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157화 (157/556)

23-6. 트랑카벨 기병 사령부

“다시 가자! 추격기병들, 모두 준비됐나?”

“예엡!”

제31 몽세나 정찰 연대의 추격기병 중대장 엘리스토프는 흥분한 말을 진정시키며 외쳤다. 함께 적진을 돌파해온 부하들이 호전적으로 대답한다.

잠깐 병사들을 살핀다. 대부분 건강해 보인다. 하지만 팔이나 손가락 등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경우도 보인다. 하지만 당장 치료가 필요한 큰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기운이 넘치는 게 믿음직스럽다.

일부러 숫자는 세지 않는다. 분명 사망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애도는 전투가 끝나고 해도 늦지 않는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껴 다음 돌격을 준비해야 한다.

현재 적은 혼란에 빠져있다. 하지만 시간을 준다면 언젠가 혼란에서 벗어날 것이다. 또한 후방에서 접근하는 적의 증원도 잊으면 안 된다. 시간을 준다면 합류하여 수적으로 열세에 빠질 것이다.

“간다! 트랑카벨을 위하여!”

“와아아아아!”

“트랑카벨! 카르카냑!”

엘리스토프와 그를 따르는 소규모 기병 돌격대는 다시 함성을 지르며 돌격한다. 방금 달려올 때와 다르게, 비탈을 올라가는 상황이다. 하지만 역시 산악지형에 적응해온 몽세나 산악마들은 빠르게 비탈을 달려 올라간다.

“돌격!”

“돌겨억!”

다시 한 번 거칠게 휘둘러진 기병들의 무기에서 핏방울이 떨어져 흩어진다. 첫 돌격에서 적병들의 신체에 침입했던 흔적이자, 재돌격 중인 트랑카벨 기병들의 높은 전의의 증거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혼자 돌격하는 것이 아니다.

“으랴아아아아아!”

“돌격! 돌겨억!”

방금 엘리스토프가 돌격해왔던 방향, 반대편에서 후속하는 20기가 사납게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스토프의 전위 돌격대가 말을 돌리는 타이밍에 돌격을 시작했기에, 그들의 돌입이 약간 빠르다.

탕! 타당! 타탕!

“으윽!”

“한데 뭉쳐!”

혼란에 빠진 적 기병들이 대응하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번이 첫 돌격이라 권총이 장전된 후위 돌격대의 사격이 다시 적을 몇 명 쓰러뜨렸다.

병력이 거의 절반 가까이 줄어버린 상황에서 이건 치명적이었다.

“으아아아아!”

“흐윽, 히이익!”

“포위당했습니다! 버틸 수 없습니다!”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전방과 후방의 돌격대가 우왕좌왕하는 적 정찰대에 격돌했다. 10초도 되지 않아 몇 명의 기수가 더 말에서 떨어진다. 15초쯤 지났을 때 끄트머리의 적들이 말 머리를 돌려 도망치기 시작한다.

“흐읍! 도망치지 마! 겁쟁이들아!”

적 지휘관으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원색으로 염색한 깃털이 달린 적은 여전히 살아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엘리스토프의 첫 사격은 빗나갔던 모양이다.

하지만 원래 말 위에서 쏘는 사격은, 특히 돌격하면서 쏘는 사격은 명중률이 극도로 떨어진다.

‘팔을 수평으로 하고 쏘기만 해도 50점, 말의 뒤통수를 쏘지만 않아도 50점 추가입니다! 다들 100점 짜리 사수가 되도록 하지요!’

기마 사격의 교관은 콘도티에레의 신뢰받는 부관 중 하나라는 거한의 남자였다. 다들 모리츠라고 불렀으며,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총을 들고 다녔었다.

당시 교육을 받던 동료들은 모두 웃었지만, 실제로 해 보니 웃을 일이 아니었다. 특히 평소 말을 타는 자세와 사격하는 자세가 완전히 다르다 보니 진땀이 날 정도였다.

‘몇 초 후에 적과 격돌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확하게 못 쏘는 게 당연합니다. 아예 기다렸다가 적 얼굴에 대고 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그래도 맞았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다. 그래도 총으로 못 한 일이 있다면 검으로 하면 그만이다.

다만 엘리스토프가 가까이 접근하기도 전에, 앞뒤로 둘러싼 부하 병사들이 적장을 난도질해 버렸다. 열심히 무기를 휘둘렀으나, 노출된 목덜미와 팔뚝을 마구 찔리고 베인 적은 그대로 핏줄기를 남기고 낙마했다.

그를 쓰러뜨린 시점에서, 주변에 다른 기병은 남지 않았다. 백병전은 1분도 지속되지 않았다. 요행히 포위망에서 벗어난 소수는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운 없는 나머지는 압도적으로 많은 아군에게 둘러싸여 목숨을 잃었다.

적이 극소수만 남으면 몇 명쯤은 포로로 잡아 사령부로 보내면 좋았겠지만···. 기습이라지만 여유가 없이 결사적으로 달려든 싸움이었다. 느긋하게 포로를 잡을 작정으로 싸우라고 할 수는 없었다.

“자 대열을 정돈한다. 소대 별로 인원 파악하고!”

전투의 흥분이 가시지 않아 정신없는 상황이다. 없는 적을 찾아 이리저리 말을 몰던 추격기병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린다. 훈련받은 대로 느슨하나마 작은 규모로 대열을 만들어 간다.

“두 명 당했습니다, 중대장님. 리쇼르와 두제가 당했습니다.”

“첫 돌격에서 사망한 건가···.”

“그래도 큰 승리입니다, 중대장님! 적 스물 이상을 잡았습니다! 스물 셋 아니면 스물 넷 같군요.”

“음, 자네는 괜찮나?”

“스치기만 했습니다. 이 정도야 흔한 일이죠.”

목동 출신인 갈색 피부의 소대장이 별것 아니라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올이 거친 셔츠 소매 위쪽이 조금 찢어져 피로 젖어 있다. 하지만 다행히 움직이는 데 지장은 없어 보였다.

“남은 적이 관망하는 모양입니다. 장전을 시킬까요?”

지금 쓰러뜨린 적은, 적 정찰대 중 선두 절반인 30기이다. 후속하는 나머지 30기는 바로 접근하지 않는다.

대신 근처 고지대에 머물면서 이쪽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마도 기습으로 시작된 기병전이 너무 빨리 끝나서 그런 모양이다.

“모두 장전! 또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모두가 화약 장전을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총구에 화약을 부어 넣고 납탄을 짤막한 권총용 꽂을대로 밀어 넣기 시작한다. 말 위에서의 장전은 안정적인 지상에 비해서 훨씬 어렵다. 좀 더 신경을 쓰지 않으면 불발률도 높아진다.

적과의 거리는 수백 미터에 불과하다. 서로 싸우고자 한다면, 기병끼리는 정말 한달음에 달려올 수도 있는 거리이다. 적을 앞에 두고 장전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이 돌격해오는 만약의 경우 선두 소대가 장전을 포기한 채로 적을 맞이하고, 후위 소대가 장전을 마무리해 화력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모두가 장전에 열중해 꽂을대 자루가 총구와 스치는 사악 사악 소리만 가득한 와중, 적은 움직이지 않는다. 스패너로 바퀴를 돌리는 끼릭거리는 소리로 이어져도 움직이지 않는다.

엘리스토프 자신도 장전을 마쳤다. 계속 적 쪽을 바라보면서 장전하는 바람에 부하들보다 조금 늦어졌지만. 그제야 적은 물러난다.

“적이 물러납니다. 추격할까요?”

“추격은 하지 않는다. 잠시 적 정찰대가 추가로 있는지 감시하고, 본대에 전령을 보내는 게 우선이야.”

“알겠습니다. 여기 위치를 기록하고 전투 결과를 포함해 전령을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게. 나머지는 주인 잃은 말을 모으고 적 중에 혹시 생존자가 있는지 살펴본다!”

“알겠습니다!”

일개 중대장인 엘리스토프 마르크릭이 생각하기에도, 이 지역의 성전군은 특이했다. 서로 이질적인 작은 규모의 군세들이 많이 모여 중구난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가 프리스마라 기병대와 협력해서 적을 기습했던, 항구마을 다비니 근처에서 만났던 적들은 사제복을 생각하게 하는 단정한 복장을 한 종교 기사단과 용병이 뒤섞여 있었다.

또한 지금 콘도티에레가 직접 이끄는 본대가 무너뜨리고 있는 적은 고풍스러운 기사 복장이다. 최근에야 총기를 배운 하급 귀족 출신이지만, 그가 보기에도 하얀 망토는 너무 비효율적으로 보였다.

그런가 하면 방금 교전한 경기병들은 챙이 넓은 검은 모자나, 유난히 폭이 넓은 벨트 버클 등으로 잔뜩 멋을 낸 외국 출신 용병으로 보인다.

방금 두 차례 돌격하며 검을 부딪치기는 했지만··· 솔직히 실력을 잘 모르겠다. 워낙 전투가 순식간에 끝났기 때문이다.

마음같아서는 순식간에 섬멸했으니 트랑카벨 추격기병의 실력이 한 수 위라고 하고 싶었지만···.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었다.

반대의 경우, 즉 아군이 기습당하는 쪽이었다면 반대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적을 먼저 발견하고 지형을 이용해 기습할 수 있었던 것이 정말 다행이다.

“전령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쓰러진 적 중에 두 명은 치료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대장님. 응급처치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지휘관처럼 보이던 적에게선 뭔가 나온 게 없나? 명령서나 지도라거나.”

“특별한 것은 없네요. 평범한 전위 정찰이었던 모양입니다.”

“흐음, 콘도티에레께서 좋아하실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분명히 승리했다. 적을 패퇴시켰다. 적은 정찰대의 절반 가까이를 잃고 후퇴했지만, 어차피 전술 단계에서 큰 의미가 있는 교전은 아니다.

오히려 적은 나름의 정보를 얻었다. 적을 발견했다. 그 적은 잘 훈련된 경계 병력을 가지고 있다. 규모로 보아 병력의 숫자도 상당해 보인다. 등등 정찰과 교전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기습당해 기세에서 밀린 적이 미련 가지지 않고 후퇴한 것은 나름 영리한 일이다. 그들에게 있어 최악은 정찰대가 완전히 전멸하는 것이다.

그러면 본대로 아무런 정보도 전해지지 못할 테니까. 그게 소규모 전초전에서 이기는 것 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우선은 고지대를 점거하고 적을 감시한다. 2인 1조 교대로 말에서 내려 휴식한다!”

“넵, 중대장님!”

다음 전투는 큰 규모가 될지도 모른다. 그것도 자신들이 그 한가운데 있을지도 모른다. 엘리스토프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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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막하지만 거친 언덕들과, 관목숲 사이의 초원에서 벌어진 전투는 끝나가고 있었다. 물론 트랑카벨 기병대의 완전한 승리였다.

적군, 더켄데일인가 뭔가 하는 기사단은 이제 완전히 붕괴하여 흔적만 남았다. 이 정도 규모의 종교 기사단이 최소한의 질서조차 유지하지 못한 채 무너져 내리는 것은 처음 본 것 같았다.

보통은··· 완고한 광신도들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불리함을 인정 못하고 최후까지 똘똘 뭉쳐서 저항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심지어 자신들을 산산조각 낼 대포를 끌고 와 그들의 코앞에 늘어놓아도 말이다.

군인에게 용맹함은 중요한 덕목이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니까. 용맹과 무모함의 차이는 그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결과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느냐의 차이기도 하다.

전쟁은 사람이 여럿 죽는 불길한 일이다. 승리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어쩔 수 없이 수 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대가로 한다.

하지만 그게 이유도 없이 목숨을 버릴 이유가 되지는 않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으으으··· 으아아아!”

“포위해! 포위해!”

“주신이시여 저에게 힘을! 오오오!”

“미친 자식!”

적 기사가 미친듯이 고함을 지르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제대로 된 검술이나 형태를 가진 공격은 물론 아니다. 그저 이성을 잃고 겁에 질려 허우적대는 것에 불과하다.

아마도 기사의 자랑이었을 깨끗한 하얀 모직 망토는 원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몇 번이나 바닥을 굴렀는지, 시퍼렇게 풀 물이 들어서는 모자이크화 처럼 핏자국이 점점이 뿌려져 있다. 모서리는 너덜너덜해져 넝마나 다름없었다.

“포기하고 무기를 버려!”

“그래, 항복하면 살려준다. 무기를 버려.”

보다 못한 누군가가 외친다. 우리 트랑카벨 영지군 소속의 용기병이다. 장전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화승총을 두 손으로 쥔 병사였다.

“빌어먹을 이단자들! 어떤 사술을 써도 속지 않는다! 오오, 더켄데일의 성자시여, 사악한 목소리에 굴하지 않을 지혜와 믿음을···.”

“완전 정신이 나간 새끼 아니야 이거!”

“세상이 무너지는 날에도 주신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신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말로 아군의 뒤에 악마적 존재가 도사리고 있다고 믿는 건가. 어쩌면, 관목숲 너머의 기병전에서 살아서 도망친 적들이 사악한 마술 운운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입가에 피가 섞인 침을 흘리며, 나이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이는 이국의 청년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나의 주신, 검의 대리인을 보내··· 윽! 그르르륵!”

처절한 기사의 마지막 저항은, 뒤에서 슬그머니 다가간 프리스마라 경기병이 단검으로 목을 그으면서 끝났다. 숙련된 동작으로 정확하게 목의 중요한 동맥들을 끊었고, 기사의 마지막 떨림은 순식간에 멎었다.

“아니 미친 놈 말을 뭘 끝까지 들어주고 있어요?”

“으읏··· 죄송합니다.”

“흐흐흐, 순진한 양반들. 원래 종교에 미친 놈들도 급이 있어요. 마지막 순간에 기도하는 놈들은 그래도 말이 통하는데요, 마지막 순간에 저주하는 놈들은 아예 제정신이 아니라고요.”

“그, 그렇군요.”

척 봐도 경험이 많아 보이는 프리스마라 경기병은 단검의 피를 닦으며 트랑카벨 용기병들에게 가르치듯 말한다.

휴, 생각해보면 나도 저 젊은 용기병들처럼 독하지 못한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소탕전 단계에서 적절히 포위하면 항복할 것으로 생각하긴 했으니 말이다.

“콘도티에레! 전장에 이렇게 가까이 오시면 위험해요오···.”

전령을 만나고 온 첼레스티나가 기겁하여 내 팔을 잡아당겨서는 찰싹 달라붙는다.

“아니 내가 가까이 갔다기 보다는, 적이 이쪽 언덕 아래까지 도망쳐 온 거야.”

“네에? 으으! 그래도 콘도티에레가 다치면 큰일이라구요?”

“알았어 조심할게. 새로 들어온 소식은 있어?”

“네에, 동쪽에서 정찰 기병끼리의 교전에서 아군이 승리했어요! 그리고 우회한 정찰대가 정보를 가지고 귀환했어요. 적군 규모는 4천 명이 넘는 것으로 보인다네요.”

“4천··· 생각보다 숫자가 꽤 많네.”

“네에! 이쪽을 경계하며 천천히 접근하고 있다는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나는 잠시 고민했다. 방금 벌어진 전투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기 때문에, 병사들의 체력이나 화약 등 소모품은 크게 부족하진 않았다.

“우선은 동쪽 지형을 살펴보자!”

“네에, 콘도티에레!”

나는 첼레스티나와 언덕 뒤편으로 내려가 말에 올랐다. 거의 끝난 전투를 뒤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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