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 제2차 아넥시 방어전
###
탕! 타당!
타아앙!
총소리는 아직 띄엄띄엄 들린다. 전투가 아직 격렬하지 않다는 증거이다. 제대로 된 전투에 앞서, 소규모의 전초전이 벌어지는 정도이다. 날마다 포위당한 요새에서 깨어나다 보니,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 수 있었다.
조만간 제대로 전투가 시작되면 달라질 것이다. 보병들이 사다리를 걸기 위해 몰려들고 총병들이 엄호를 위해 사격 대형을 짜기 시작하면 말이다. 그러면 따닥거리는 콩 볶는 듯한 소리로 사방이 가득하게 된다.
방어 교회의 수도사, 아르옌 그로반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이즈가 큰 투구가 자꾸 흘러내려서 단단히 고정한 가죽끈이 닿은 턱이 자꾸 간지러웠다.
같은 방어 교회 소속이자 스승인 요한 린데만 폰 아인푸르트 사제가 신신당부하며 씌워준 투구였다. 갑옷은 몰라도 투구만은 꼭 쓰라고, 전장에서는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했다.
사실 맞는 말이다. 수성전에서는 성벽 너머로 머리를 내미는 경우가 많아서 피격 위험이 더 크다. 게다가 각도상 둥그스름한 투구 표면에 탄환이 튕겨 나갈 가능성도 꽤 높은 편이다. 아무래도 갑주에서 가장 단단한 부분은 흉갑의 정면부와 투구의 이마 부분이니까.
그래도 불편한 것은 불편한 것이다. 정수리에 부드러운 천을 깔아두었는데도 머리뼈가 아프고, 턱이 간질거린다. 최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조심스럽게 전장을 바라본다.
오늘은 전투가 시작되고 딱 10일째가 되는 날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 방어 교회의 두 사람은 '10일 차 농성 성사'를 진행했다.
농성 성사라는 터무니없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는 교단의 정규 성사가 아닌 방어 교회만의 특수한 성사이다.
참고로 이단은 아니다. 주신 교단에서는 교단의 권위를 인정하고, 자신들이 규정한 성사를 수행한다면 신자들의 직업이나 거주지의 특수성에 따라 특수한 성사를 진행하는 것을 인정하니까.
뭐 교단에 대항하는 전쟁을 돕는 것을 소명으로 삼는다니 괘씸한 자들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이단이냐 아니냐 묻는다면 교리상 이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농성 성사는 7일마다, 그리고 10일마다 진행한다. 명목상은 힘든 싸움을 버틸 수 있도록 힘을 내려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난 7일간, 혹은 10일간 벌어진 전투에 대한 반성회 및 연구회에 가깝다.
해당 농성 기간 중 있었던 일을 공유한다.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될 각종 주요 사건들과 사상자 숫자 등을 주신에게 보고하는 한편 따로 기록하는 것이다. 농성전 협력자로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다.
여기서, 특이한 결과가 나타났다.
아넥시 수비군은 성벽의 특정 구간과 거기 수비병력을 '반'으로 나눈다. 1차 방어전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는 좀 더 촘촘하게 편성되어 있엇다. 즉, 수비군 소속의 민병 하나하나가 자기 자리가 있기에, 언제라도 자기 위치로 달려갈 수 있는 것이다.
이 구역을 지키는 책임자가 반장이다. 통상적인 군대의 소대장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데, 중요한 것은 이 반장 중에 사상자가 급격히 늘어났다는 것이다.
'전투 초반... 그러니까 휴전 직전까지는 반장 사상자가 많지 않다네.'
'있다고 해도 성벽을 기어오른 적과 싸우다 다친 부상이네요, 스승님.'
'바로 그렇다네. 하지만, 휴전 이후를 보시게. 벌써 4명이네. 사망이 2명, 중상과 경상이 각각 1명. 모두 총상이네.'
'...그렇습니다. 피격 부위는 세 분이 머리, 중상자 한 분이 어깨.... 이건...."
'아르옌, 자네가 봐도 명백하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적 중에 저격수가 있습니다.'
'그것도 잘 훈련된, 침착한데다 자기 가치를 아주 잘 아는 자가 분명하네. 이거 골치아파졌구만.'
스승인 요한 사제는 평소처럼 빙긋 웃으며 침착하게 말했지만,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저격수는 단순히 총을 잘 쏘고 명중률이 높은 사수가 아니다. 명사수라 해도 총을 쏠 기회는 제한된다. 단 한 발을 쏘더라도 가장 가치 있는 표적을 명중시키는 것이 저격수의 가치이다.
한마디로 저격수는 조준보다 지속적인 투사가 중요하다 생각되는 통상적인 야전의 화승총 사수와는 정 반대의 일을 한다. 이것을 이해하고 전장에 영향을 미치는 저격수는 그만큼 특이하고 이질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이번 경우에는 반장이 저격당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반장이라고 해도 특별히 복장이 다른 것도 아니다. 애초에 장교나 그런 다른 계급이 아니라 민병 중 적당한 사람을 뽑았을 뿐이니까.
그런데 그걸 어떻게든 찾아냈고, 기다리다가 노출되는 타이밍을 맞춰 저격했다. 분명 전투의 흐름을 읽는 눈을 가졌다는 것이겠다.
'게다가 이걸 보면 한 군데에만 있는 것도 아니네. 피격 지점이 성벽 전체에 걸쳐 있다네'
'전장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표적을 노리는 것일까요?'
'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르옌 자신이 묻기는 했지만, 사실 스승이 어떤 대답을 할지는 알고 있었다. 아군 진영이라고 해도, 병력과 각종 장비로 가득한 전장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아마도 한 명이 아닐 가능성이 높겠지.'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저격수에 의한 하급 지휘자 저격은 차츰 수비군의 체질을 약화시키는 것과 같은 일이다. 상급 지휘관을 쓰러뜨린 것 같은 극적인 효과는 물론 없겠지만, 유능한 중견 간부들을 잃은 군대는 천천히 반응이 느려진다.
지휘부와 일선의 명령 전달 체계가 약화하면서, 하나의 군대가 아니라 무장한 병사들의 무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피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지금 아르옌은 조심스럽게 전장을 살피는 것이다.
'부끄럽네만 나는 그다지 좋은 사수가 아니라네! 간신히 탄환이 총구를 벗어나게 할 수는 있지만 그다음은 아무것도 보장을 못 하지! 그래서 자네가 잘 살펴 주었으면 한다네. 아! 혹시라도 미끼가 필요하면 언제라도 이야기 하고.'
아르옌도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이 또한 방어 교회의 길을 따르는 수도사로서 할 일이다. 무엇보다 자신 말고 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수는 좁은 의미의 '저격' 개념을 모르고 있을 테니까.
방어 교회의 성직자들은 실전에 나가기 전에 몇 가지 교육을 받는다. 방어전에 필요한 지식은 워낙 많기 때문에, 한 명이 모두 익히는 것은 무리라 판단하여 각자 전문 분야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아르옌의 장기 과목 중 하나는 저격이었다.
"수도사님, 수고하십니다."
"오늘도 무사하시길!"
적군이 다가온다는 신호에, 성벽 아래에서 쉬고 있던 보충 인원들이 마주 지나가며 인사한다. 다행히도 아직은 다들 기운차다.
"아르옌 수사님."
성벽 길을 따라 이동하던 한 무리의 총병들과 만난다. 최근 대활약 중인 '바트로 저격대' 일행이다. 이들에게는 우선 저격수 대응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는 했다. 이들도 살펴준다고 약속은 했지만, 본질적으로 빠르게 화력 지원을 해야 하는 부대와 저격수는 다르다.
다만 유난히 탁하고 큰 총소리가 들리면 알려달라고 했다.
"잘 부탁하겠습니다, 수사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짧은 인사와 굳은 눈빛을 나누고 지나친다.
"적이 온다! 전투 준비"
"예에엣!"
이제 곧 적군이 접근해 전투가 시작된다. 다소 여유 있게 성벽 안쪽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전장으로, 성가퀴의 최전선으로 움직인다.
성벽 아래를 채우고 사다리를 세우려 몰려드는 적. 그 뒤에 대열을 갖춰 사격을 준비하는 적이 있다. 조만간 성벽을 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적지 않은 사상자가 나오리라.
"우와아아아!"
"여억시 아넥시의 명궁!"
"대박인데!"
갑자기 엄청난 함성이 성벽을 뒤흔든다. 수비군들이 모여있는 곳을 보니, 긴 활을 든 병사가 한 가운데서 부끄러운 표정으로 축하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적 총병 대열에는 큰 대 자로 뻗은 적이 보인다.
아마도 아넥시 수비군 중 궁수가 쏴 날린 화살이 적군에게 명중한 모양이다. 이 거리에서는 철로 된 갑옷이나 투구는 물론이고, 단단하게 굳히거나 여러 겹을 겹친 가죽 갑옷만 해도 뚫기 힘들다.
"내가 봤어! 턱 아래로 빨려 들어가듯 꽂히더라고!"
"이걸 100번만 더 하면 우리는 할 일이 없어지겠네!"
"푸하하하하!"
노출된 목에 정확히 명중하다니, 실력도 실력이지만 어지간히도 운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 럭키 샷으로 수비군의 사기는 많이 올랐다.
"자, 사냥꾼 친구에게 전부 맡길 수는 없지. 모두 위치로!"
"알겠습니다, 반장!"
반장의 외침에 잠시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다시 예리하게 날이 선다.
비록 전문적인 군대는 아니지만 아넥시 수비군은 모두 각오가 된 사람들이다. 나름대로 외부의 지원을 받으며 몇 달 동안이나 준비를 해왔다. 북방에서 여러 전장을 거쳐온 아르옌은 아넥시 수비군이 어중간한 용병 무리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생활 조직'에 기반을 뒀다는 이유가 크다. 군대에 입대하여 조직된 것이 아닌, 오랫동안 이웃에 살면서 자주 인사하고 함께 일하며 음식을 나눠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오히려 그 리더인 반장을 갑자기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은 더 클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예를 보면 적의 '저격수'는 이미 시작된 전투에 슬그머니 끼어들어 온다. 전투 와중 모두가 흥분하여 정신이 없는 와중에, 지휘 중인 반장을 저격했다. 곧 전투가 시작되면, 아마 적 저격수도 움직이기 시작하리라.
자신의 눈과 귀로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아르옌은 자신의 뺨을 철썩 소리가 나게 두드리며 눈을 부릅뜬다.
주신께 맹세코, 찾아내고야 말겠다.
###
아넥시 공방전 10일 째 되는 날의 전투가 끝났다.
이 날, 수비군은 힘든 경험을 했다. 유난히 치열한 전투였고, 많은 피가 흘렀다. 이건 새로이 사다리를 잡은 적군이 전보다 완강하고 격렬히 기어오르려고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공격이 '성벽을 지키는 아넥시 민병을 성가시고 피곤하게 한다'와 '성벽 너머로 끌어내어 총화에 노출시킨다'를 목적으로 한 미적지근한 공격이었다면, 오늘은 달랐다.
같은 종교 기사단이나 무장 수도사회가 분명한 통일된 복장을 한 병력이 사다리를 타고 무섭게 몰려들었다.
"자네가 그 미친놈들 구역에 있었나?"
"뭐냐고 그놈들... 낫으로 목을 쑤셨더니 창대를 붙들고 대롱대롱 매달리는 거야! 목이 뚫려서 피를 질질 흘리면서 말이지!"
"으윽! 진짜 미친 놈들이잖아!"
"아 그렇다니까.... 결국 창대가 부러지면서 떨어졌는데, 진짜 역겨운 놈들이었어!"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과 싸운 이들의 특징이다. 심각한 전투 피로감. 평소와 다른 적, 평소와 다른 반응을 경험해서 그렇다.
"그거 약쟁이들 아녀, 약쟁이?"
"기사단 나으리들이 약을 처먹고 기어 오른다고?"
"뭐 그런 이야기가 전부터 있었어. 두려움과 고통을 못 느낀다나 뭐라나."
"아이고... 약에 취해서 주신 옆에 설 생각인가?"
일부 종교 기사단이 전투 직전 의식에서 실제로 마약성의 연기를 흡입하는 것은 사실이다. 신앙심의 충만, 종교적 열정의 재충전이라는 식으로 포장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약에 취하는 행동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오늘은 세 명이나 저격을 당했습니다...."
완전히 절망한 목소리로, 아르옌 수사가 고개를 푹 숙이고 말한다. 안됐다는 표정으로 스승 요한 사제가 어깨를 두드려주고 있었다.
"힘내게, 아르옌. 그래도 두 명은 살지 않았나! 불행 중 다행일세."
"그래. 우리도 자네에게 너무 큰 짐을 맡겼어. 다시 대응책을 생각해보세나. 그리고 꼭 저격수의 사격 때문은 아닐 수도 있다네."
아넥시 주민 대표 루옹 역시 따뜻한 말로 위로해준다. 적의 저격수가 활동하고 있고, 사상자가 나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투 중, 사상자는 원래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오늘도 여러 명이 아넥시의 성벽을 지키다가 떠나갔으니.
"맞습니다. 꼭 저희를 노린 게 아닐 수도 있지요. 그리고 저희도 도울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옆에서 팔뚝에 붕대를 감으며 말하는 것은 '바트로 저격대'의 지휘관 바트로이다. 이번에는 바로 그가 저격당했던 것이다.
"면목이 없습니다."
아르옌은 고개를 조아린다. 하지만 그의 가슴 속에서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자, 아르옌 수사. 그래도 찾아낸 것이 있다지?"
"예... 스승님. 사실은 분명히 다른 총성을 들었습니다. 평소보다 화약을 잔뜩 채운, 탁하게 빠각 하고 터지는 듯한 총성입니다."
"오오! 성녀님이 이끄셨던 전투 당시 모리츠라는 이름의 명사수가 있었다네! 남들의 배는 되는 거리에서도 백발백중이었지. 그분의 총소리가 분명 '빠캉!'하고 울리는 소리였지."
루옹이 말한다. 그에게는 인생을 바꿨던 사건, 매 순간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다소 미화가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다음에는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믿네, 믿어."
아르옌이 다짐하듯 말하자, 요한 사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제자의 어깨를 두드린다.
"기특한 제자를 돕기 위해, 이번에는 제가 미끼가 되지요."
"스, 스승님?"
스승의 선언에 제자인 아르옌과, 주변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