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 제2차 아넥시 방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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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다음 날이지만, 오늘의 아넥시는 놀랍도록 조용하다.
“자, 하나 둘!”
“으쌰!”
성벽 안쪽에서는 다음 수성전에 사용할 투석용 돌을 만들기 위해 잡석을 부수는 소리 외에는 조용하다.
아무리 화약이 등장하고 총탄이 오가는 전장이 되었지만, 결국 성벽을 돌파하는 것은 인간이다. 따라서 인간을 쓰러뜨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무기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사격 무기가 없는 병사들에게도 무언가 할 일을 준다는 점에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교대로 휴식을 취하는 수비군들은 그늘에서 쉬고 있다. 몇 차례 전투를 겪어본 이들은 누구나 체득하게 되는, ‘잘 수 있을 때 자 둬라’를 실행하는 중이다.
그에 비해서 성벽 바깥쪽에서는 적지 않은 인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성전군 소속의 하급 병사들과 노무자들이 시체를 옮기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휴전일이다.
전쟁도 사람이 하는 것이고, 몇 날 며칠이고 계속해서 전쟁할 수 없다는 이유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지금이 한여름이고 시체가 부패한다는 것이다.
방치하면 각종 벌레가 꼬이고 전염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위생적인 문제도 있다. 하지만 동료들의 시체를 보는 병사들의 멘탈 관리도 아주 중요한 문제다
무엇보다 ‘전장에서 죽으면 아무도 챙겨주지 않고 썩어 문드러져 벌레 밥이 된다.’라는 생각은 사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성전군 측이 먼저 제안했고, 아넥시 수비군이 동의했기에 휴전이 성립되었다.
“솔직히 이대로 방치된 시체가 썩어가는 것이 냄새도 그렇지만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도 썩 좋지는 않았는데 잘 됐구려.”
성벽에 기대어 분주히 일하는 성전군을 보며 아넥시 주민 대표단의 한 명이며, 방어전의 지휘관인 루옹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대표님. 살아서는 서로 적대하며 싸웠지만, 그들이 영면을 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의무이지요.”
방어 교회 소속의 사제, 요한 린데만 폰 아인푸르트가 긍정했다.
그들은 오늘 이른 아침, 성 밖으로 떨어진 아넥시 수비군의 시체를 끌어 올려, 마지막 장례식을 치른 참이다.
원래대로라면 아넥시 성채의 유일한 사제인 요한이 영결성사를 집전하는 게 맞겠으나, 아넥시는 정순파의 도시였다. 이를 잘 아는 요한은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고, 전우의 한 명으로서 장례식에 참여했다.
정순파 교리의 가장 큰 부분이 교단이 정한 성사의 거부였으니까. 대신 정순파는 그들의 종교적 지도자인 완성자가 죽음을 앞둔 이, 혹은 죽은 이의 머리에 손을 대고 함께 기도하는 위령안수의식을 행한다.
“언젠가 해방된 도시에 성녀님이 오실 거요. 그때 묘지에서 위령안수의식을 해주시면, 그 친구들도 편안히 쉴 수 있을 것이오.”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건 만약이오만, 혹시 사제님이 불행한 일을 당한다면 어떻게 해 드려야 하오?”
“네? 하하, 저는 평소에도 수시로 주신께 기도로 안부를 전하고 있으니 특별히 신경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요한은 반은 농담으로 대답했으나, 이는 진심이다. 방어 교회는 교단에 탄압당하는 이들과 함께 싸운다. 그러므로 ‘이단’들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교리도 성사 방식도 그들이 평생 배워온 것과 다를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방어 교회의 일원이 되는 시점에서 결심한다. 이미 이역만리에서 객사하고 제대로 된 영결성사를 치르기는커녕, 무덤조차 찾지 못할 것을 각오하고 서원을 세운다.
교단에 대적한 인물이니, 방어 교회에서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박해받는 이들과 함께 싸워 그들을 구해냈다면, 구해진 자들에 의해 기억될 것이다. 이단이라는 이유로 교단에 의해 박해받을 때, 그 교단의 일원으로서 함께 싸우다 목숨을 잃은 사제가 있었음을 말이다.
“거 참, 사제님은 특이한 분이시구려.”
“제 입장에서 보면 아넥시 여러분도 만만치 않습니다.”
“허허허, 그건 그렇게 보일 수 있겠소. 하지만 우리야 우리 믿음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오. 하지만 사제님네 방어 교회는 남들의 믿음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오?”
“아니요, 저희도 저희의 믿음을 위해 싸웁니다. 하루를 살아가는 규칙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이 박해받아서는 안된다는 믿음 말입니다.”
“허어··· 조금 알 것도 같소. 참 힘든 길을 가고 계시는구려.”
“약간 그런 편입니다. 하하하하!”
기분 좋게 웃던 요한은 잠시 정색하더니, 비밀 이야기가 있다는 듯 정색하고 고개를 슬그머니 들이민다..
“그··· 루옹 대표님, 이것도 만약입니다만··· 혹시 구원군이 제때 오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요한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루옹에게 묻는다.
“그럴 리는 없지. 성녀께서 보낸 지원군은 반드시 도착할 테니까.”
“저도 그럴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약에 말입니다. 전투가 길어지고 참혹해질수록, 수비군들은 지치고 버티기 힘들어질 거니까요.”
이 잘 웃는 사제는 유난히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루옹은 상대의 의도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지휘관은 언제나 의연하고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불리한 물론 동네방네 소문을 내서야 안 되겠지만, 최악의 경우를 준비는 해야 한다. 전세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니 말이다.
“그런 일은 없을 것으로 믿지만···.”
루옹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을 이어간다.
“다소 늦는 일이 생긴다면, 성녀께서 큰 뜻이 있으셔서 그런 것이오. 더 큰 승리,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었겠지. 우리는 모두 아넥시를 지키다 기쁘게 죽을 뿐이오!”
“허어···.”
요한은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을 짓는다.
“사제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오. 각자 준비를 마치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알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고맙소이다, 사제님. 우리도 사제님을 믿고 있소.”
“믿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대표님.”
요한 사제는 기대고 있던 성벽에서 몸을 떼더니, 자신의 무기인 손도끼와 단검을 점검한다. 오늘 시간이 난 김에 새롭게 연마한 손도끼의 날이 유난히 날카롭다.
“그럼 저는 성벽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휴전 중이긴 하지만 혹시라도 못된 생각을 하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수고해주시구려, 사제님.”
실제로 전투가 소강상태인 기간에도 어떻게든 주로 전투가 벌어지는 정면이 아닌 쪽으로 우회해 들어오려는 시도가 끊이지를 않았다.
대부분의 시도는 차단당했지만, 작은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특히 야간에는 언덕을 타고 올라오는 성벽 측면부를 경비하는데 인력이 많이 필요했다.
모든 전투가 그렇겠지만, 공성전은 특히 서로서로 소모시키는 싸움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상대를 소모시키려는 시도조차 이쪽의 소모가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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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 코와 입을 가린 복면을 통해 시체 썩은 내가 심하게 풍겨온다. 어디서 어떻게들 알고 날아왔는지, 새카맣게 날아온 파리들이 지긋지긋하다.
“으, 시발.”
“이 파리들은 다 어디서 온 거야?”
아넥시 성벽 아래에서 시체를 옮기는 성전군 소속의 병사와 노무자들이 투덜대면서 작업 중이다. 시체들을 옮겨 나란히 늘어놓고, 마차가 도착하면 한꺼번에 싣고 진영 너머로 이동한다.
그럼 저녁에 추기경이 집전하는 영결성사 이후 화장할 예정이다. 중요하고도 엄숙한 의식의 일부이지만, 당장 한여름에 썩기 시작한 시체를 수습하는 임무를 맡은 병사들은 죽을 맛이다.
특히나 성문 근처, 대체 무슨 화기에 당한 건지 끔찍하게 신체가 손상된 시체를 수습하는 이들은 혼이 나간 모습이다.
결국 그나마 온전한 사체의 큰 부분은 한꺼번에 옮기고, 잘려나간 부위는 바구니에 옮겨 마차에 같이 싣는다. 더 작게 흩어진 파편은··· 안타깝지만 모두 수습할 수는 없다.
“자, 서두릅시다. 더 시간 끌다가 피부까지 물러 버리면 그건 진짜 끝장난다고요.”
“어휴··· 그러게 빨리 끝냅시다.”
“거기 팔 좀 잡아 주세요.”
“내가 잡을게.”
인부 두 명이 해자 구석에 엎드린 자세로 절명한 사체를 끌어 올린다. 흉갑이 총탄에 관통당한 자국이 있고, 무릎이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다. 아마도 총에 맞아 해자로 굴러떨어지며 다리도 부러진 모양이다.
“후우, 지치네.”
마차를 기다리는 다른 사망자들 옆으로 시체를 옮긴 인부는 다시 성벽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반쯤 걷은 소매로 조심스럽게 이마의 땀을 닦아낸다.
그의 눈이 유난히 날카롭게 빛난다.
성벽의 높이와 재질을 살핀다. 성문을 비롯한 망루들의 위치 관계를 살핀다. 구경하는 수비병들의 위치를 살핀다. 성벽 근처에 꽂혀있는 깃발이 걸린 장대의 높이를 살핀다. 성벽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보이는 성가퀴의 두께를 살핀다.
새로운 사망자를 옮기기 위해 몇 번이나 오가면서 반복해서 머릿속에 넣는다.
“여기 한 명 도와주게!”
“아, 제가 갑니다!”
저쪽에서 누가 외치자, 빠른 걸음으로 다가간다. 빠르지만 규칙적인 발걸음으로. 몇 걸음이나 걸었는지 머릿속으로 기억한다.
“고맙네. 발 쪽 잡아줘.”
“예, 잡았습니다. 들어 올릴까요?”
“자, 하나 둘 셋! 가자!”
더운 시간대지만, 다들 부지런하게 움직인 덕에 아넥시 정면 성벽 앞에 있던 시체들은 빠르게 치워졌다.
마지막으로 성벽 앞에 남은 사망자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관리자들의 명령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여전히 버려진 무기와 핏자국은 여전하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시체들은 모두 치워졌다.
하지만 전투가 다시 시작된다면 다시 성문 앞은 시체로 채워질 것이다.
“자 우리도 돌아가자.”
“어깨 피라고! 고생은 했지만 특별 수당도 받을 테고, 오늘 참여한 사람들은 추기경께서 특식을 내리시기로 했으니까.”
“정말입니까?”
“아 그럼 추기경님이 거짓말하시겠어?”
“오오오오!”
느슨한 대열을 이루어 진영으로 돌아가는 인부들 사이에서 잠깐 웃음이 터져 나온다. 땡볕 아래에서 죽은 사람 몸을 옮겼으니 분위기가 좋긴 힘들다. 이런 미끼라도 없다면 누구나 피하고 싶을 일이었을 테니.
진영에 도착한 인부들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이리저리 흩어진다.
그들 중 한 명, 아까 날카로운 눈으로 성벽을 살피던 남자는 유난히 진영 깊은 곳으로 나아간다. 보다 신분이 높은 이들이 머무는 곳인지, 경비를 서던 병사가 제지한다.
“여긴 귀족 나으리들 계신 곳이야.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
“우욱! 이게 무슨 냄새야!”
“어서 갈 길 가 보라고!”
시체를 치운 그의 몸에서 악취가 나는지 경비병들이 코를 막는다. 투구와 흉갑 정도만 걸쳐도 상당히 잘 무장한 편인 일반 병사와 달리, 경비병들은 잘 무장한 지체 높은 군인들이다.
허벅지와 팔뚝을 덮는 철제 갑옷을 입고 문장이 들어간 겉옷을 걸친 종교 기사단 소속의 병사로 보인다. 성전군의 핵심층이기도 하니까.
“안텔레 델 로카라소 경을 뵈러 왔소.”
“안텔레 경이 누군데? 자네 들어봤나?”
“아니, 나도 처음 듣는군. 아무튼, 귀족 나으리가 시궁창 냄새나는 잡일꾼을 보고 싶어 하시지는 않을 것 같은데.”
경비병들이 거부하자 냄새나는 인부는 한숨을 푹 내쉰다.
“확인이라도 하는 게 낫지 않겠소? 나야 더 기다려도 상관없지만.”
“휴, 바쁜데 말이야. 이름이 뭐라고? 안텔레··· 델 로카라소?”
경비병이 문서를 꺼내 확인한다. 현재 진영지에 주둔하고 있는 귀족의 목록인 모양이다.
“아니··· 델 로카라소라는 성이 아예 안 보이는데?”
“그럼 그렇지! 어디서 약을 팔아!”
“아이고, 코가 떨어져 나가겠네. 얼른 꺼져!”
문서를 확인한 경비병이 화가 나는지 코를 막으며 침을 뱉는다.
“잠깐.”
그 때, 뒤에서 점잖은 목소리가 들린다. 경비병들이 놀라서 뒤를 돌아보자 고위 성직자를 상징하는 붉은 가운을 두른 남자가 서 있다.
“누구··· 아! 페르곤 보좌주교님 아니십니까?”
바로 경비병들이 고개를 숙인다. 보좌주교란, 주신 교단의 최상위 성직자인 주교급을 보좌하는 역할이다.
군사 조직으로 따지면 지휘관을 보좌하며, 때에 따라 제한적인 지휘권을 행사하기도 하는 부관에 해당하는 직책이므로 상당히 높은 신분이다.
게다가 페르곤 보좌주교는 다른 주교도 아닌, 성전군 총책임자 아르누아 추기경을 보좌하는 사람이다. 종교 기사단 소속인 경비병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것도 당연했다.
“소란이 들려 왔소.”
“여, 여기 이 자가 존재하지 않는 귀족을 찾는다 주장하여···.”
“나요.”
“예? 보좌주교님?”
“내가 안텔레 델 로카라소란 말이오. 서품받기 전 이름이오.”
“어? 어··· 넵! 실례가 많았습니다 보좌주교님! 저, 저희는 전달받은 바가 전혀 없어서···.”
“아니, 아니오. 당신들 잘못은 전혀 없소이다.”
보좌주교의 말투에서 불쾌함을 느낀 경비병들이 급히 사죄하자, 오히려 그들을 막는다. 페르곤의 불쾌함은 경비병들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이 녀석이 알면서도 당신들을 골리려 한 것이지.”
‘시체 냄새나는 인부’를 바라보는 보좌주교의 얼굴에 불쾌한 표정이 돌아온다. 정 반대로, 마주 보는 인부의 얼굴에는 이죽대는 듯한 미소가 떠올라 있다.
“...들어가자.”
“예, 안텔레 경.”
“못된 녀석.”
두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막사 사이를 걸어 사라진다. 경비병들은 당황한 얼굴로, 부동자세로 멀어지는 두 사람을 바라본다.
두 사람은 한참을 걸어가, 크고 호화로운 막사 부근에 나란히 서 있는 종자들의 막사 앞에 도착한다.
“괜히 경비병들을 당황스럽게 하지 않았느냐. 언제까지 그렇게 살 생각이냐?”
“저나 형님이나 델 로카라소 집안의 사람이 아닙니까, 안텔레 형님.”
“휴우··· 굳이 성벽 아래까지 가서 성을 살핀 이유가 있느냐.”
“멀리서 보면 멀어서 보이는 것이 있고, 가까이서 보면 가까워서 보이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허어, 나름 도리에는 맞는 말이구나.”
안텔레 경이라 불린 남자, 페르곤 보좌주교는 나무라기는 했으나 진심으로 화가 난 것 같지는 않다. 대신 손가락으로 막사를 가리키며 말한다.
“그건 그렇고 네 몸에서 나는 냄새는 나도 견디기가 힘들구나. 어서 씻고 갈아입도록 해라. 종자들에게 이야기해 둘 터이니”
“예, 형님.”
두 사람은 같이 막사로 들어간다. 간소한 막사에는 별다른 짐은 없다. 옷가지를 비롯한 약간의 개인 물건을 담은 상자와 가방이 있을 뿐.
하지만, 그 상자에 기대어 있는 건 예사로운 물건이 아니었다. 잘 관리되어 녹이나 흠집을 찾아볼 수 없는, 금속 본연의 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두 자루의 화승총이었다.
“네 총은 볼 때마다 느끼지만, 유난히 길구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조만간 네 역할을 의논해 보기로 하겠다.”
“예, 형님.”
“제발 여기 있는 동안은 말썽을 부리지 말아라. 나브리치오 델 로카라소.”
“노력하겠습니다.”
추기경의 보좌주교인 형이 동생을 영 미덥지 못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동생은 장난스럽지만, 애정이 담긴 눈으로 형을 마주 본다. 형은 그저 한숨을 한 번 더 쉴 뿐이다.
“일단은 쉬어라. 목욕물이 준비되면 깨끗하게 씻고.”
“제가 어린앱니까, 형님.”
“어린애가 아니면 어른답게 행동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