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148화 (148/556)

22-5. 가장 신성한 전초전

“정말 멋진 기습 전술이었습니다.”

“다 트랑카벨 여러분들이 잘 협조해 주셔서 그랬지요. 귀하의 가문에서 총을 나눠주신 것도 있고요.”

굳게 잡았던 손을 놓고 엘리스토프가 칭찬하자, 제콜라슈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마르고 화려한 외형 때문에 그런지, 까다롭고 예민한 성격으로 보였지만 그는 아주 무던하고 털털한 성격이었다.

프리스마라 기병대와 처음 합류하자, 트랑카벨의 콘도티에레가 가장 먼저 한 것은 화기와 갑주를 나눠주는 것이었다. 노획한 물건들을 재생한 것들이기에 표준화는 다소 미흡했으나, 충분히 쓸만한 물건이었다.

특히 콘도티에레는 흉갑은 몰라도 투구 정도는 꼭 착용하기를 권고했고,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경기병이 화기를 갖췄으면 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다만 무기의 시세를 생각하면 파격적으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게다가 앞으로 지급될 용병료에서 조금씩 차감하는 할부 거래 조건이었다. 일반적으로 용병들이 제안받는 무기 비용 선공제가 악질적인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주 좋은 조건이다.

당연히 상당히 많은 용병이 트랑카벨 가문의 제안을 받아들여 화기와 갑주를 구매했다. 권총은 많지 않았지만, 화승총의 숫자는 충분했다. 그 화기들이 곧바로 이번 전투에서도 아주 잘 활용됐다. 프리스마라 경기병들은 말 위에서도, 말에서 내린 상태에서도 화승총을 곧잘 사용하고 있었다.

그 결과가 이 기습전이었다. 전투에 능숙한 500여 명의 전력이라면, 비슷한 규모의 기병만으로 싸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설령 이긴다고 해도 피해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적인 기습을 통해서, 추격기병 1개 중대와 프리스마라 기병 약 300기, 총 400여 기의 기병만으로 순식간에 거의 전멸시키는 데 성공했다. 대단한 전공이었다.

샹다메리 언덕에 가장 일찍 도착해, 이후 포병이 배치될 진지를 확보한 전공 이후로 전투 내내 대기만 했던, 엘리스토프의 중대에게 있어 귀중한 실전 경험이기도 했다.

"이놈들이 약탈해서 가지고 가던 물자는 어떻게 할까요?"

"주인이 확실하니... 어촌 주민들에게 돌려줍니다. 무기 등, 적 병사들에게 노획한 물건은 마음대로 하셔도 됩니다."

"포로는 한 열다섯 명 되는 것 같네요."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 사령부로 귀환할 때 데리고 가겠습니다."

얼굴이 엉망진창인 젊은 영주와 줄에 묶여 있었던 주민들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대신 그들을 묶고 있었던 줄에는 약탈자들이 묶이게 되었다. 적 대부분이 순식간에 살해되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포로의 숫자가 적었다.

프리스마라 기병들의 싸움 방식이 무자비하기도 했고.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리고 베레스탱이라고 합니다. 다비니의 영주입니다. 여러분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처투성이인 청년 영주가 함께 풀려난 주민들의 부축을 받아 비틀거리면서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런데 조심하셔야 하지 않겠소?”

제콜라슈가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연다.

“우리가 이렇게 적들을 박살을 내놨으니. 지금 당장이야 속이 시원하겠지만 분명 보복하러 올 것이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남쪽으로 가시면··· 으음···.”

엘리스토프는 뭔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닫았다. 로데브 강 이남으로 도망치면 안전하기는 하겠지만. 책임도 지지 못할 것이면서 무작정 피난을 권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다행히··· 어촌이라 배가 있고, 부근에 사람이 살만한 섬이 좀 있습니다.”

“부디 무사하시기 바랍니다.”

당장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전쟁은 금방 끝나지 않는다. 이것만은 분명했다. 이런 구석진 곳까지 전쟁의 참화가 미치지 않기를 비는 수밖에.

빠르게 노획물 획득을 마무리한 트랑카벨 영지군 기병대는 풀려난 주민들과 헤어져 귀로에 올랐다.

이번 임무는 지역 점거나 적군 섬멸이 아닌 위력 정찰에 가까웠다.

특정 지역까지 이동하며,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적이라면 교전하고 정보를 수집한다. 조금이라도 강화 된 진지가 있다면 우회한다.

적에게 이 지역에 블랑독 연맹군의 병력이 언제라도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엘리스토프와 제콜라슈의 기병대는 큰 성공을 거둔 것이나 다름없었다.

첫 습격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온전히 자신만의 공적은 아니었지만, 엘리스토프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프리스마라 기병들은 훌륭한 동료였다. 분명 다음 임무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엘리스토프와 제콜라슈가 이끄는 혼성 파견대는 승전보를 가지고 사령부로의 귀환 길에 올랐다.

“그나저나, 프리스마라 기병대의 전투 방식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원래 이민족 출신 분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 방식이신가요?”

엘리스토프가 묻자, 제콜라슈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용병단의 전투 방식은 그쪽 사령관과 함께 지내면서 개선된 방식입니다. 에트 대장 말입니다.”

“네? 콘도티에레 말씀이십니까?”

“아, 콘도티에레. 주디칼리에서는 그렇게들 부르더군요. 우리는 원래 별다른 장점 없는 잡다한 용병대였지요. 유일한 장점은 용병료가 싸고 말을 탔을 뿐인.”

“그, 그렇습니까···.”

과거의 프리스마라는 장비도 복장도 전투 방식도 통일되지 않은 잡다한 ‘말 있는 용병’들의 모임이었다. 기병이 부족한 고용주가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고용하는 용병대. 비용은 저렴하지만 그만큼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었다.

가난한 불한당에 가까웠던 당시의 제콜라슈 역시, 전투가 시작되면 틈만 나면 도망갈 생각만 했다. 도망가기 전에 뭐 하나 건져서 떠날 수 있다면 다행이라 생각했고. 추격 명령이 내려오면 적이 버린 무기 줍느라 부대 지휘가 안 될 판이었으니.

하지만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적이었던, 에트라는 이름의 용병대장과 함께 지내면서 일변했다.

“처음에야, 헛소리라고 생각했지요. 원래 기마 용병들은 보병들은 얕보는 분위기도 있고. 하지만 그거, 당신도 에트 대장의 지휘로 싸워봤다면 아시지 않습니까?”

“음··· 알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요. 명령 받아서 싸우다 보면 어느새 이겨 있는. 내가 이렇게나 강했었나? 하는 고양감 말이오.”

사실 신임 중대장 엘리스토프는 제대로 된 전투 경험은 없었다. 그가 배치된 제31 정찰 연대는 샹다메리 전투 내내 후방에서 대기만 했으니까.

하지만 멀리 초원에서 용감히 싸우며 승리를 가져오는 아군을 보면서 비슷한 것을 느꼈다. 언젠가, 자신도 저렇게 싸우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우리는 말이 작고 무장이 빈약하니 ‘싸우기 전에 승리를 확정해놓고 싸워야 한다’라고 말했던 것이 딱 맞았습니다. 방심하던 적을 한 방 먹여줄 수 있었지요.”

“그럼 설마, 아라라라라! 하는 고함도···.”

“그것도 동쪽 초원 출신들이 부르던 전통 노래 같은 것이었는데, 에트 대장의 제안으로 전투 함성으로 채택됐습니다. 이게 대박을 터트렸지요! 이제는 우리 상징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적의 존재만 아는 상황에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대체 무엇이 내는 소리인지 모를 기성이 사방을 채운다면?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호기심과 함께 본능적인 부담감을 느낀다. 바로 그 때 괴상한 이국적인 복장을 한 기병대가 덮쳐오는 것이다.

“그 후로는 뭐··· 그럭저럭 많이도 이겼지요. 우리도 말 탄 불한당에서 벗어나서 제대로 된 용병 대접받으면서 총 밥을 먹고 있습니다.”

“콘도티에레와 인연이 있는 분들이라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그런 깊은 인연이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하하하, 그러니 엘랑키아에서 큰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바로 달려온 것이죠. 개인적으로도 다시 함께 싸워보고 싶다고 생각했었고요.”

“이해가 가는 말씀입니다.”

“엘리스토프 경이라 하셨지요? 전쟁은 처음이신가요?”

“그렇습니다.”

“하핫, 에트 대장과 같은 사람의 아래에서 전쟁을 배우다니, 부럽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어딘가 점잖지만 까다로운 외국인 같은 인상이었던 제콜라슈가 껄껄거리며 웃더니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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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티에레, 북쪽으로 가셨던 제2 분견대가 곧 도착한다는 소식이에요!”

“그래, 고마워. 생각보다 빨리 왔네.”

“네에, 뭔가 커다란 상자를 잔뜩 가지고 오신다네요! 적 대장급 소지품이라도 되는 것일까요?”

“오호, 그래?”

나도 호기심이 생겨서 분견대를 맞이하러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사령부랍시고 큰 나무 그늘에 천막을 쳐 놓았을 뿐이긴 했지만.

지금 나는 로데브 강의 북쪽 지류인 북 로데브 강이 보이는 초원 지대에 주둔하고 있었다.

로베르 드 나뵈프 경이 이끄는 제31 정찰 연대와, 계약은 진작 했지만, 합류는 최근에 한 프리스마라 기마 용병대와 함께하고 있다.

나머지 트랑카벨 영지군 소속의 기병 연대들은 병력 보충과 보급 등을 위해서 아직 벨모제 부근에 머물고 있었다. 보병들이야 아직 열심히 행군 도중일 테고.

프리스마리 기마 용병단은 최근 주디칼리부터 바다를 건너 블랑독에 새로 도착했다. 그 숫자는 무려 3600명이나 됐다.

분명 계약할 즈음에는 3200명 정도로 예상되었는데···. 프리스마라의 단장인 코바르 리메니에디 영감의 말로는 내가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나.

“병력이 부족한 게 문제지 많은 게 문제가 될까요?”

“여, 역시 그렇죠?”

“하하하하! 고용주님이 최고입니다. 에트 이 친구 소심해서는 쯧쯧.”

다소 초과된 예산 문제는 다행히도 아쥬흐 양의 하해와도 같이 넓은 배려와 두툼한 지갑이 해결해 주었다. 예정대로 여분의 총기류와 투구 등을 지급해서 전투력을 개선하고 금전적 부담을 줄였다.

그 외에도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지금은 전시이니까 천천히 해야겠지.

아무튼 3600명이나 되는 대규모 기병대를 단일 편성으로 쓸 수는 없으니, 트랑카벨 영지군에 맞춰서 나눌 필요가 있었다. 단장 코바르와 내가 머리를 맞대고 재편성하는 동안, 분견대를 파견해 위력 정찰을 시행했고 그 결과가 슬슬 도착하고 있었다.

분견대는 길잡이와 기간 병력이 될 제31 연대 소속의 기병 중대 하나와, 베테랑 프리스마라 기병 200~300기를 하나로 묶어 파견했다.

나야 트랑카벨 영지군의 기병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옛 지인들이나 다름없는 프리스마라 기병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그렇지 않으니 손발을 맞춰보는 의미도 있었다.

아, 물론 실질적인 ‘위력 정찰’에 따른 전과와 정보 수집도 있었지! 아넥시보다 북쪽 지역에 대해서는 이제 정보가 별로 없다. 성전군들이 점점 집어 삼키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게 4개의 분견대를 파견했다. 각 분견대는 나름의 전과를 거두고 돌아온 모양이다.

가장 서쪽으로 파견한 제1 분견대

- 길을 잃고 헤매고 있던 ‘무장 순례자’ 들을 100여 명이나 왕창 잡아 왔다.

- 포로들은 대부분 하급 병사들이었으나, 적 후방 병력에 대한 대략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임.

북쪽으로 파견한 제2 분견대

- 남하하던 대열을 기습, 적은 빠르게 패퇴하였으나 다수의 호화로운 상자를 노획.

- 방금 귀환했으니 상자에서 뭔가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북동쪽으로 파견한 제3 분견대

- 4문의 공성포를 호송 중이던 포병 대열을 발견하여 기습, 다소 피해가 발생했으나 승리.

- 공성포 모두를 노획해 점화구에 못을 박아 넣고 포가를 부숴 근처의 진창으로 굴려버림.

- 가져올 수 있는 만큼의 화약은 챙겨왔고 나머지는 자폭시켜 폐기

동쪽으로 파견한 제4 분견대

- 동쪽 해안가를 약탈하던 성전군 소속의 부대를 기습해 완전 섬멸.

- 성전군 세력이 해안가를 통해 상당히 남쪽까지 내려와 있음을 확인.

상당히 훌륭한 전과이다. 이건 우리 병사들이 잘한 것도 있지만, 오랫동안 저항다운 저항을 받지 못한 성전군 쪽이 아예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것도 한몫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콘도티에레! 분견대가 도착했어요!”

“아 그래? 간다! 나도 구경해야지.”

“네에, 뭐가 나올까요?”

“금화나 잔뜩 나오면 좋겠네!”

우리는 서둘러 주둔지 외곽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아쥬흐와 간호사들도 몰려와 있었다. 하긴, 오랫동안 대기만 하고 있었으니 심심하기도 했겠지. 노획한 보물상자 확인이라니! 나조차도 기대가 돼서 가슴이 떨릴 지경이다.

“방금 돌아왔습니다. 콘도티에레.”

“수고했습니다, 로베르 연대장. 피해는 얼마나 되나요?”

“제31 연대 소속 미귀환자가 6명, 프리스마라 확장연대 소속 미귀환자가 21명입니다.”

“그렇군요. 부상자는 여기, 마침 의무대가 와 계시네요.”

보물상자 구경에 들떠 있었던 간호사들은 어쩐지 실망한듯했지만, 피를 흘리는 병사들을 발견하자마자 반사적으로 튀어 나간다. 아쥬흐는 그런 부하 간호사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제2 분견대는 제31 몽세나 정찰 연대의 연대장인 로베르 드 나뵈프 본인이 지휘하고 있었다. 뒤에서 상자를 짊어진 프리스마라 기병들이 왁자지껄 시끄럽게 떠들며 온다.

“뭐가 나올까요?”

심지어 아쥬흐 역시 기대가 되는지 내 옆에 서서는 상자들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큼직한 상자는 모두 세 개나 되었다.

단단하고 무거워 보이는 적갈색 재질의 나무로 짜서 모서리를 황동으로 보강한 상자이다. 놋쇠 부분은 한눈에 보아도 장인의 손길이 들어갔을 법한 아름다운 장식이 새겨져 있었다.

“자물쇠가 이중으로 걸려 있어서 아직 열어보지 못했습니다. 열쇠가 없습니다만··· 부술까요?”

로베르는 나를 바라보고, 나는 아쥬흐를 바라본다. 아쥬흐는 흥미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열겠습니다!”

아마 여기까지 상자를 옮겨 온 우리 병사들도 무척 열어보고 싶었겠지. 상자를 들고 온 병사 하나가 전투용 쇠망치 뒷면을 지렛대처럼 써서 자물쇠 틈에 끼워 넣었다.

빠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떨어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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