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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화약의 용병대장-152화 (152/556)

23-1. 트랑카벨 기병 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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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으로는 강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작은 숲이 있다.

하늘은 맑고 블랑독의 여름 햇살은 다소 뜨겁지만 바람은 선선하다. 딱 기분 좋아질 정도로 건조하기 때문에 천막을 치고 그늘에서 가만히 쉬고 있으면 땀이 날 정도는 아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기후, 완벽한 날씨.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어버릴 것 같다.

···빌어먹을 전쟁만 아니었다면 그래도 되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아직 낮잠을 자기에는 일이 너무 많고, 적도 너무 많다. 첼레스티나가 데워 준 차를 마시며 짧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 서류로 달려든다.

그나마 일의 절반 이상을 첼레스티나와 아쥬흐가 나눠서 해주고 있으니 최근에는 여유가 있는 편이다.

벨모제에서 열심히 재편과 보충 중인 각 연대에서 올라오는 정례 보고만 해도 막대한데, 이걸 두 사람이 처리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법황이 보낸 성전군이 블랑독 북동부를 다 석권하고 거침없이 진격해오고 있다. 적이 코 앞이다. 어쩌면 지금쯤, 이미 아넥시 전투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군의 대부분은 아직 안전한 후방에서 보급과 재편성에 열중하고 있다. 막강한 적이 코 앞이기에 만전의 상태로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재편성과 보급 과정을 거치면, 트랑카벨 정규 연대들은 물론 동맹군이나 용병 연대들의 전투력 역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그래도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말이다.

“콘도티에레, 명령하신 대로 프리스마라 연대’들’의 신규 조직도를 만들었어요.”

“그래 고마워. 으으음···.”

첼레스티나가 넘겨준 종이를 살핀다. 대규모 기마 용병대인 프리스마라는 현재 인원이 무려 3600명이다. 기병 3600기라니··· 그 숫자가 가져다 주는 든든함과 말로 표현 못할 강력함이 분명히 있기는 하다.

그래도 이대로는 득보다 실이 많으리라 생각해 트랑카벨 영지군의 30번대 연대 번호를 제공해 3개 연대로 재편했다. 로베르 드 나뵈프 연대장이 이끄는 제31 몽세나 정찰 연대와 가장 유사한 포지션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 35 프리스마라 중기병 연대 - 820명

제 36 프리스마라 경기병 연대 - 1370명

제 37 프리스마라 경기병 연대 - 1360명

이 기회에 프리스마라의 정확한 인원도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프리스마라 단장인 코바르 리메니에디 자신도 정확한 부하들의 숫자를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아니 원래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용병대가 꽤 많은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말이지. 그래서 정확히 명부를 만드느라 시간을 꽤 오래 잡아먹었다.

게다가 중기병과 경기병을 나누는 것도 조금 애매했다. 아니 사실 전혀 구분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거지로 구분을 한 현재도 그렇다. 말이 중기병, 경기병이지 양쪽 모두가 어느 정도의 특성은 공유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딱히 분리하지 않고 한데 모인 용병단이었으니까.

양쪽 모두 트랑카벨 정규 총기병의 육중한 큐레이스 갑주와 비교하면 가볍게 무장하고 있다. 오죽하면 블랑독에 도착하자마자 트랑카벨 가문에서 투구와 흉갑을 싸게 공급하면서 갑주 좀 걸치라고 했겠나.

또한 양쪽 모두 적절한 호전성과 적극성을 가진 충격 기병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검, 도끼, 망치, 창 등등 온갖 근접 무기에 총, 활등 잡다한 무기들을 가지고 말이다. 우선 적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근접전으로 쓸어버리는 전술에 특화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다소 애매하지만, 복합적인 기준을 만들어 중기병과 경기병을 분리했다.

말의 크기. 기병창의 소유 여부. 권총 소유 여부. 금속 갑옷과 투구 보유 여부.

그래도 애매하다면 프리스마라 용병단에서 공인하는 전투 숙련도까지.

중기병 연대 쪽이 좀 더 많은 장비를 요구하는 대신 계약 임금 역시 조금 높았기에 중기병대에 속하고 싶어 하는 프리스마라 단원들이 많았다.

결국 상당히 시간이 걸리는 선별작업 끝에 지금과 같은 편성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나쁜 비율은 아니라 만족스러웠다.

간발의 차이로 중기병 판정에 실패, 경기병대에 속하게 된 단원들의 불만이 좀 있었다. 향후 재평가를 통해 중기병 비율을 늘리기로 약속했더니 무마되었다. 어휴 힘든 일이었어.

어쨌든 칼로 자르듯 딱 나눌 수는 없었다만 정리되었다. 프리스마라 중기병은 단단한 적의 방어를 격파하는 충격 병력의 역할을 주로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경기병은 장거리 정찰과 적진 우회 임무를 주로 하게 될 것이다. 어느 쪽이든 믿음직한 기병이 되리라.

“이얏호!”

“히야아아!”

밖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으음 무슨 소리지?”

“네에, 아··· 중대 편성이 끝난 프리스마라 용병들이 무슨 승마술 대회를 한다고 했어요, 콘도티에레! 시끄러우시면 중지시킬까요?”

“아냐 아냐, 우리도 잠시 쉴 겸 구경하러 갈까?”

“네에, 좋아요, 콘도티에레!”

구경이라고 해 봤자, 사령부 역할을 하는 천막을 나서 울타리를 하나 지났을 뿐이지만. 십여 명의 가벼운 복장을 한 기병들이 종횡으로 달리며 괴상한 승마술을 선보이고 있다.

말 위에 두 발로 서서 타기, 안장에 반대로 앉아서 타기, 나란히 달리는 말에서 말로 옮겨 타기, 말 위에서 점프 뛰기, 달리는 말의 배 아래로 내려가서 반대편으로 나오기, 달리는 말에 펄쩍 뛰어서 올라타기 등등.

아니 위험하게 이런 짓을 왜 하는 거야! 저러다 다치면 그게 비전투 피해고 병력 -1인데... 라고 원론적인 꼰대 생각을 하다가도, 물구나무 서서 말을 조종하거나 말 두 마리를 동시에 조종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나도 모르게 감탄을 하게 된다.

으음... 역시 슈토르히에는 기병 병과가 없다는 한계가 있어서 그런지, 무심코 기병 운용에는 로망 같은 것을 가지게 되고 만다. 아니 뭐 사실 기병에 로망 없는 놈이 어딨어 진짜 남자라면 당연한 거지.

"와아아아아!"

"장난 아닌데? 아가씨 뭐야!"

갑자기 엄청난 함성소리가 들려온다. 아가씨라니? 설마 첼레스티나... 는 내 옆에서 어느새 구경하러 온 아쥬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그럼 누구지 대체?

"앗, 아쥬흐 양! 저, 저거! 의무대의 간호사님 아닌가요?"

"어? 흐음... 맞네요."

아쥬흐가 평소답지 않게 놀란 표정을 짓는다.

정말이었다. 통이 좁은 승마 바지를 입은 검은 머리의 아가씨였다. 간호사라는 것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앞치마는 벗었지만 하얀 머릿수건은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멋졌어 간호사 아가씨!"

"다음에 다치면 치료해줄거지?"

"우리 연대 전담으로 옮기면 어때?"

정말 땅이 흔들리는 것은 아닌가 싶어질 정도의 환호 속에, 말 위에서 방향 바꾸기와 말의 배 아래 쪽으로 돌아 반대편으로 올라오기를 무사히 선보인 기마 간호사는 활짝 웃으며 양손을 흔들어보인다.

...그러더니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아쥬흐를 발견하고 갑자기 얼어 붙는다. 신나서 날뛰며 적진을 돌파했는데, 눈앞에 가지런히 늘어선 총구의 끝을 본 기사의 표정이 저럴까.

"아, 아쥬흐 의무대장님...."

"리타 드 리스바쥬 간호사. 훌륭한 승마술이네요. 어디서 배웠나요?"

"그게요, 어릴 때부터 카르카냑에서 공부하는 오라버니 보러 말을 타고 다녔었는데... 거리가 좀 멀었습니다."

"거리가 멀어요?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그래서... 그냥 타는 건 심심해서 말 위에서 놀 수 있는 거리를 찾다 보니...."

옆에서 풉 하고 첼레스티나가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쥬흐도 어쩐지 입가가 슬쩍 일그러지며 턱이 떨리는 것을 보니 웃음을 참는 모양이다.

"흠흠, 아무튼 대단한 재능이네요. 기병대로 이적하고 싶으신 건가요?"

"아뇨, 아녜요! 그... 죄송합니다아...."

내가 보기에는 뭐 사과까지 할 일인가 싶다가도, 간호사가 저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누가 고쳐주나 싶기는 하네.

"리타 간호사가 크게 잘못한 일은 없지만, 우리는 다른 분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리타라는 이름의 간호사는 선선히 고개를 숙였고, 아쥬흐도 크게 나무라지는 않는 모양새이다.

아니 그런데... 리스바쥬라니, 어디서 들어봤는데. 리스바쥬가 누구더라....

아, 설마... 그웬넬 드 리스바쥬 중대장의 가족인가. 다브농 방앗간에서 우리 용기병들을 누구보다 용감하게 이끌고 전사했던 그 사람이다. 트랑카벨 영지군에서 첫 중대장 전사자이기도 했다.

"리타 간호사는 혹시 그웬넬 드 리스바쥬 경의 가족인가요?"

"네! 저희 오빠예요! 콘도티에레시죠? 오빠가 항상 편지에서 언급하셨었어요! 이렇게 가까이에서 뵙는 것은 처음이네요! 설마, 지금까지 기억해주시다니!"

간호사 소녀의 열광적인 반응은 나조차도 놀라게 할 정도였다. 아닌가 나는 꽤 자주 놀라니까... 아쥬흐조차도 놀라게 할 정도였다. 정작 리타 자신도 놀랐는지 헉 하는 표정을 짓는다.

"...무례를 사과드립니다, 콘도티에레. 돌아간지 오래된 오라버니를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오라버니께서도 기뻐하실 거예요. 리타 드 리스바쥬는 부족한 재주나마 트랑카벨의 충실한 가신으로서, 앞으로도 군문의 일원으로 콘도티에레를 섬기고자 합니다."

"...그웬넬 드 리스바쥬 경은 훌륭하고 명예로운 기사이며 지휘관이었습니다. 트랑카벨 영지군은 그 이름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웬넬 경이 구출하신 수백 명의 무고한 블랑독의 백성들도 말입니다."

묘하게 기사의 충성 맹세가 생각나는 인사였다. 생각해보면 엘랑키아의 귀족 가문이란 기본적으로 군사 귀족들이다. 검과 창을 들어 자신과 주군의 영토를 지키며 싸워왔던 이들의 후손이다.

그러니 명예롭고 공정한 군인이었던 그웬넬 경을 키워낸 가문의 영애가 그런 영향을 받고 자라난 것은 당연할 것이다. ...놀라운 승마 기술은 다소 의외였지만.

잠시 눈이 마주쳤다. 오라버니 그웬넬 중대장이 생각났는지 슬픔이 섞였으나 강인함이 엿보이는 눈이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실례 많았습니다! 아쥬흐 의무대장님, 콘도티에레!"

그녀는 허리를 숙여 인사하더니 자신의 말을 챙겨서는 후다닥 멀어져갔다.

"리타 간호사는 어떤 분인가요?"

"나이는 어리지만, 무척 똑똑하고 열성적인 간호사예요. 샹다메리에서는 포탄이 떨어지는 샹다메리 언덕 위에 지원해서 올라간 간호사 중 하나였으니까요. ...그리고 오늘 보니 말도 잘 타네요."

"친오빠를 전장에서 잃고도... 정말 대단하네요."

"강인한 트랑카벨의 백성이니까요."

잠시 잊고 있었다. 나 같은 용병이야 멀리서 돈에 팔려온 이방인들이다. 하지만 트랑카벨 영지군의 병사들은 조상 대대로 블랑독에 살아왔고, 이후로도 자신들이 지켜낸 땅에서 살아갈 이들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종군하는 경우도 있었고, 형제가 함께 종군하는 경우는 더욱 많았다. 지금은 용감했던 오빠의 빈자리를 자신이 채우려 노력하는 용감한 간호사 소녀도 알게 되었다.

내가 지휘하는 부대의 병사 하나하나는 그저 부대의 스테이터스, 기록에 올라가는 숫자가 아니다.

트랑카벨 가문에 대한 충성과 의무 때문일 수도 있겠고, 블랑독 연맹의 이상에 동의해서일 수도 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일 수도, 군문에서 출세하고자 하는 야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명확한 공통점은, 그들은 모두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알고는 있지만, 가끔은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 전투 지도 위의 표식으로 인지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모순이고 위선이지만, 나는 전쟁이 싫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기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행하고 무엇보다 빨리 끝내려고 한다.

그 때, 멀리서 말발굽소리와 함께 전령을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령! 전령!"

"부관 첼레스티나입니다. 어디에서 오셨나요?"

"아넥시 부근 광역 정찰대에서 왔습니다! 아넥시 포위가 시작됐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이미 공격이 시작되었나?"

"제가 출발할 때는 아직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공격이 시작될 것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렇군... 지금쯤은 시작됐겠나. 수고했네!"

나는 괜히 고개를 꺾으며 뚜둑 소리를 냈다. 법황군의 전투도 슬슬 시작되겠구나. 국왕군과의 전투보다 좀 더 질척거리고 피가 많이 흐르는 싸움이 될까봐 좀 걱정되기는 한다.

"아넥시를 구하러... 가지 않아도 되나요?"

아쥬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물론 저는 언제 어느 때라도 콘도티에레 에트의 판단을 신뢰해요. 하지만 역시 문외한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걱정이 되긴 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쥬흐 양. 아넥시는 제가 반드시 지킬 겁니다."

아넥시는 우리가 한 번 이겼던 도시이자, 본인은 부담스러워할지 몰라도 아쥬흐의 성녀 전설이 시작된 도시다. 적이 무슨 생각으로 공격하는지는 몰라도, 우리 쪽도 절대로 빼앗길 수 없는 곳이지.

"첼레스티나, 각 연대에 출격 준비를 전달해줘."

"네에, 콘도티에레. 아직 도착하지 않은 연대들은요오?"

"서두르지는 말되, 북상하며 추가적인 명령에 따를 것!"

"네에 콘도티에레! 틀림없이 전할게요!"

현재 트랑카벨 기병 사령부 소속의 기병 숫자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내가 그동안 지휘해온 어떤 군대보다도 많은 숫자이다.

그러니까, 전에는 못 했던 일들을 해 볼 수 있는 거지.

"아쥬흐 양, 함께 가시겠습니까?"

"물론이에요. 의무대장인걸요."

그녀가 웃자, 나도 괜히 마주 보며 웃는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지 여쭤봐도 되나요?"

"적군이 감히 우리 군 앞에서 병력을 분산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

그리고 성녀의 도시를 지켜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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