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142화 (142/556)

21-3. 승리의 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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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라타 연대의 지휘관이자 현 알코라즈 남작인 미카토 바르두 샌잔디스는 부하들이 강을 건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문득 작년, 이스키비르 강을 건너 드 누아 영지를 침공하던 일이 생각이 났다. 그때는 아직 미카토는 네그라타의 단장도 아니었고, 알코라즈의 남작도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타르벤도 경을 존경하고 있었는데....

약탈을 목적으로 강을 건넜고, 드 누아와 동맹을 맺은 트랑카벨 가문의 콘도티에레에게 끔찍한 패배를 당했었다. 그게 어떻게 인연이 되어 지금은 트랑카벨 가문과 계약을 맺고 충성을 다 하고 있지만.

지금의 도강 작전은 그때와 전혀 다르다. 로데브 강 남쪽이나 북쪽이나 트랑카벨 가문의 세력권이었다. 당연히 네그라타를 막는 상대도 없다. 위험은 부주의로 인해 배가 뒤집히는 것뿐이다. 오히려 트랑카벨 가문이 고용한 뱃사공들이 네그라타 용병들과 협력하여 강을 건너는 것을 돕고 있었다.

샹다메리 전투가 끝난 직후, 네그라타 연대는 콘도티에레에게 남쪽으로의 이동 명령을 받았다.

‘로데브 상류의 여울목 남쪽 편에 주둔하며 주변을 감시할 것. 이후 알코라즈 남작령에서 도착할 보충 병력과 합류, 재편성을 마치고 연대를 재건할 것.’

함께 샹다메리 전투를 치른 참전 부대 중, 재편성 명령을 받은 부대는 네그라타 연대밖에 없었다. 그만큼 이들이 막대한 희생을 감수했다는 이야기기도 했다.

네그라타 연대의 보병 숫자는 약 1800명이었다. 전투가 끝난 직후 집계된 사망자 숫자는 460명이 넘었고, 중상자를 포함하면 사상률이 1/3 훌쩍 넘었다.

연대장인 미카토 자신도 기겁할 정도로 엄청난 피해였다. 특히 외곽 방어선에서 교대도 없이 반복해서 몰려오는 적을 상대했던 부대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거기서 병사들을 지휘했던 하급 지휘관이나 장교들의 사상률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최대 격전지에서 계속 싸웠던 알론소 요페로 페레데즈의 중대는 피해가 50퍼센트가 넘었는데, 중대장을 포함한 장교 9명 중 2명 만이 살아남았을 정도였다. 그나마도 전원 부상자였다.

그런 터무니없이 힘들었던 싸움에도 불구하고, 현재 네그라타 연대의 사기는 상당히 높았다. 절반은 그 결과로 얻었던 대승리 때문이기도 하고, 나머지 절반은 고용주인 아쥬흐 트랑카벨의 처사 덕분이었다.

미카토는 전투가 끝나고 사흘째 되던 날, 연대 본부를 찾아온 아쥬흐가 기억났다.

아름다운 금발과 파란 눈동자가 돋보이는 미녀가, 하얀 앞치마에 피 칠갑을 해서는 부상병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중상자를 치료한다. 아무리 보아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너무 비현실적으로 보여서 눈앞에 있으면 오히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성녀라 부르며 따르는 병사들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그런 그녀가 그 복장 그대로 연대 본부 막사를 찾아왔을 때는 다들 놀랐다. 전투 도중부터 며칠째 계속 부상병들을 돌보았던 그녀는 조금 피곤해 보였다.

“미카토 바르두 샌잔디스 남작님, 잠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물론입니다, 아쥬흐 의무대장님!”

“이런 때, 계약 이야기를 하는 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런 때이기에 분명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된다 생각해서 찾아오게 되었네요.”

아쥬흐는 갑자기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미카토는 어리둥절하여 종이를 받았다. 아마도 새로운 계약서로 보였는데, 이 미녀 고용주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상도 가지 않았었다.

“네그라타 연대는 이번 전투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주었어요. 안타깝게도 많은 분이 전몰하셨습니다.”

“모두가 훌륭한 최후였습니다. 네그라타의 동료들 중 어느 사람도 부끄러운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다는 점에 고마움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맞아요. 그래서 왔어요. 전몰자분들은 트랑카벨 가문을 위해서 싸우다 돌아가셨는데, 계약서에 부당한 점이 있었어요.”

“어, 어떤 부분이신지···.”

여전히 미카토는 그녀의 의도를 추측조차 못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약간 화가 난 것처럼도 보였다. 혹시라도 네그라타 용병단이 뭔가 잘못한 것이 있는지?

“지금 계약서 구조는 이래요. 용병단 소속 개인의 석방 비용, 그러니까 트랑카벨 가문의 채권을 하나로 모아서 네그라타 용병단이 대표로 짊어지는 방식이죠?”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세요, 이 계약서대로 사망자가 늘어나면, 그들의 채무는 여전히 용병단에 귀속되어있기 때문에 병사 한 분 한 분이 부담해야 하는 채무의 액수는 더 커지는 거네요!”

“네··· 그렇겠습니다.”

“이건 부당해요! 터무니없는 악덕 계약이죠. 어째서 항의하지 않았죠?”

“그, 그것은···.”

그야 설명해주기 전에는 몰랐기 때문이다.

용병 열 명이 각각 10의 채무를 지고 있을 때, 용병단은 총 100 만큼의 채무가 있다. 그런데 5명이 사망해 남은 용병이 다섯 명이더라도 용병단이 진 채무는 여전히 100이다. 따라서 한 명이 감당해야 하는 채무는 20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이런 식의 계약이 처음이었기에 생각도 못했던 문제였다.

아니 솔직히 설명을 다 들었지만 그렇게까지 부당한 계약인지도 모르겠다. 용병단 전체의 몸값을 트랑카벨 가문이 대납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

“이 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이렇게 많은 분이 전몰하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그녀의 슬픈 얼굴을 보면서, 미카토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녀는 미카토나, 네그라타 용병단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부당한 계약을 강요하는 꼴이 되었던 자기 자신에게 분노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계약서는 용납할 수 없어요. 고용주를 섬기다 사망했더니 그 부담이 생환자에게 전가된다? 세상에··· 이런 악덕 고용주가 또 어디 있겠나요! 용서 못 합니다!”

“마, 맞는 말씀입니다 아쥬흐 의무대장님. 그래도 조금 진정하시는 것이···.”

“진정할 수 없어요. 트랑카벨은 섬기는 자를 속이지도, 착취하지도, 버리지도 않았기에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었으니까요.”

뭐가 그리도 화가 나는지 씩씩대던 아쥬흐는 손가락으로 계약서에 새롭게 추가된 항목을 가리킨다.

“여기 이 항목이 추가되었어요. ‘계약에 의해서, 트랑카벨 가문을 위해 복무하다 전사했다면 그 채권은 불문에 부친다’고요. 당연히 소급적용해야하니, 미카토 단장님의 동의가 필요해요.”

“알겠습니다···.”

“미안해요. 이런 때에.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분이 부상과 싸우고 있어요.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데··· 잘못된 계약 사항을 그대로 둘 수는 없어서 소란을 피우게 되었네요.”

“아닙니다, 의무대장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병원으로 돌아가서 부상병들을 돌보기 시작했었다.

미카토는 일단 단원들에게 새 계약 사항에 대해 알렸다. 다만 대부분은 무슨 소리인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내용 이해하고 나서는 그게 왜 부당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대신 참모 중 하나가 ‘싸우다 죽은 자들의 빚을 탕감해주시는 성녀님의 자비다’라고 설명하자 다들 바로 이해하고 감동받은 것 같았다.

그냥 미카토 자신도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전투가 격렬했기에 네그라타 연대의 절반이 부상자였다. 이들은 모두 훌륭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게다가 그 비용은 모두 트랑카벨 영지군의 의무대가 부담하고 있었다. 심지어 큰 부상을 입어 당장 복무하지 못하더라도, 치료 기간에도 봉급이 나온다.

무엇 하나 성녀의 기적이 아닌 것이 없었다.

“겨우 변경의 한 지방이, 엘랑키아 왕국 전체와 법황청을 상대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트랑카벨에게는 사람이 가장 귀합니다. 치료에 협조해 주세요.”

아쥬흐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모두가 협조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병사들 사이에 성녀 신앙이 태동하고 있었던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콘도티에레의 다음 출정에 동행하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아, 100기 정도의 네그라타 소속 기병대는 따라가기로 했다. 그들이라도 활약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머지 네그라타 본대는 조용히 여울목을 지키면서 상처를 회복해야 한다. 라솔의 알코라즈 남작령, 네그라타 용병단의 근거지에서는 새롭게 신병을 모집해서 훈련하고 있었다. 그들과 합류하면 어느 정도 병력은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콘도티에레가 말하기를, 라솔 출신의 용병을 꾸준히 받아들일 수 있으니 좋은 파이프 라인이라고 하였다. 확실히 외국에서 갑자기 사람을 모으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는 않을 테니까. 좀 더 적극적으로 신병을 모집해서 이전의 규모를 회복해도 된다고 독려해주기도 했다.

전쟁이 하루 아침에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만큼, 알코라즈 남작령을 통해 모집된 네그라타 용병단의 신병들이 활약할 날도 곧 올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 또한, 그들이 맡은 임무에는 포로 관리도 있었다. 샹다메리에서 붙잡은 포로의 숫자는 3천 명이 넘었기에 네그라타 연대 생존자 숫자 보다도 훨씬 많았다.

전투 마지막 단계에 무리해서 공격하지 않았다 들었지만, 포위망 안에서 항복한 숫자만 해도 그 정도 되었다. 귀족이나 장교 포로들은 따로 트랑카벨 영지군에서 관리하고 있으니, 대부분은 평민 출신의 일반 병사 포로들이다.

지금은 고분고분 잘 따라주고 있다만. 혹시라도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포로 수용소까지 조심해서 옮겨야 했다. 결코 무시해도 될 일은 아니었다.

···지금 쯤은 아마 콘도티에레의 다음 출정에 합류하는 연대들은 순차적으로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을 것이었다.

부럽다.

미카토의 심정은 오로지 함께하지 못해서 아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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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랑카벨 영지군의 제31 몽세나 정찰 연대의 지휘관, 로베르 드 나뵈프는 거대한 기병 행군 대형의 선두에서 말을 몰고 있었다.

몇 차례 실전에서 공을 세우고 빠른 속도로 진급해 연대장이 된 그는 샹다메리 전투를 생각하면 속이 쓰렸다.

전투 내내 대기만 했기 때문이다.

제31 정찰 연대는 최후의 예비대였다. 정말 최후의 최후를 맡은 예비대. 전군의 최후방에서, 전선 어디에 일이 발생해도 곧바로 달려갈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었다.

좌익이 적의 기병에게 일시적으로 돌입을 허용했을 때는, 대기했다.

우익이 압도적으로 많은 적에게 공격당해서 처절한 지연전을 벌이고 있을 때도, 대기했다.

중앙의 약점을 돌파해, 슈토르히와 지빌링엔의 용병들이 적진 후방으로 나아갔을 때도, 대기했다.

결국 전투가 끝나는 순간까지 계속 기다리기만 했다.

전투가 끝난 후에는 할 일이 있기는 했다. 포위망이 형성되어 승리가 확정된 이후. 적들이 완전히 전장을 빠져나간 후에. 천천히 적을 따라가며 낙오 부대들을 잘라 먹었다.

적극적으로 추격전을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적을 자극하지 않을 정도 거리에서 따라가며 낙오된 적병들을 주워 모으듯 포로로 잡았을 뿐이다. 낙오되었다는 것 자체가 정신적, 신체적으로 한계에 몰린 자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이렇다 할 전투도 없었다.

그제야 콘도티에레를 만나서 꼼꼼한 추격전이었다, 승리를 확실히 다지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는 말을 듣는 등 칭찬받았다.

하지만! 그래도 전투에서 구경만 했다는 현실이 바뀌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전투로 인정받아온 그로서는 많이 아쉬운 일이었다. 로베르 스스로도 자신이 이렇게나 전공에 집착하는 면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저 조용히 성녀를 섬기고 콘도티에레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고 있었는데 말이다.

불경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샹다메리 전투는 예술이었다. 전장이라는 종이에 인간과 강철, 화약으로 그려진 예술 말이다.

콘도티에레의 명령을 따르면 이긴다. 그것도 극적으로 이긴다는 것은 벌써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자신이 할 수 있을거라 생각도 못했던 영역에 도달했던 느낌이다.

만약에 콘도티에레가 물로 뛰어들라고 명령한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 것이다. 아마 다음 순간에는, 물 위를 걷는 자신이나, 물 속에서 숨을 쉬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콘도티에레의 지휘를 받는다는 것은 원래 그런 느낌이다.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성취감에 알게 모르게 중독이 된 모양이다.

그래서 이번 전투에는 더욱, 방관자로 끝나고 말았다는 점이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그런 부차적이고 개인적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임무를 취향에 따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번에 받은 일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

현재 로베르는 휘하 추격기병 1개 중대와 함께 `손님`을 맞이하려고 와 있었다. 3천이 넘는 엄청난 규모의 기마병들로 이루어진 용병대라고 한다. 3천 기라면 트랑카벨 영지군에 소속된 기병 전부와 맞먹을 정도의 엄청난 숫자이다. 배편이 없어 블랑독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던가.

저쪽에서 알록달록한 기묘한 가죽옷을 입고 검은 염소수염을 기른 남자가 다가온다.

"안녕하시오? 에트 대장이 보내신 분이오?"

"그렇습니다. 로베르 드 나뵈프라 합니다. 제31 정찰 기병 연대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허허헛, 반갑소이다. 프리즈마라 용병단의 우두머리 코바르 리메니에디라 하오."

"반갑습니다. 지금 콘도티에레께서는 이동 중이십니다. 제가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기병 지휘관은 손을 굳게 맞잡았다. 코바르는 어딘가 상대방의 자질을 알아보려는 듯, 로베르의 이모저모를 살핀다. 그의 외모라거나, 복장이라거나, 무기라거나.

하지만 로베르의 눈은 코바르의 뒤편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수천 기의 기병. 한 명 한 명의 무장은 변변하지 못한 경기병 무리였지만, 시야를 가득 채우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단일 기병대는 샹다메리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허허헛, 숫자가 좀 많지요? 에트 대장을 놀라게 해 주려고 조금 더 모아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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