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147화 (147/556)

22-4. 가장 신성한 전초전

말머리를 맞춘 트랑카벨의 기병대가 화력을 뿜어낸다. 투구와 흉갑, 그리고 한 자루의 권총만으로 무장한 추격기병들이다. 밀도 높은 사격에 이은 잘 훈련된 기병들의 돌격이 꽂힌다.

성전군 소속, 빌다우 기사단의 용병들은 혼비백산하여 순식간에 무너진다. 종심이 얕은데다가 준비가 안 된 보병들은 밀도 높은 권총 사격에 이어 질량으로 밀어붙이는 트랑카벨 기병대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트랑카벨 영지군의 기병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뉘어진다. 바로 총기병, 용기병, 추격기병이다.

태생 귀족 기사 계급 출신들은 대부분 총기병에 배치된다. 총기병들은 전통적인 귀족 중기병대의 직계 후손들이다. 얼굴과 무릎 아래를 제외한 신체 대부분을 철갑으로 덮은 중장갑에 두 자루의 값비싼 치륜식 권총으로 무장한다.

게다가 가장 값비싸고 잘 훈련받은 군마에 탑승한다. 거기에 태생이 어릴 때부터 승마술과 마상 전투술을 연습해온 기사 계급이다.

때문에 저돌적인 근접전에 강하며, 화력을 집중한다면 기병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창병 밀집 대형 상대로도 충분히 돌파할 가능성이 있다.

재장전에 능하며 어느 정도의 승마 경험이 있는 평민 병사들은 용기병에 배치된다. 이들은 엄밀히 말하면 ‘말 탄 보병’에 가깝다. 그 때문에 통상적인 도보 총병들과 동일한 무장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말을 탄 상태에서는 전투력이 저하된다. 말 위에서는 사격의 명중률도 떨어지고 백병전도 전문적으로 훈련 받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전투 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짐말은 치열한 백병전 상황에서는 쉽게 흥분해 기수의 명령을 잘 듣지 않을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화승총, 혹은 트랑카벨 가문의 신무기인 수석총으로 무장했기 때문에 권총만으로 무장한 총기병에 비해 압도적으로 먼 사거리를 가진다. ‘기병처럼 이동해서 보병처럼 싸운다’라는 말에 어울리는 기병이다.

마지막으로 추격기병은 전투력보다는 기동성에 강점을 가진 병종이다. 이들이 타는 승용마인 몽세나산 산악마는 덩치가 작아 완전히 무장한 기사를 태우기에 적합하지 않다. 이 때문에 기수들은 투구와 흉갑만을 착용한다.

하지만 그만큼 지구력이 있어 먼 거리를 오랫동안 달릴 수 있다. 게다가 몽세나의 비탈진 구릉지대를 평지처럼 달려온 말이기에 험한 지형에서 강점 또한 있었다. 이는 다른 기병들에 비교해서 압도적으로 넓은 범위를 커버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경무장에 말의 높이가 낮은데다가, 휴대하는 권총이 한 자루라 직접적인 전투력은 물론 총기병에 비해서 떨어진다.

다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지금처럼 대열이 무너진 데가 반쯤 혼이 나간 보병들 상대로는 사신이나 다름없었다. 사전에 방어대형도 취하지 못해서는, 창병들조차도 전혀 대응하지 못한다. 상성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작다고는 해도 인간보다 훨씬 거대하고 무거운 말에 부딪혀 밀리고, 기병들이 마구 휘두르는 무기에 베인다.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긴 행군 대열 전체가 공격받은 것은 아니었다. 운 좋게 추격기병들의 돌격에 휩쓸리지 않은 부대들도 있었다. 하지만 운 나쁜 동료들을 구할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살아남기 위해 방어대형을 단단히 굳힐 뿐이다.

하지만 다음 돌격은 반대편에서 왔다.

“아라라라라라라라!”

“아라라라라!”

카라라라라라라!

괴상한 소리가 갑자기 등 뒤에서 들리자 반대편을 향해 전투 준비를 하던 보병들이 기겁한다. 반대편에서 조용히 접근한 경기병들이 어느새 바로 등 뒤에 있었다.

아무도 못 봤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지휘관을 비롯해 구성원 대부분의 신경이 반대에 쏠려 있는 이상, 봤다고 해도 그게 동료들에게 전해지고, 대응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은 시간에 맞출 수 없었다. 주도권을 빼앗긴 이상 필연이다.

“히이야아아아!”

“아라라라라!”

귀가 아픈 고음은 놀랍게도 인간의 목청에서 나는 소리기도 했고, 악기가 내는 소리기도 했다.

카라라라라라라라!

카카카라라라!

주먹보다 조금 큰, 나무로 깎아 낸 기이한 호각에서는 비슷하지만 조금 더 높고 날카로운 소리가 난다. 어쨌건,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습격당한 보병들에게는 악마가 내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막아! 창병, 창병 뭐해!”

“막으라고!”

“으읏, 으아아악!”

그저 보병들이 한 군데 모여있기만 할 뿐, 방어대형이라고 할 수 없다. 대응을 하지 못했다면 프라스마라 경기병들이 그대로 대열 안으로 뛰어든다.

“흐아악, 살려줘!”

“망했다 도망쳐!”

“도망가긴 뭘 도망가! 으아악!”

양날 검. 외날 검. 도끼. 철퇴. 망치. 가시망치. 단창. 권총. 심지어 활과 화살에 투창 등 시대착오적인 무기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통일되지는 않았지만 하나같이 치명적인 무기가 혼란한 적을 향해 휘둘러졌다. 여기저기서 운 없는 자들의 피가 사방으로 튄다. 그나마 덜 운 없는 자들의 멘탈이 산산조각이 난다.

프리스마라 기병대는 무기나 갑주나 무엇 하나 통일되지 않은 자유분방한 모습이다.

철제 투구. 구식 철제 투구. 평평한 가죽 모자. 끝이 뾰족한 가죽 모자. 품이 넉넉한 털가죽 모자. 머리에 꼭 맞게 솜으로 누빈 모자.

통으로 된 철제 흉갑. 철판을 이어 붙인 흉갑. 사슬 조끼. 단단하게 굳힌 가죽조끼. 두껍지만 단단하지는 않은 가죽 갑옷. 가슴 부위만 철판으로 보강한 가죽옷. 여러 겹의 천을 붙여 낙낙하게 보이는 이국의 옷. 솜으로 누빈 검소하지만 유용한 겉옷.

온갖 종류의 무기와 복장으로 구성된 변화무쌍한 경기병대는 그대로 성전군 보병들을 유린해버린다.

그나마 잘 무장된 핵심 전력인 빌다우 기사단의 회색 옷을 입은 기병들은 이렇다 할 저항을 하기도 전에 포위되어 사정없이 공격당했다.

아무리 잘 무장된 기사 집단이라도 몇 배나 되는 경기병, 그것도 마상 전투에 익숙한 병력에게 휩쓸려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엇갈린 톱니 형태의 맞물리는 죔쇠를 가진 거대한 곰 덫처럼. 트랑카벨의 추격기병대와 프리스마라 경기병대는 양쪽에서 몰아쳐 성전군을 휩쓸어 버렸다. 실제로 빌다우 기사단과 그 용병들은 곰 덫에 물린 신세이다.

요행히 전선을 벗어나 도망치더라도, 반대편에서 대기하던 예비대의 감시망을 뚫을 수는 없었다. 몇 명이 모여서 대열을 이루려 하면 반대편에서 습격당한다. 화승총을 재장전하려고 멈춰서는 순간, 사각에서 달려온 기병의 무기에 머리통이 날아간다.

성전군은 이제 요란하게 돌아가는 분쇄기에 던져진 장작처럼, 완벽하게 손발이 맞는 적 기병에게 갈려 나가는 것 외에는 남지 않았다.

“사, 살려줘!”

“왜 이쪽으로 오는 거야!”

“제기라알!”

약탈자들의 아우성소리가 해안가의 작은 숲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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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입니다. 중대장님!”

“이렇게나 잘 될 줄은··· 아군 피해는?”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8명입니다. 프리스마라 소속의 피해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정말 놀랍군.”

제31 몽세나 정찰연대 소속, 제5 추격기병 중대장 엘리스토프 마르크릭은 전투가 얼추 끝나가는 전장을 바라보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좁은 숲길이 온통 죽었거나 죽어가는 적으로 가득했다.

그 숫자는 얼핏 보아도 500명은 넘어 보였다. 만약 평지에서 정면으로 싸웠다면 아군 피해가 얼마나 나왔을까? 아마도 대치나 했지, 애초에 덤빌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습격의 초반은 프리스마라 경기병들이 주도했다. 빈틈없는 정찰을 통해 적을 찾아낸 그들은 적의 행군로를 에상하고 적절한 습격 위치를 잡았다.

소극적인 기습으로 대담하게 자신들의 존재를 적에게 알렸다. 일반적인 기습이라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일반적인 기습’이라면 말이다. 프리스마라의 기습은 전혀 일반적인 기습이 아니었다.

애매한 거리에서의 매복 화승총 사격과, 기만적인 소수 기병의 돌입으로 적을 예민하게 한다. 직후에 대규모로 습격하는 척을 하여 적의 총탄을 낭비시킨다. 그 와중에 그들 특유의 전투 함성을 지르며 시끄러운 호각을 분다.

아라라라라, 혹은 카라라라라로 들리는 사람의 목, 혹은 호각으로 내는 소리는 말 그대로 대비하지 않은 인간의 혼을 빼놓는 소리였다. 대체 어디서 무엇으로 내는 소리인지도 모르는 괴성에 적은 당황한 것이 분명했다.

진짜로 무서운 것은, 이게 그냥 시끄럽고 적을 자극하는 소리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기병은 기습에 적합한 병종이 아니다. 왜냐하면 기병은 시끄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음을 줄이려고 노력해도 보병처럼 완벽하게 은닉하기는 어렵다.

지면 상태에 따라서는 몇 킬로미터 밖에서도 들리는 말발굽 소리를 빼더라도, 말 자체가 원래 시끄러운 생물이다. 위에 탄 기수도 온갖 장비를 주렁주렁 달고 돌아다니다 보니, 비슷한 수준으로 무장한 보병에 비해 압도적으로 시끄럽다.

기병 개개인도 이런데, ‘기병대’라는 무리가 되면 그 소음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증폭된다. 언덕 뒤에 숨는다? 아마 그 소음만 해도 언덕 반대편에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숲에 숨는다고 해도 문제다. 놀란 들짐승이나 새들이 뛰쳐나오기 때문에 장님이라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때문에 트랑카벨 기병대를 비롯한 주력 기습대는 한참 후방에서 말에서 내려 대기해야 했다. 그리고 총소리가 들린 이후에야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이후 호각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그때는 소음에 신경을 쓰지 않고 죽어라 달려 돌격 위치로 이동했다.

그 동안 주변을 뒤덮은 시끄러운 ‘아라라라라라!’ 소리가 사방을 진동시킨다. 그것이 기병대가 움직이면서 낸 소음을 완벽하게 가려주었다. 적군이 괴성과 산발적인 기습에 정신이 팔린 사이, 엘리스토프가 이끄는 추격 기병들은 완벽한 돌격 위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적 대부분은 반대편에 정신이 팔려 의미도 없이 허공에 총탄을 낭비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는 이미 들켜도 상관없었다. 무엇보다 프리스마라의 괴성은 적군 부대 내부의 의사소통조차 방해할 정도로 시끄러웠으니까.

그다음부터의 상황은, 대부분 시체가 되어 바닥에 누워있는 적들이 몸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기습적인 기병 돌격은 수월하게 보병 대열을 뚫고 들어갈 수 있었다. 이어지는 것은 물론 일방적인 학살이었고.

“어? 야 그거 적 장교 같은데? 포로로 잡으면 포상금이라지 않았나?”

“어 시발··· 진짜네···.”

“으이구, 아무나 막 쑤시면 어떻게 하냐.”

근처에서 프리스마라 병사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엘리스토프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나 여유 있는 전투 상황이라니.

“투구 벗은 거 보면 항복하려고 한 것 같은데···.”

“이미 찌르고 있었는데 투구를 벗은 거야. 아, 이거 피 많이 나는데 살 수 없겠지?”

“살긴 뭘 살아 이미 틀렸네.”

빌다우 기사단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짧은 회색 머리카락의 중년 기사가 목에 난 큰 상처에서 피를 뿜으며 움찔거리고 있었다. 징 박힌 가죽 갑옷 차림의 프리스마라 경기병이 단창으로 찔렀기 때문이다.

역시, 프리스마라 경기병들은 놀라울 만큼 말을 잘 탔고, 무기를 다루는데 뛰어났으며, 그만큼 사나웠다.

“여어, 엘리스토프 경! 계획대로 잘 되었지요?”

“덕분에 피해 없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저쪽에서 시체 사이로 말을 몰아 오는 것은 프리스마라 기마 용병단의 부단장, 제콜라슈 오르밧이었다. 뺨이 움푹 들어간 것이 보일 정도로 비쩍 마른 이 남자는, 엘리스토프가 아는 한 가장 몸이 빠른 기병이었다. 남들이 등자를 밟고 안장에 걸터앉는 정도의 시간 동안, 제콜라슈는 벌써 권총까지 꺼내 격철을 당기고 적을 맞출 수 있을 정도였다.

붉은색 바탕에 흰색과 노란색 자수가 놓인 화려한 비단 옷을 걸친 이 남자는 굉장히 이국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길게 길러 머리띠로 묶은 검은 머리카락, 가늘고 길게 고정한 수염. 거기에 예리하게 날이 굽은 곡도까지.

하지만 그는 놀랍게도 순혈 그룬발트 출신이었다. 화려한 복장부터 수염 모양까지, 일부러 특이하게 보이기 위해 계산된 결과라는 모양이었다. 제콜라슈라는 이름도 새로 지은 이름이라고 하니 정말 용의주도했다.

이국적인 외형과 무기, 아라라라라! 로 대표되는 기이한 함성이 겹쳤을 때 적에게 발생하는 막연한 공포감을 유발하는 전략이다.

확실히, 포위망 반대편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 압박감을 느끼기는 했다. 예상하지 못한 적의 기습이라면 정말 충격을 받았을 법도 하다. 완전히 무장한 엘랑키아의 기사와 마주했을 때와는 또 다른 압박감이었다.

다행히도, 그들은 아군이었다. 이야기도 잘 통했고, 손발도 잘 맞았다. 제콜라슈와 굳게 손을 마주 잡으며, 무한한 감사함을 느끼는 엘리스토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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