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145화 (145/556)

22-2. 가장 신성한 전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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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다메리에서 승리를 거둔 아군은 동쪽으로 행군하고 있었다. 크게 승리하기는 했고 적과 비교하면 희생이 적기는 했으나··· 사상자 총수는 2천 명이 훌쩍 넘었다.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숫자는 아니다. 일부 부상병들이 살아서 돌아오기야 하겠지만.

우리는 제한된 병력으로 강대한 적과 싸우고 있다. 적의 배후세력은 엘랑키아 왕국 그 자체, 그리고 법황청이다. 규모나 권위 면에서 트랑카벨을 중심으로 한 아군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당장 전투에 투입된 병력의 숫자는 호각으로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아군은 한계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리해서 소집한 병력이다. 그에 비해서 적은··· 그 병력 자원은 무한정이라 해도 좋았다.

나로서는 적의 공세에 노출되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방어를 위한 엄폐물을 준비하는 등 노력했다. 병사들을 최대한 살려야 전쟁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서로 몸을 노출하고 맞으면 치명상인 총탄을 주고받는 일이다. 이 정도로 끝난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만약에 이 정도의 희생을 한 번 더 당한다면 최악의 경우 아군의 전투력은 절반 가까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물론 최악의 상황이고, 아군은 사기가 높으니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겠지. 그렇더라도 병력의 숫자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압도적으로 희생이 컸던 부대는, 우익의 참호 요새에서 거의 세 배나 많은 적군을 붙잡고 늘어졌던 네그라타 연대이다. 그들의 용맹과 희생에는 아무리 찬사를 보내도 부족하다. 그들은 전 병력의 삼 분의 일이 죽거나 크게 다쳤으며, 나머지의 절반 가까이도 부상을 입었다.

이번에 아쥬흐가 계약에 독소 조항이 있었다며 네그라타 용병단과의 계약 내용을 변경했다고 한다. 나도 고용된 용병의 입장이지만, 독소 조항을 고용주 측에서 나서서 고쳐주는 것은 처음 본다. 이런 건 병사들의 사기와도 직결되니 중요한 일이다. 다들 참 좋은 고용주의 밑에서 싸우고 있어서 다행이다.

다음으로는 적진 한가운데로 돌입해 적의 포대를 점거하고, 적의 주의를 끌어 최후의 적 기병대를 분산시켰던 지빌링엔의 피해도 상당히 컸다. 거의 30퍼센트에 일하는 병사들이 돌아오지 못했다.

연대장인 에르만 슈피리도 꽤 큰 부상을 입었으니 얼마나 격전을 치렀는지 알 수 있었다. 다행히도 생명에 지장이 있는 상처는 아니라고 한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마지막 교전에서 적의 포격이 슈토르히 연대의 머리 위로 떨어졌겠지. 자신들보다 수가 더 많은 적 기병에게 포위당한 와중에도, 슈토르히 연대를 엄호하며 노획한 적 야포로 포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슈토르히 연대는 자기네 전공의 절반은 지빌링엔 반연대에 지분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니 자신들이 받을 포상이 있다면, 이 또한 지빌링엔에 양보하겠다고 했다. 가능하면 지빌링엔 반연대를 재건해 온전한 연대로 편성되면 전장에 함께 나가면 좋겠다고도 했고.

하··· 솔직히 내가 어느 정도 편애하고 있는 우리 애들이지만, 진짜 멋있는 말이다. 이게 강자의 여유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다행히도 확정은 아니지만, 슈토르히 연대의 요구는 어느 정도 관철될 수 있을 것 같다. 연락받은 지빌링엔 출신 동료들이 속속 블랑독에 도착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나 모였는지는 모르지만, 다행히 다음 전투에서 지빌링엔, ‘피 흘리는 흑곰’들은 조금은 덜 외롭게 싸울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희생은 그들만 한 것은 아니다.

주 전열의 한 가운데에서 적의 정예군을 상대했던 트랑카벨 영지군 소속, 제22 몽세나 보병 연대와 드 누아 영지군 소속의 북부 연대 역시 꽤 큰 피해를 입었다. 중앙의 적군이 상당한 정예군이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후퇴할 때도 최후위에서 빈틈을 보이지 않았었다.

격전 끝에 우익의 적 기병을 훌륭하게 제압해 격퇴했던 제7 카르카냑 기병 연대 역시 전체의 20퍼센트에 가까운 피해가 있었다.

사상자 리스트를 받아보는 것은 익숙한 일이지만··· 침통해지는 것은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

[트랑카벨 정규 기병]

제7 카르카냑 기병연대

- 약 1000명, 사상자 196명

- 총기병 8중대, 용기병 2중대

제8 벨모제 기병연대

- 약 950명, 사상자 19명

- 총기병 6중대, 용기병 4중대

제31 몽세나 정찰연대

- 약 700명

- 총기병 2중대, 추격기병 3중대, 용기병 2중대

[트랑카벨 정규 보병]

제10 카르카냑 보병연대

- 약 1200명, 사상자 104명

제11 벨모제 보병연대

- 약 1200명, 사상자 150명

제15 델레망드 보병연대

- 약 1200명, 사상자 161명

제16 몽세나 보병연대

- 약 1200명, 사상자 85명

제21 카르카냑 보병연대

- 약 1200명, 사상자 83명

제22 몽세나 보병연대

- 약 1200명, 사상자 220명

[트랑카벨 산하 용병]

슈토르히 연대

- 약 1140명, 사상자 96명

네그라타 연대

- 보병 약 1700명, 사상자 612명

- 기병 약 100명

지빌링엔 연대

- 약 330명, 사상자 101명

[드 누아 영지군]

드 누아 기병 연대

- 약 480명, 사상자 74명

드 누아 북부 연대

- 약 1100명, 사상자 177명

드 누아 남부 연대

- 약 1200명, 사상자 134명

일단 가장 피해가 큰 네그라타 연대는 잠시 예비로 돌리기로 했다. 잠시 비교적 안전한 트랑카벨의 영토에 머물면서 라솔에서 도착할 보충 병력을 기다리며 재편성에 들어갈 예정이다.

나는 지빌링엔 반연대 역시 같은 고향 출신 보충병들과 재훈련을 할 겸 재편성에 들어가야 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본인들이 너무도 완강하게 거절했기에 일단은 다음 집결지인 벨모제까지는 함께 이동하도록 했다.

순서의 차이는 있지만, 샹다메리에서 승리한 병력들은 로데브 강 북안의 요새 벨모제로 행군하고 있다. 벨모제는 강력한 요새이면서 보급기지니까. 이곳에서 새롭게 보급받을 예정이다.

게다가 샹다메리 전투에서 노획한 대량의 군수 물자, 특히 생각도 안했던 거대한 공성포를 비롯한 화포들도 일부는 벨모제에 맡겨 둘지도 모르겠다. 무기도 수리하고 재분류해서 아군을 강화하는 데 쓰도록 해야지.

그리고 어쩌면 병력 보충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블랑독 전역에서 꾸준히 지원자가 나오고 있어서 예비 병력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다. 그러니 이 병력이 바닥나기 전에 전쟁을 끝내야 한다.

이번에는 그동안의 방침과 다르게, 보병과 기병을 분리하기로 한다. 기병의 일부도 아니고, 대부분을 집결해서 한 발 빠르게 블랑독 동부로 들어간다.

아마도 주된 전장은 아넥시나 그 부근 어딘가가 되겠지.

“기병대만 따로 부대를 이루어 출격하신다는 것이 정말인가요, 콘도티에레 에트?”

“그렇습니다. 아직 적도 집결하지는 못한 상황이니 그 전에 기병 전력으로 최대한 흔들어 두려고 합니다.”

“좋은 생각이시네요. 함께 갈게요.”

“에··· 같이 가신다고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콘도티에레 에트?”

“아, 아닙니다! 문제라니요.”

어쩐지··· 아쥬흐가 편한 옷을 입고 말을 타고 있더라 했다. 그러고 보니 마차도 두 대 따라오고 있었고, 의사와 간호사 몇 명은 능숙하게 말고삐를 잡고 있었다. 기마 의사와 기마 간호사인가. 하기는 따라와 준다면 든든하겠지.

“저희 트랑카벨 의무대의 군의관들은 아픈 말 치료에도 일가견이 있답니다.”

“아하··· 그것참 잘됐네요.”

진심이다. 말은 크고 강인한 생물이지만, 작은 상처나 질병이 치명적으로 되는 경우가 많다. 기동력이 있는 부대인지라 기동력을 상실한 말은 버리고 가거나 살처분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꾸준히 수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계속 부족한 것이 군마이다. 잘 훈련된 군마는 구하기가 쉽지 않다. 대륙 전체에서 군마 생산량이 가장 많은 나라가 다름 아닌 엘랑키아라서 그렇다. 군마 시장의 큰 파이를 차지하는 나라의 국왕과 전쟁을 하는 판이라. 아무튼 화약 무기를 쓰는 전장에서는 말들이 가엾게도 너무 많이 죽는다.

“그러고 보니, 새로 고용한 기마 용병대가 도착해서 합류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3천 기가 넘는 대규모라고 했나요?”

“맞습니다. 좀 별난 친구들이기는 하지만 든든할 겁니다.”

“이름이 분명··· 프리스마라? 어떤 분들인가요?”

"원래는 그룬발트 동쪽에 사는 기마 민족 출신의 이름인데... 지금은 현지에서도 신병들을 많이 모집해서 그냥 가볍게 무장한 특이한 기병들입니다."

"이민족 지휘관이 있다는 말은 들었던 것 같네요. 어느 점에서 특이한가요?"

아쥬흐는 흥미가 있는 모양이다. 나와 함께 군마 수급에 애를 먹어서 그런가.

"일단은 싸우는 방식이 특이합니다. 말도 작고 무장도 빈약한 기병들이라 중기병과 정면 승부는 불가능하지만... 어떻게든 상대를 해내더라고요."

"정말 특이한 분들인 모양이네요. 콘도티에레 에트와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원래는 슈토르히와 적이었습니다."

"네? 적인데 어떻게 친해지셨나요?"

"그게 한참 싸우고 대치하면서 서로 만만치 않다 생각했는데, 상대 고용주가 망하는 바람에 계약이 해지됐어요. 결국 화해하고 한동안 같은 지역에서 같이 지냈네요."

"그렇군요... 용병 분들의 인연이란 상상이 잘 가지 않네요."

내 생각도 그렇다. 돈 받고 목숨 파는 직업들이라. 보통 감성으로는 이해하기가 좀 어렵지.

크레시미르의 말이었던가, 아군 귀족 기사들보다는 적군 용병들이 더 말이 잘 통한다고. 어느 정도 공감은 되는 말이었다. 나는 처음 보는 용병들이랑은 말을 잘하기 어려워하는 편이지만.

아무튼 우리 군의 병력은 다소 줄었지만, 그만큼 경험을 쌓고 결속이 강해졌다. 큰 피해를 입은 네그라타나 지빌링엔 용병들도 신병을 보충하고 더 강해져서 전열로 보충되겠지.

거기 프리스마라 기병들도 추가됐고 말이다.

내가 성전군이라면 도망친다 정말. 나는 훌륭한 부하들의 목록을 훑어보며 왠지 우쭐한 기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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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앙!

"맞았나? 맞았어? 와 맞았어!"

"제자님 명사수였구먼!"

방어 교회 소속의 사제 요한 린데만 폰 아인푸르트의 제자, 아르옌 그로반 수사는 굳은 표정으로 총열이 뜨거워진 화승총을 바닥 위에 세웠다.

그는 방금 성벽 부근을 얼쩡거리던 적 정찰병들을 저격한 참이다. 한 명이 벼락에 맞은 듯 펄쩍 뛰며 안장에서 굴러떨어지자, 나머지 기병들이 혼비백산하여 성벽에서 멀어진다.

이렇게 한 번 호되게 당하고 나면 성벽 코앞까지 다가와서 얼쩡대는 짓은 더 이상 못할 것이다. 성벽 위의 수비병들을 확인하거나, 방어시설을 살피는 말 그대로의 정찰 외에도 기 싸움의 의미가 크다.

현재,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 마을 아넥시 주변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마을 주변에 나타나던 기마 정찰대의 빈도는 점점 늘어났으며, 방금처럼 대담하게 성벽 근처까지 와서 정찰인지 도발인지 혹은 둘 다인지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곤 했다.

"여, 여러분 여기 몰려서 구경하시면 안 돼요! 총구 연기를 보고 덮어놓고 눈 먼 총알이 날아올 때도 있거든요!"

"그거야 이 거리에서 맞아 죽으면 그냥 자연사지 뭐!"

"푸하하하하!"

"그렇지 않다니까요...."

주민들은 껄껄거리며 웃으면서도 슬그머니 성가퀴 너머로 몸을 숨긴다. 아넥시에 오래 있었던 이들은 알고 있다. 아르옌 수사가 아니더라도, 지난 아넥시 전투에서 활약했던 거한의 저격수 모리츠의 전설을 눈으로 봤으니까.

"오오 아르옌 수사, 무사히 적 첨병을 쫓아 보낸 모양이군!"

"예 스승니... 헉! 그, 그건 누구입니까?"

성벽 아래에서 들리는 스승 요한 사제의 목소리에 고개를 내민 아르옌은 기겁했다. 요한이 한 손에는 도끼를, 한 손에는 머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사내의 뒷덜미를 잡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간첩을 잡았다네! 외부와 어떻게 연락하고 있었는지는 이제부터 알아봐야 하네."

제자와 주변 마을 사람들이 귀신이라도 보는 듯하게 경악한 표정인 것을 알아차렸는지 멋쩍게 웃으며 한 마디 덧붙인다.

"아아, 안 죽게 조심해서 옆면으로 쳤다네. 피가 많이 나긴 하지만 죽지는 않을 것이야. 그냥 기절했다네."

"...그거 다행입니다만 간첩인지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도박이란 말이지, 서로 마음속 깊은 곳까지 내놓고 하는 허심탄회한 대화와 같다네. 아무리 본심을 숨기려고 해도 지갑이 가벼워지면 튀어나오게 마련이지."

"네? 뭐라고요 스승님?"

"많은 분의 속마음을 보았지만, 유독 속마음이 보이지 않던 자가 있더군. 올인을 당했는데 분노도 절망도 하지 않고 침착하다? 인간의 마음을 가지지 못한 악마 혹은 다른 목적이 있는 간첩이라고 봐도 되는 걸세!"

"허어...."

"수상한 자가 있어 며칠 눈여겨보았더니, 바로 꼬리를 드러내더군. 뭔지 모를 암호 쪽지를 발견했고... 그것을 알아채자 먼저 죽이려고 들었으니 확실하지 않겠나."

요한이 설명을 마치자, 주변에서 탄성이 들렸다. 그냥 도박쟁이 파계승이 아니었어! 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사람 얼굴 아시는 분 계시는가요?"

"아! 그 사람 몇 주 전에 고향이 불탔다고 온 사람인데!"

"맞네 기억나는구먼! 성벽 보강 공사도 열심히 했던 양반인데 간첩이야!"

"기억나시는 분들은 중앙청에서 증언 부탁드립니다. 루옹 대표님께 보고 드리러 갑니다. 치료하고 심문하려고 합니다."

"잘 했구먼!"

사제 요한과 그 제자 아르옌 수사는 석방 첫 날 강렬한 인상과 함께 주민들의 마음속에 남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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