고, 침착하며, 대범한.

추기경의 동생, 형에게 빌린 금화로 긁어 모은 ‘성전군 내의 이름난 명사수’들은 아직은 충분히 활약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능성은 보았다.

엘랑키아 촌구석의 늙다리 이단 민병들이 모인 곳이라면서. 별볼일 없는 요새라면서.

어쩐 일인지 적에게는 솜씨 좋은 저격수가 있다. 자신의 의도를 파훼할 정도의.

“자, 철수한다. 오늘은.”

하지만 나브리치오 역시, 모든 카드를 내보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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