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트랑카벨 기병 사령부
###
제31 몽세나 정찰 연대 소속의 중대장 엘리스토프 마르크릭에게 전령이 도착했다. 그는 전장의 북쪽에서 사방에 정찰을 위한 기병들을 배치해 경계를 서고 있던 때였다.
트랑카벨 기병들의 포위망에 완전히 걸려든 더켄데일 기사단이 피투성이가 되어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던 무렵이었다. 멀리서 총성과 포성이 잦아들어 슬슬 전투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전령! 전령! 로베르 드 나뵈프 연대장께서 보내셨습니다!”
“무슨 일인가?”
“동쪽에서 새롭게 적으로 추측되는 군세 등장! 적 정찰대가 접근하고 있으니 여기 대응할 것! 지원이 필요하다면 즉시 후퇴 적의 정찰을 지연시켜라! 이상입니다”
“새로운 적이라고? 알았다! 지원이 필요하면 요청한다고 전해라.”
“옙, 중대장님!”
“아, 그리고 전장은 어떻게 됐나? 남쪽의 기습 공격 말이지.”
“넵, 아군의 대승입니다! 적은 포위되어 완전히 흩어져 사방으로 도주하고 있습니다. 현재 아군이 소탕전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오호! 역시 콘도티에레의 지휘로군.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은. 알려줘서 고맙네.”
엘리스토프는 전령을 돌려보낸 후, 전술 예비대로 남아있던 40명의 기병을 소집했다. 거미줄처럼 배치된 외곽 정찰대는 종전처럼 가동해야 했으므로 소집할 수 있는 병력은 많지 않았다.
적의 정찰대라면 어느 정도일까. 50명··· 정도라면 죽어도 싸워서 이기겠다고 생각해본다.
아니, 하지만 완전히 무장한 중기병이라면 수적으로 호각이라면 상대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 경우 거리를 두고 괴롭히며 정찰을 방해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트랑카벨 추격기병의 강점은 비교적 경쾌한 무장이면서도 권총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서 충격 기병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국 간략화된 갑주와 작은 말, 칼 한 자루라는 무장의 한계로 중무장 기병과의 백병전은 불리하다. 반드시 피하라고 교육받았었다.
전투 중에 적절한 시기에 거리를 둔다면, 재장전하고 돌아오는 것이 두려워서라도 적은 쫓아올 것이다. 그러면 적을 섬멸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전장에서 이탈시키거나, 최악의 경우 붙들어 둘 수는 있었다.
물론 정찰이니까··· 적도 중기병을 보내지는 않았겠지. 일단 적을 확인하고 생각해보자고 마음을 먹으며 말을 몰았다.
“자 너무 서두르지 마라! 능선을 이용해서 반대편에서 보이지 않도록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바닥을 잘 봐라. 풀숲 잘못 디디면 발목 부러진다!”
“예엡!”
카르카냑에서 태어나, 평생을 로데브 강 인근에서 보냈던 엘리스토프 마르크릭은 블랑독 북동부의 거친 지형을 처음 보고 깜짝 놀랐었다.
자신이 평생 살아온 로데브 강 인근의 지형은 다소 건조하기는 해도 저 멀리까지 평탄한 개활지가 이어진다. 물론 농사를 지으면서 인위적으로 지형을 평탄하게 가꾼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말에만 올라도 시야가 훌쩍 넓어지며, 어디서나 마음껏 속도를 올려도 한없이 달릴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초원 한가운데에서 말에 오르면, 저 멀리 우뚝 솟은 거대한 성채 도시며, 산맥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보인다. 그 모습은 막 말 타는 법을 배운 소년에게 언젠가는 저기까지 도달하겠다는 결심을 시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너무 신나서 달리다가 말이 지치면 저녁 늦도록 집에 못 돌아가서 혼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전장인 블랑독 북동부는 그렇지가 않았다.
막 깎아지른 듯한 산이 솟아 있고 숲이 끝없이 펼쳐지고··· 그런 지형은 절대로 아니었다. 평지라면 평지인데 평평하지가 않다!
거칠다.
그 표현이 딱 맞았다. 지표 여기저기에 노출된 바위는 어찌 그리 많은지. 아니, 바위만 놓고 봐도 분명하게 다르다. 카르카냑 부근에서 보이는 바위는 커다랗기는 해도 둥글둥글한 편이니까.
그런데 여기서는 이상하게 일그러지고 울퉁불퉁한 기암괴석들이다. 혹시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크게 다치겠지 싶다.
언덕 역시 높지는 않지만 마치 신이 변덕스러운 손으로 뭉쳐놓은 것처럼 생겼다. 경사는 제각각이고, 그나마도 여기저기 뾰족한 바위가 튀어나와 ‘올라올 테면 올라와 봐라!’라고 도발하는 느낌이다.
그 와중에 사람 허리 높이에서, 사람 키 두 배 정도로 어중간한 크기로 자란 숲이 자리하고 있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나무의 본체가 가늘고, 구불구불하게 자라있다.
그래서 벌목해봤자 땔감 이외로는 쓰기가 힘든 잡목이다. 명확하게 이 지역을 관리하는 영주가 있다면 이렇게 되지 않는다. 수종을 정하고 지역을 정해서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괜히 숲을 관리하는 산림관이 임명되는 것이 아니다. 이 지역의 영주들은 세력이 작고 이권도 분산되어 있다. 그래서 관리가 안되다 보니 더더욱 이렇게 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마음 놓고 말을 달릴 수가 없다. 게다가 될 수 있으면 언덕 저쪽 편에 이쪽의 규모를 노출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선도하는 기병들이 찾아놓은 길로 조심스럽게 말을 몰아야 했다.
한참 바위투성이 능선을 따라 달리던 엘리스토프는 부대를 정지시키고 휘하 소대장과 함께 말에서 내려 언덕을 올랐다.
이쯤에서 한 번 동쪽을 살펴봐야겠다고 판단한 그의 선택은 옳았다. 언덕 너머 두 군데에서 기병이 달리며 만드는 모래 먼지가 눈에 들어왔다.
“20··· 아니 30기는 되어 보이네.”
“그렇습니다, 중대장님.”
엘리스토프는 망원경으로 적을 살핀 후, 소대장에게 넘겼다. 멀리 적을 살핀 소대장 역시 엘리스토프의 판단에 동의했다.
“적은 두 무리로 나눠져 있고, 병력은 대략 30명씩, 총 60명 정도···. 전위와 후위의 거리는 3분 정도? 선제공격하면 이길 수 있을까?”
“3분이면 밥 다 먹고 차까지 마실 수 있는 시간이죠.”
“그건 자네가 너무 빨리 먹는 게 아닌가?”
소대장이 곱슬곱슬하게 기른 수염 아래로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는다. 어이가 없는 비유에 엘리스토프 역시 웃음을 터뜨렸다.
목동 출신이라는 이 소대장은 엘리스토프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다. 햇볕에 탄 검은 피부와 곱슬머리가 특징이었는데, 말을 어찌나 잘 타고 힘이 센지 연대 내에서도 유명할 정도였다.
소떼를 몰며 블랑독 북부도 많이 오간 경험이 있어서, 특히 이번 출전에서는 길잡이로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적이 여기보다 더 앞쪽을 통과할 것 같습니다. 기습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군요.”
“아군이 생각보다 훨씬 멀리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지도?”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하시겠습니까?”
“뭐를 하지? 기습 말인가?”
“예.”
엘리스토프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확실히 지금이라면 언덕 능선 너머에 숨어있다가 적을 덮쳐 이길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길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한다. 어쨌든 적의 숫자는 합치면 이쪽의 1.5배에 이르는 것이다.
처음 지휘관 교육을 마치고, 중대장으로 임관하던 시절 콘도티에레의 강의를 떠올려본다. 굉장히 바쁜 와중에도 지휘관 교육에 굉장히 신경을 쓴다는 것이 느껴졌었다.
실제로 콘도티에레 본인 역시 ‘여러분이 내 손발이 되어주지 않으면 병력이 10만 명이 있어도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었고.
‘기병 끼리의 전투에서는 선제공격이 매우 중요합니다.’
결정했다. 선제공격을 하자.
‘적을 먼저 발견해서, 기습해서 먼저 쏘고 먼저 돌입하면 절반은 이기고 시작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랬었지.
‘여러분은 보병 중심인 아군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필요하면 창이 되어야 하기도 하지요.’
그래, 창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감히 이쪽을 훔쳐보러 오는 ‘적군의 눈’을 찔러 뽑아버리자.
얼마 전, 프리스마라 용병단의 부단장인 제콜라슈와 함께 분견대를 이끌어 적을 기습했을 때도, 완벽한 기습의 승리였다.
능숙하게 적을 농락하는 프리스마라 기병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은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고도 느꼈었다.
이제는 배운 것을 써먹어 봐야 할 때다.
“내가 선두 소대를 이끌 테니, 소대장이 후위 소대를 이끄시게. 그 후는 훈련대로.”
“제가 선봉에 서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이런 일을 뒤에서 구경만 할 수는 없지.”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두 사람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나누며 말로 돌아간다.
적이 목표로 한 지점에 도착하려면 몇 분 남지 않았다. 서두르되, 적에게 들키지 않아야 한다.
###
살짝 언덕 위로 고개를 내밀었지만, 굳이 눈으로 볼 필요도 없었다. 적 기병의 말발굽이 단단한 지면과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가 언덕 너머에서도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은 확실히 이쪽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경계하는 느낌은 전혀 없고 말발굽 소리도 일정하다.
이제 1분. 계획대로 된다면, 행군대형으로 앞뒤로 길게 늘어선 적 기병 대열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 언덕 아래의 아군에게 손짓해서 준비 신호를 보낸다.
이제 30초. 혹시라도 너무 이르면 적이 대비를 할 것이며, 너무 늦으면 그대로 달려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위치만 노출하고 이득을 보지 못하면 최악이다.
이제 15초. 마지막으로 권총을 점검한다. 눈으로 보기에는 이상은 없다.
이제 5초. 목 뒤편이 부르르 떨린다.
바로 지금! 총을 든 오른팔을 높이 치켜든다.
“돌격! 돌격이다!”
“돌겨억!”
숫자는 겨우 스무 명이지만, 우렁차게 고함을 지르며 언덕 능선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다.
“으랴아아아아아!”
“이야아아!”
그대로 언덕 비탈을 달려 내려간다. 적과의 거리는 대략 300여 미터. 요란하게 바위투성이 비탈을 딛으며 키는 작지만, 다리 힘은 어떤 군마에도 뒤지지 않는 몽세나 산악마들이 속도를 올린다.
적은 곧바로 알아챈 것 같지만, 기습은 충분히 효과를 발휘했다. 적의 반응이 일관되지 않다는 것만 해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누군가는 곧바로 멈추고, 누군가는 계속 달려가고 있었기에 대열이 엉망진창이 된다. 몇몇 말이 서로 부딪친다. 놀란 말들이 앞발을 치켜들며 요란하게 울어 젖힌다.
날뛰는 말 위에서는 아무리 능숙한 기병이라도 제대로 싸울 수 없다. 이건 이길 수 있다!
“으랴아아아아!”
100미터.
적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전사다운 고함을 한 번 질러준다. 그리고 권총의 격철을 누른다. 이제 방아쇠만 당기면, 뚜껑이 열리면서 회전하는 쇠바퀴에 마찰한 황철광이 불꽃을 일으키겠지.
50미터.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며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적의 가슴을 노린다.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염색한 화려한 깃털 장식이 달린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다. 지휘관이겠지? 장교겠지?
말이 발을 잘못 디뎠는지 움찔하며 헐떡댄다. 다행히 잘 달려주고 있었다. 조금만 힘내라!
25미터.
타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꽃이 일어난다. 총구에서, 그리고 측면에 노출된 점화구에서 엄청난 화염과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누가 맞았는지는 알 수 없다. 역할을 끝낸 권총을 재빨리 안장의 주머니로 되돌리고, 엄청난 속도로 발검한다. 자신의 왼팔도, 말고삐도, 말의 목덜미도 베지 않고 빠르게 칼을 뽑기 위해 많은 훈련을 했었다.
타탕! 탕! 타다당!
선두에 선 엘리스토프가 방아쇠를 당기자, 뒤따르던 부하들 역시 일제히 총을 쏜다. 아! 저쪽에서 픽픽 쓰러지는 적의 모습이 보인다.
10미터.
“트랑카벨을 위하여!”
검을 치켜들어 앞으로 겨누며 호전적인 고함을 지른다. 그대로 찌를 수도, 내려치거나 크게 휘둘러 올려 벨 수도 있는 모범적인 자세이다.
후웅!
눈앞에서 연기가 확 뿜어져 나오며 귓가에 섬뜩한 바람이 느껴진다. 이건 정말로 위험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공포보다는 ‘이 거리에서 권총을 쏘고 빗나갔어? 넌 뒤졌어 임마!’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역시 전투의 흥분 때문이리라.
하얀 연기가 사라지자, 뒤늦게 칼을 뽑으려 드는 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창백한 얼굴은 땀으로 젖어 있었으며, 공포에 질려 커진 눈동자의 흰자위가 또렷하게 보였다.
쉬익, 빠각!
“끄아아아악!”
칼을 뽑아 막으려 했으나, 칼이 뽑히지 않고 팔만 허공을 갈랐다. 칼이 반쯤 뽑힌 순간 엘리스토프가 검이 손목을 베어 버렸기 때문이다. 말이 달리는 속도가 그대로 공격에 전해졌는지, 엘리스토프의 검은 적병의 손목을 부수기라도 하듯 끊어 버렸다.
“으랴아아아아!”
“트랑카벨! 트랑카벨!”
“흐어억!”
“막아! 시팔, 이 새끼들 뭐야!”
양측 기병이 마구 뒤섞였다.
기습. 선제 사격. 성공적 돌입.
기병전의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성공적인 돌격이었다. 트랑카벨의 추격기병들은 그대로 적의 경계를 부수고 반대로 돌파하기 위해 나선다.
“크허억!”
“이대로 돌파한다!”
선제 총격도 총격이지만 돌격의 기세를 유지한 일격의 위력은 상당하다. 서로 갑옷, 하다못해 두꺼운 가죽옷만 입어도 방어하는 인간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은 쉽지 않다.
그걸 스쳐 지나가며 칼날만 가져다 대도 뼈까지 베이거나 막혀도 충격이 전달되어 낙마하게 되는 것이다.
첫 돌격에 열 명이 넘는 적병이 쓰러졌다. 사격에 죽거나 전투 불능이 된 것을 포함하면 삽시간에 절반에 가까운 피해를 입혔다.
“반전! 반전!”
기세를 타고 그대로 빠져나간 엘리스토프는 검을 치켜들고 말을 돌렸다. 칼끝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돌격은 막 시작했을 뿐이다. 적을 갈가리 찢어놓아야 한다는 것은 프리스마라 기병들이 실전으로 보여줬다.
콘도티에레가 알려준 것은 어찌 무사히 실행하는데 성공했다. 이제는 프리스마라에게 배운 걸 실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